정 종 암
칼럼니스트
 삭풍이 휘몰아친다. 서민들은 중무장한 옷차림에도 귀를 에워싸는 고통에 신음한다. 그 고통은 폐부를 찌름도 모자라 '을'로 살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에 정신까지 혼몽하게 만든다. 우리 사회는 시도 때도 없이 갑을관계의 논란으로 시끄럽다. 일부 국민은 배고픔에서 조금 벗어났다고 예전에 우리를 도왔던 후진국에 가서도 '갑질 프레이드의 향연'이다. 최근 '대한항공 부사장 땅콩 회항사건'에 이어 '부천 현대백화점 모녀 사건', '위메프의 수습사원 전원 해고사건' 등도 모자라 인사권을 가진 부산경찰청장의 나잇살 많은 '부하직원에 대한 욕설' 파문까지 더해 삭풍에 돛을 단 격이다. 갑질은 이 사회의 소외받은 약자들의 울분에 눈물이 넘쳐 콧물까지 치마폭을 적신다.

도대체 '갑질'이란 전대미문의 용어가 무엇인가? 21세기판 노예제도인가? 어떻게 '갑' 뒤에 '질'이란 어미가 붙어 '갑질'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을까. 이는 계약상 고용주에 해당하는 사람, 고객 등이 상대적으로 약자인 '을'에게 함부로 대하거나 폭행, 폭언 등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갑을(甲乙; Party A - Party B)은 원래 사인간의 거래인 계약서상에서 계약 당사자를 순서대로 지칭하는 법률 용어다. 그러기에 주종이나 우열이 아닌 수평적 관계이다. 그런데도 유독 천민자본주의 일변도인 우리나라에서는 상하관계나 주종관계로 치닫고 있다. 보통 권력적 우위인 편을 '갑', 그 반대편을 '을'이라 일컫는데서 '갑을관계'란 게 생겨 지위의 높고 낮음의 의미로 돌변했다.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가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지금은 대기업과 협력업체, 업주와 종업원, 상사와 직원, 고객과 서비스업체까지 '갑 마인드'에 의한 뿌리박힌 횡포가 도를 넘었다.

 자본주의에서 시장이 다른 이의 이익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구성원들이 최대한 이익을 추구하는 것임에도, 자원 배분의 불공정과 비효율성이 판친다. 완전경쟁 또는 완전경쟁시장이 아닌 독점, 과점, 독점적 경쟁의 불완전경쟁시장이 이러한 화를 초래한다. 이에 공정한 거래가 없는 불공정한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가진 자의 논리만이 통용되기에 SNS의 발달과 높은 시민의식으로 끝내는 '을의 반란'도 세찬 형국이다. 그 단적인 예가 대한항공사건이다. 갑질은 국회의원 등 무한 권력인 '갑중의 갑', '슈퍼 갑', '울트라 갑'이라는 또 다른 격까지 상존한다.
갑을관계가 인간관계까지 종속시키는 비인간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다. 전방위적이다. 비이성적이고 비인간적인 갑을관계가 얼마나 극심한지, 재벌기업과 소상공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직자나 언론은 물론, 소위 양심의 보루인 법조인이나 학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13년 「세계부패지수(Global Corruption Baromter)」의 보고에 의하면, 세계인이 꼽는 가장 부패한 5개 집단은 정당, 입법기관, 사법기관, 입법기관, 경찰, 공무원이었다. 여기에다 정부의 부정부패가 더한다. 반부패문제전문가인 수전 로즈에커먼은 "정부의 운영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고 지적한다. 국가 운영에 있어 국민의 세금으로 자금이 조달되기에 공직자가 그 돈을 착복하거나 감세를 원하는 국민으로부터 뇌물이 오가는 게 한 일례이다. 이러한 탓으로 정부는 부족한 세수를 채우려고 다시 증세하는 과정에서 부패가 더 심해지는 악순환을 겪는다. 경제민주화나 공정사회를 말로는 부르짖지만, 그 불공정과 부조리 등을 최우선하여 감시하고 바로잡아야할 주체는 국가다. 그러나 이를 구성하는 공직자가 부패해 있다.

 개인의 역량과 조직의 힘을 혼동하기에 한마디로 싸가지가 없다. 자신이 최고인줄 알며, 조직의 이익이나 공익보다는 사익을 도모한다. 을을 하인 대하듯이 하며, 상명하복관계에서는 을이면 손윗사람에게도 반말을 찍찍거린다. 자신의 과오를 을에게 떠넘긴다. 배경에 대한 설명도 없이 무조건 복종을 강제한다. 더 나아가 사익을 위해 이 사회의 부조리에 침묵하거나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까지 저버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공무원이 의뢰인과 차 한 잔만 마셔도 처벌하는 싱가포르처럼 부패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다. 돈을 받았으나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아도 공무원 등이 돈 받으면 무조건 처벌하겠다는 이른바 '김영란 법'을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 그리고 글로벌 기업인 맥도날드의 가맹점과 운명공동체적 파트너십에 이어, 인간성 회복에 호소하는 운동이다. 어려운 처지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감정노동자나 아르바이트 학생들에게 천 달러 단위의 팁을 주는 미국 사회의 '색다른 갑질'이 아니더라도 좋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최고로 예우하면 그들도 나를 황제처럼 대해준다는 평범한 진리가 넘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57년 고성산. 문학평론가. 시사평론가. 종합일간지 주필. 공정사회실천국민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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