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마다 그 대상을 향해 원망하거나 비난한다. )

남 덕 현
고성읍 동외로
 지식이 많다고 반드시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다만 지혜롭기 위해서는 지식이 일정부분 필요할 뿐이다.
 지혜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어떤 어려움이 처했을 때 그 어려움에 집착하여 누구를 탓하거나 무엇을 원망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상황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행동으로 나서는 사람이다. 예를 들면, 부모공경을 강조하면서 실천하지 않는 지식인 보다는, 부모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며 부모가 원하는 일을 한 가지라도 들어주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복을 받고 싶은 사람은 복 짓는 일부터 하는 사람이고, 질병 없이 건강하고 싶은 사람은 평소 때 음식을 가려먹으며 꾸준하게 운동을 하는 사람이다. 질병이 찾아왔을 때는 그것으로 고민할 것이 아니라 병원으로 달려가서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적절히 치료받는 일이 지혜롭다. 경제가 어려울 때는 그 원인을 찾아 경제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 정부를 탓하거나 시대를 원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은 문제해결보다는 그런 문제가 일어난 원인을 찾아내고는 원인에 대해 원망하거나 비난하며 괴로움에 빠져버리는 사람을 말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충족을 위해 사는데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그 대상을 비난하거나 원망하는 특징이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한마디로 인간은 욕구의 동물이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욕구를 한없이 만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들이 추구하는 욕구의 범위는 끝이 없기 때문이며 하나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나면 덩달아서 또 다른 욕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욕구에 탐착하여 욕구추구에만 집착을 하다가 고통 속에서 인생을 끝낸다. 욕구란 한 마디로 바라는 마음이다. 자기가 생각하고 판단을 내린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구하거나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세상의 일이라는 것이 자기가 구하며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요즘 전염병이 창궐하여 그 전파력이 상상을 초월하자 사람들은 수 천 수만 가지의 불만과 욕구를 분수처럼 쏟아내고 있으며, 그 욕구가 이루어지지 않자 그 대상을 비난하기에 바쁜 모습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에서 정부가 할 일이 있고 국민이 할 일이 있다. 정부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를 색출하고 그들의 이동경로를 파악하여 일반사람들과 분리시키며 더 이상 전염병이 확산되지 못하도록 막는 일이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을 격리시켜서 치료하는 일이다. 그런 정보를 국민에게 알려주는 역할이 중요하다. 그리고 국민들이 해야 할 일은 외출 후에 손 씻기와 세수 그리고 많은 대중이 모이는 곳은 마스크를 착용하며 가능한 그런 장소를 피하는 일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책임타령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전염병의 확산은 누구도 만족할만한 해결능력이 없다. 정부를 욕한다고, 대통령을 비난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바이러스라는 세균 그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책임추궁에만 열중하여 서로를 비난하기에만 급급하다.
 어리석어서 그렇다. 그런 연유로 사회는 더욱 혼란스럽고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의 문제해결은 요원하다. 필자는 지난번에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마트 앞에서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뒤편에 서본 경험이 있는데, 그곳에서 놀랄만한 풍경을 발견하게 되었다. 중년남자 몇 사람이 어울려서 대통령을 향해 욕설을 쏟아 붓는 것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지 못한 것은 대통령의 책임이라는 것이었다. 정말 어이없는 주장이었다. 전형적인 야당정치꾼이 TV에서 발설한 내용을 불만석인 목소리로 그대로 외치고 있었다. 하느님도 막지 못하는 전염병을 대통령을 향해 책임지라는 것이다.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너도 나도 따라서 호응을 하는 모습에 정말 황당했다. 옛날 말에 “경찰 10명이 도적놈 하나 못 잡는다.”는 말이 있다. 그 정도로 사회의 어려움을 해결하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또 다른 몇 가지 비유를 들어서 살펴보자. 불교에 ‘독화살 맞은 사냥꾼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를 비유적으로 표현해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접근방법을 이해하였으면 좋겠다. 옛날에 사냥꾼 한 사람이 깊은 산속에서 사냥을 하다가 어디서 날아 온지 모르는 독화살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려져서 신음을 하고 있었는데, 동료 사냥꾼들이 독화살 맞은 그 사냥꾼을 구출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러나 동료 사냥꾼들은 제각각의 주장으로 인하여 아까운 시간만 흘려보내게 되었고 그 사이에 독화살 맞은 사냥꾼은 목숨을 잃게 되었다. “독화살 맞은 사냥꾼의 몸에서 화살을 뽑아내자.” “아니다, 누가 독화살을 쐈는지부터 밝혀진 다음에 독화살을 뽑자.” “독화살을 뽑기 위해 의사를 부르자.” “아니다, 함부로 독화살을 뽑으면 위험하다.” “독화살을 쏜 사람의 성과 이름과 모습 등을 알아야 한다.” “독화살의 독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 이렇게 논쟁을 하다가 독화살 맞은 동료사냥꾼은 죽은 것이다. 다 죽어 가는 사람을 눞혀 놓고 이런 논쟁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당장 독화살을 뽑고 치료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래야 죽어가는 생명을 구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이 이와 비슷하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책임회피를 위한 논쟁은 불필요한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을 치료하여 완쾌시키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더 이상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과 감염이 확대되지 않도록 조치를 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국민들은 정치꾼들의 논쟁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서 불필요한 논쟁에 정력을 소모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가? 혹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는 어떻게 치료되고 있는가? 코로나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서 혹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지역을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정치꾼들의 논쟁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이에 우리국민은 전염병으로 죽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으로 힘들어하는 우리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시급하며 그럴 때만이 우리는 지혜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국민은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의 불필요한 정치적 논쟁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이런 것을 계기로 우리는 지혜 있는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 하자. 지식(知識)은 교육, 학습, 숙련 등을 통해 사람이 재활용할 수 있는 정보와 기술 등을 포괄하는 의미이며, 지혜는 사물의 이치나 상황을 제대로 깨닫고 그것에 현명하게 대처할 방도를 생각해 내는 정신의 능력 이라고 시전에서는 정의하고 있다.
 코로나 전염병을 계기로 지혜 있는 사람들의 행위를 살펴보자. 02.28일자 노컷뉴스에 의하면 코로나 전염병으로 인해 어려움에 시달리는 대구시민을 위해 전라남도는 21개 시군에서 모집한 공중보건의 46명을 대구로 보냈으며, 공중보건의 20여명을 추가로 보냈다고 한다. 이밖에 전라남도 의사회는 회원들이 모금한 성금 3천150만 원과 체온계 45개 등을 대구시에 기탁했다고 한다. 그리고 진도군에서는 실의에 빠진 대구시민들을 돕기 위해 진도 특산물 봄동과 진도 울금을 두 차례에 걸쳐 보냈다고 한다. 진도 울금은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면역성 강화에 탁월한 효능을 자랑하는 환, 분말, 과립, 농축액 등 20여종의 울금 가공제품을 전달한 것이다. 아울러 전국적으로 대구지역에서 봉사할 의료인을 모집한 결과 총 490명이 지원했으며, 지원자는 의사 24명, 간호사 167명, 간호조무사 157명, 임상 병리사 52명, 행정직 등 90명이라는 뉴스이다. 전북의 임실군은 지역 특산물인 치즈 등 2100만원 상당의 유제품을 대구 의료진에게 전달했으며, 의사 협회는 마스크 300만원, 손세정제 300만 원 등 방역 물품 비용과 손소독제 1000개와 소독티슈 5000개 등을 실어 보냈다고 한다.
 모두 지혜 있는 사람들의 행동이다. 지식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어려움이 닥치는 문제에 이끌려가지 않고 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행동으로 실천한 사람들의 예이다. 그것은 우리국민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다.
 
 지혜의 삶은 인간의 끝없는 욕구와 산더미 같은 재산보다도 더 소중하다. 지혜를 가진 자는 항상 남에게 복덕을 가져다주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재앙을 저지른다. 인간이 지혜를 가지는데 가장 경계를 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 욕심대로 바라고 구하는 욕구이다. 이 욕구라는 것 때문에 사람은 지혜의 삶을 성취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인간이 욕구를 가지는 순간부터 애초에 가진 모든 지혜의 생각들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코로나 사태를 바라보면서 누구의 책임추궁을 한다든지 비난한다든지 불만을 터트리는 일은 어리석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직접 코로나 현장으로 달려가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인가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다.
 지혜로운 사람이 많을수록 살기 좋은 사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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