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 오신 날이 인생에게 던져주는 메시지 ]

남 덕 현
고성읍 동외로
 사람들의 인생문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삶과 죽음에 대한 것이지만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대화조차 기피하며 또한 꺼려한다. 그것은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벅찬 주제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고통은 남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당신의 문제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죽음에는 순서가 없는데도 말이다.
 불경 <잡아함경>에 나오는 4명의 아내 이야기의 예를 들며 부처님의 출가이야기를 펼쳐보고자 한다. 네 명의 아내를 둔 남자가 있었다. 그는 첫째 아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나 깨나 늘 곁에 두고 살아간다. 둘째 아내는 아주 힘겹게 얻은 아내이며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쟁취한 아내이니 만큼 사랑 또한 극진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둘째는 든든하기 그지없는 ‘성’과도 같았다. 셋째와는 특히 마음이 잘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며 즐거워하였다. 그러나 넷째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늘 하녀 취급을 받았으며, 온갖 굳은 일을 도맡아 했지만 싫은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으며 그저 묵묵히 순종하기만 하였다. 어느 때 그가 머나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게 되어 첫째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러나 첫째는 냉정히 거절한다. 그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둘째에게 가자고 했지만 둘째 역시 거절하였다. 첫째도 안 따라가는데 자기가 왜 가느냐는 것이다. 그는 셋째에게 같이 가자고 하였다. 셋째는 "성문 밖까지 배웅해 줄 수는 있지만 같이 갈 수 없다." 라고 했다. 그는 넷째에게 같이 가자고 하였다. 넷째는 "당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겠다." 고 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는 넷째 부인만을 데리고 머나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잡아함경>에 나오는 이 이야기의 "머나먼 나라"는 저승길을 말한다. 그리고 "아내"들은 "살면서 아내처럼 버릴 수 없는 네 가지"를 비유하는 것이다. 첫째 아내는 육체를 비유하는 것이며 육체가 곧 나라고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지만 죽게 되면 우리는 이 육신을 데리고 갈 수 없다.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얻은 둘째 아내는 재물을 의미하지만 든든하기가 성과 같았던 재물도 우리와 함께 가지 못한다. 셋째 아내는 일가친척, 친구들이며 마음이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던 이들도 문 밖까지는 따라와 주지만 끝까지 함께 가 줄 수는 없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를 잊어버리게 된다. 넷째 아내는 바로 마음이다. 살아있는 동안은 별 관심도 보여주지 않고 궂은 일만 도맡아 하게 했지만 죽을 때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나서는 것은 마음뿐이다. 어두운 땅속 밑이든 서방정토든 지옥의 끓는 불 속이던 마음이 앞장서서 나를 데리고 갈 것이다. 살아생전에 마음이 자주 다니던 길이 음습하고 추잡한 악행의 자갈길이었으면 늘 다니던 그 자갈길로 나를 데리고 갈 것이고, 자비와 덕을 쌓으며 걸어 다니던 밝고 환한 길이면 늘 다니던 그 환한 길로 나를 데리고 갈 것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어떤 마음으로 어떤 업을 짓느냐가 죽고 난 뒤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죽음은 가장 고독한 것이며 또한 혼자 감당해야 할 고통이다.

 다음은 ‘싣달타’(부처님)의 출가이야기 이다. ‘싣달타’는 왜 부귀영화를 버리고 출가 했을까? “세상의 영화가 비록 쾌락하지만 나고 늙고 병들며 죽음이 있다. 이 네 가지가 없다고 하면 어찌 내 마음이 기쁘지 않으리.” 불경인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에 나오는 ‘싣달타’(부처님) 이야기이다. 인도 가비라국의 태자 ‘싣달타’가 왕궁의 영화와 아버지 정반왕의 간절한 기대를 저버리고 아름다운 부인 ‘야수다라’와 귀여운 아들 ‘라후라’를 왕궁에 남겨둔 채 과감히 출가를 하게 된다. ‘싣달타’ 태자는 그 누구보다도 영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행복의 조건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었다. 누구나 바라는 재산과 명예와 권력을 모두 갖춘 왕자였으며 어떤 사람보다도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싣달타’ 태자는 사랑하는 처자와 존경하는 부왕의 곁을 떠나서 밤중에 성벽을 넘어 출가를 하게 된다. 그것은 온갖 애욕으로부터 과감히 탈출하여 진리를 찾아 나선 참으로 뜻 깊은 출발이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출가를 위대한 출가라고 한다. 그러면 이처럼 어려운 결심과 과감한 행동을 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싣달타’ 태자는 출가하기 전에 두 가지의 길을 놓고 선택의 기로에서 깊은 고민을 하였다. 그 하나는 세속적인 영화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성자로서의 진리의 길이었다. “왕자로서 왕위를 계승하여 세속적인 부귀와 영화와 권세를 누리면서 일생을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출가하여 수행자로서 고고한 진리 탐구의 길을 걸어서 중생을 제도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심각한 고뇌에 빠졌다. ‘싣달타’가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시어 온 국민의 축복을 받을 때 정반왕은 나라에서 제일가는 예언자인 ‘아시타’를 불러 아기의 장래를 물었다. ‘아시타’는 왕자의 모습을 한동안 유심히 살펴보더니 갑자기 그의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을 흘렸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정반왕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고 그래서 황급히 그 연유를 물었다. ‘아시타’는 눈물을 멈추고 나서 “이 어린 왕자에게는 서른두 가지의 좋은 상과 80가지의 상서로운 몸매가 있습니다. 이런 분은 4천하를 통일하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거나, 아니면 출가하여 부처님이 되실 것입니다. 저는 나이가 많아 전륜성왕이나 부처님이 되시는 것을 볼 수 없으니 그게 슬퍼서 절로 눈물이 흘렀습니다.” 전륜성왕이란 인도 대륙을 통일하여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한다는 인도의 전설적인 왕 중의 왕이다. ‘싣달타’ 태자의 번민이 겉으로 드러난 최초의 사건은 농경제(農耕祭) 행사 때의 일이었다. ‘농경제’란 봄이 되어 최초로 밭갈이를 하는 행사로 한 해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해마다 이 행사에는 왕을 비롯하여 문무백관들이 참석하여 밭갈이를 시범했으며 제일 먼저 왕이 시범하면 대신들이 하고 농부들이 그 뒤를 이어 성대하게 거행하였다. 어느 해 태자도 이 ‘농경제’에 참가하여 신기한 듯 일하는 농민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처음에는 신기해 보였지만 흙과 땀에 젖어 헐떡거리는 농부들이 무척이나 애처로워 보였고 그것도 잠깐, 태자의 마음에 큰 충격을 받은 일이 발생했다. 농부가 밭을 갈자 쟁기로 파헤쳐진 흙 속에서 벌레가 꿈틀거리고 나타났는데, 어디선지 모르게 갑자기 새가 날아와서는 벌레를 쪼아 먹으니 더 큰 새가 날아와서 작은 새를 잡아먹는 것이었다. 살아 있는 것끼리 서로 잡아먹고 먹히는 이 참혹한 광경을 보자 태자는 더 견딜 수가 없어서 가까운 숲으로 들어가 나무 아래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생명체는 자기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다른 생명을 빼앗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이른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현실인 것이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먹고 사는 약육강식의 현장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천성이 영민해서 남보다 더 깊은 생각을 했던 ‘싣달타’ 태자가 이 사실을 가볍게 보고 넘길 리 없었으며 여기서 최초로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깊은 명상에 잠겼던 것이다. 이를 ‘염부수하(閻浮樹下:보리수나무)의 정관(靜觀)’이라고 한다. 그러나 ‘싣달타’ 태자로 하여금 출가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사문유관(四門遊觀)이다. 어느 날 태자는 동문 밖으로 산책을 나가게 되었는데 허리는 활처럼 굽고, 얼굴에는 잔주름이 가득하고, 숨을 몰아쉬며 걸어가는 노인을 보게 된다. 처음 보는 노파라 순간 크게 탄식을 하며, 늙음이란 누구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다음 날은 남문 밖으로 나가서 거닐다가 병든 사람과 아파서 괴로워하고 울부짖으며 질병에 시달리는 참상을 보게 된다. 다른 날은 서문 밖으로 나가서 상여 행렬을 보게 되며 사람은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괴로워하다가 결국은 죽고 만다는 생자필멸의 엄연한 사실을 뼈아프게 느끼게 된다. 이 때 태자의 심정을 『불본행집경』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인생은 태어났다가 결국은 늙고 병들어 죽고 마는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자는 어쩔 수 없이 필연적으로 늙고 병들어 죽는 괴로움을 어찌하랴. 아아, 인생은 허무하고 괴로운 것이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의 수렁이 우리 앞에 있구나.”

 그러나 마지막으로 ‘싣달타’ 태자가 찾아 나섰던 북문 밖에서는 한 사람의 고고한 수행자를 만나게 된다. 이 수행자는 비록 삐쩍 마르고 남루한 옷을 걸치고 외형은 볼품이 없었지만, 걸음걸이는 의젓하고 당당했으며 눈빛은 빛났다. 태자는 수행자로부터 ‘해탈의 길을 찾아 출가하였다.’는 말을 듣고 한 가닥의 희망을 갖게 되며 “그렇다. 희망이 있구나. 늙고 병들고 죽는 속박의 삶에서 벗어날 해탈의 희망이 있구나.” 이 ‘사문유관’으로 ‘싣달타’ 태자의 출가 의지는 확고하게 된다. 태자의 마음이 출가 쪽으로 완전히 기운 것을 눈치 챈 정반왕은 크게 걱정하게 되며 그래서 태자의 마음을 붙들어보려고 갖가지 수단을 동원하게 된다. 삼시전(三時殿)을 따로 지어 계절에 따라서 아늑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별궁을 마련해 주기도 했고, 매일 연회를 베풀어서 태자로 하여금 술과 여자의 환락 속에 즐거움을 느끼고 출가를 단념하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오히려 태자의 출가의지를 더욱 굳히는 계기가 되었을 뿐 부왕의 뜻대로 태자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하였다. 부왕이 매일 연회를 베풀어서 태자를 즐겁게 하려는 것은 오히려 큰 오산이었다. 어느 날 태자는 연회가 끝나고 나서 피곤에 겨워 쓰러져 정신없이 코를 골면서 잠을 자는 한 무리의 무희들을 보게 되는데, 춤추고 놀 때는 그토록 아름다워 보이던 여인들이 침을 질질 흘리면서 잠든 추한 모습을 보고 태자는 여자의 아름다움, 쾌락이라는 것이 얼마나 속절없는 것인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세상의 더러움과 어리석어 꼬임에 빠지는 것은 여인의 몸보다 더한 것은 없으리라. 갖가지 의복과 구슬 따위로 아름답게 꾸밈으로 어리석은 사람은 속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은 미련한 것, 그림자와 같고 꿈같은 것으로 참된 것은 아니다.”라고 『불본행집경』에서는 전하고 있다. ‘싣달타 ’태자는 대단히 지혜로운 분이었다. 그래서 우리들이 속기 쉬운 겉모습에 홀리지 않고 그 뒷면까지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아무리 값비싼 옷으로 아름답게 치장하고 귀고리, 팔찌, 다이아반지를 끼고 꾸민다 해도 우리 인간의 육체는 피와 고름 대소변이 가득 찬 가죽주머니에 불과한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게 된 ‘싣달타’ 태자는 정반왕에게 허락을 해달라고 간청했으나 오히려 정반왕은 아들을 여러 가지 달콤한 말로 달래 보게 된다. 그러자 태자는 부왕에게 세 가지의 조건을 제시하며 “저에게 세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의 소원을 아버님께서 들어주신다면 저는 홀연히 출가와 수도의 길을 포기하겠습니다. 저를 언제나 늙지 않게 해주시고, 저를 항상 건강하게 해주시고, 저를 언제까지나 죽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저는 출가의 길을 포기하겠습니다.” 이러한 태자의 요구를 들은 정반왕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 누구도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태자의 결심이 너무 굳어서 도저히 바꿀 수 없음을 알아차린 정반왕은 이제 물리적으로 출가를 저지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으며 신하들에게 성벽과 사대문의 경비를 엄하게 하도록 분부를 내리고 태자의 일거일동을 감시하게 하였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태자의 의지는 더 강해졌고 드디어 밤이 되자 ‘싣달타’ 태자는 마부 ‘찬타카’가 모는 말을 타고 성을 넘어서 출가했다. ‘싣달타’는 몰래 성을 빠져나와 얼마간 달려서 옛날 선인들이 살던 숲에 이르렀으며 말에서 내린 태자는 몸에 지니고 있던 ‘마니보’를 마부에게 주면서 “이 보배를 가지고 가서 부왕에게 드리고 이렇게 말해 주기 바란다. ”나 태자는 세속적인 욕망은 조금도 없으며 또한 선업을 쌓아 천상에 태어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일체 중생이 바른 길을 몰라 헤매며 생사윤회에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이를 구제하기 위해 출가하는 것뿐입니다. 나는 나이가 적지만 생노병사(生老病死)에는 정해진 때가 따로 없으며, 지금 젊다고 안심할 수 없습니다. 예전부터 훌륭한 임금들은 나라를 내어놓고 도를 찾아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수행 도중에 세속생활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습니다. 내 결심도 이와 같아서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얻을 때까지는 결코 돌아가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몸에 지니고 있던 영락과 패물과 양모를 ‘야수다라’에게 전해주도록 하고 자기의 결심을 모든 친척들에게 전해 주도록 마부에게 부탁을 하였다. 마침 그때 사냥꾼이 한 사람 지나가므로 태자는 비단옷을 벗어주고 사냥꾼의 옷과 바꾸어 입고 조용히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시타’ 선인의 예언대로 ‘싣달타’ 태자는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되기 위해 출가하시게 된 것이다. 『증아함경(增阿含經)』에 보면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출가 동기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출가한 것은 병듦과 늙음과 죽음이 없고, 근심 걱정 번뇌와 더러움이 없는 가장 안온한 삶을 위해서였다.” ‘싣달타’ 태자라는 한 청년이 왕자의 지위도 버리고 출가를 결행하게 된 동기는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생노병사(生老病死)라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심각하고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고, 그리고 누구나 바라고 일생 동안 염원하는 행복한 삶을 위해서였던 것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모든 실상(實相)이 무상(無相)임을 깨달을 때 자비심(慈悲心)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자비심(慈悲心)이 인간의 궁극적 행복임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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