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공자에게는 노나라의 대부 유하계라는 친구가 있었고 하계에게는 도척이라는 아우가 있었다. 이 도척이 후에 도적(盜賊)이 되고 나아가 ‘도둑’이 된 것이다. 이 도척은 9,000명의 졸개를 거느리고 세상을 돌아다니며 제후들의 영토를 침범하여 약탈을 일삼았다. 남의 집에 구멍을 뚫고 문을 부수고 들어가 남의 소와 말을 훔치고 남의 부녀자를 약탈했다. 부모형제들도 돌아보지 않았고 조상들의 제사도 지내지 않았다. 공자가 유하계에게 말했다. ‘한 사람의 아버지라면 아들을 훈계할 수 있을 것이고 한 사람의 형이라면 아우를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아버지가 그 자식을 훈계할 수 없고 형이 그 아우를 가르칠 수 없다면 부자와 형제의 친애도 그리 대수로운 것이 못될 것이다. 지금 선생은 세상이 다 알아주는 선비이면서도 아우가 큰 도적이 되어 천하에 해를 끼치고 있는데도 그를 가르치지 못하고 있으니 나는 자네를 부끄럽게 여기고 있네. 내가 자네를 대신해서 그를 설득해 보겠네’. 그러자 유하계가 ‘만약 자식이 아버지의 훈계를 듣지 않고 아우가 형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다면 비록 선생의 능변이 있다 해도 어찌 하겠는가? 선생은 부디 가지 말아주게’.
 그러나 공자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도척을 만나러 갔다. 사람의 간을 꺼내어 회를 쳐 먹고 있을 때 공자가 도척의 졸개를 보고 말했다. ‘노나라에 사는 공구라는 사람이 장군의 높은 의기를 듣고 두 번 절하고 뵙고자 합니다’ 도척이 듣고 노하여 말하길 ‘ 그건 노나라의 위선자 공구가 아니냐? 나대신 그에게 전하라. 함부로 문왕과 무왕을 칭송하며 머리에는 나뭇가지 같이 이것저것 장식한 관을 쓰고 허리에는 죽은 소의 가죽으로 만든 띠를 띠고 다니면서 부질없는 소리를 멋대로 지껄이고 농사를 짓지도 않으면서 먹고살며, 길쌈도 하지 않고도 옷을 입는다. 입술을 놀리고 혀를 차면서 멋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천하의 군주들을 현혹시키고 학자들이 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면서 함부로 효니 공손함이니 우애니 하는 것을 정해놓고 제후들에게 요행히 인정을 받아 부귀를 누리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다. 네 죄는 참으로 무겁다. 당장 돌아가지 않으면 네 간을 점심 반찬으로 삼을 것이다’.

 그러자 공자가 전하기를 ‘저는 장군의 형님인 유하계와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부디 장군의 신발이라도 쳐다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한다. 이리하여 도척의 앞으로 나아간 공자는 도척에게 크게 두 번 절을 한다. ‘구야 앞으로 나오너라. 내 뜻에 맞으면 살고 거스르면 죽을 것이다’. 공자가 말한다. ‘ 천하에는 세 가지 덕이 있는데 태어나면서부터 키가 크고 체격이 늠름하며 용모가 아름다워 누구에게도 비길 수 없고, 늙은이도 젊은이도 미천한 이도 모두 그를 좋아하게 되는 첫째가는 덕, 천지를 뒤덮는 지혜와 모든 사물의 이치를 헤아리는 능력이 그 둘째요, 용기가 있어 많은 부하를 거느리는 것이 셋째인데 장군께서는 이 세 가지를 함께 갖추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장군이 도척으로 불리고 계시니 애석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제 장군이 제후가 되어 천하와 더불어 시작하여 형제들을 거두어 보양해주고 다 같이 조상에게 제사를 드릴 수 있게 하셔야 옳을 것입니다’‘구야 무릇 이익으로 권할 수 있고 말로 간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세상의 어리석은 평범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다. 남의 면전에서 칭찬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등 뒤에서 욕하기도 잘한다. 옛날에는 새나 짐승이 많고 사람의 수가 적어 사람들이 모두 나무 위에서 집을 짓고 살며 짐승의 해를 피했고 낮에는 도토리와 밤을 줍고 밤에는 나무 위에서 잠을 잤다. 신농씨 시대에는 안락하게 누워 자고 일어나서는 유유자적했다. 농사를 지어서 먹고 길쌈을 해서 옷을 입었으며 서로를 해 치려는 마음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 황제(헌원)는 덕을 완전히 실현시킬 수가 없어 치우와 탁록의 들에서 싸워 사람들의 피가 백리 사방을 물들였다. 탕왕은 그의 주군을 내쳤으며 무왕은 주왕을 죽였다. 요임금은 자애심이 없었고, 순임금은 효를 다하지 못했으며, 우임금은 일을 하느라 말랐고, 탕왕은 주군을 내쳤으며, 문왕은 유리에 유폐되었다. 이들 모두 세상에서 높이는 인물들이지만 모두가 이익 때문에 그 진실에 미혹됨으로써 억지로 거슬렀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행동이야말로 수치스러운 것이다. 이 뒤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짓밟고 다수가 소수를 학대하게 된 것이다. 탕왕과 무왕 이후에는 모두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들이다. 너는 지금 문왕의 도를 닦고서 천하의 이론을 도맡아 후세 사람들을 가르친다고 나섰다. 도둑 치고도 너보다 더 큰 도둑은 없는데 세상 사람들은 어째서 너를 도구(盜丘)라 하지 않고 반대로 나를 도척이라 부르는 것이냐 ? 네가 하는 말들은 모두 내가 버리는 것들이다.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도라는 것은 본성을 잃은 채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 없는 사기와 허위의 사실일 뿐이다. 그런 것으로는 사람의 참된 모습을 보전할 수 없느 니라.’

 공자는 도척에게 두 번 절하고 빠른 걸음으로 문을 나와 수레에 올라서는 말고삐를 세 번이나 잡았다 놓쳤다. 얼른 보아도 대 학자가 무뢰배를 만났으니 올바른 대화를 주고받을 분위기는 못 되었을 것이다. 도척의 말 속에 한 가지 눈여겨 볼 대목이 있으니 공자가 요·순(堯.舜)을 높이 추존하고 그 요순의 덕치를 이어받았다는 문왕과 무왕이 세운 주(周)나라의 덕치시대로 되돌아가기를 외친 것은 매우 좋은 일일 수 있으나 이러한 가르침을 기반으로 하는 그의 사서(史書 春秋)가 화하족(華夏族 또는 漢族)을 높이고 동이족을 오랑캐라 하여 밟아 뭉개는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역사서 왜곡의 서막이라면 지하에 있는 공자가 우리 한족(韓族 東夷族)이 당하고 있는 이 원통함을 무엇으로 답할 것인지 묻고 싶다.
 이제 또 다른 도둑 이야기, 좀도둑이라 도둑 이야기 치고는 재미가 좀 없지만, 미국의 유명한 작가 마크 퉤인의 얘기다. 일요일(주일)을 맞아 마크 퉤인이 한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한 주간 쌓였던 긴장을 풀고 영혼을 정화하여 재충전의 힘을 주고도 남을 훌륭한 설교였던 것이다. 그는 목사에 대한 존경과 지지의 표현으로 다른 사람보다 두 배 이상 헌금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목사의 설교는 40분이 넘도록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다시 30분이 흘렀다. ‘ 사람들의 소중한 시간을 이렇게 빼앗아도 된단 말인가 ?’. 그는 아주 작은 돈만 헌금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다시 10분이 흐르자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그는 ‘단 1센트도 내지 않겠어’ 이런 가운데 목사의 설교는 한참을 더 지나고서야 끝이 났다. 드디어 목사가 헌금함을 들고 그에게 다가오자 그는 헌금함에서 2달러를 훔쳐내었다.
 자극이 너무 많거나 강렬할 경우, 혹은 너무 오랜 시간 지속될 경우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선생님이 똑같은 훈계를 여러 번 하거나, 부인이 매일 잔소리를 하는 경우 이 ‘한도초과 현상’에 걸려 반감을 일으킬 수 있음을 잊기 쉽다는 말이다. 부모가 똑같은 잔소리를 반복하거나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을 연관시켜 비난을 퍼부으면 이에 대한 아이의 반발 심리로 인해 그릇된 길로 바지게 할 수도 있다. 아이를 교육시킬 때에는 잘못에 관한 내용만 거론하며 비판은 단 한 번으로 끝날 일이다. 이처럼 도둑도 그 나름대로의 할 말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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