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시사신문
> 오피니언 > 칼럼
끝없이 샘솟는 욕심, 그것이 엔진이다
고성시사신문  |  webmaster@gsci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2.09  10:21:06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누구나 남들에게, 또는 자기 자신을 향하여 늘 잊지 않고 들려주는 가장 흔한 덕담 중 하나가 ‘옥심을 버려라’ 일 것이다. 가정에선 부모에게서, 학교에서, 종교의 가르침에서, 어른으로 부터의 가르침에 이르기 까지 빠짐없이 등장하는 주제가 욕심을 내려놓고 착하게 살라는 내용이 많다, 원래 사람의 본성은 선(善)이지만 악심이 늘 마음에 잠복해 있다가 한시도 쉬지 않고 그 출구를 찾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한 가르침이다. 낫을 빌려 주었더니 내 밭의 곡식을 다 베어가 버리는 일은 그리 드문 일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 사회는 늘 극단이 아닌 멈춤 장치 또는 잘못 가고 있을 때의 방향전환 장치가 필요하게 되어 있다. 자동차에서 엔진을 빼어버린 채 시동을 건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바로 인간에게 천부적으로 장착되어 있는 그 욕심이라는 엔진이 멎을 때 인간의 생명 자체가 소멸한다는 사실에서 그 ‘욕심을 버리라’는 가르침은 그 욕심이라는 엔진의 멈춤 장치와 방향조정에 있음이 분명해 진다. 욕심이 있을 때 가야 할 길을 가게 되고 필요한 노력 또한 따르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 욕심이 없는 사람이란 성공과는 아예 담을 쌓은 사람이다. 욕심의 본질은 대개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려는 마음에서 온다. 욕심을 버릴 때 삶의 목표가 사라지고 도전 정신이 사라져 더 이상 자신의 존재감이나 지키고 싶은 자존심마저 사라지게 되면서 인생의 의미마저 허공으로 날아 가 버리고 말 것이다. 욕심을 버린다는 말 속에는 너무 한 쪽으로 기울어 다른 소중한 것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경계의 뜻이 내포되어 있을 것이고, 매사에 절제를 동반해야 한다는 의미가 녹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성공한 사람들은 그 분야에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고,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매진한 사람들이다. 성취에 대한 과도한 열정과 욕심이 오히려 실패로 이끌 때도 있다. 성공할 때 바로 그 욕심이 성공의 원동력으로 평가 받고 실패할 때 과욕이라고 비난 받을 수 있다. 욕심에 비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거나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때 실패가 따르게 되어 있다. 그렇더라도 성공에 대한 욕심은 늘 인간에게 힘과 용기와 도전정신을 일으켜주는 에너지가 되어 준다. 자신의 능력과 상황에 맞는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말 속에는 별로 가치 없는 일에 마음이 쏠려 정작 필요로 하는 목표 달성에 장애 요소가 되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춘추시대의 후반기에 이르렀을 때 패권다툼의 초점은 오나라와 월나라에 맞추어져 있다. 두 나라는 호시탐탐 서로를 엿보며 틈만 나면 서로 공격했다. 이 때 초나라에서 태어난 범려는 문종이라는 사람을 만나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 후 초나라 정계에 환멸을 느낀 그들은 함께 월나라로 갔다. 범려는 문종의 추천을 받아 대부가 되었고 월나라 왕 윤상(允常)에게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윤상의 뒤를 이은 구천에게는 더욱 큰 심임을 받았다. 기원 전 497년 범려의 만류를 듣지 않고 무리하게 오나라를 공격했던 구천은 회계 산에서 대패하여 망국의 직전에 몰렸을 때 범려 자신과 월 왕 구천은 오 왕 부차의 노예가 되어 오나라에 남고 문종이 월나라를 관리하게 되었다. 오 왕 부차는 자신을 위하여 대변 까지 찍어 먹어 보는 월 왕 구천의 모습에 감동하여 오자서의 간절한 만류를 무시하고 구천을 월나라로 돌려보낸다. 범려도 구천과 함께 귀국하여 와신상담의 칼을 갈았다. 20년의 세월이 흐른 후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마지막 패주가 되었다. 범려가 오나라에 있을 때 부차가 범려에게 월나라를 버리고 오나라로 오면 크게 중용하겠다고 유혹하자 ‘망국의 신하는 정치를 입에 담을 수 없습니다. 신은 월 왕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죄인으로 다행히 죽음은 면했으니 그것으로 만족 합니다’ 하며 사양하면서 구천과 함께 노비가 되었다. 승전 후 구천은 범려의 공읠 인정하여 천하를 나누어 가지겠다고 말했으나 범려는 단호히 거절하고 사직서를 던졌다.
 배를 타고 제나라로 온 범려는 이름을 치이자피(鴟夷子皮)로 바꾸고 해변 가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산 활동에 주력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수 만 금의 재산을 모았다. 이를 본 제나라 사람들은 그를 상국으로 삼고자 했다. 그러자 그는 ‘귀한 것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 불길하다’며 이를 사양하고 그 때 까지 모은 재산을 친지와 마을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 준 다음 도망을 쳤다. 그가 다음으로 택한 곳은 천하 교역의 중심지인 지금 하남 성 정도현인 도(陶) 지역이었다. 범려는 다시 이름을 도주공(陶朱公)으로 바꾸고 농사와 목축을 기반으로 한 상품 유통업에 종사하여 큰돈을 벌었다. 그는 유통 구조와 시세를 잘 살펴 상품을 사고   팔았는데 이윤이 1할을 넘지 않게 남겼다. 그는 19년 동안 세 차례 천금의 재산을 모아서 두 번은 친구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부유한 군자로서의 덕행을 실천으로 보여 준 것이다. 나이가 든 후에는 사업을 자손들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은퇴했으며 편안한 여생을 마쳤다. 고객들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상도(商道)의 실천을 통해 기업계에 좋은 습속을 남기면서 상신(商神)으로 추앙 받으면서 조용히 자신의 길로 간 것이다.

 공자(孔子) 또는 그의 제자라고 하면 학자 또는 도덕군자를 떠올리게 되어 있지만 정치와 사업 경영에도 학문이나 예법에 못지않게 능력을 발휘한 공자의 제자로 자공(子貢)이라는 인물이 있다. 자공은 누구보다도 스승을 존경했고 그런 스승이 세상을 뜨자 자신의 재력을 동원해 장례비용을 비롯한 모든 절차와 일을 책임졌다. 또한 스승의 무덤에 나무를 심고 여묘를 지어 7년 동안 시묘 살이를 했다. 존경하던 스승에 대한 최대한의 경의를 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자공은 학문만이 아니라 상인으로서의 능력도 발휘하였으니, 그는 사두마차에 비단 뭉치와 같은 선물들을 잔뜩 싣고 제후들을 방문했다. 그가 한 번 행차하면 제후들이 뜰 까지 나와 맞이할 정도였다. 그는 공자의 제자이면서도 탁월한 외교가이자 뛰어난 수완을 가진 사업가였던 것이다. 그는 스승 공자로부터 주의를 들어야 할 정도로 말솜씨가 뛰어났다. 스승의 조국인 노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노나라, 제나라, 월나라, 오나라를 오가며 종횡무진 활약했다. 월 나러 왕 구천은 자공이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몸소 나와 길을 청소했으며 직접 수레를 몰아 그를 숙소로 안내하기 까지 했다. 이렇듯 자공은 뛰어난 언변과 상술을 한껏 활용하여 발군의 외교가이자 수완 좋은 상인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 낸 것이다. 공자가 만년에 주유천하를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자공의 재력이 그 뒷받침이 되었다. 자공은 당대 최고의 명사이자 문화 전도사인 스승을 앞세워 각국 군주들에게 스승을 자랑하고 소개하는 한 편 이를 이용하여 이익을 챙기는 절묘한 사업 수완을 발휘한 것이다. 2,500년이란 세월을 뛰어넘는 확고한 자신 만의 사업 철학과 참신한 아이디어, 그리고 시세를 읽는 안목을 갖춘 사업 수완, 게다가 모은 재산을 어떻게 써야 하는 지 까지를 잘 보여 준 것이다.

고성시사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퇴직공무원 연금5년간 동결, 밀실야합은 절대 안돼!
2
통치자와 신도(臣道)의 만남
3
자유한국당 제1야당 역할 다해야
4
고성 군수 후보자, 철저한 검증 따라야 한다
5
화수분에게서 얻는 것
6
간신 열전(奸臣列傳)
7
거류면 김국자 할머니, 이웃돕기 성금 기탁
8
동계전지훈련 ‘고성으로 오세요’
9
고성군, 14개 읍면별 공수의사 위촉
10
고성군, 2018년농업분야 업무편람 제작·배부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남 고성군 고성읍 송학로 9(교사리 387-2)  |  대표전화 : 055-673-3115  |  등록번호 : 경남 다 01460  |  발행·편집인 : 김윤호
Copyright © 2014 고성시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gsc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