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夏首) 남쪽 지역에 연촉량(涓蜀梁)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됨이 어리석고 겁이 많아서 달밤에 걸어가다가 허리를 굽혀 제 그림자를 보고는 귀신이 구부린 줄 알았으며, 머리를 쳐들어 그 그림자를 보고는 도깨비인 줄 알았다. 그래서 도망쳐 제 집까지 와서 기절해 죽었다. 무릇 사람이 귀신에게 홀린다는 것은 반드시 환각이나 착각으로 허둥대는 때에만 있는 것이니, 이것은 사람이 있는 것을 없는 것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바꾸어 볼 때인 것이다. 살다가 무슨 탈이 생기면 귀신의 소행이라 하여 북, 꽝가리, 징을 치고 돼지를 잡아 굿을 하거나 점을 보러 가니 결국 북을 찢거나 돼지, 돈에 손실이 있을 뿐이고 병이나 재앙이 물러간다는 보장이 없으니, 자신의 그림자에 놀라 죽은 연촉량과 다를 바 없는 짓일 뿐이다.
조선조 3대 태종 때 황희는 당시 세자였던 장자 양녕대군을 폐한다고 공표하였을 때 목숨을 걸고 반대하다가 유배를 가서 5년 후에 조정으로 복귀했다. 이미 왕위는 양녕 대군이 아닌 충녕대군(세종)으로 넘어 가 있었고, 태종은 상왕으로 뒷전에 물러나 있으면서도 황희의 충정을 이유로 셋째 아들인 세종에게 간곡하고도 강력하게 추천한 것이 주효하여 유배가 풀리게 된 것이다. 세종과 황희는 깊은 신뢰 속에 명군과 명재상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황희는 세종의 세자 책봉에 반대했을 뿐 아니라 세종의 외숙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황희를 선입견 없이 대했기 때문이다. 황희는 육조의 판서를 두루 거치면서 익힌 행정 경험과 타고난 인정, 높은 학식을 바탕으로 세종을 우리나라 최고의 명군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그가 이만한 업적을 남기기까지에는 공평무사하고 사리사욕에 치우치지 않는 일 처리로 국왕인 세종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고, 아래로는 신료들과 사대부들, 그리고 나아가 백성들에게 까지 으르는 폭넓은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세종은 적극적으로 국력을 키우는데도 큰 관심을 기울여 북방을 시찰하고 돌아 온 황희에게 북방을 개척하고 여진족들을 막을만한 적임자가 누구인l 물었다. 황희는 서슴없이 김종서를 추천했고 이에 김종서는 함길도 관찰사가 되었다. 그 후 김종서는 북방의 호랑이로 군림하면서 부령, 회령, 종성, 온성, 장흥, 경원의 여섯 개의 진을 설치함으로써 국경을 두만강으로 확정지었다. 이처럼 황희의 눈은 정확했던 것이다. 어느 날 황희는 개선해 돌아 온 김종서가 병조판서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하기 위해 병조에 들렀다. 김종서는 황희가 왔는데도 일어나 맞을 생각을 하지 않고 모르는 척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황희는 병조의 관리들에게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너희 판서께서 앉아 계신 의자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는데 너희들은 속히 고쳐드리지 않고 무얼 하고 있는 게냐 ?’ 황희의 벼락같은 호통 소리에 깜짝 놀란 김종서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소인이 미처 대감께서 오시는 것을 모르고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십시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황희는 맹사성을 비롯한 조정 중신들과 함께 의정부에 모여 점심까지 걸러 가며 나랏일을 논의하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푸짐한 점심상이 들어오더니 그와 함께 김종서가 들어섰다. 그 점심상은 김종서가 예빈시에 일러 특별히 마련한 상이었다. 시장했던 대신들은 잘 차려진 점심상을 보자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하려 했다. 바로 그 때 난데없는 호통소리가 빈청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이보시오 호판, 예빈시는 나라의 행사와 왕실에 쓰이는 음식을 마련하는 곳이 아니오. 그런데 이런 사사로운 일에 국고를 낭비하다니 호판은 지금 국법을 어긴 것 이오’.호통의 주인공은 황희였다. 대감들을 위해 점심상을 마련했다는 생각에 자못 의기양양했던 김종서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민망해 하는 맹사성에게 황희가 말했다. ‘대감, 사소한 일이라도 공사를 구별하지 못한 것은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일입니다.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것을 고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 늙은이들이 할 일입니다’. 이렇든 북방의 호랑이로 불리던 김종서를 꼼짝 못하게 하는 호랑이를 때려잡는 호랑이 재상이 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김종서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훌륭한 정승으로 거듭 났다. 이미 벌써부터 황희는 김종서가 조선의 미래를 이끌어 갈 대들보로 점찍어 놓고, 일거수일투족을 눈여겨보면서 사소한 잘못도 놓치지 않고 바로잡아 주려고 했던 것이다. 김종서는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할 큰 그릇이지만, 무인기질인 그가 다소 거칠고 자신감이 지나친 면을 고쳐주려고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