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어느 나라에 침략군이 쳐들어 와 닥치는  대로 파괴하며 보이는 사람마다 무참하게 죽였다. 그 나라에는 그러한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만행을 막을만한 군대의 힘이 없었기 때문에 침략군들은 온 나라를 휘젓고 다니면서 폐허로 만들었고 나중에는 수도원이 있는 마을까지 쳐들어왔다. ‘장군님이 오신다는 말을 듣고 수도사들은 모두 겁이 나서 산속으로 도망쳤습니다.’ 하고 그 마을의 지도자는 침략군 우두머리에게 비굴하게 아첨하면서 보고한 말이다. 그러자 그 지휘관은 얼굴 가득히 거만한 웃음을 띠었다. 자기가 그렇게도 무서운 사람으로 알려진 것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웠기 때문이다. 기고만장한 그 태도를 보고 마을 지도자는 말을 덧붙였다. ‘그렇지만 장군님. 아직도 한 사람이 남아 있습니다.’ ‘그게 어떤 놈이냐 ? 아직도 나를 무서워하지 않는 놈이 있단 말이냐 ?’ ‘바로 이 마을의 수도원장입니다’. 침략군 대장은 즉시 부하들을 이끌고 수도원으로 가서 문을 박차고 들어가 수도원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나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단 칼에 너를 벨 수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호통을 치자 여기에 대응하는 수도원장은 느긋한 태도로 침략군 대장을 압도하듯 대답했다. ‘그러는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 나는 너로 하여금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단 칼에 나를 베게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인간 또한 일반적으로 예외 없이 자신의 생명만큼 소중히 여기는 것은 없다. 그 인간 군상 중에서도 만인을 다스리는 왕의 자리에 올라앉은 사람은 더 더욱 죽기가 싫을 것이다. 어느 날 방사(方士)인 노생(盧生)이 진시황에게 주장했다. “저희들은 오늘날 까지 먹기만 하면 신선이 된다는 영초와 불로장수의 기묘한 약, 그리고 선인, 이 세 가지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찾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이를 방해하는 요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선인의 방술에 의하면 ’임금이 된 자는 항상 미행하여 마귀를 피하라. 마귀를 막으면 비로소 진인이 될 수 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임금의 거처를 신하에게 알리는 것은 신기를 잃는 것이 됩니다. 진인이란 무심, 바로 그것의 존재로서 물에 들어가도 물이 묻지 않으며 불에 들어가도 불에 타지 않으며 구름과 같이 높이 떠서 천지가 있는 한 영원히 살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천하를 차지하고 계시지만 모든 것을 초월한 무심의 경지에 까지 에는 아직 멀었다고 말씀드립니다. 이제부터 폐하의 소재를 사람에게 알리지 않도록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불로장수의 약도 폐하의 손에 들어오리라고 믿습니다.’ ‘짐은 그 진인이 되고 싶다. 앞으로 나는 짐이라고 하지 않고 진인이라  부르겠다’. 시황제는 즉시 셴양 근교 2백리 이내의 땅에 궁전과 누각 270동을 짓고 그것들을 복도와 통로로 서로 연결하게 했다. 그리고 각 누각에는 각종 악기를 비치시키며 많은 미녀들이 살게 했다. 그리고 각 동에 소속된 자의 이름을 등록하여 움직임을 금했다. 또 시황제의 거동 때 그의 소재를 누설하는 자를 사형에 처하기로 정했다. 시황제가 거동하는 곳을 누구 한 사람 누설하는 자가 없었다. 신하로 부터의 건의나 결재의 전달 등 모든 국사가 셴양 궁 에서만 이루어졌다. 이미 시황제는 13세에 즉위하면서부터 여산(廬山) 기슭에 자신의 능묘를 만들기 시작하여 그가 50세에 죽을 무렵에 완성하였다.

 하지만 그 뒤 노생은 자신이 제시한 방술의 성과가 오르지 않는 것은 시황제의 교만 때문이라고 말하고 동료들과 상의하여 궁에서 도망을 쳤고, 이 소식을 들은 시황제는 몹시 화를 내었다. ‘나는 태평한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쓸모없는 서적을 몰수하여 불태워버렸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학문과 방술에 능한 선비들을 대우했다. 그런데 불로장생의 약을 만든다고 한 방사들의 행동이 무엇이냐. 한중은 도망 간 뒤 소식이 없으며 서불(徐市 또는 徐福) 등은 엄청난 돈을 쓰면서도 불사약을 구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이를 미끼로 자신의 이익을 채웠다. 노생에게는 최고의 대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비방하고 나의 부덕함을 말했다. 도읍으로 초청해 온 학자들도 저마다 괴상한 말로 백성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시황제는 이렇게 말하며 학자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조사하라고 명했다. 그리고는 460명의 학자들이 법을 위반했다는 죄명으로 셴양에서 산 채로 구덩이에 묻혀 죽었고, 이 사실을 전국에 포고하여 본보기로 삼았다. 시황제가 말한 서불(徐市)은 동남동녀 3천명과 많은 보물을 실은 선단을 거느리고 동해에 있다는 신선이 사는 섬에 가서 불사약을 구한다고 나섰으나, 불사약을 구할 길 없는 것은 너무나 빤한 일이고, 돌아가면 죽음을 당할 일만 남아 있으니 그 길로 왜국으로 도망쳐 버렸다. 기실 그는 처음부터 시황제의 곁을 떠나기 위하여 불사약을 구하러 간다는 구실을 붙여 왜국으로 망명한 것이다. 사상적 대립을 폭력으로 누르려 했으니 현자의 정치와는 아예 담을 쌓고 있는 것이다. 분서(焚書)의 결과 사상적 통일과 멀어졌을 뿐 아니라 고대 문화를 파괴 소멸시키는 문화 말살 정책이고 갱유(坑儒) 사건 또한 정견이 다른 유생들을 죽여 없앴으나 정신적으로는 도리어 많은 반발을 불러 일으켜 진왕조의 강화는커녕 기반을 흔들어놓는 결과를 몰아오고 있었다. 
 시황제 29년(기원 전 218년) 동쪽 순행 길에 나선 시황제가 박랑사(博浪沙)를 통과할 때 갑자기 큰 철퇴가 날아와 시황제의 경호 마차에 명중하였다. 시황제가 탄 수레를 겨냥하여 던진 것이 빗나가 경호 수레를 맞힌 것이다. 시황이 크게 놀라 급히 범인을 수색토록 하였으나 범인은 찾지 못하였다. 이 사건의 주범은 후일 유방을 도와 한(漢)나라를 창건하게 한 장량(張良)이었다. 불로장생은커녕 천하 만백성들로부터 때려죽이고 싶은 미움만 사고 있었던 것이다.

 지혜로운 이야기 속에서 사고하기를 즐길 때 언제나 세부적 장면에서 경관(景觀)이 이루어진 모습으로 완성된 모습을 볼 능력이 길러질 것이며, 토막 난 이야기로 부터도 참 지혜가 샘솟을 것이다. 실패의 수레바퀴를 돌려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좌절에서 오는 아픔을 모를 것이다. 이처럼 성공과 좌절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삶의 결정이며, 이는 또한 사람들이 너무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칫 소홀히 하기도 쉬운 일이다. 그렇더라도 우리 인생에서 꼭 빠지지 말아야 할 일, 내가 겪은 일, 남이 겪은 일 이 모두가 내게 값 진 지혜로 다가오게 하는 일이다. 이성을 좀 더 갖추었을 때 맹목적으로 일을 대하는 경우가 적어지고, 머리가 좀 더 깨끗하고 맑아질 때 환상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적어지고, 지혜를 좀 더 갖출 때 무모하게 일을 계획하거나 시작하는 경우 또한 적어진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왕이 되었을 때 가장 바보스러운 꼭두각시가 되어가는 인간상을 시황제의 모습에서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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