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한 소금장수가 북도(北道)의 산마을을 지나가는데 머리에 개가죽 관을 쓰고 개가죽 옷을 입은 사람이 소금장수 옆에다가 섰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말했다.  ‘너는 어떤 놈인데 양반을 보고 절을 하지 않는단 말이냐 ?’ 소금 장수가 깜짝 놀라 말했다. 몰지각한 탓으로 미처 몰라 뵙고 절을 못 올렸소이다.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애걸했으나 그의 꾸지람은 그치지 않았다. 소금장수는 속으로 분함을 이기지 못한 채  씩씩거렸다. 그 때 마침 개 한 마리가 짖으며 싸리문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소금장수가 얼른 개 앞으로 달려가 넙죽 절을 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본 개가죽 옷을 입은 양반이 이상하게 여겨 물었다. ’뭐하는 것이냐 ? 어째서 개를 보고 절을 한단 말이야 ?‘ 그러자 소금장수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요놈이 개가죽을 덮어쓰고 있으니 혹시 생원 댁 도련님이 아닌 가해서 그랬습니다.‘ 이렇게 되니 생원이 개자식의 아비 꼴이라 얼굴에 노기를 띤 채 얼른 사라져버렸다.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다툰 초한전(楚漢戰)에서 승리한 고조 유방은 본처인 여 씨가 낳은 아들을 태자 자리에서 밀어내고 후궁 척 씨가 낳은 아들을 태자로 세우려는 안건을 조정에서 거론할 때마다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쳐 골머리를 앓았다. 척희의 아들 여의는 겨우 열 살이었다. 한 편 여태후(呂太后)는 나이가 들어 고조를 뵐 기회조차 없어 척희를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고조는 자기가 죽은 후 여의와 척희가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고민한 것이다. 그래서 고조는 마음이 불편하여 혼자 중얼거리면서 투덜댔다. 그 때 옥새를 담당하는 어사대부 조요(趙堯)가 한 마디 거들었다. ‘조왕(趙王) 여의께선 아직 연소하시고 아직 여황후와 척부인께서는 사이가 좋지 않으십니다. 페하께선 아무리 근심하셔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짐이 고통스러운 거다.’ ‘그러지다면 방법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이냐 ?’ ‘지금 조정에서 재상이나 군신, 장군들이 가장 꺼려하는 신하가 누구십니까 ?’ ‘글쎄...’  ‘한 분 밖에 아니 계십니다. 어사대부 주창(周昌)이십니다’. ‘아하 그렇구나’. ‘어찌하여 페하께서는 주창에게 조왕 어의를 부탁하지 않으십니까 ?’ ‘ 그래, 짐이 그걸 몰랐구나’. 주창은 패 땅 사람으로 유방이 항우에게 포위된 형양 성에서 유방을 탈출시키고 형양성을 굳게 지키고 항우를 꾸짖다가 가마솥에 삶겨 죽은 주가(周茄)의 아우였다. 주창은 늘 유방을 따라다니면서 항우 격파에 온 정성을 쏟았다. 주창은 형 주가처럼 기개가 있었다. 누구에게든 거침없이 당당히 대했으며 솔직담백한 직언을 서슴치 아니했다. 그런 탓으로 소하와 조참조차도 그를 어려워했다. 언젠가 주창이 입궁하여 상주하고자 할 때 고조는 시도 때도 없이 척희와 같이 지내자, 주창은 헛기침을 하고 나왔다. 멋쩍어진 고조가 달려 나와 체신 머리 없이 주창의 목에 올라앉으며 물었다. ‘내가 어떤 군주냐 ?’ 얼마쯤 유방을 업고 있다가 주창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개새끼다.’ 실제로는 주지육림 속에 나라를 망하게 한 하 나라의 걸 왕과 은나라의 주왕을 빗대어 한 말이었으나 유방은 대충 웃고 넘어가곤 했다. 고조는 주창을 가까이 불러놓고 한참 뜸들이다가 덜컥 말했다. ‘조 나라 왕 여의한테로 가서 재상이 되어 주시오’. 주창은 한참 생각한 뒤에 울면서 말했다.‘ ’싫습니다.‘ ’공이 어렵다는 것은 짐도 알고 있소. 물론 이것은 좌천이고 목숨이 편치 못할 것이오 그렇지만 나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잖소.‘ ’그렇다면 가지요. 하지만 폐하께서 붕어하신 뒤에 저는 죽습니다.‘ 억지로라도 가 주시요.’ 고조가 눈물을 흘리면서 부탁 하는 데야 주창인들 별 수가 없이 조 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 후 고조가 기원 전 195년 장락궁에서 붕어하자 태자가 효혜제(孝惠帝) 존호를 물려받아 황제가 되었다. 고조에게는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혜제의 이복형 유비(劉肥)말고는 모두 혜제의 아우였다. 여황후는 남편인 고조의 일이 마무리 되자 서서히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난 날 고조의 죽음을 기화로 눈에 가시였던 장군들과 군신들을 죽이려 하였으니 뜻대로 되지 못했다. 이번에 나라 일을 내가 주관하게 되었으니 내 평생 미워하던 척희를 사려두지 않을 것이다.’ 고조가 죽은 다음 척 부인은 하루하루가 가마솥 안에 곧 삶아질 물고기처럼 목숨이 위급한 처지에 놓였다. 여태후는 기회를 엿보며 척부인과 그의 아들인 조왕을 처리하는 일이 첫 번째 과제였다. 그리하여 그녀는 척부인의 머리를 우선 깎이고 목에 쇠고랑을 채워 죄지은 여관(女官)들을 가두는 감옥인 영항(永巷)에 내친 후 조왕 여의를 불렀다. ‘가지 마십시오. 위험합니다.’ 조나라 재상 건평후 주창이 간했다. ‘과인이 어찌 아니 갈 수 있겠소.’ ‘병이라 칭탁 하십시오’. 그리고 여후의 사자에게 말했다. ‘고조께서는 나에게 조왕을 맡기셨소. 조왕은 아직 어린 아이에 불과합니다. 가만히 듣자하니 척부인을 미워하여 조왕을 불러다가 아들을 함께 주살하려 한다하니 나는 감히 조왕 여의를 보낼 수 없소이다. 그리고 조왕은 또한 병중이니 소명을 받을 수가 없소. 그래서 사신을 세 번씩이나 돌려보냈다. 여후가 이번에는 주창을 꾸짖었다. ’그대가 무엇이기에 조왕을 보내지 않소 ? 내가 척씨를 원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단 말이오 ?‘ ’그래서 보내드릴 수가 없습니다.‘ ’좋소. 조왕 대신 그대를 소환하니 서둘러 오시오.‘ 여태후가 크게 노하여 조나라 재상을 소환했다. 주창은 운명임을 알았다. ’피할 길이 없겠소 ?‘ ’사람은 한 번 밖에 죽지 않습니다.‘ 조나라 재상 주창이 소환되어 장안에 이르자 여태후가 다시 조왕의 소환했다. 인정많은 혜제는 여태후가 노한 것을 알고 조왕을 패수(覇水) 가에서 영접해 함께 궁중으로 데리고 들어와 자신이 보호하면서 조왕과 함께 붙어살고 음식을 같이 먹었다. 여태후가 조왕을 죽이고자 아무리 틈을 엿보아도 그럴만한 구실을 찾지 못하였다. 어느 날 혜제가 사냥을 나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조왕이 아직 단잠에 바져 잇는 모습을 보고는 차마 깨우지 못하고 ’한나절 동안이야 별 탈 없겠지.‘ 생각하고 사냥에 나섰다. 여태후는 조왕이 혼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을 시켜 독약을 먹였다. 혜제가 서둘러 돌아왔건만 조왕은 이미 죽어 있었다. 조왕 여의가 장안에 온 지 한 달 쯤 후의 일이었다. 주창이 혼자 가슴앓이를 하다가 3년 후에 죽었다.
 이제는 척 부인의 차례였다. ‘척 부인을 끌어내 손과 발을 자르고 눈알을 뽑아 장님으로 만들어라. 그리고 귀를 불에 달군 인두로 지져 귀머거리로 만들고 약을 먹여 벙어리로 만들어 돼지우리에 처넣어라.’ 당시에는 돼지가 변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돼지우리가 뒷간 구실을 겸하였다. 그리고도 여태후는 분이 안 풀린 듯 씩씩대다가 어린 황제(혜제)를 불러 척 부인이 비참한 꼴(사람 돼지 人彘)을 보게 하였다. 어린 황제는 아직까지 인체(人彘)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으므로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태후의 명을 받은 궁감(宮監)을 따라 사람돼지를 보러 갔다. 황제는 궁감을 따라 영항으로 들어간 다음 뒷간 문을 열고 무엇인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 뒷간 구덩이 속에 있는 것이 사람돼지 이옵니다.’ 황제의 눈에 사람의 몸둥아리가 들어왔다. 황제는 잠깐 쳐다보다가 기겁하여 몸을 홱 돌리고 이것이 무엇인가를 궁감에게 물었다. 궁감은 벌벌 떨기만 하고 대답을 못하다가 ‘척 부인’이란 말이 나오자 황제는 정신을 잃을 뻔하였다. ‘이것이 어찌 사람의 탈을 쓴 자의 할 짓이란 말인가 ? 선제의 사랑하던 후궁을 이렇게 참혹하게 죽이는 법이 어디 있는고’ 하면서 울부짖었다. 그리고는 태후에게 가서 ‘저는 이런 일을 저지른 태후의 아들로서 천하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하고는 정사를 손에서 놓고 얼마간 지내다가 죽었다.
 양반을 보고 개라는 비아 냥을 선물한 소금 장수는 그런대로 웃어넘기면 그만인 일이지만, 중화인 들이 그나마 자신들 화하족(華夏族) 유방이 세웠다고 자랑하는 한(漢) 나라의 창업과정이 이 모양이니 이게 어찌 제 정신이 박힌 사람의 짓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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