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옛 문헌에 나와 있는 우리겨레의 이름 몇 가지를 알아보려고 한다. 가장 많이 쓰이는 이름으로 아마 예(濊, 穢, 獩)가 있을 것이다. 지금의 음가로는 ‘예’라고 발음하지만 원래는 ‘활, 회’등으로 발음되기도 했다, 이들 예자의 글자 구성에 있어서도 시대에 따른 변천을 보이는데 이는 각각의 한자로 된 글자가 생업을 의미하기 때문에 대로는 수렵시대에 개(犬)를 데리고 사냥한데서 개 견 자가 첨가되기도 하고, 후에 농경사회로 발전한 벼농사를 짓는다는 데서 벼 화(禾)가 첨가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우리 종족이 늘 물가를 떠나지 않고 살아 온데서 ‘물 출렁일 예(濊)’를 가장 대표적닌 글자로 고정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이 글자의 발음을 말해주는 음부(音部)는 ‘세’에서 ‘예’로 된 것이다.또 여기서 파생된 것으로 예자와 동일하게 사용한 것이 ‘회(淮, 澮)자이다. 또 나라이름 예(獩)에서 개(犬)로 표시되어 있는 것은 우리겨레가 원래 북적(北狄)의 한 갈래이고 서쪽에 있던 종족 서융(西戎) 또한 같은 이유에서이니 이들 서융의 일파가 중국 주(周) 나라를 세운 문왕과 무왕이기도 하다. 북적에서 ’적‘이라는 글자의 음가(발음)는 우리겨레가 숭상하던 ’새(鳥, 鳳凰)‘를 발음하는 ’조(鳥) 또는 추(隹)에서 왔음을 보여준다. 그러기에 서쪽으로 간 서융이 나중에 나라를 세울 때 조(鳥) 또는 추(隹)‘와 유사한 ’주(周)‘라고 발음하면서 글자의 모양은 그들의 주업인 농사지을 토지를 구획한 모습을 표시한 것이 주(周)라는 글자이다. 참고로 새를 가리키는 ’조(鳥)‘의 발음은 ’닭(鷄)‘에서 진화하여 ’조‘로 발음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제는 맥(貉, 貊) 계열인데 지금은 ‘맥’으로 발음하지만 원래는 ‘가르’라 발음했다. 이 ‘가르’는 또 ‘갈락, 또는 ’글락‘으로 확장할 수 있다. 또 위의 예(濊) 또한 옛 발음으로 ’활‘이 있는데 이는 천손족(天孫族)인 예 족들이 태양을 숭배하면서 그 태양을 가리키는 말로 예(濊) 자를 사용하기도 했다는 데서 이 ’활‘ 발음은 ’해‘에 연관되고 이 ’해(太陽)‘는 또 ’카르‘ ’그하르‘에서 ’그(기 또는 개)‘와 ’하르(해)‘로 분리되어 이 ’그(기 또는 개)‘는 날씨가 ’개다(淸明)‘에서 보듯 ’개다‘라는 말이 태양 자체를 가리키는 말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쨌든 이 위의 ’예맥(濊貊)‘의 원 발음에서 우리겨레의 고유한 겨레 이름인 ’구려, 구리, 고리, 가락(가야), 고구려, 고려, 낙랑‘ 등이 자연스럽게 쏟아져 나온다. 중국인들이 맥(가락, 구려)족들을 맥적(貊狄)으로 불렀다는 데서 고구려나 가야의 조상들 모두 북쪽에서 왔음을 말해준다. 또 ’맥(貊)‘ 자 속에 있는 백(白 또는 百)’에서 ‘백’ 이라는 발음은 우리 말 ‘밝(光明)’에서 차음한 것이고 당연히 광명 자체가 천손임을 말해준다. 또한 이 ‘밝’에서 ‘부여’가 따라 오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낙랑(樂浪‘의 낙(樂)’이 또한 원 발음이 ‘글락(갈라)’이었으니 낙랑이란 이름은 가락과 별로 다를 것도 없는 이름이다. 위의 ‘가르’ 발음에서 받침만 바뀐 ‘간(干 또는幹)’으로 되면서 ‘한(韓)’이 되고 나가가 ‘완’, ‘왕’에 으르게 되면 환한 나라의 통치자라는 의미에 이르게 된다. ‘한(韓)이라는 글자의 오른쪽 부분인 ’위(韋)‘자가 부드러운 가죽을 말하는 것으로 환한 나라, 해 돋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짐승을 잡아 가죽을 가공하던 일을 하던 사람들임을 상형화 한 것이다. 원시 수렵시대에 짐승의 가죽은 피복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가죽을 피복으로 이용하는 데는 특수한 가공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그 중에서도 이 ’한(韓)‘ 종족은 가죽을 다루는 기술이 월등했으니 이것이 당시로서는 문화의 척도이기도 했다. 또 이 ’위(韋)‘라는 발음도 ’‘리워르, 기워르’ 등에서 진화되었기에 다시 위의 ‘가르’ 계열로 환원 한다. 참고로 주(周) 나라를 세운 희창(姬昌) 또는 희발(姬發) 등의 희(姬)씨에서 지금의 성씨 ‘한(韓)’으로 분화되기도 하는데 희씨에서 거슬러 올라가면 황제(黃帝) 헌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이들이 동이족의 뿌리임을 말해준다. 위의 맥족들이 강원도로 대거 진입하면서 그 ‘갈락’ 계 간성(杆城), 강릉(江陵)등의 ‘갈(간)락’ 이름을 남겨놓기도 한다. 또한 위의 ‘가르,에서 ’와르‘로 되고 이를 표기하기 위한 ’왜(倭)‘로 분화되기도 하였으니 이 왜(일본)가 우리와 동일 종족에서 분화된 모습임을 보여준다. 이 ’가르‘ 계열은 또한 후대에 ’사르‘로 발음되면서 ’사로(斯盧)‘가 되고, ’서라벌(徐耶伐), 신라(新羅)‘로 되었는데 여기서 서라벌의 첫 글자를 ’서(徐)‘자로 쓴 것은 한자로 표기하여 발음(음가)을 보존하기 위함이지만 박 혁거세 왕이 개국할 때 누구보다 큰 도움을 주었던 서 두라(徐豆羅)의 성씨를 따 온 것이기도 하다. 이 ’사르‘ 계 발음이 조선(朝鮮)의 .선(鮮)’에서 재현되고 있음은 우연이 아니며, 선비족(鮮卑族)이니 선우(선우(鮮虞)에서 보여주는 ‘선’이 ‘사르’ ‘서르’ ‘선’으로 분화되거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위의 예맥과는 별도로 또 다른 우리겨레의 이름이 이(夷)이다. 동쪽 사람으로서 큰(大) 활(弓)을 잘 쏘는 사람을 합성한 이(夷)는 어느 종족을 지칭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글자이다. 지금의 자전에는 ‘오랑캐 이(夷)라고 나와 있지만 중국인들이 우리겨레에게 조공을 바치면서 눌려 지내면서 부러움과 두려움을 이 글자를 빌려 표시했을 뿐이다. 원래의 이(夷)는 뿌리(柢)임을 의미하고 말이 어질고 고우며, 만물의 생함이 모두 땅에 뿌리를 내림으로써 비롯된다는 점에서 천성이 온순하여 역(易)이 도(道)로서 다스림에 이르러 군자(君子) 불사(不死)의 나라가 된 것으로 풀이하고 있으며 공자(孔子)도 만년에 이족(夷族)이 사는 곳으로 살기를 바랐다. 중화사상을 배경으로 한 화족(華族)들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파격적인 찬양이다. 당시의 대궁(大弓)은 병기로서는 가장 발달한 단계에 이른 것으로 현대전에 있어서의 장거리 유도탄에 비유된다. 대. 인. 인 수(大. 人, 仁. 壽)의 의미를 합성한 글자로 풀이하는 이(夷)의 겨레들은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차고 다니며 서로 양보하고 다투지 아니하는 어진(仁) 종족으로 풀이하니 자기네들 하(夏 중국인)에게는 우월적 위치에 있는 선망의 대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이족의 특성을 인(仁)이라 하였는데 이는 두 사람이 친하게 지냄은 물론 사랑하고, 자비심 많고 동정하고, 인내할 줄 알고 덕화와 교화의 정신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이족을 극찬하던 하족들이 나중에는 그 세력이 확장되어 그들이 중원을 지배한과 동시에 이(夷)의 문화를 흡수하고 이제는 변방에 사는 이족들을 변방의 오랑캐라고 경멸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글자의 발음인 ’이(夷)‘는  우리나라 대구의 옛 이름인 ’달구벌‘에서 보여주는 ’달구(높음)‘가 원래의 발음이다, 무론 이 ’달구,는 공중에 뜬다는 의미의 ‘뜰(浮)’과 같은 의미이고, 공중에 날은(뜬)다는 의미의 ‘닭(鷄)’과도 동 계열이다. 이 ‘다르’계 발음이 ‘되(북쪽 또는 오랑캐 지칭)’를 거쳐 ‘아르’,‘이르’ 그리고 ‘이(夷)’에 이르게 된 것이다.

 국어학과 고대 역사학을 심층적으로 연구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나 그렇더라도 우리 겨레 모두는 최소한 조상들이 살아오면서 이웃 화하족(華夏族)들의 미개함을 깨우치면서 오늘의 중국이 있게 함과 동시에 오늘의 광명의 대한민국의 명맥을 잇게 해 준 그 참 모습을 쉽게 잊어서는 안 될 일이기에 다소 무리가 가더라도 우리 자신과 우리의 후손들을 위하여 그 실체를 밝혀두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에서 임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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