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대체로 사람에게는 같은 것이 있다. 배고프면 먹고 싶고, 추우면 따듯하게 입고 싶고, 고단하면 쉬고 싶으며, 이익을 좋아하고 손해를 싫어함은 나면서부터 지니고 있는 것이므로 후천적으로 그렇게 되기를 기다릴 일이 아니다. 눈으로는 흑백과 미추를 가리고 귀로는 음성의 청탁(淸濁)을 분별하며, 입으로는 짜고 달고 시고 쓴 것을 구별하고 코로는 향기로운 것과 비린 것을 구별하며 피부로는 차고 덥고 아프고 가려운 것을 분별하니 이 또한 사람이 나면서부터 지니고 있는 것이므로 후천적으로 그렇게 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성장하면 성인이 될 수 있고 악인이 될 수도 있으며 기술자도 될 수 있으며 농부나 장사꾼도 될 수 있으니 이는 전적으로 상황이나 환경이나 습관 등이 누적되어 그렇게 되기 쉽다. 또 사람에 따라 타고난 것이 있어 후천적으로 그렇게 되기를 기다리지 않는 성품도 모든 인간의 공통점일 수 있다. 어떤 사람도 나면서부터 성인이 아니고 본성을 변화시켜 수양을 거듭한 진력 끝에 능히 덕을 완성해 나간 것이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똑 같은 소인배에 불과하기에 스승이 없고 예법이 없다면 오로지 사사로운 이익 밖에 보이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난세를 만나 나쁜 습속을 얻으면 소인을 더욱 소인으로 만들고 난세를 더욱 난세로 만들어 나가게 될 것이다. 현자가 있다 할지라도 그 시세를 얻지 못하고 이런 소인들이 다스리는 세상에서는 그 어떤 사람도 깨우칠 길이 막혀 버리고 말 것이다.
 사람들의 입과 배를 채우는 욕심이 어찌 예의를 알며 사양을 알며 도덕의 일면과 관통하는 것을 알겠는가? 그저 게걸스레 먹고 배부르며 화려하게 겉치장 하고 제자랑 하는 것 말고 더 무엇이 있겠는가 말이다. 스승이 없고 예법이 없으면 입과 배가 요구하는 것이 곧 마음이니 곧 그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느냐 못 다스리느냐가 평생 삶의 과제로 삼아야 할 일이라는 말일 것이다. 자질이나 지혜의 능력에 있어서도 소인과 현자의 구별은 없다. 영에를 좋아하고 해로움을 싫어하고 치욕을 싫어하는 것도 마찬가지나 그 구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소인이란 애써 허황된 소리로 기만하여 사람들이 자기를 믿어주기를 바라고 애써 거짓과 과장으로 꾸며가면서 호감 얻기를 바라며, 짐승과 같은 짓을 하면서 사람들이 자기에게 착하게 대하기를 바라지만 그 생각하는 바는 알기 어렵고 행동은 안심할 수 없으므로 일이 성사되기 어려우니 마침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얻을 수 없고 자기가 싫어하는 것만 얻게 될 뿐이다. 스스로 신의가 있음으로써 남이 믿어주기를 바라고 충직으로 남이 자기에게 친근하기를 바라고, 스스로 올바르게 닦고 훌륭하게 다스림으로써 남이 자기에게 착하게 대해주기를 바라며, 그의 생각은 알기 쉽고 남을 안심시키며 하는 일이 성사되기 쉬우므로 마침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얻고 싫어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올바른 행동이 아닌 것이다.
 땅에 기어 다니기만 하는 것으로 보이던 새(鳥, 鷄)가 공중으로 날아오를(떠오를) 때 이를 ‘날거나(飛)’ ‘뜬다(浮)’고 한다. ‘뜨(뜰=浮)’에서 ‘들’ ‘달’ ‘닭’이 되는데 이는 낮은 곳에서 높아진다는 뜻이고 이 말이 일본으로 건너 가 ‘다까(高)’, ‘다떼모노(建物)’ 등의 용례가 보여주듯 높거나(高) 높아진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아무튼 닭이란 높이(高) 날아(뜰 浮) 오르는 날짐승이라는 말이다.
 닭은 오래 전부터 집에서 기르는 가축이 되었지만 이 닭과 아주 닮은 날짐승이 또 있었으나 이름이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날짐승 또한 닭이라고 불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날짐승을 닭이 아니라고 우겼다. 그래서 이름지어진 날짐승이 ‘비(아닐 非)’에 ‘닭’을 합성한 ‘비닭’이라는 말이 생기고 이어 ‘비둙’에서 오늘의 ‘비둘기’가 되기에 이른 것이다. 겁만 많고 순하게 생긴 비둘기는 예로부터 평화의 상징으로 부리기도 했고 서신 같은 것을 전해주는 심부름꾼 노릇을 하기도 해 왔다.

 고려 의종 때 시작 된 이의방,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에 이르는 무신정권 시대에 최충수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용맹스러우면서 성격이 사납고 음험할 뿐 아니라 시기심이 많은 인물인데 어느 날, 집에서 기르던 비둘기를 장군 이지영(실권자 이의민의 아들)이 빼앗아 간 사건이 발생한다. 최충수가 이지영을 찾아가 거칠게 항의하며 자신의 비둘기를 돌려 줄 것을 요구했다. 사람들은 이지영에게 값진 물건을 빼앗겨도 항의는커녕 못하던 시절이다. 그런데 일개 하급 무관에 불과한 최충수가 이지영을 찾아와 거칠게 항의한 것이니 화가 난 이지영은 종복들에게 큰 소리로 지시했다. ‘여봐라, 저 자를 당장 꽁꽁 묶어버려라.’ 이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나오는 최충수의 용기를 가상히 여긴 이지영은 최충수의 죄를 더 이상 묻지 않고 풀어주게 된다. 최충수가 풀려 나오기는 했지만 속마음으로는 원한이 맺히게 되고 이지영의 아버지인 이의민의 몰락으로 이끌게 된다.
 당시의 왕 명종이 석가 탄신일에 보제사에 행차하게 되었을 때 이의민이 병을 구실로 왕을 따라가지 않고 미타산에 있는 자신의 별장으로 놀러 가게 된 것이다. 최충수와 그의 형 최충헌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최충헌 형제와 조카(생질) 박진재, 그리고 친척 노석승 등과 함께 옷소매 속에 칼을 감춘 채 미타산으로 향한 것이다. 그리고 이의민의 별장 앞 숲 속에 몸을 숨긴 채 그가 나오기만을 기다려서, 그가 말에 오르려는 찰나를 기다려 최충수의 칼이 번득였고, 그 칼은 빗나갔지만 몸을 피한 이의민이 피할 틈도 없이 최충헌의 칼에 목이 떨어지게 된다. 최충헌으로부터 길고도 지루한 무신정권이 더욱 길어지게 된 것이다. 비둘기 한 마리에 정권이 오가는 사건이었지만 이의민, 최충헌 모두 별로 다를 것 없는 소인배들이고 보니 그저 값진 반면교사로나 삼을 수밖에 없는 씁쓸한 사건으로 끝나고 만 비둘기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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