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우리 인간이 무엇보다 소중한 우리 인생을 가꾸어 감에 있어서 생각할 기본 과제는 인생의 주체인 우리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바르게 정립해 보는 일일 것이다. 한정된 인생행로를 나름대로 아름답게 장식해 나가기 위한 첫 걸음은 자신의 이 소중한 삶을 이끌어 가는 책임 관리자이자 왕으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하는데 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세상 사람들이 인생을 즐기는 데 사용하도록 미리 준비된 것 들 뿐이다. 우리는 이 순간을 깊이 인식하고 나 자신을 깨닫기 위해 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깊은 철학이나 생각 그리고 올바른 선택만이 나를 거친 자연 상태에서 진정한 사람으로 재창조해 준다. 또 살아있는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세상의 좋은 것을 최대한으로 즐기며 살아야 할 일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아름다움이나 선으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모든 풍요로운 사물 속에는 악과 추함도 곁들여져 있다. 이러한 복잡한 인생 여로를 헤쳐 가는 자신의 내면을 늘 눈여겨 들여다보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일이고, 나아가 자신의 새롭고 성숙의 경지로 나아가는 달라진 삶을 끊임없이 설계하며 살아가야 할 일이다.
 생명(生命)과 생존(生存)과 생활(生活)을 아우르는 우리의 ‘삶’은 우리 자신이 가꾸어 나가기에 달려있다. 생명이라 함은 무생물과 달리 생명체인 생물이 가지 본질적인 요소이고, 생존이란 그 생명체가 일정기간 동안 존속하는 것이고, 생활이란 일정기간 동안 활동하는 것을 가리킨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것 중, 동물이 단지 생존하는 것에 그치는 반면 인간에게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수행한다는 '생활'이라는 것이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다른 어느 고등동물에 비해서도 여러 가지 우월한 점도 많지만, 단지 그 우월하다는 사실만으로 인간에게 특별한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니, 인간이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니고 '일'을 한다는 사실이 인생의 전부인 것이다. 그 일이란 바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일이다. 그 일이 뜻있는 사명이었을 때 그 인생이 특별한 의미와 가치와 보람을 지니게 된다는 말이다. 인생의 첫 단계인 부모로부터 양육 받는 출생에 이은 유년기에는 자신의 사명이라는 개념이 잘 정립되지 않는다. 여기서 한 단계 나아간 배움의 과정에 이르러서야 사명이란 개념이 싹트기 시작한다. 초등학교로부터 대학에 이르는 긴 학업 기간은 앞으로의 사명 수행을 위한 중요한 준비단계가 된다. 학업 과정을 거쳐 일터로 나가 일할 때가 주된 사명을 수행하는 단계가 될 것이다. 

 모든 일에 졸속이 금물이 듯 교제에서도 우정에서도 순간적인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될 일이다. 매사에 시간을 적당히 나눠 쓸 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이 지혜로운 시간 쓰기가 아닌 한 순간의 생각에 도취된 나머지, 나중에 이르러 자신에게서 멀리 떠나버린 행운을 아쉬워하는 어리석음에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즐기는 놀이는 천천히 그러나 주어진 일은 열성을 다 해 끝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일이다. 별로 의미 없는 사소한 일에 기분이 상해서는 안 될 일이고, 기분의 노예로 놀아나서는 안 될 일이다. 또 자신이 만든 환상에 빠져 자기숭배의 우상을 만들어 거기에 도취되어 있어도 안 될 일이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점에서 매일 매일 인격을 닦는데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자신의 모든 능력을 완벽히 발휘하고 자신의 뛰어난 성품이 발전하여 자기완성에 도달할 때 까지, 고상한 취미가 생기고 생각이 맑아지고 판단이 성숙해지고 의지가 순수해지는 자기완성이 이루어질 때 까지는 이러한 자기성찰의 노력에 멈춤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주어진 사명의 수행에 있어서나 자기완성에 있어서 뭔가를 하는 척 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아무것도 아니고 실제로 열심히 행함이 있어야 할 일이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뭔가 하는 것처럼 과시만 하고 내실이 없는 경우도 흔치 않게 많다. 작은 일을 하면서도 엄청나게 큰일을 하는 것처럼 과대포장해서도 안 될 일이다.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자신이 세운 업적이나 장점을 드러내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이 뭐라고 하든 내버려 두고 남이 모르게 행동하면서 남들에게 영웅으로 보이기보다는 정말 영웅이 되는 일에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일이다.
 책임감(責任感)이란 맡은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스스로 꾸짖어 완수해 내겠다는 열정이다. 모두가 같은 일을 하다가 난관에 부딪쳤을 때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모두 같이 공멸하는 수밖에 없다. 군인이 적과 마주쳤을 때 자기 한 목숨이 아까워 뿔뿔이 흩어진다면 국민 모두가 같이 죽어야 하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직한 모습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의 몸을 바쳐 의로움을 실천한다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책임’을 피해 갈 일이 아닌 기본적인 약속임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많은 구성원들을 가진 사회가 언뜻 보기에 하나 둘 빠져도 잘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만 ‘나 하나 없어도’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치는 순간 그 집단은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소홀히 하기 쉽다. 이처럼 책임이란 복잡한 기계의 부품과도 같아서 어느 하나가 잘 못 되어도 안 될 일이다.

 1920년 2월 26일, 유 청중 선장과 선원 22명을 태운 100톤급 소형 오징어잡이 어선 하나호가 만선의 꿈을 안고 남해안을 떠나 동 지나로 출항했다. 이윽고 최대풍속 18.2m되는 바람이 4-5m나 되는 파도를 몰고 뱃전을 때리며 금방이라도 하나 호를 삼켜버릴 듯 집채 같은 거센 파도가 휘몰아쳐 왔다. 조타실에서 키를 좌우로 돌리며 파도 사이를 조심스럽게 헤쳐 나가는 유 선장의 등에 진땀이 흘렀다. 아슬아슬한 곡예처럼 파도를 가까스로 타넘어 가던 순간, 커다란 파도가 배의 옆을 강타하자 엔진이 이상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배는 큰 충격을 받고 선미 부분에 차가운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며 배가 침몰하기 시작했다. ‘배가 침몰한다. 빨리 탈출하라’ 유 선장의 황급한 명령이 선원들에게 떨어졌다. 선원들은 다급한 상황에서 구명조끼를 착용할 겨를도 없이 바닷물로 뛰어들었다. 뒤이어 내려진 구명보트가 바다에 뜨자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선원들이 모두 보트에 올랐다. 선원들이 모두 구명보트에 오른 것을 확인한 선장은 침몰하고 있는 배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급한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도 벅찼던 선원들은 그제 서야 선장이 침몰하는 배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선장님, 빨리 배를 포기하고 탈출 하세요’ 선원들의 안타까운 외침은 나선형 소용돌이를 그리며 침몰하는 선체의 마지막 모습 위로 메아리만 남긴 채 사라져 갔다. 이렇게 하나 호는 유 선장과 함께 영원히 물속으로 사라져 갔다. 얼마 전에 있었던 세월 호 참사를 생각나게 하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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