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밝은 바다, 우리가 알고 있는 황해 바다를 말한다. 어느 바다 치고 맑고 밝지 않는 바다가 없으련만 그 중에서도 우리 대한민국의 조상들이 주로 모여 살던 중심 터전인 한반도와 지금 중국의 동쪽 해안 사이에 있는 바다를 옛 부터 밝은 바다라 하여 발해(勃海)라 불렀고 고구려를 뒤 이어 대조영(大祚榮)이 세운 나라의 이름을 발해라 부르기도 하였다. 옛 부터  우리나라를 ‘배달나라’로 불린 것도 발해로 불린 것과 같은 이치다. 배달의 ‘배’는 ‘밝은’의 의미이자 약간 변형된 표기일 뿐이며, ‘배달’에서 ‘달’은 ‘땅’의 의미이니, 응(음)달 또는 양달에서 보여주는 달 또한 ‘땅’의 의미임을 보여주는 용례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반드시 물이 있어야 하고, 그러기에 모든 인류 문화가 강(江) 주변에서 발생하고 발달하여 널리 다른 곳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수많은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 태양(해)이라는 데서 태양의 자손이라는 의미의 천손족(天孫族)임을 자처해 온 우리 조상이기에 밝음의 땅과 밝음의 바다가 생명의 근원이 됨 또한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러기에 ‘밝음’의 또 다른 표기인 ‘빛’에서 사람을 가리키는 ‘보, 비’ 등으로 쓰이면서,  바‘보’, 느림‘보’, 곰‘보’, 털‘보’, ‘비바리’ 등의 용례를 보여주기도 한다. ‘땅’이 없이는 살 수 없음은 너무 당연한 일이듯이, ‘바다’ 또한 땅에 못지않게 중요함은 잊기 쉬운 것 같다. 필자가 태어나고 자랐던 바닷가, 그리고 대부분의 고성군민들 또한 알게 모르게 바다가 그 생활 터전이 되어 왔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새삼스러울 것 까지는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이제 우리 국토의 자연적 약속에 눈을 뜨고 역사적 사명에 정신을 차리고 또 우리 사회의 병들었던 원인을 바로 알고 우리 국민의 잘 살게 될 방향을 옳게 깨달아서 만년대계의 튼튼한 기초를 놓아야 할 때다. 우리가 반도국민 임해 국민으로서 잃어버렸던 바다를 찾아 그 생명을 살려 우리의 영원한 생명줄로 가꾸고 지켜나가야 할 일이다. 바다를 안고 바다에 서고 바다와 더불어서 우리 국가 민족의 무궁한 장래를 개척함이야말로 태평양에 둘려 사는 우리의 영광스러운 임무이다.
 일망무변(一望無邊)한 남방 대양을 향하여 불쑥 날 쑥 내민 반도 해안의 무수한 팔뚝이 국민의기(國民意氣)의 발양(發揚)과 국가경제 발전에 최대한 활용됨으로써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어가는 게기로 삼아야 할 일이다. 한국을 바다에 서게 하는 사람, 그가 바로 한국을 구원할 사람인 것이다.
 이 정신을 고취하여 이 사업을 실천함이야말로 가장 근본적 또 영원한 국가발전 원동력임을 확신하는 바이다. 경제의 보고(寶庫), 교통의 중심, 문화교류의 첩경, 물자교류의 대로(大路), 국가발전의 원천, 국민훈련의 도장(道場)인 이 바다를 빼고는 그 어느 곳에서도 이만한 기대를 걸 수 있는 곳은 없다. 3.1 기미 독립선언문의 주인공 최남선님이 외친 바다의 중요성을 여기에 재구성 해 본다.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조선조 숙종 때 그의 한글 소설로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부친 김익겸(金益兼 광산김씨)이 인조 때의 병자호란으로 왕이 후금에게 항복을 하자 의분으로 순절하게 된다. 서포의 모친 해평 윤씨는 남편의 소식을 모른 채 배(船) 위에서 아들을 낳게 되니 이 아이를 '선생'이라 부르게 되었으니 선생(先生)이 아닌 '선생(船生)'이라는 '배 위에서 낳았다' 는 뜻이다.
 숙종의 첫 왕비, 인경왕후가 김만중의 형인 김만기의 딸이니, 서포의 질녀(姪女)가 된다. 그 후 인경왕후가 죽고 이어 인형왕후 민씨가 계비로 들어서면서 희빈 장씨와의 길고 긴 암투가 이어지게 되던 중, 우의정 조사석이 장희빈의 생모를 내연의 처로 거느리고 있다는 이유로 하는 빗발치는 탄핵 속에도 왕의 신임을 등에 업은 조사석이 끄떡없이 버티자 서포가 나서서 조사석을 탄핵하게 된다.
 당시 장희빈에게 빠져있던 숙종의 귀에 이런 상소(탄핵)가 귀에 들어갈리 없는 상황이었고, 오히려 그 상소로 인해 서포는 멀리 남해로 유배를 가서 돌아오지 못한 채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의 대표작 구운몽이나 사씨남정기 모두 지금의 중국(靑)이 그 무대가 되고 있다는 점이 옥의 티일 수는 있으나, 당시 '글' 하면 곧 한자(漢字)만을 생각했던 분위기 속에서 한글로만 된 소설을 쓴다는 것은 글을 배운 선비로서는 체면이 말이 아니게 깎인다는 데서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였을 것이다. 희빈 장 씨의 미모와 교활한 술수에 헤어나지 못한 채 본처인 인형왕후를 내치고 장희빈을 왕후로 봉하면서 남인들이 득세하면서, 그것으로 모든 우열이 결정되고 시비가 가려진 듯 보였다.
 바로  이때에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으니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로 왕의 그릇된 행동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하고도 남을만한 작품으로 온 세상이 그 얘기로 들끓고 있었던 것이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는 또한 연로한 서포의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한 지극한 효성의 바로이기도 하다.
 하여간 이로써 숙종의 생각이 정돈되어 모든 일이 제 자리를 찾게 되고 백성들 또한 환호하면서 충과 효를 마음에 새기면서 활기차게 다시 생업에 종사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온 천하가 탁 트인 밝음의 바다, 그 위에 떠 있는 배 위에서 태어난 서포 김만중이기에 자칫 그릇된 길로 갈 수도 있었던 숙종의 마음을 바른 길로 돌려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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