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덕 현
전 초등학교장
 필자가 이 글을 쓰는 까닭은 한국 개신교나 미국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미국의 탄생 과정과 그 시대 청교도 목사나 선교사나 장로들의 신앙과 선교행위에 대해 알아보고 바른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종교적 가치를 가져야 하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이다. 여호와 하나님이란 이름으로 일방적 횡포와 살인과 폭력을 정당화 한다면 그건 예수님을 능멸하는 일이며 날마다 십자가에 못을 박는 일이기 때문이다. 좀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예수님이 강조하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네 원수를 사랑하라.” 의 의미가 무엇인지 우주적인 관점에서 깊이 새겨봐야 할 시기이다. 기독교적 횡포를 자행할 때는 구약성경에 따른 여호와 신의 이름으로 하고 기독교적 자비를 베풀 때는 신약성경의 예수의 이름으로 한다면 그건 용납할 수 없는 종교의 위선인 것이다. 개신교의 방향 설정이 잘못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개신교의 종주국인 미국의 탄생과 그곳에서 행하여진 개신교인의 과거 행적을 살펴보고 예수님 앞에 회개하기를 기대한다. 회개는 입으로만 부르짖는 것이 아니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 깨달은 잘못을 남김없이 예수님께 고해하는 일이다. 그리고 용서를 비는 것이다. 용서의 권한은 인간들의 입에 달린 것이 아니요. 예수님의 마음에 달렸다는 것도 알아야 할 것이다. 용서를 비는 자가 큰 소리로 동네방네 외친다면 누가 용서하겠는가? 오히려 불쾌감만 높아질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가 하나님이란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나쁜 짓을 저질렀는지 상상을 초월하며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힘이 센 강자라고 해서 그가 한 모든 일들을 정의라고 한다면 그건 폭력인 것이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담론을 나누어보자.

 필자가 어릴 때는 서부개척이라는 미국 영화를 많이 시청했는데 내용의 대부분은 백인들이 말을 타고 황량한 들판을 달리며 짐승을 사냥하듯이 총으로 인디언들을 쏴 죽이는 것이었고 그것을 정당화 시키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게 옳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성장한 후에 알고 보니 그것은 청교도 백인들의 잔인한 인디언 학살 사건이었던 것이다. 필자는 그것도 모르고 흥미진진하게 관람하며 인디언들이 총에 맞아 죽을 때마다 박수를 쳤으니 역사인식의 잘못이 인간을 얼마나 비뚤어지게 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참혹하게 살육 되고 그 땅에 국가를 세운 세력들이 영국에서 건너간 청교도들이란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는 사실을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우리는 미국을 바라볼 때 콜럼버스가 북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유럽 사람들이 이주하여 세계최고의 부강과 민주주의를 꽃피운 나라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실체를 들여다보면 콜럼버스가 북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요. 그곳에는 이미 인디언이란 종족이 살고 있었다. 우리는 세계사를 공부할 때 콜럼버스가 북미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서술하고 있었지만 그리고 그것이 매우 위대한 것처럼 미화 되었지만 알고 보면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던 아메리카 대륙을 불법 침략한 사실임을 알게 된다. 세계역사의 오류이며 친미학자들에 의한 세계사의 날조였던 것이다. 종교박해를 피해 영국의 청교도들이 미국 땅으로 이주해 왔을 때,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그들의 정착을 도와주었다. 땅을 내어주고 집을 지어 주었으며, 그 밖에 적응해서 살 수 있는 방법 등을 가르쳐주어 추위와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런데 청교도들은 자신들의 세력이 점점 커감에 따라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더 많은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천연두를 전염시켜 면역력이 없던 인디언들을 멸망시키게 된다. 청교도들은 근본적으로 인간적인 심성이 부족한 인종들이었다. 청교도들이 인디언들을 죽이려는 목적으로 당시 영국에서 널리 퍼져 있던 천연두 환자들의 담요를 가져와 인디언 주민들에게 나눠줘 전염병으로 원주민들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 역사학자들의 책에서 기술하고 있는 부분이다.(참조: 전쟁과 학살, 부끄러운 미국. 홍윤서) 청교도들이 미 대륙에 도착한 초기에 굶주리고 헐벗고 병들어 곤경에 처했을 때, 원주민인 인디언들은 그들에게 각종식량과 가죽 등 입을 것을 갖다 주면서 온정과 구원의 손길을 폈다. 이때 청교도들은 감격에 넘쳐 원주민들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천사" 라 믿고 환대 하였다. 그러나 미 대륙에서의 정착이 성공적으로 되어가자 청교도들은 원주민인 인디언을 이교도로 취급하며 마귀 사탄의 앞잡이로 낙인을 찍었다. 청교도들이 얼마나 잔인했는가를 미국의 제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의 말이 잘 증명해 주고 있다. 그는 "자유와 문명과 종교의 축복을 받은 우리들이 서부개척의 찬란한 길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숲 속에 사는 인디언 야만인들에게 그들의 숲과 강과 땅을 빼앗은 것은 당연지사이다."라고 자랑스럽게 주장했다. 과연 이것이 종교인으로서 할 수 있는 주장인가! 인디언 마을을 침략하는 선봉에는 항상 선교사들이 있었다. 세네카 족 추장인 ‘사고예와타’ 는 자신들을 가르치러 온 선교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백인들은 온갖 나쁜 짓을 행하면서도 그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교리를 인디언의 입에 강제로 구겨 넣으려 하고 있다."(참조: 류시화. 나는 왜 너 가 아니고 나인가?) "한평생 그는 주께서 그의 손에 부치신 인디언 98명을 죽였다. 그는 삶이 끝나 그의 본향에서 주의 팔에 안겨 잠들기 전에 100명을 채우길 바랐다." (참조: 류시화. 인디언의 복음) 맑스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신교의 엄격한 주창자들인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은 1703년에 그들의 의회의 결의에 의해 인디언의 머리 가죽 1장이나 포로 1명에 40파운드의 상금을 걸었고, 1720년에는 머리 가죽 1장에 상금이 100파운드가 되었다." (참조: 류시화. 인디언의 복음) 인디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길 거부하자 미스틱 리버라는 이름의 강 하구에 사는 피쿼트 족 마을을 공격했다. 그들은 마을에 불을 지르고 불길을 피해 달아나는 마을 주민 7백 명 대부분을 학살했다. 포로로 잡힌 인디언들 가운데 남자는 서인도 제도에 노예로 팔려가고, 여자들은 병사들이 나누어 가졌다. "인디언들은 불에 구워졌으며, 흐르는 피의 강물이 마침내 그 불길을 껐다. 고약한 냄새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그 승리는 달콤한 희생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는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청교도들은 "우리는 오늘 600명의 이교도들을 지옥으로 보냈다."고 하며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다. 이 사건은 청교도들이 북아메리카에서 '기독교 제국주의'의 본질을 유감없이 발휘한 최초의 대표적인 대학살이며, 침략전이라고 할 수 있다. (참조: 기독교 죄악사. 조찬선. 평단문화사)라고 말하고 있다.

 1) 미국이라는 폭력국가 탄생과 청교도의 실체
 우리는 스페인만 아메리카 대륙을 유린하고 인디언들을 대량 학살하고, 강제로 로마 카톨릭으로 개종시킨 것으로 알고 있는데, 미국 또한 영토 확장 과정에서 수백만의 인디언을 학살하고, 영국에서 청교도라는 미명 아래 넘어온 침례교, 감리교 신자들과 더불어, 흑인 인종 차별과 총과 군함을 앞세워 세계에 그들의 종교를 선교하는 짓을 해왔다. 청교도란 영국의 종교개혁자들과 그의 후예들을 일컫는 표현이다. 청교도 운동은 영국의 종교개혁 운동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영국의 종교개혁은 1534년 헨리 8세가 개인적이며 정치적인 이유에서 잉글랜드의 교회의 교황 교회로부터 결별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시작되었다. 1534년의 ‘수장령(首長令)’에 따라 영국은 국왕을 최고 관리자로 하는 독립된 교회가 되었는데, 이것이 영국 국교회(성공회)이다. 영국에 종교 개혁이 시작되었으나 국교회 내에는 여전히 카톨릭 적인 요소가 교회에 잔존하여 있었다. 반쯤 이루어진 종교개혁에 반하여 철저하고 완전한 종교개혁을 이루기 위하여 등장한 무리들이 청교도들이다. 로이드존스(D. Martyn Lloyd-Jones)의 표현처럼 “먼저 의식들과 예복들에서 시작이 되어서 끝내는 영국 국교회의 전체 상태에 대한 의문으로 나아갔고, 철저하게 개혁하려는 열망으로 연결되었다. 청교도는 부분적으로 개혁된 교회에 만족하지 않고 완전하게 개혁된 교회를 원하였지만 결국 영국 국교회 내에서의 청교도 운동은 1662년 대 추방령으로 종식되고 말았다. 청교도라는 말이 최초로 사용된 시기는 1564년으로 추정되는데, 이 이름은 처음에 영국 국교회에 비타협적인 개신교도들을 내리깎는 경멸조의 적개심이 가득한 호칭이었다. “까탈스럽고 비판적이고, 기만적이고 위선적인 작당들”, “국교도에 반대하는 악명 높은 청교도들”이라는 호칭으로 사용되었다.

 2) 청교도들과 개신교회
 초기 청교도들은 칼빈주의적인 전통을 따르는 장로교였으나 이후에 여러 개신교의 산실이 되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이 전체 개신교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들은 영국 교회가 세운 대부분의 관습들을 우상 숭배의 유물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에, 양심적으로 영국 교회의 예배에 연합할 수 없었다. 그런데 교회는 국가의 권력에 의하여 유지되고 있었으므로 교회의 의식에 반대하는 일이 용납될 수 없었다. 예배에 출석하는 일은 법률로써 요구되었으며, 허가 없이 종교적 예배를 위한 집회를 여는 일은 금지되어 있었고, 그것을 범하는 자는 투옥, 추방, 사형 등의 형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17세기의 초엽에 영국의 한 왕은 즉위하자마자 청교도들을 복종시키든지 괴롭혀 그 땅에서 내쫓든지 혹은 그보다 더 심한 형벌을 받게 하든지 하겠다는 자신의 단호한 결심을 표명하였다 수색당하고, 추방당하고, 박해를 받은 그들은 그들의 장래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을 바랄 수 없었다. 그들은 어려움과 손실과 투옥 등을 당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청교들은 해외 도피를 하였는데 도피해 갈 때, 그들은 집과 재산과 생활 수단 등을 모두 버렸다. 그렇게 하여 도착한 곳이 지금의 미국인 아메리카였다.

 3)청교도들의 만행
 1637년, 청교도들은 대담하게도 민병대를 조직하여 원주민 촌을 습격하여 500명을 죽이고 살아남은 부녀자와 아이들을 노예로 잡아 서인도에 팔아 버렸다. 그리고 청교도들은 "우리는 오늘 600명의 이교도들을 지옥으로 보냈다."고 하며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다. 이 사건은 청교도들이 북아메리카에서 '기독교 제국주의'의 본질을 유감없이 발휘한 최초의 대표적인 대학살이며, 침략전이라고 할 수 있다. (참조: 기독교 죄악사. 조찬선. 평단문화사)그 후 약 260년 동안에 전 북미지역의 인디언의 땅을 빼앗거나 매입하고 원주민들을 강제로 수용소에 이주시켜 버렸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교라는 미명하에 약 300년 동안 1억여 명의 원주민 학살하였으며 현재 살아남은 인디언은 약 180만 명으로 278개 수용소에 있으며 북아메리카 원주민 600여개의 부족이 대부분 말살당하고 2015년 현재 200여개의 부족만 남아있다. 그들은 조금의 반성도 없이 “오늘 600명의 이교도들을 지옥으로 보냈다”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청교도들은 총칼로 뺏은 땅을 개척하기 위해 300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1,500만 명의 흑인들을 사냥하여 노예로 삼았다. 그러면서 그들은  “우리는 그들을 아프리카에서 문명사회로 데리고나와 개화시켜주었다.” 라고 주장한다. 아메리카의 기독교도들은 청교도(후에 개신교도)들로서 아메리카의 토착민들인 인디언들을 20%만 남기고 모두 몰살시켜 버렸다. 세계사적으로도 최대의 학살이라고 할 수 있다. 최소 1억 명에서 6천만을 학살했다고 한다. 청교도 침략자들은 가는 데마다 교회를 짓고 성경을 들고 기도하면서 선교하였으며 자기들의 침략행위를 개척과 발전이라는 미명과 기독교 선교라는 명목으로 자화자찬하면서 약350년 동안에 유럽의 네 배가 넘는 광대한 땅과 자원을 빼앗고, 1억2천만 명 이상의 원주민 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북 중남미를 정복하였다. (참조: 기독교 죄악사. 조찬선. 평단문화사) 청교도들이 북미대륙의 원주민을 거의 멸종시키다시피 하며 그 땅을 차지한 죄악은 바로 구약의 여호와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기 위해 먼저 그 곳에 정착해 살고 있던, 아무 죄 없는 다른 민족을 모조리 몰살시킨 것과 똑같은 정신구조이다. 여호와신은 부모형제, 자식도 다른 종교를 믿으면 돌로 쳐 죽이라고 명령하고 있지 않은가?( 참조: 구약성경. 신명기)그러니 기독교도들이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던 원주민들을 아무 양심의 가책도 없이 몰살시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기독교 이외의 모든 종교를 사교로 생각했던 당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원주민을 단순히 이단으로 취급하였을 뿐 아니라 자기들이 섬기는 야훼를 믿을 수 있는 능력이나 영혼조차도 없다고 생각하였으며, 특히 성직자들이 그것을 강조하였으며 그런 종교적인 가르침이나 지침이 그들의 신념이 되었으니 그들의 원주민들에 대한 태도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북미지역 청교도들도 그러한 철저한 종교적인 독선을 유일 절대적인 것으로 북미대륙에 정착시켰으며 청교도의 목사들은 인디언을 사탄의 아들이란 말로 매도하고 그들을 학살 하도록 부추겼던 사실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참조: 전쟁과 학살. 부끄러운 미국. 홍윤서 )코튼 매더 목사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인디언들은 불에 구워졌으며, 흐르는 피의 강물이 마침내 그 불길을 껐다. 고약한 냄새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그 주님이 주신 승리는 달콤한 희생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야훼를 찬양하는 기도를 올렸다." (참조: 류시화 편, 앞) 미국 역사에서 영국계 백인들은 흑인 노예를 해방시키기 위해 남북전쟁까지 감수했지만, 대륙의 주인이었던 인디언은 무차별 학살했다. 2세기에 걸쳐서 2천7백  만 명의 북미 인디언을 학살했다. 무슨 협상이나, 대화의 시도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보이는 족족 바퀴벌레를 잡듯이 청소를 하고 세운 나라가 미국이다. 이게 미국의 실체다. 청교도의 후예들인 개신교회들은 지금도 선교라는 이름으로 풍요로운 물질을 이용하여 약소국의 문화와 종교적 전통을 말살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무차별적인 선교 활동, 성장주의와 그에 따른 교회의 고급화와 대형화는 사회적 약자와 생태계 파괴, 그리고 변화하는 현실에 대응하는 신학적 성찰과 실천의 공간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근본주의자에게는 자기 폐쇄적인 성곽에 갇혀 외부의 어떤 존재에게도 마음을 열 여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 개신교는 공허한 하늘을 쳐다볼 것이 아니라 온 땅의 생명체에 담긴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고 다가서야 한다. 다시 말하면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원주민을 죽이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의 토지를 빼앗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대륙개척을 시작한 것이다. 성전이란 미명 하에 살인, 약탈, 강간, 방화를 자행하였으니, 양심의 가책이나 반성이 있을 리 없다. 청교도들은 원주민을 가능한 많이 살상하고 추방하여 청교도들의 정착지를 확장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봉사의 길이요, 신앙의 실천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니 잘못된 종교관이 인류에게 얼마나 많은 죄악을 저지르게 하는지를 자각해야 한다. 이것이 미국의 실체이다. 미국의 개신교는 하나님의 축복을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그들의 조상들이 인디언들에게 지은 죄를 회개하여야 한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들은 그들의 지은 죄에 의해 결국에는 멸망한다. 우리나라의 개신교도 이런 역사적 사실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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