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앞서 가는 수레가 기습을 받거나 장애물에 걸려 넘어질 때 뒤따르던 수레는 재빨리 가든 길을 멈추고 적절히 대처한다. 한 개인의 생애는 연속된 경험의 축적이고, 인간은 그 경험을 통해 성장해 간다. 인간에게 있어서 역사란 항해하는 배의 꼬리 부분에 달린 등불과 같아서 지나간 자국(航跡)만 비추어 줄 뿐이다. 기나긴 세월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엮어가는 생애의 묶음을 우리는 역사라 부른다. 앞으로 나아갈 길이 아득할지라도 지나간 시절의 즐거움을 떠올리면서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간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뿐만 아이라 앞선 세대의 모든 인간도 결점 투성이였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간은 역사에서 ‘인내’라는 값진 교훈을 얻기도 한다. 세월의 흐름에 떠밀려 가는 인생이 아닌 목표 있는 삶이란 ‘계획성’이 그 바탕이기에 정확한 정보에 의한 현명한 의사결정이 요구되기도 한다.
 역사(歷史)에서 지날 역(曆)은 언덕에 잘 자라고 있는 벼(禾)가 태양(日)이 만들어 주는 절기에 따라 싹터서 자라고 익어가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고, 역사(歷史)의 사(史)는 가운데 중(中)과 손 수(手)가 합쳐진 글자로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중도(中道) 정신이니 있는 기대로 기술한 기록 자료라는 말이다. 서구인들의 역사(history)란 사실을 탐구한다는 의미이니 지나온 발자취, 지금 나아가고 있는 길, 앞으로 나아갈 길을 한 눈에 꿰뚫어 보는 통찰력(vision)을 가졌다는 데서 vis(look 보다)에서 his(look 보다)로 변한 것이다. 하느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교회에서 역사(history)를 풀이할 때 전지전능의 하느님이 천하고 죄 많은 인간의 육신을 입고 죄 많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Jesus)을 통한 하느님의 사역(work)역사가 ‘역사(history)’이니 바로 그 하느님의(His) 이야기(story)라는 His+story=History or history)에서 보여 주듯 하느님에 대한 공경을 표하기 위해 일반 대명사인 his(그의)에서 첫 글자인 h를 대문자인 His(그의)로 써야 한다는 논리 등을 장황하게 설교하는 모습을 여러 번 들은 일이 있지만, 이는 원래의 의미를 비틀어놓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따라서 역사란 과거의 진실을 탐구하는 학문이지만, 지난 과거사의 역사적 의미를 찾아내어 현재 삶의 최선책을 찾아내는데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의미기기도 하다. 역사는 인간 정신활동의 결과물이자 산물이기에 인류의 삶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자산이자 지혜의 보고라는 말이다. ‘역사를 읽게 하되 어릴 때부터 읽게 할 것이며 남자 뿐 아니라 여자도 배워야 할 일이고, 지배계급뿐만 아니라 피지배 계급도 배우게 할 일이다. 정신이 없는 역사는 정신이 없는 민족을 낳고 정신이 없는 나라를 만든다.’ 는 신채호님의 절규를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국가와 민족을 소생시키고 인류의 참된 소명을 깨닫게 하는 정신이 살아있는 역사를 절규한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이유는 오늘의 우리 삶의 속에 과거 역사가 녹아있기 때문이며, 지금 우리의 발걸음에 따라 미래의 향방이 결정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과거가 단절되거나 왜곡되어 있다면 과거의 소산인 현재의 역사의식도 뒤틀리고 미래를 보는 올바른 시각마저 상실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과거는 죽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 속에 살아있는 과거이니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임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과거와 현재가 소통될 때 비로소 우리에게 닥쳐오는 모든 변화에 대비할 수 있고 밝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는 말이다. 미래에 대한 의식이 없다면 역사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미래를 내다보거나 미래에 대한 올바른 설계가 있을 수도 없다는 말이다. ‘역사를 모르는 자, 역사에 휩쓸려 가리라’ 이 한 마디는 역사교육의 필연성과 당위성을 말해준다.

 이제 이토록 소중한 우리의 역사가 제대로 기록되고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고 있는가를 돌아볼 때다. 우리의 주변이라면 중국과 일본을 빼 놓을 수 없다. 수천 년 동안 대립과 갈등으로 얼룩질 수밖에 없는 두 이웃이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기록할 리 없고 철저히 침략의 도구 또는 침략의 당위성을 내세우는 그들이기에 우리의 역사를 밑둥치부터 잘라내고 닥치는 대로 난도질 했으리라는 것 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들의 비양심적, 야만적 행동은 그들 나름대로의 애국심일 수도 있으나 그들의 장단에 덩달아 춤추면서 난도질당한 우리 역사를 바로 잡기는커녕, 우리 스스로가 더욱 더 난도질을 가하여 후대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우리 역사교육의 현장은 양식 있는 사람들의 숨통마저 멎게 할 기막히고 기막힌 일이다. 역사왜곡의 첫 단계가 우리가 잘 아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다.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은 고려 중기의 유학자로 중화주의와 사대주의를 바탕으로 삼국사기를 기술하면서 북방을 다스리면서 중국을 제압해 오던 고구려를 ‘동북의 동북 모퉁이에 끼어 있으면서 중국의 국경을 침범하여 중국을 한민족의 원수로 만들게 한 적대국’으로 묘사했을 뿐 아니라, 이 후 고구려의 후신 대진국(大震國=渤海)은 아예 역사에서 제외해 버렸다. 신라 귀족의 후손인 김부식은 멸망한 신라를 한국사의 정통 계승 국가로 만들기 위해 발해를 뺀 것이다. 바로 이 김부식이 대륙의 웅대한 우리 역사를 한반도에 국한시킨 반 토막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말이다. 환인(桓因)의 환국(桓國3,301년간 다스림), 환웅(桓雄)의 배달국(倍達國1,565)년, 단군(檀君)의 조선(朝鮮 2,096년) 등 칠천년이 넘는 상고사에 대하여는 한 마디의 언급도 없이 삼국시대만을 적은 기록으로는 한국의 대표사서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삼국사기와 쌍을 이루는 삼국유사 또한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아버지 환인(桓因)의 허락을 받은 환웅(桓雄)이 백두산으로 내려와 신사(神市)를 열어 세상을 다스렸는데 그 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사람이 되고자 환웅을 찾았고, 백일 시험기간을 무사히 통과한 곰이 여자가 되어 환웅과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단군왕검으로서 고조선을 세워 약 1,9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다가 신선이 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삼국유사에서는 환국, 배달국, 고조선의 7,000년에 이르는 상고사를 마치 환인, 환웅, 단군이라는 3대에 걸친 인물사인 것처럼 잘못 기록하고 있다. 또한 배달의 백성으로 귀화하고자 한 두 부족인 웅족(熊族)과 호족(虎族)을 사람 되기를 갈망한 두 마리 동물로 묘사한 것이다. 또한 마흔일곱 분 단군이 다스린 고조선을 단 한명의 단군이 다스린 것으로 오기하였고, 그 단군왕검도 신선이 되었다하여 고조선 전체 역사를 신화 속의 이야기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는 점 등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당시까지 남아있던 사서 중 유교사관과 불교사관에 어긋난 모든 사서가 배제됐다는 점이다. 그 후 고려를 이은 조선의 숭유정책과 조선을 무너뜨린 일제의 식민정책은 이 두 사서를 한국의 대표 사서로 남기게 된다. 이미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기본으로 하는 조선조에서 많은 고대의 사서들을 색출하여 폐기해 온데다가, 일제 강점기에 이르러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20여년에 걸쳐 철저한 색출작업을 벌인 것이다. 그들은 식민지 정책에 이용하기 안성맞춤인 삼국사기와 삼국사기의 일부 내용을 변조하여 널리 보급하기에 이른 것이다.
 바른 역사 인식, 바른 역사 기술, 바른 역사 교육이 그 무엇보다 소중한 우리의 과제가 되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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