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인생살이에서 흑백논리처럼 명쾌한 구별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가 더 많다.
 성경에서 인류 최초의 살인이자 형제간 살인으로 기록하고 있는 아담과 하와의 장자인 가인(Cain)이 아우인 아벨(Abel)을 살해한 사건이 있다. 후대인들은 가인이 하느님에 대한 경건함과 감사 아닌 소유(Cain = 所有) 또는 획득(get or obtain 獲得)을 열망하면서 드린 제사가 열납되지 않아 화가 나 있는 가운데, 감사와 사랑으로 드린 아우의 제사가 하느님을 기쁘게 하자 화가 치밀어 죽인 것으로 풀이한다. 아우의 피가 땅에 쏟아진 저주받은 땅에서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그는 유리(遊離)하는 자가 되어 하느님의 보호가 아닌 자력으로 생계를 꾸려가게 되었다는 것으로 이이야기를 마감한다. 서구인들이 생각하는 소유 또는 획득의 출발은 사냥(狩獵) 또는 채포(採捕)이고 동양이라 해서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사냥으로 얻는 사슴고기(venison)가 있고, 이어 이기거나 얻는다는(win)에서 양쪽 다 득 보기(win-win tactics), 소유와 획득을 위한 행위인 장사하다(vend), 자판기(vending machine), 상인(vendor), 샛별 또는 미인(Venus) 등이 되기도 한다. 이제 이 소유 획득은 더 나아가 독(毒 venom)이 되어 독이 있는(venomous), 상처(wound), 종기(腫氣 혹 wen)등으로 되기도 하는데 이는 소유와 획득이라는 열망이 자신과 남에게 독이 되고 상처가 되기도 한다는 데서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우주의 생성과 질서, 그리고 인류의 탄생 과정을 두고 수많은 신들을 계층화 하면서 산과 들, 하천과 초목 등을 산들과 연결시켰으며 지역에 따라 그 지역의 수호신을 숭배하기도 하였다. 당연히 신화에는 과장과 허구로 가득 차보이지만 그렇더라도 단순한 허구가 아닌 신화 발생지 사람들이 신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가를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을 필요로 한다.
 주신(主神) 제우스의 아들인 아폴론은 태양, 예언, 궁술, 의료, 음악과 시(詩)의 신이다. 아폴론은 한 소년(Eros)이 활과 화살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보았다. ‘얘, 이 철부지 꼬마야. 너는 전장에서 쓰는 무기를 가지고 뭘 어쩌겠다는 것이냐 ?. 그것을 필요한 사람에게나 주도록 하라. 나는 이 무기로 큰 뱀을 처치했어. 독을 품은 몸뚱이를 넓은 들에 펼치고 있던 저 큰 뱀 말이다. 너 따위 꼬마는 횃불로 만족하기만 하면 돼. 그리고 하고 싶으면 사랑의 불장난이나 하면 돼. 건방지게 내 무기에는 절대 손대지 말거라.’ 그러자 소년이 답했다. ‘훌륭한 아폴론 어른이시여. 당신의 화살은 당신이 할 수 있는 다른 모든 것을 맞힐지는 모르겠지만, 내 화살은 당신을 맞힐 거요.’ 소년 에로스는 파르나소스 산 바위 위에 곧추 서서 화살 통에서 서로 다른 장인(匠人)이 만든 두 개의 화살을 끄집어 냈는   데 하나는 사랑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화살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거부하는 화살이었다. 에로스는 화살 끝이 무딘 납으로 된 화살을 강(河)의 신 페네이오스의 딸인 요정 디프네에게 쏘고, 뾰족한 금 화살촉의 화살을 아폴론의 가슴에 맞혔다. 그러자 아폴론은 곧바로 이 소녀를 열렬히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디프네는 연애 같은 것은 생각하기조차 싫어졌다. 그녀의 유일한 즐거움은 숲속을 돌아다니며 사냥하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구애하는 남성이 많았으나, 그녀는 여전히 숲속을 돌아다니며 언제나 결혼 같은 건 염두에도 두지 않고 모두 거절하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종종 그녀에게 말하였다. ‘얘야. 이젠 남편을 얻고 손자를 보게 해줘야지’. 그녀의 애교 어린 대답은 ‘아버지, 제발 저도 아르테미스처럼 결혼하지 않고 언제나 처녀로 있게 해 주세요 ’. 아폴론은 디프네를 죽도록 사랑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의 연정을 전하고 싶어 온갖 열정에 들떠 있었다. 그는 디프네의 두 어깨에 머리칼이 아무렇게나 늘어진 것을 보고 중얼거렸다. ‘아무렇게나 빗질을 하지 않았어도 저렇게 아름다우니, 곱게 빗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 그는 디프네의 뒤를 쫓았지만 그녀는 바람보다도 더 빨리 달아나며 아무리 애원해도 멈출 줄을 몰랐다. 디프네는 아폴론이 무슨 소리를 하던 못 들은 척 하면서 계속해서 달아났다. 그에게는 달아나는 그 모습까지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 모습은 돛이 바람에 나부끼듯 했고, 늘어진 머리칼은 흐르는 물과 같았다. 아폴론은 구애가 거절되자 더욱 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 없게 되어 연정을 한껏 품고 속력을 내어 그녀를 바싹 뒤쫓았다. 아폴론과 처녀는 쫓고 쫓기는 경주 끝에 아폴론이 더 빨랐기 때문에 점점 가까이 육박하게 되었고, 헐떡이는 숨결이 그녀의 머리카락에 까지 닿았다. 마침내 디프네는 쓰러질 지경이 되자 아버지인 강의 신에게 호소했다. ‘아, 살려줘요. 땅을 열어 나를 살려줘요. 아니면 제 모습을 바꾸어 주세요. 이 모습 때문에 이런 참담한 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일을 마치자마자 디프네의 온 몸은 갑자기 굳어져 가슴은 부드러운 나무껍질로 쌓이고 머리칼은 나뭇잎이 되고 팔은 나뭇가지가 되었다. 다리는 뿌리가 되어 땅 속에 박혔고 얼굴은 가지 끝이 되어 모양은 달라졌으나 아름다움만은 변함이 없었다. 아폴론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서며 말했다. ‘이제 그대는 내 아내가 될 수 없으므로 나의 나무가 되게 하리라. 나는 내 왕관을 위해 그대를 사용하리다. 그대를 가지고 나의 화살 통을 장식하리라.’ 그러자 이미 월계수로 변신한 디프네는 가지 끝을 조용히 내려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인간이 평생 추구하는 득(得)이란 결국 행복으로 가는 길을 찾는 수단일 것이지만 그 속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숨어 있는 독(毒, 不幸)을 피해 갈 수는 없음을 말해 준다. 행복을 얻는 유일한 길은 행복 자체를 인생의 유일한 목적으로 해서는 행복으로 가는 길을 잃게 될 뿐이며, 행복 이외의 다른 목적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을 때 그 길이 열릴 것임을 말해 준다. 자신의 행복 아닌 타인의 행복이나 사회 개선, 기술이나 학문의 연구 등에 마음을 쏟을 때, 게다가 그 자체를 이상적 목적으로 삼고 전력을 기울일 때 행복의 길이 보인다는 말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위험한 때는 사업의 실패나 역경으로 고통 받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순풍에 돛을 단 것 같은 때임을 잊기 쉽다. 오히려 역경에 처했을 때 위험이 적다는 것도 잊기 쉽다. 역경과 실패에 짓눌려 절망을 느낄 때 그것이 다시 역경을 초래하고 이것이 연속되면 실패를 되풀이하기도 한다. 실패 뒤의 성공, 역경을 이기면 순조로운 일이 계속된다. 자신의 행복, 희망을 달성해 가는데 있어서나 자기의 고통, 슬픔, 곤란을 이겨 나가기 위해서도 결국 마지막 단계에는 자기 자신의 힘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불행과 고통이 우리 인간을 오랫동안 떠나지 않을 때 우리는 삶의 의욕을 잃고 실의에 빠지기 쉬운 인간적 감정은 떨쳐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자아를 포기하고 눈앞의 안락을 찾아 자신의 인생을 어둠속에 파묻고 마는 약한 면이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럴수록 우리는 불행과 고통을 의지와 신념으로 정복해야 할 일임을 말해 주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저작권자 © 고성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