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종 암
평론가

 로마는 고대 그리스를 멸망시킨 걸까? 글쎄다. 로마는 그들의 신神마저 그리스의 신을 차용했다. 즉 제우스를 '유피테르'로, 질투의 여신 헤라를 '유노'로 변신시켰단 점이다. 더 나아가 그들의 마지막 제국이 투르크 제국(현 터키)에게 멸망을 고한 중세까지 헬라어(그리스어)를 더 친숙하게 썼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한니발의 도시국가 카르타고를 아주 잔인하게 그 종족의 씨까지 말렸지만, 그리스의 정복에는 그러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문화와 철학을 철저하게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작금의 그리스, 이탈리아, 터키 3국을 보자. 나는 이들 국가의 바다와, 유명하거나 좀 큰 섬은 거의 답사를 하면서 아이러니 속에 빠지기도 했다. 이러함은 고대사 탐구와 고대 철학자에게 혼을 뺏긴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 신사로서의 멋과 자존심을 가지고, 아테네대학에서 강연도 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었다. 럭셔리한 여행객들은 터키의 트로이는 볼 게 없다고 피한다지만, 그 럭셔리함과는 먼 세속적 부의 축적과는 담을 쌓을 수밖에 없는 현대판 선비인 내게는 제일 감흥을 준 고대도시가 아니었을까 싶다.

 신화로만 치부할 수 없는 트로이 성 언덕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들판과 먼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ILIAS>에서 전개되는 전투 현장을 가늠하는 취미는 내만의 백미였다. 트로이의 헥토르와 그리스연합군의 아킬레우스, 두 영웅의 혈투는 물론 헬레네와 파리스 간의 사랑 얘기를 되새기면서, 그 언덕에 피어있던 양귀비에 반한 적이 있어 사진으로 담기도 했다. 그 꽃은 일리아스에도 나온다. 따라서 지중해변, 그때부터 양귀비가 재배되었다는 추정도 가능한 대목이다. 또한 3200년 후를 사는 내가, 그 언덕에서 그 지형을 바라보니 당시와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트로이의 패잔병이었던 아이네아스가 아버지 앙키세스를 비롯해 프리아무스 왕의 손자들을 포함한 유민을 20여 척의 배에다 태우고, 7년간의 항해 끝에 이태리에 정착하게 된다. 나도 이 여정을 따라 항해를 했었다. 즉, 에게 해와 고린도운하에 이어 이오니아 해를 거쳐 이태리에 당도했단 거다. 원주민과의 혈투 끝에 로마에 입성해 훗날 이들의 후손이 로마 건국의 시조가 된다. 그리고 율리우스가의 혈통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가 트로이를 낳고, 그 트로이가 로마를 낳았다고도 볼 수 있다.

 사마쿠시 왕국이었던 시칠리아 섬이다. 그 섬은 플라톤이 12년간이나 유랑하면서 감금된 곳이기도 하고, 그의 이상국가理想國家를 세우려한 곳이다. 로마의 세네카나 키케로가, 카이사르가 유명한들, 이탈리아인 그들은 트로이의 후예인 '로물루스'를 조상으로 본다는 점이다. 그들의 조상 아이네이스가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항해 중 중간 기착지에서 벌인 '디도' 여왕과의 사랑도 감미로웠겠다. 이들의 사랑 예기를 플롯으로 하여 소설도 써봄직하다. 그러나 나는 소설을 창작할 수 있겠으나, 별론으로 하고 내 영혼에는 간직한다.


*필자인 정종암 평론가는, 근간 사회비판서이면서 사회과학도를 위한 대학 교재이자 인문학서인 《부동산정의론; 출발선이 공정한 나라》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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