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종 암
평론가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보라!”(Hic Rhodus, hic saltus!). 이 말은 이솝우화에 등장한다. 헤겔과 마르크스를 떠나서도 우리가 과장과 허풍의 예화로 자주 인용하는 섬 ‘로도스’다. 어느 허풍쟁이 사내가 로도스 섬을 방문 후, 돌아와서는 “자신이 로도스 섬에서 높이뛰기 신기록을 세웠다며 로도스에서 확인해보라"고 허풍을 떨었겠다. 이에 또 다른 사내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단 요량에 그렇게 말했겠다. 그러자 그 허풍쟁이 사내는 변명의 여지없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는 우화가 서린 곳이다. 로도스는 터키 연안에서 20km 떨어진 중세기 도시로, 그리스 도네카네스 주 인구 12~3만 중 절반 정도가 사는 제주도보다 조금 작은 큰 섬이다. 5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데살로니키 공항이나 아테나 공항에서 국내선을 타거나, 터키 ‘보드럼’, ‘페티에’, ‘마르마리스’에서 1~2시간에 걸쳐 선편 등급에 따라 3~20유로를 지불하고 페리로 갈 수 있다. 역으로 산토리니에서도 페리로 갈 수가 있다. 터키의 세계적인 휴양지 안탈리아에서 220km 떨어진 곳이라 그곳을 여행 후, 이들 섬에서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도 있겠다.

 나는 국제공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로드스로 향했다. 5~6km남짓한 거리이나 40~50분이 소요되었다. 그곳 항구에는 두 마리 사슴상이 마주보고 있다. 항구에서 바라본 성곽과 성채는 웅장했다. 만드라키온 항구에는 “원래 제우스의 아들인 태양신 ‘헬리오스 거상’이 있었으나 기원전 227년에 지진으로 무너졌다”고, 낚시꾼이 잡은 형형색색의 물고기와 바다를 물끄러미 응시하는 나에게 현지인의 자상한 설명이었다. 그러자 로도스에서는 델포이 신전에 가 신탁을 구했지만 새로 세울 필요가 없다는 답을 얻은 끝에 방치되다가, 침략자 이슬람 군이 유대상인에게 팔아넘겼다는 것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그 거상은 마케도니와의 전쟁 승리를 기념해 세웠다. 근간 이 거상을 그 당시보다 4배 크기로 다시 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물론 그곳 고고학박물관(성 요한 기사단병원)에 가면 여러 석상들과 군집을 이룬 가운데 기원전 2세기에 제작된 헬리오스 석상이 전시돼 있다. 키프로스에서 이주한 이들이 조성한 신가지도 잠깐 거쳤다. 구시가지 해안가에는 우뚝 솟은 중세기에 건립된 그랜드마스터 궁전이 웅장함을 드러낸다. 성 안토니아 성문을 지나자 무슬림 도서관과 술레이만 모스크와 각국 기사단(십자군전쟁 때 창립)이 묵은 기사단 거리가 있다. 기사단장 궁전의 “참고 기다려라”는, 내가 신봉하는 기사도 정신의 일깨움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유대인 광장인가에는 해마분수가 있고, 두께만 12m라는 성벽을 응시하니 골목길의 아름다운 꽃들과 젊은 여인의 젖무덤 같은 탱글탱글한 오렌지가 마중을 한다. 

 그리스 여행을 하다보면 거리의 천사 아닌 천사인 집시와 마주친다. 젊은이도 있고, 중년남자들도 있다. 유독 여기서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년집시였다. 동전 몇 푼을 얻으려고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이 내 마음을 아리게 했다. 터키 가파토키아 괴뢰메 동굴 입구 노점에서 마주친 가냘픈 꼬마소녀와 비교된다. 그녀는 내가 한국인임을 바로 알고는 우리말로 “싸다. 싸다”를 외쳐댔겠다. 아! 삶이란? 성채를 오를 때, 갑작스런 피로가 엄습해 나귀를 타고 가야했다. 세상에 태어나 나귀를 타고 이동한 적은 두 번째다. 그 정상에서 『로마인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태리 거주 늙은 왜나라 할망구 시오노 나나미는 그 책에서 “레몬의 노란색이 짙푸른 녹음 위에 흩뿌려져 있고, 아마도 이른 봄까지는 새하얀 아몬드 꽃이 감싸 안고서 남쪽 나라에 온 것이다.”고 서술했다. 시오노가 우리에게 책을 팔아 돈방석에 앉았다지. 그러자 우리의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 2014년인가 그녀는 “누가 위안부란 칭을 붙인지는 모르나, 참 상냥한 이름이다. 영어로 번역하면 섹스 슬레이브(sex slave;성노예)가 된다.” 등의 망언을 퍼부었겠다. 그 책이 역사적 사실만이 분명 아님을 알아야 한다. 물론 전혀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겨울에도 수영을 즐길 수 있는 이 섬에 대해 이처럼 상상력을 동원한 픽션의 산물로 탄생했다. 꽃방석에 앉아 갈겨댄 늙은 망언녀의 상상대로 300~340일 동안 해가 있는 멋진 풍광이었다. 

 린도스 해안가 절벽인 영화 ‘나바론 요새’의 촬영지와 아테네신전도 있다. 자그마한 린도스 항구에는 사도바울이 3일간 머물면서 복음을 전파한 기념으로 세워진 교회가 절벽 아래로 보인다. 긴 여행 끝에 바울도 술을 마셨겠다. 로도스의 진한 적포도주 말이다. 푸른 하늘 아래 에머랄드 빛 바다, 그리고 이름 모를 꽃들이 어우러짐에 마냥 걸어도 다시금 에너지가 솟구치는 나는, 청년으로 환생한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도 맞이했다. 그리스 내에서도 대체적으로 물가가 싼 편이었던 로도스의 특이한 점은, 공항이 각국의 비행편이 있는 국제공항과 군사용 공항을 합쳐 3개의 공항이 있음이 특이하다. 아마도 이는 그리스 본토에서 먼 에게 해 터키 연안에 위치하고 있어 터키와의 사이가 좋지 않은 대비책이 아닐까란 생각이다. 또한 로도스에서는 해저 사파리나 스노클링을 체험할 수도 있었다. 숙소(호텔)까지 픽업하는 조건이었으나 포기한 아쉬움을 남기긴 했다. 그러나 250년 넘게 난공불락이었던 로도스 기사단도 오스만제국(터키)의 술레이만2세에게 6개월간 항전했으나 1522년, 끝내 무릎을 꿇었다.

 그러한 탓으로 여러 문화가 상존한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살고픈 로도스를 뒷전으로 하고는 다음 행선지로 나선다. 내 중장년의 연륜에도 해외에서의 빠릿빠릿함은 청년들 못지않음에 스스로에게 감사할 때가 많다. 이들과도 어울린다. 그 대표적인 예가 타이의 카오산 로드였다. 그곳엔 나를 알아보는 단골식당까지 있다. 그러나 매번 소지품 하나는 잃어버리는 멍청함이 없는 건 아니다. 한국에서의 세속적 부에서는 멀어질 수밖에 없는 성향이지만, '쪼잔한 놈(small man(boy))’소리는 안 듣는다. 팁 문화에 순응하는 철저함이 있다. 룸서비스를 받고도 1~2달러 팁조차 무시하는 무지막지한 졸부의 무리가 있어 눈총을 사지 않던가? 청소하는 덜 배운 아줌마들의 저주의 화살에 배탈이 나고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헤매는 졸부의 처자를 보아온 터이다. 가끔은 ‘멋진 신사(Your are very handsome)'란 소리도 듣는다. 해외에 파견된 공직자들에게 의지하지 않는 고집도 있다. 되레 도움이 안 되는 그들을 경멸할 뿐이다. 반면 나는 민간외교관으로서의 품위는 유지한다.(2017.09.27.)


 *정종암(jja-news@nate.com)/ 본고는 2017년 09.27에 쓴 것으로 세상에 첫 선을 보인다. 필자는 평론가이자 학자로서 근간 『부동산정의론』을 펴냈으며,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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