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의 비참한 취업 현실과 노동 현장 】

남 덕 현
(佛名:불명<法勝:법승>)
kbs491015@hanmail.net

 우리 지역은 인구소멸 지역으로 전국에 알려졌으며 현실 또한 그러하다.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 고성군은 온갖 정책을 펴고 달콤한 구호를 외치지만 그때뿐이고 모두가 광고성 선전뿐이며,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인구는 도미노 현상처럼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 지역이 인구가 더 줄어들어서 청정 자연 보존 지역이 되면 사람 살기 좋은 곳이 될지도 모르겠다. 발전이다 개발이다, 하면서 난개발로 산천을 마구 파헤치며 오염시키는 것보다, 자연을 잘 보존하고 자연이 잘 보존된 지역이 되면 훨씬 살기 좋은 고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인구가 늘어난다고 우리 지역이 발전되는 것도 아니며, 반드시 살기 좋은 지역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인구가 늘어나면 정부로부터 각종 예산지원이 늘어나는 것밖에 좋은 점이 없다. 인구가 늘어나는 것보다 교통망이 잘 뚫리면 저절로 살기 좋은 곳이 되는 것이다. 인구가 늘어나면 각종 오염물질의 배출도 늘어나고 쓰레기 처리도 곤란하며 범죄와 사람 사이의 사회적 갈등이 폭증한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지역은 농어촌으로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거의 없다. 정신이 제대로 된 젊은이라면 희망도 거의 없는 시골에서 젊은 청춘을 낭비하며 시간을 보내겠는가?
 넓은 세상으로 나가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야, 그래도 사람으로 태어난 보람이 있고 장래의 꿈을 유지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옛말에도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가고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가라”는 말이 있다. 우리 지역 인구는 거의 절반이 60대 이상 노인인데 이런 환경에서 젊은이들이 무엇을 배우며 무슨 꿈을 펼치며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귀농 귀촌한다고? 그런 고상하고 아름다운 미사여구에 넘어갈 젊은이는 없다. 도시에서 살기가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귀농 귀촌은 대부분 중년이 아니든가? 도시 사람과 시골 사람은 삶의 관습부터 이질적이니 전혀 다른 환경에서 적응하여 살아가기 힘들다. 도시 사람은 도시에 살아야 하고 시골 사람은 시골에 살도록 습관화되어 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빈부의 차이를 떠나서 모든 사람은 다 함께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당신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러므로 세상은 한 번쯤 살아볼 가치가 있는 세상이어야 하며 아름다워야 한다. 당신이 이 세상에 나올 때부터 아수라[阿修羅: 싸움을 일삼는 나쁜 귀신.] 같은 세상인 줄 알았더라면 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 세상은 본래부터 아름다웠고 살아가기에 좋은 곳이었으나 인간의 교활과 탐욕이 이 세상을 더럽히는 바람에 아귀 지옥[餓鬼地獄: 헤어 나올 수 없이 매우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환경]이 된 것뿐이다.
 젊은 청춘은 마치 한여름의 푸르른 나뭇잎처럼, 한 송이의 장미꽃보다 아름답다. 특히나 젊은이들에게는 큰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룰 가능성이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젊은 시절을 좌절과 절망의 늪 속에서 지낸다면 그런 사회를 당신은 실망하며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 된 셈인지 시대가 발달할수록 소득이 높아질수록 삶이 더욱 힘들어지고 머리는 복잡해지며 젊은이들의 앞길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냥 가난하고 부족하면 불행하게 살아야 하는가? 권력이 높은 사람이거나, 머리가 똑똑하거나, 부유한 집안의 사람은 행복하게 살며 그렇지 못한 사람은 불행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운명인가? 우리는 삶을 꾸려가면서 겉으로 드러난 밝은 면만을 바라보며 항상 이야기한다. 성공한 사람 이야기, 돈을 많이 번 사람 이야기, 높은 권력층에 진입한 사람들 이야기 등, 그러니 어두운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기나 하겠는가? 그늘진 곳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젊은이들의 현상을 이해는 하겠는가? 물론 자기 한 몸 건사하기에도 벅찬 시대라고 말하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을 반쪽 밖에 볼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세상을 반쪽만 바라보면서 세상의 모든 일을 바르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연유로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의 젊은이들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특별히 젊은이들의 취업과 생존에 대해서 논의해보고자 하며 이런 문제들이 얼마나 심각한지 접근해보고자 한다. 젊은이들의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닌 바로 당신의 장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전반적으로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특히 직업의 변화는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로 심각하다. 직업에 대한 가치관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대학 졸업장의 간판으로 취업을 하던 시대는 훨씬 지나갔고 직업의 내용 또한 완전히 바뀌고 있다. 이렇게 불투명한 시대에 적응하기 힘들어서 젊은이들은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 모두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달리고 있으니 직업 선택에 대한 방향 감각이 어느 정도 상실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현시대는 대학 학과의 선택이 중요해졌고 취업에 대한 다양한 최신정보에 얼마나 쉽게 가까워질 수 있는가가 젊은이들의 취업 기초능력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최신정보의 유통은 대도시를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반드시 온라인상의 정보만이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가 말하는 취업의 일자리란 그냥 직업을 갖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직업을 갖되 먹고 살 정도가 되어야 하며 혼인을 하여 가정을 꾸리고 가족을 부양할 최저한의 임금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임금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근무환경이 좋아야 한다. 날마다 야근시키며 상관의 업무지시가 강압적이며 굴욕적인 업무환경이라면 견디지 못한다. 그런 원인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젊은이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기업주는 기업의 발전과 부의 축적을 위해 젊은 청년들을 마치 노예처럼, 아니 기계 부속품처럼 다루는 것이다.
 젊은 청년들이 이름난 기업에 취업하더라도 열악한 환경에서 꿈과 희망도 없이 청춘을 낭비한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가 아닌가? 그런 연유로 최저임금의 문제가 사회적 논쟁거리로 정치꾼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일도 있었다.
 적은 임금으로 입에 풀칠이나 하며 고된 노동을 해소하기 위해 마시는 소주 한 잔 값이라면 그건 취업이 아니라 일종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아르바이트에 불과하다. 그런 자리를 젊은이들을 위해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과대선전을 하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정치꾼들의 행위에 누가 공감할 것인가? 젊은 청년들이 요구하는 것은 일용직이나 비정규직 일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 운동의 순교자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예를 들어보자. “천장 높이가 너무나 낮아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고, 밝은 조명등 때문에 밝은 햇빛 아래서는 눈을 똑바로 뜰 수 없었고, 옷감에서 나오는 먼지가 작업장에 가득해 숨쉬기조차 힘들었고, 생리 휴가, 특별휴가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살인적인 하루 15~16시간의 고된 근무를 강요당하면서 폐결핵, 신경성 위장병 등 각종 질병에 걸릴 위험에 노출되어 몹시 힘겨워했지만 이렇게 혹사당한 노동의 대가인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는 생활비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홀로 용감하게 거리 한복판으로 뛰쳐나갔다. 동시에 휘발유를 뿌린 그의 몸에 라이터가 켜지더니 순식간에 그의 몸은 거대한 불길에 휩싸이게 되었고 이때 누군가가 “근로기준법” 책자를 불타고 있는 전태일을 향해 던졌다.“
 이런 열악한 기업에 취업하라고 젊은이의 등을 떠민다면 어찌되는 것인가? 우리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공동체 생존 의식이 있어야한다. 나만 배부르고 나만 돈 잘 벌며 호의호식하면 그만이라는 자본주의의 냉엄한 적자생존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옛날에는 경제가 그렇게 넉넉하지 않아도 땀 흘려 열심히 일하면 적금이라도 붓고 저축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국민소득이 올라가고 경제가 훨씬 좋아졌다는 지금은 어림도 없는 생각이다. 사회에 풀어놓은 일정량의 자본을 몇몇 개인이 독점하는 시대가 되어서 그러하다. 다 같이 일해도 가난한 사람은 항상 가난하고 부자는 항상 가진 자로 빈부격차의 심화 작용만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점점 세상이 각박해져 가고, 우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많은 선택을 강요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나 개인만을 위한 선택은 어려우며 가족도 생각해야 하고 저마다의 처한 처지가 모두 다르다. 젊은이들은 수없이 사라지고 새로이 생기며 다양하게 변해가는 직업 속에서 무엇을 바라보며 삶을 꾸려 나갈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이 그러하겠지만 젊은이들이 하고 싶은 꿈은 돈을 많이 버는 것과 안정적인 직장을 갖는 것이다. 그렇지만 요즘 사회는 자신의 이익에는 물불을 안 가리지만 남을 위해서는 바늘만큼의 배려마음도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돈도 왕창 벌 수 있는 건 세상에 없다.
 무엇을 선택하든 그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 하는 거다. 그런데 나아갈 방향 감각조차 잃어버린 많은 젊은이가 취업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는 현실이다. 취업을 하려면 취업을 하려는 기업에서 어떤 채용전략을 가지고 인재들을 채용하려고 하는지 그 흐름을 훑어볼 필요가 있다. 젊은이들의 최대 고민은 아마도 취업일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은 대학 졸업생들에게 참으로 살벌하다.
 취업할 자리는 적고 구직자는 점점 늘어 한마디로 취업 전쟁을 겪고 있다. 취업을 하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산업재해는 우리 사회의 격차, 양극화의 현상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소위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이 그렇듯 낮은 임금과 고된 노동 시간 위에 위험마저 얹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 시대 젊은이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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