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을 역사적 사실처럼 인식하는 것은 위험하다 】

남 덕 현
(佛名:불명<法勝:법승>)
kbs491015@hanmail.net

 소설은 한마디로 작가가 허구의 내용을 그럴듯하게 조작하여 독자들에게 흥미와 갈등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꾸며 쓴 부류의 글을 말하지만, 그 영역은 광범위하며 다양하다. 물론 그것을 통해서 그 시대의 상황과 문화를 짐작할 수 있지만 말이다. ‘조선을 구한 월이 이야기’는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던 설화를 소설로 꾸며서 쓴 허구적 내용이라는 점을 당신은 이해해야 하며, 역사적 팩트(fact :실제, 사실)가 아니라는 것을 어린 학생들에게 분명하게 알려줘야 한다. 왜냐하면 설화소설의 주인공인 월이라는 기생이 역사적 실존 인물이며 당항포해전 승리의 일등 공신이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아서 그렇다. 물론 우리 지역의 문화적 콘텐츠로 개발하려는 것은 역사적 팩트(fact :실제, 사실) 와 별개의 문제이다. 월이 이야기를 지역 문화축제로 개발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부류의 소설은 주로 고전소설에나 나올법한 내용이지만 현대 시대에 설화소설이 나온다는 점이 신기하기도 하다. 우리나라 역사서에 나오는 설화나 종교 서적에 나오는 신화도 사실이 아니라고 증명하는 마당에, 역사적 고증의 대상도 아닌 설화소설과 그 주인공을 마치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왜곡하며 황당한 주장을 하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더욱 이해 불가능한 일은 소설의 주인공인 ‘월’이라는 가공인물이 조선을 구했단다. 이것은 자칫하면 당항포해전 승리의 역사적 사실을 상당히 왜곡할 염려가 있으며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 당항포 대첩으로 왜군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이 살아서 돌아온다면 놀라서 뒤로 자빠질 일이다. 인간의 문화가 아주 원시적인 사회에서 근거 없는 뜬 소문이 출처도 없이 떠돌다가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것이 설화다. 역사적 고증의 대상도 아닌 설화소설의 주인공을 실존 인물처럼 인식시키려는 시도는 황당한 짓이다. 문화란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말한다. 그냥 재미있는 설화소설 이야기로 끝내야 한다. 역사에 기록된 이야기도 현실적으로 실재와 사실이 아님을 인정하는 부분도 많은데도 말이다. 한국 근 현대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월이 이야기가 얼마나 황당무계한 허구적인 소설이라는 점을 알겠지만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부류의 고전소설과 설화 이야기가 매우 많다. 신화도 일종의 설화에 속한다. 그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단군조선을 세운 단군 이야기는 역사서의 부류인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전해온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에 기록하기 곤란한 신화나 설화를 모은 책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삼국유사는 스님인 일연이라는 분이 서술한 민간설화 위주의 책이다. 단군신화의 이야기를 간추리면 ‘하느님’인 환인의 아들 환웅이 세상으로 내려와 고조선을 건국하는 이야기이다. 그 내용 중에는 곰과 호랑이가 환웅을 찾아와 인간이 되게 해달라는 부분이 있다. 환웅이 쑥과 마늘을 주며 ”이것을 먹으며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아라. 그러면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호랑이는 100일을 채우지 못하고 곰은 100일을 채우는 바람에 인간이 되었는데 그 이름이 웅녀(곰의 인간)라는 여자이다. 이 웅녀와 하느님의 아들인 환웅과 혼인하여 태어난 사람이 한반도에 최초에 우리나라를 세운 단군이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런 설화 이야기를 지금 시대에 사실로 믿는 사람이 있겠는가? 당신도 생각하기 바란다. 그런데 조선을 구한 월이라는 인물은 역사서의 어디에도 없는 허구적인 내용이니 논의의 가치조차 없다. 두 번째로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 설화 이야기를 해보자. 이것은 우리나라 역사서인 삼국사기(저자:김부식)나 삼국유사(저자: 일연)에 나온다. 신라가 탄생하기 전인 진한 시절, 훗날 신라의 수도가 되는 경주 땅에는 6개의 마을이 있었다. (알천 양산촌, 돌산 고허촌, 자산 진지촌, 무산 대수촌, 금산 가리촌, 명활산 고야촌) 여섯 마을 촌장들은 임금으로 추대할 사람을 찾기 위하여 높은 산에 올라 천지사방을 둘러보았는데 남쪽에 있는 ‘나정(蘿井)’이라는 우물 옆에 흰 말이 있었다. 촌장들은 “저기다!” 하고 재빨리 산을 내려와 나정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흰 말은 길게 울음을 울더니 하늘로 올라갔고, 그 자리에는 큰 알이 하나 있었다. 촌장 하나가 알을 조심스럽게 만지니 알이 쪼개지며 알 속에는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이 아이의 이름을 혁거세(赫居世)라 지었으며 성은, 알이 둥그스름한 박처럼 생겼다 해서 박(朴)씨로 정한 것이다. 요약해보면 우물가에 무릎을 꿇고 우는 흰 말이 있어 가보니 붉은 알이 있었고, 알을 깨고 나온 사내아이가 있었다. 이 사내아이가 신라의 초대 임금인 박혁거세이다. 신라는 알의 왕국이었다. 박혁거세의 부인 알영, 신라 4대 왕 석탈해까지 웬만한 시조들은 알 출신들이다. 역사서에 기록된 이런 이이기가 사실일까? 당신이 핀단 하길 바란다. 후백제를 세운 견훤 설화 이야기를 살펴보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역사서는 대부분 승자들의 기록으로서 패자는 외면받거나 심지어는 부정되고 삭제되고 조악하게 변질되어 버린 경우가 허다하다. 그 역사들 중 가장 지독한 것이 아무래도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과 3천 궁녀 설화이며, 견훤에게 죽음을 당한 경애왕이 후백제군에 의해 멸망하던 날까지 한겨울에 포석정에서 술잔을 띄우며 놀았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일 것이다. 그리고 기구한 운명을 가진 왕 견훤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신라 왕족의 후손 아자개의 아들이 아니라 지렁이의 아들로 묘사되는 견훤의 설화 이야기를 펼쳐보자. 후백제 견훤의 탄생에 관한 것으로 삼국유사에 전한다. 광주 북촌에 사는 한 부자에게 아름다운 딸이 하나 있었다. 어느날 딸은 밤마다 보랏빛 옷을 입은 남자가 나타나 자고 간다는 사실을 아버지에게 고했다. 아버지는 딸에게 그 사나이의 옷자락에 긴 실이 달린 바늘을 꽂아두라고 일렀다. 딸은 아버지의 말대로 하여 이튿날 아침에 그 실을 따라가 보니 북쪽 담 아래 실이 있고 바늘은 큰 지렁이에 꽂혀 있었다. 딸이 잉태하여 남자아이를 낳으니 나이 15세에 이르러 스스로 견훤이라 칭했으며 완산군에 후백제를 도읍했다는 내용의 설화이다. 설화란 이 정도로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이제 설화의 예를 들었으니 종교의 신화 이야기를 해보자. 먼저 기독교의 경전인 구약성서에 보면 선악과 이야기가 나온다. 아담이라는 남자아이는 아직 선과 악이라는 개념을 몰랐다. 그런데 아담에게 중대한 사건이 생겨 버린 것이다. 바로 '선악과' 사건이다. “여호와 신이 동방의 에덴(지금의 이라크 유프라테스강 상류지역)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를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그러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과일은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여호와 신이 아심이라“ 그런데 아담이 이런 과일을 먹고 선과 악을 알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선악과라는 과일을 먹고 선과 악을 알았다는 이야기가 과연 현실성이 있는 것인가?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신화라고 한다. 예수의 기적이라고 하는 엉터리 오병이어 신화 이야기를 살펴보자. 예수는 큰 무리 중 병든 자를 고쳐주었다. 저녁때가 되어 먹을 것이 없어 고민할 때 한 어린아이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다고 하자 축사하시고 빵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어 큰 무리로 먹게 하였는데, 5천 명(성인남자만 오천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이 배불리 먹고 12 광주리가 남았다고 한다. ㅎㅎㅎ. 이런 신화를 실제적 사실이라고 믿고 있은 분들이 있으니 정말 애처롭고 안타깝다. 신화 이야기는 그리이스의 제우스신의 신화 이야기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신화든 설화든 모두 인간이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불교의 부처님 탄생 신화를 알아보자. 부처님께서 처음 탄생 하실 때에 큰 광명을 놓아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셨고, 땅에서는 금빛 연꽃이 솟아 부처님의 발을 받들었다. 동·서·남·북으로 각각 일곱 걸음을 걷고, 사방을 살피고는 한 손으로 하늘을,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면서 사자후(師子吼)로 외치셨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내가 가장 높다(天上天下唯我獨尊). 태자는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자국씩 걸으면서,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외쳤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나 하나 홀로 높네.--- ” 어린 아기가 이게 과연 실현 가능한 일인가? 신화 이야기에 불과하다. 다음으로 고전소설인 심청전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자. 물론 심청전 소설을 쓴 작자는 알 수 없다.  심청은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걱정하면서 인당수에 뛰어든다. 바다속에서 심청은 용궁으로 모셔지며, 후한 대접을 받고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 곽씨 부인을 만난다. 용궁에서 하루를 지낸 심청은 연꽃속에 들어가 다시 인간계로 돌아오며, 남경 상인들은 귀국하던 중 바다에 떠 있는 연꽃을 이상히 여겨 송나라 천자에게 바친다. 천자는 연꽃속에서 나온 심청을 아내로 맞이하고, 왕후가 된 심청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맹인 잔치를 벌인다. 심청이 떠나고 난 뒤 뺑덕 어멈과 같이 살던 심학규는 잔치 소문을 듣고 황성으로 향한다. 심학규는 맹인 잔치에서 황후가 된 심청을 만나 크게 감격하여 눈을 뜨게 된다. 이런 내용이 고전소설의 특징이다. 사실이 아닌 허황된 이야기다. 심청과 심봉사는 소설의 주인공이지 실존 인물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설화소설을 역사적 팩트(fact :실제, 사실)인 것처럼 이상하게 왜곡하려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월이 소설은 ‘흥부전’이나 ‘콩쥐 팥쥐’와 비슷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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