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식은 성인이 되면 독립된 가정이며 이웃사촌이다 】

남 덕 현
(佛名:불명<法勝:법승>)
kbs491015@hanmail.net

 자식은 부모의 품 안에 있을 때만 자식이다. 부모의 품을 떠난 자식은 독립된 가족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자식 사랑도 어릴 때뿐이다.
 자식이 성장하여 성인이 되면 자기 살길 찾아 떠나도록 해야 지혜로운 부모다. 너무 냉정하다고? 그럼 품 안에 안고 살아봐라. 다 큰 자식을 품 안에 안고 살면 부모와 자식 간에 원수가 된다. 서로 자기주장만 옳다 하고 상대방 비난하기가 쉽다. 물론 자식은 부모의 혜택을 받고 살아가니까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서로 살아가는 인생관이 다르고 세대 차이로 인한 삶의 방식이 다른데 어떻게 함께 살 수 있겠는가? 부부 사이도 힘든데 자식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러니 하루빨리 독립시켜라. 넉넉하게 살든지 굶주리고 살든지 그건 오로지 자식의 몫이다. 자식 인생에 간여하지 말아라. 간여한다고 자식 인생이 달라지겠는가? 요즘 캥거루족 젊은이들이 너무 많다. 물론 사회적 경제적 문제로 자립할 수 없는 형편인 것은 이해하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자녀가 성장하여 성인이 되면 혼자 독립할 수 있도록 집에서 내보내야 한다. 냉정한 말이지만 그러한 것이 자녀를 위하는 길이다. 일반 동물도 새끼가 성장하면 부모와 자식은 독립해서 살며 서로 어떤 간섭도 하지 않는다.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성년인 자녀가 부모 밑에 빌붙어서 산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자식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성년이 된 자식을 품 안에 안고 산다면 그것은 자녀의 독립심을 망칠 뿐 아니라 자녀의 앞길을 가로막는 행위다. 캥거루라는 동물의 새끼는 거의 성년이 될 때까지 어미의 주머니 속에서 자란다. 그러므로 성인인데도 불구하고 독립할 생각도 없이 부모와 함께 사는 젊은이를 캥거루족이라고 한다. 캥거루족이 되면 부모 자식 사이에 엄청난 가정적 갈등이 나타난다. 자식은 성장하여 성인이 되면 이웃사촌이니 도움을 주고받는 일과 일체 간섭을 중지해야 한다. 자식은 자신이 필요할 때는 부모를 찾고 그렇지 않으면 부모는 안중에도 없다.
 자식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살아야 할 독립된 개체이다. 성인이 된 자식은 결코 부모의 희망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성인이 된 이후로 자신의 인생 결정권은 이미 자신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신의 형편에 따라 자식의 불편함을 지원하는 보조자 협조자에 불과하다. 그 이상의 생각이 있다면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자식은 누구의 간섭도 싫어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가 결정하며 자신의 갈 길만 간다. 성인이 되어도 부모의 말에 순종할 것이라는 생각은 어리석다. 그러기에 부모가 자식에게 의지한다든지 자식이 부모에게 매달린다면 부모 자식 사이에 불화만 일어날 뿐이다. 자식은 마치 아기 새가 성장하여 어미 새를 버리고 둥지를 떠나듯이 떠나보내야 한다.

 자식은 자식의 인생이 있고 삶이 있고 타고난 운명이 있다. 누가 말린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대부분 자식에게 어릴 때부터 아끼지 않고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노후에 도움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면서 일단은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부모들이 가진 ‘자식 리스크’는 제대로 된 노후 준비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20세기식 교육에 기반한 사교육은 돈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과 같다. 실제 우리나라 경제의 ‘허리’인 40대는 자녀 교육과 내 집 마련에 힘 쏟느라 노후 준비도 소홀하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자식에게 지원하는 부모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나이 30이 되도 자립하지 못하고 빌빌대어도 끼고 살면서 용돈도 준다. 결혼한다면 자녀 전셋값을 위해 부모가 노후 비용을 사용한다. 그러다가 결국은 노후에 남는 것은 국민연금밖에 없는 불쌍한 신세가 된다. 노후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과정의 연장선에 있다. 앞서 언급된 40대의 생활방식이 쌓여 은퇴 세대가 되는 것이다. 바야흐로 10년 뒤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다. 학원이나 과외 등의 사교육 대신 아이들에게 뭘 가르쳐야 할까. 유치원 때부터 독서와 금융교육, 체험 여행 같은 자녀들의 성장에 자양분이 될 경험과 살아있는 지식을 접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는 유대인의 교육법과도 유사하다. 어린 시절부터 돈에 대해 배워야 돈을 이기는 어른이 될 수 있다. 과거 금융문맹에 가깝다는 지적을 받던 사람들도 최근에는 금융과 투자에 급격히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자녀에 대한 금융교육은 필수다. 최고의 자산 운용이란, 재산을 쌓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위해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벌고 돈을 잘 쓸 줄 아는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웬만하면 생활필수품 지급은 현금으로 해라. 카드는 비상용 한 개만 남기고 모두 버려라. 주 단위로 생활계획을 세워 은행에서 생활비를 찾아서 사용해라. 돈을 쓰는 게 불편해지면 불필요한 소비, 충동구매를 피할 수 있다. 손자의 학비나 가족 여행비 등 당장 요긴한 지원이 필요하다면 부담 없이 인심을 쓰고 감사 인사를 받을 수도 있다. 유산이 없으면 자식들이 당신의 죽음을 기다릴 일도, 형제끼리 다툴 일도, 가산을 탕진할 일도 없다. 다 쓰고 죽으라는 말은 결국 후회 없이 살라는 말이다. 돈은 지금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모으고 쓰는 것이다. 결국 부모들의 비뚤어진 자식 사랑이 자녀들을 불행으로 이끌 가능성이 크다. 부모 세대부터 많이 공부하고 생각하고 바뀌어야 할 일이다. 현대 시대는 부모와 자식 간의 인정과 효도는 끝났다. 자녀에게 효도하기를 바라지마라. 어리석은 짓이다. 자녀가 부모에게 아쉬운 소리 안하며 스스로 힘으로 독립해서 사람답게 살아간다면 그게 효도이다. 그리고 독립해서 살아가는 자녀의 인생살이에 대해서 간섭하지 마라. 자녀에게 도움을 주지도 말고 바라지도 마라. 자녀 스스로 도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물론 부모들의 마음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동화에 잘 나와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으며 나무는 부모의 마음이요. 소년은 자녀라고 생각하면 된다. (옛날에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나무에게는 사랑하는 소년이 있었다. 매일 소년은 나뭇가지로 왕관을 만들어 숲속의 왕자 노릇을 했다. 소년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그네도 타고, 사과도 때먹곤 했다. 나무와 소년은 숨바꼭질도 했었다. 그러다 피곤하면 나무 그늘에서 단잠을 자기도 했다. 소년은 나무를 무척 사랑했고, 나무는 행복했다. 소년은 점점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었다. 그래서 나무는 혼자 있을 때가 많아졌다. 어느 날 소년이 와서 나무에게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나무는 자기 몸에 열린 사과를 모두 주었다. 그래도 나무는 행복했다. 떠나간 소년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이 다시 나무로 돌아왔다. 소년이 이번에는 집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자 나무는 자신의 나뭇가지를 주었다. 그래도 나무는 행복했다. 떠나간 소년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소년이 다시 돌아왔다. 소년이 배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무가 자신의 줄기를 주었다. 그래도 나무는 행복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소년이 다시 돌아왔다. 소년이 이제는 나이가 많아졌다. 소년이 이제는 조용히 쉴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자 나무는 자신의 마지막인 늘어버린 나무 밑둥을 내주었다.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다. 하지만 나무는 그냥 모든 걸 주다가 결국 사라져버렸다. ) 이와 같은 이치가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다. 그러므로 자녀는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의지하는 생각을 버리고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독립심을 키우라는 것이다.
 자녀가 어릴 때는 부모와 함께하였지만 어른이 되면서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고 부모가 가진 것을 빼앗아 간다는 교훈도 들어있다. 자녀에게 독립심을 키우지 않으면 부모가 늙어 죽을 때까지 부모에게 의지하려는 습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닭과 병아리의 예를 들어보자. 병아리가 어릴 때는 어미 닭이 모이를 쪼아 병아리에게 먹여 주지만 병아리가 성장하면 독립된 생명체로 각자의 삶의 방식을 선택하며 자기의 인생길로 달려간다. 서로 도움을 주지도 받지도 않으며 독립된 이웃으로 살아간다. 하찮은 날짐승도 이러할 바에야 인간이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다 큰 자녀를 제대로 독립시키지 못한 부모들이 낳은 이 시대의 비극이다. 캥거루족은 자립할 나이가 지났음에도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기댄 채 살아가는 받는 이들을 뜻한다. 자식이 성장하면 자기 살길 찾아 떠나는 훈련 시켜야 지혜로운 부모다. 장성한 자식의 딱한 형편을 외면하지 못해 지원했다가 부모마저도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고, 극단적 선택까지 하게 되는 불행한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늙은 부모의 노후 자금에 손을 벌리는 '캥거루족'이 늘면서, 비극은 끔찍한 패륜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과거에는 자식이 늙은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지만, 현시대는 자식에게 안 받고 안 주는 게 차라리 낫다. 자식이 부모의 자랑거리가 되는 한국 특유의 가족 문화와 부모도 돈이 있어야 대접받는다는 물질적 교환 심리가 결합해 캥거루족 자식을 늙은 부모가 부양하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캥거루족' 문제는 더욱 심각한 자녀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자녀에게 자립교육 사켜야 늙어서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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