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종 암
평론가

 결론부터 말하면 정치와 문학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리고 대문호들의 일부 소설도 리걸 마인드(legal mind)가 없이는 소화하기가 힘든 면이 있다. 법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리걸 마인드란, 법학교육을 받다보면 잘 훈련된 법학도나 법률가가 문제된 사안에 대해 접근하는 고도화된 사고방식을 일컫는다. 필자는 이러한 면에 잘 훈련돼 있는 편이다. 그러한데, 집단이기주의에 찬 일부 정치꾼은 ‘그들만의 아방궁’을 사수하려고 "문학인이 정치를 하면 안 된다."조로 말한 적이 있어, 비로써 공천과정에서 세차게 반박한 적이 있다. 또한 자신이 문학인이자 정치인이면서도 어설프게 문학을 폄훼하는 이도 본다. 즉, 문예사조조차 모르면서 문학인임을 내세우는 정치인 부류가 문학을 폄훼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한 번 보자. 한무제(漢武帝)는 악부(樂府)를 설치하고, 이연년(李延年)를 책임자로 두고 가요 등을 채집하였다. 그리고 유비와 자웅을 다툰 삼국지의 영웅 조조의 시도 22수가 전한다. 이들은 정치인이자 군사전략가이며, 시인이자 문필가였단 사실을 잘 모른다. 장편서사시를 남긴 중국 초나라 '굴원'도 평론가였다. 그는 부패한 정치세력의 모함에 두 차례나 유배당하고, 제나라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이 무시되고 진나라에게 매수된 간신배들에 의해 멸망하자, 멱라강에 투신함으로써 생을 마감한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근대의 ‘홍자성’, 그리고 현대에 오면 '주언라이'도 시인이자 위대한 정치인이었다. 언제나 닮고픈 평론가인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파네스'는 두말 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에도 고대3국(필자는 ‘가야’을 포함시켜 4국이라 칭한다)은 물론, 조선조 6대왕을 모신 정승 서거정은 후세에 시 11,000여 수를 남겼고, 일제강점기를 포함한 근·현대 정치사에 이광수, 최남선, 이춘수, 박정희, 이승만, 박근혜, 김영환, 도종환 등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물론 이들 중 몇몇은 문행일치(文行一致)가 안 돼 질타를 받기도 하지만, 그러함을 떠나 정치인이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외에도 더 많은 이들이 문학인이면서도 정치인이란 타이틀에 묻혀, 자신이 문학인인 게 클로오즙 안 된 이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고래로 정치와 문학은 어우러져 왔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정치 있는 곳에 문학이 있고, 문학 있는 곳에 정치가 있다. 그리고 문학이 있는 곳에 평론가가 있다. 우리 국민 또한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황을 즐기는 편이다. 그럼에도 작금에 와서는 스스로 정치평론가 수준의 훈수를 놓으면서도, 정치 예기는 말라는 이율배반적인 이도 있다. 문학을 한 정치인은 문학 속에서 독자의 심금을 울리듯이 이들의 정치력 또한 대체적으로 합격점이었다. 

 주변 정치인들을 보아도 문학적 소양이 있는 이들이 맡은 바를 무리 없이 해낸다. 그리고 문학은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정치 또한 일부 세력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단 것이다. 예컨대, 문학이 관련학문 탐구자가 아니어도 되듯이, 정치 또한 특정집단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단 점이다. 물론 이에 대한 부단한 노력의 탐구는 필수이기도 하다. 정치인들은 자신이 작가가 돼 민초들에게 심금을 울리며 민을 편하게 할 수도 있겠다. 포샵한 홍안에 철판을 깔지 않고는 정치를 할 수 없다는 사고가, 팽배한 대한민국 정치사기판이 안타깝기는 하다만...,


 *본고는 2013.9.1자에 쓴 걸, 2021.9.3자 고성시사신문에 단독 기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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