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격 침해가 난무한 직장 내에서 당신은 갑질과 괴롭힘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

남 덕 현
(佛名:불명<法勝:법승>)
kbs491015@hanmail.net

 솔직히 말해서 무지한 사람에게 어떤 지위를 부여하는 것보다 위험천만한 일은 없다. 무분별한 갑질과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이 상대방의 인격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 도저히 모르기 때문이다.
 옛말에 ‘없는 놈은 성씨도 없다.’고 했다. 즉 가난한 사람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던 시대의 말이지만, 지금도 그 말의 효용가치는 진화하여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물질만능주의인 자본주의가 낳은 최대의 비극이다. 필자가 말하는 투쟁의 의미는 싸움이 아니고 저항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계급투쟁을 매우 중시하여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말했다.
 계급투쟁은 각각의 계급이 생산수단의 소유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경제적 이해의 대립에 뿌리를 둔 것이므로 경제투쟁이 그 최초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즈음의 세계는 계급들 사이의 투쟁이다. 한 계급의 경제적 이익, 특히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는 그 계급이 지배하는 국가에 의해 보호받는다. 오늘날에는 사회적 지위의 계층들이 개인이나 집단의 행위를 결정하는 데 더 중요시되고 있다. 즉 현재 생성 중인 새로운 기술적 혁신과 경제 성장을 지휘하는 테크노크라트나 관료들이 지배계급이 될 것이며, 그들의 지배에 대한 반대는 노동자계급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예속적 지위를 통한 차별과 소외를 가장 첨예하게 느끼는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은 어쩌면 민주노동조합이라는 형태로 변모되어 이 사회에 나타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피지배 계급인 노동자는 노동력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고 봉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이들을 말하며, 자본을 위해서 일하는 것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 이들이다.

 사회지배계급 노릇을 하고있는 자본가는 노동자들이 만들어내는 잉여 가치 등을 통해 수입을 얻는 이들을 가리키며 그것은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에서 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같은 계급에 소속된 이들은 서로 같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계급적, 집합적 이해관계는 상대방 계급의 이해관계와 충돌한다. 이는 각 계급에 소속된 개개인 간의 충돌을 낳게 되는데 이것이 현대에 와서는 갑질이라는 형태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현시대가 개인 이기주의로 변모함에 따라 갑질 주의라는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것은 개인과 개인 간의 갑질 투쟁으로 변모하여 사회갈등의 심각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으므로 정부에서 갑질 방지법이라는 법안까지 제정하게 된 것이다. 현대의 계급투쟁은 관료들과 부동산 지주계급이나 기업주계급들이 지배계급이 되고 있으며, 그들의 지배에 대한 반대는 노동자계급에 의해서 자신들의 예속적 지위에 차별과 소외를 가장 첨예하게 느끼는 힘없는 개인에 의해 갑질 투쟁의 형태로 일어나고 있다. 알기 쉽게 말하면 갑질 저항 투쟁이다.
 갑질 저항 투쟁의 가장 열정적인 것은 자본계급의 일터에서 갑자기 빠져나오는 것이다. 관료사회에서는 부당 업무의 자시를 따르지 말고 논리적으로 대항하는 것이다. 기업주 계급투쟁에서는 갑자기 일을 그만둔 체 사직서를 제출하고 출근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무 저항의 방법으로 직장 괴롭힘 계급사회를 혼란 속으로 빠트리는 일이다. 다만 이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직장 괴롭힘을 못하도록 최대한 힘쓰고 그래도 직장 괴롭힘 행위가 계속될 때의 투쟁 방법이다. 세상은 넓고 갑질 행위가 없는 좋은 일자리는 많다. 당신은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 노예처럼 열심히 일하고 정신적 고통인 직장 괴롭힘을 당하며 살아야 할 권리는 없다. 코로나 사태로 서민경제가 어려울수록 갑질 행위가 극성을 부린다. 갑질 행위와 직장 괴롭힘은 광범위해서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마치 전염병처럼 번져서 인간사회 모든 곳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갑질 행위란 한마디로 인간성을 포기한 최악의 정신적 파괴행위다.

 본래 자본주의 사회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회다. 자본이 인간사회에서 최고의 가치가 된 것은 이미 오래되었고, 인간은 자본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게 되었다. 자본이 인간성 보다 존경받고 우선하는 사회이며 자본이 없으면 인간 취급도 못 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가난한 자들에게 불우이웃돕기 한다면서 생색내기의 흉내를 내고 있다. 우리는 이런 사회를 민주주의 사회라고 착각하며 좋다고 선택해서 살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의 비참한 잔인성과 생활상이 자본주의 사회의 부산물이니 정당할 될 수도 있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고 인격적 살인도 서슴지 않는 것도 정당화되고 있다. 갑질 자체가 인간의 본성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윤리적 측면에서 최대한 억제해야 하지 않겠는가? 계급사회에서는 어디든지 계급이 존재하며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나 국가는 없다. 또 모든 국민은 크고 작은 일정한 계급적 지위가 있다. 이 이론은 오늘날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모든 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 진리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의 사회에서 생존을 유지하려면 때로는 계급투쟁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직장 내 괴롭힘을 남발하는 자들에 대한 투쟁이어야 한다.
 누구나 직장 내 괴롭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업무를 너무 잘해도 시기 질투로 따돌림을 받을 수 있고, 업무능력이 부족해도 무시를 당할 수 있다. 상사가 권력을 이용해 괴롭히기도 하지만, 직급에 상관없이 괴롭히기도 한다. 특정 무리가 괴롭힐 수도 있지만, 전체 직원이 모두 가해자이면서 방관자가 되기도 한다. 반복적, 의도적, 지속적인 직장 내 괴롭힘과 따돌림은 범죄다. 조직 리더라면 이러한 잘못된 상황을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하지만 직장 괴롭힘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자들도 많다. 조직 리더가 괴롭힘의 주역이라면 고민할 것 없이 당장 직장을 떠나야 한다.

 그럼 직장 내 갑질 괴롭힘 행위는 어떤 것이 있을까? 업무를 하다 보면 실수가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사무실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고 큰 소리로 타박하고, 지나치게 화를 내고 무안을 주는 괴롭힘이 있다. 혹은 실수가 아닌데도 망신을 주기 위해 트집을 잡고, 일부러 결재문서를 반려시키기도 하며 엉뚱하게 수정시키기도 한다. 그 사람이 모를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큰 소리로 질문을 하고, 모르면 타박을 놓는 공개적 방식으로 괴롭히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건 괴롭힘이 아니라 ‘업무 방식’이라고 그럴듯하게 비열한 괴롭힘 방식으로 변명한다. 공개적인 호통, 트집 잡기,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다른 직원들 앞에 보임으로써, 다른 직원들도 은근히 동조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이런 언어폭력과 인격 폭력이 반복되며 피해자를 직장 괴롭힘의 재물을 삼기도 한다. 업무에 협조하지 않고 오히려 방해하는 괴롭힘 방식을 야비하게 적용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이 협조를 구하면 원활하게 도와주면서 특정 사람에게만은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하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같은 일을 반복시키기도 한다.
 피해자 에게만 유독 엄격하게 복무 관리를 강요할 때도 있으며, 연차휴가를 쓰는데 눈치를 주는 경우, 아파서 병가를 쓰는데 지나치게 증빙자료를 요구하는 경우, 육아를 위한 시간조정에 타박하는 경우 등 수업이 많다. 전화를 너무 길게 한다고, 옷을 이상하게 입는다고, 출근 시간에 너무 딱 맞춰 온다고 등 상황은 다양하다. 특정 직원에게만 유독 엄격한 규칙을 요구한다거나 이를 어겼을 때 과하게 꾸중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특히 상사가 괴롭힐 때 과도하게 업무를 부여하는 경우다. 바쁜 줄 뻔히 알면서도,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추가적 업무로 지시한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세세하고 구체적으로 보고하게 만든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갑자기 마감이 급한 업무를 던져주기도 한다.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를 줌으로써 괴롭히고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또 화를 낸다. 식사 시간에 자기들끼리만 이야기한다. 대놓고 괴롭히는 것은 없지만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경우다. 업무적으로 어쩔 수 없을 때만 최소한의 말만 하고, 그 외엔 교묘하게 투명인간 취급한다.

 눈에 보이는 괴롭힘이 없기 때문에 괴롭힘의 입증을 교묘하게 피해 가기도 한다. 이 외 더 다양하고 교활한 방식이 수없이 많다. 언어폭력, 모욕, 신체적 폭력 등이 있을 수 있다. 상사의 괴롭힘이 가장 흔하고 쉽게 나타날 수 있지만, 동료 혹은 직급이 낮은 직원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으며, 사무실 내 전체 직원에게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다. 직장 내 괴롭힘, 직장 내 따돌림 문화가 있는 조직이라면 건강한 조직이 아니다. 가해자, 방관자들이 이러한 조직이라면 언제라도 본인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분위기에선 설령 피해자가 퇴사, 전보 등으로 없어진다고 해도 또 다른 피해자를 선정할 것이다. 잘못된 직장 내 괴롭힘 문화 자체가 없어져야 건강한 조직이 될 수 있으며, 본인도 그 피해자가 될 위험을 없앨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이야말로 가장 동물적이고 비인간적인 무식한 자들의 동물적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당신은 직장 괴롭힘으로 고민하거나 괴로워하지 말고 최대한 저항하며 싸워야 한다, 그것은 현대판 만인에 대한 만인의 계급투쟁이다.
 쥐꼬리 같은 지위를 이용해서 직장 괴롭힘을 수행하고 있다면 당신은 인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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