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승의 날에---애야! 니 선생 말하는 거, 몰래 동영상으로 녹화, 녹음시켜라. )

남 덕 현
(佛名:불명<法勝:법승>)
kbs491015@hanmail.net

 얼마 후면 스승의 날이다. 스승이 선생님으로 그리고 선생으로 그 명칭이 시대가 변할수록 급격하게 평가절하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리고 사회인들 인식 속에는 선생님이란 존재가치가 이미 사라졌고 김선생, 박선생, 아무개 선생으로 불리워지는 흔해 빠진 명칭이 되었다. 마치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 부르듯이 그렇게 말이다. 그런 까닭으로 교사들은 스승이란 이름으로 존경받기를 거부한다. 그것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되었고 교사들을 우롱하고 능멸하는 사치스러운 용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결과로 스승의 날은 낡은 액자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원인은 사회와 학부모의 잘못된 인식변화와 교사 스스로에 찾을 수밖에 없다. 얼마 전 휴직을 하게 된 어느 교사는 자신은 절대로 동네에서 교사라는 걸 밝히지 않는다고 했다. 동네 주부들이 교사들 욕을 하도 많이 해서 자신이 교사라는 걸 밝히기 싫다는 것이 그 원인이었다. 교사에 대해 깊이 불신하고 있는 사회에서 교사에게 요구하는 도덕적 수준은 너무나 높아서 그렇다. 불신도 비난도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렇다면 교사들은 어떤 심정으로 교육을 하고, 어떤 심장을 지니고 살아야 할까?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교사의 모습을 불신하게 만든 것일까? “애야! 니 선생 말하는 거, 몰래 동영상으로 녹화, 녹음시켜라.” 학부모의 자녀교육 망치기 현상이 일반화되는 시대이다. 학교 선생님보다 자기 자녀가 더 우선이다. 심지어는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매 맞는 교사도 많다. 얼마 전에 TV에도 나왔는데, 철없는 학부모까지 나서서 교사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그래서 지금은 무서운 세상이 되었고 학부모 자격증이라도 있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선생님을 공경해야 교육이 제대로 되는 것인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요즘 학부모와 아이들은 사이버를 통해서 자기 선생님을 비방하거나 선생님의 약점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나쁜 짓도 서슴지 않는다. 그것의 결과는 당신의 자녀에게로 돌아간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세상에, 자기 자녀 교육시키라고 맡겨놓고는 선생님을 그렇게 하다니?

 교육은 교사와 학교와 학부모가 서로 신뢰하고 협력할 때 이루어진다.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이 없다면 진정한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학교 교육의 본래 목적은 사람다운 인간을 기르는 사람 교육이다. 사람 교육은 개인적 이익만을 너무 따지지 않으며 모든 사람에게 유익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사람 교육의 필수적인 조건은 따뜻한 인정이다. 따뜻한 인정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교육적 혹은 교육적인’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따뜻한 인정은 당신을 위한 배려와 지지와 잘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따뜻한 인정이 없다면 그것은 녹음기요. 앵무새일 뿐이며 당신의 마음에 느껴지지 않는 소음에 불과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학교 사회는 개인의 이익을 위한 갈등과 지식의 소음만이 가득 차서 사람 교육이 사라져버렸다. 학교 사회는 교육적인 구호만 광고처럼 난무하는 빈껍데기가 되어버렸고 오로지 자신의 유익만을 위한 고독한 투쟁의 광장이 되어버렸다. 학부모가 교사를 고발하고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시대에 사람 교육을 바라는 자체가 틀렸는지도 모르겠다. 민주주의라는 이름과 알권리라는 명분으로 무차별적으로 학교 사회를 뒤집어놓는다면 성스러운 영역인 학교가 설 자리를 상실하게 됨은 불을 보듯 뻔하다. 먼저 당신에게 묻고 싶다. 학교 선생님을 존경하는가? 그 존경은 당신의 이념과 사회적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뀌지 않는가? 아무리 개인 이기주의가 발달한 물질 중심 사회라고 하지만 교사에 대한 존경심마저 사라져버린다면 그 사회는 막장 사회다. 누가 이 사회를 바른 방향으로 바람직하게 이끌어갈 것인가? 오로지 내 자식, 오로지 내 새끼, 내 이익만의 편리함만 추구하며 살아간다면 사회적 동물이기를 포기한 것이며, 혹시나 불이익을 당할까 몸을 사린다면 이미 자녀에 대한 교육의 목적과 효과는 끝난 것이다. 그 결과는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오며, 범죄적 사회상황의 폭발적 증가나 타락의 막장 사회가 그 증거이다. 자업자득인 셈이다. 자기 자식만 최상의 귀중함을 강조하는 사회라면 서로의 이기심이 충돌하여 갈등을 일으키면서 교사들은 중심을 잡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교사와 학생들의 관계가 타산적이고 계산적인 냉엄한 현실만 존재한다면 학교 사회는 지식만 전달하는 교육의 본래 목적이 상실된 상거래의 현상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어쩌다가 교실 주변에까지 몰래카메라(CCTV)를 설치하여 교사들을 감시할 정도로 이 사회가 불신으로 가득 차게 되었나? 불신 사회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현상이다. 불신은 교육 현장에서 사라져야 할 최악의 현상이다. 심지어는 초등학교 교사가 학부모의 강력한 항의에 맞대응할 수 없어서 무릎을 꿇고 사과한 사건도 있다. 그리고 일어나서는 안 될 학생의 교사 폭행 사건과 더불어 교사의 굴욕적인 현장을 우리는 자주 목격하게 되었다. 이런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현재의 교육 당국과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 사이의 불신이 첨예해져서 그렇다. 물리적 교육 환경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고, 계속 좋아지는데도 불구하고 불신의 폭과 정도가 더욱 커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학부모나 학생의 일탈적 행위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이 각기 다른 것은 교육 주체 간 불신 때문이고, 이 불신은 교육 내용이 시대에 앞서갈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교육의 주체는 교사, 학생, 학부모이며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학생과 관련성이 깊다. 교사는 부모이기도 하고, 부모는 교사이기도 해야 한다. 학교가 가정 역할을 해야 하며, 가정이 학교 역할을 해야 한다. 교육 현장은 학생을 중심으로 교사와 학부모의 지지가 존재한다. 학생이 없으면 교사의 존재 이유는 없다. 자녀가 없으면 당연히 학부모가 될 수 없다. 교사와 학부모는 어찌 보면 학생과 공생해야 하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엄청 다르다. 그렇다면 왜 학생을 가운데 두고 협력해야 할 관계가 경쟁 관계가 되고 갈등 관계가 될까? 모두가 알고 있듯이 지금 교육이 이렇게 망가진 것은 교사의 책임이 아니다. 교사는 교육부에서 정해준 교육과정과 교육 내용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수많은 업무를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교사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과 불신을 만들어낸 원인을 따지다 보면 끊임없이 교사들을 폄하하고 왜곡하는 언론의 공이 매우 컸음도 알 수 있다. 지금 학교는 바깥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더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 학생들을 지도해야 하는 교사들은 불신과 비난 속에서 학생들과 함께 무너져가고 있다. 교사를 향한 불신과 비난의 사회적 시선이나 국민의 정서가 지속된다면 교사는 사명감도 희생정신도 없는 단순한 직장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진심과 열정 어린 교육은 멀어지고 소신 있는 교육은 포기한 채 단지 불신과 비난을 피할 방도만을 찾게 되는 것이다.

 교직은 성직으로서 지녀야 할 희생과 사랑이 한 겹 더 요구된다. 이제 사회는 교육에 있어서 교사를 전문가로 인정해주고 더 많은 전문성을 요구해야 한다. 또한 교사에게 더 많은 희생정신과 숭고한 사명감을 요구해야 한다. 지식의 전수가 교육이 아님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국가와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건강한 인격체를 길러낼 수 있도록 교사들에게 힘을 주어야 한다. 교사들의 교육적 행위에 대해 계속 불신과 비난의 시선을 보낸다면 교사들은 주체적인 의지와 사명감으로 책임 있는 교육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교육 외적인 문제로 해가 갈수록 학생들을 바르게 가르치는 일이 힘이 든다. 교육이 무너졌을 때 그 나라의 미래와 가능성이 없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 것인가? 교직은 과연 성직인가? 아니면 노동직인가? 교사이면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교사를 노동자라고 부르짖는 교사들은 이미 성직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그런 부류의 교사들은 지식 장사꾼이요. 지식 마술사들이다. 교직은 반드시 성직이 되어야만 한다. 그렇다고 교사가 수도승이 되라는 말은 아니다. 교사는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는 학생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천부적 책임감이 있기 때문이다. 교사는 장사꾼도 아니며, 자신의 이익을 먼저 앞세우는 투쟁 용사도 아니며, 노동자는 더더구나 아니다. 자신을 노동자라고 일컫는 교사가 있다면 교사직을 내려놓고 노동 현장으로 가야 할 것이다. 정신노동자니, 육체노동자니 하는 궤변은 말장난에 불과하며 노동자의 어원에 대해서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런 논리라면 대통령도 노동자가 된다. 노동자 아닌 직종이 없다. 국가사회는 교사가 자신의 직업을 성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사회적 신뢰와 예우가 절실히 요구되며 또한 필요하다. 교사와 학부모는 이제 교육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야 한다. 필자의 생각이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생각이라면 교육의 본질은 이미 사라진 것이며 학생 교육은 논의할 필요조차 없다. 다만 학부모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선생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자녀를 키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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