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 오신 날에 ‘반야심경’ 이야기 6편 )

남 덕 현
고성읍 동외로

 누가 뭐라고 해도 사람은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이익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그것이 성취될 때만이 만족스러워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회의 모든 인간관계도 그렇다. 나머지는 삶의 부산물에 불과하며 관심조차 없다. 그렇다고 자신의 욕구충족에만 몰두한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의 탈을 쓰고 사는 동물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사람은 동물과 차별되는 삶을 영위 할 때 사람으로 인정받게 된다. 그렇더라도 현실세계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태어날 때부터 개별적, 독립적으로 가야할 인생길이 따로 있다. 그 길은 누구도 알지 못하며 알 수도 없고 또한 누구도 수정하거나 변경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인간 개인별 인생의 존엄성은 매우 존중받아야 하며 인격체 또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한다. 인간이라는 개별적 존재는 색(色;육체), 수(受:느낌), 상(想:생각), 행(行:의지), 식(識:판별)이라고 하는 다섯 가지 구성요소 즉, 오온(五蘊)에 의해 연기(緣起:직접적 원인과 간접적 원인으로 의지하여 생겨남)적으로 구성된다. 이렇게 구성된 존재는 영원불변하는 어떤 본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리 눈과 귀에 보고 들리는 현상적인 존재일 뿐이다. 즉 현실 속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존재들은 신기루나 아지랑이처럼 어떤 인연에 의해 일시적으로 구성되어 겉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일 뿐, 진정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듯 본질적으로 '있지' 않지만 현상적으로만 '있는' 존재를 가리켜 '가아(假我)', 즉 '가짜 자아'라고 한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집착한다. 그러므로 온갖 번뇌 망상과 고통에 빠진다. 이런 존재의 모습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이 ‘무아(無我)’와 ‘가아(假我)’이다.

 “고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故心無罣碍 無罣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삼세제불 의 반야바라밀다 고득 아뇩다라삼먁삼보리 (三世諸佛 依 般若波羅密多 故得 阿耨多羅三藐三菩提 )”

 요약해서 풀이하면)마음에 걸림이 없다. 마음에 걸림이 없으니 두려울 것이 없고, 뒤집어진 헛된 생각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완전한 열반에 이르게 된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도 저 열반의 언덕으로 가는 지혜인 ‘반야 바라밀다’에 의지하여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셨다. 그러므로 ‘반야 바라밀다’를 잘 알아야 한다. ‘반야 바라밀다’에 의지하는 고로, 마음에 걸림이 없으며 걸림이 없으므로 공포가 없고, 공포가 없으므로 뒤바뀐 꿈과 같은 생각을 멀리 떠나, 구경열반에 이르느니라.
 구체적으로 풀이하면) 심무가애(心無罣礙)」는 유무(有無), 생사(生死), 선악(善惡) 취사(取捨) 등 대립되는 관념에서 한쪽으로 치우친 변견(邊見)에서 오는 번뇌이므로 망념(妄念)이라고 규정한다.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는 삶의 구속으로 접어들어 무명을 부르며 생노병사 우비고뇌(生老病死 憂悲苦惱: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하는 인생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근심과 이별과 죽음으로 말미암는 슬픔, 육신적 고통, 정신적 괴로움)를 부르고 인간성의 상실로 가는 순서가 된다. 이와 같은 고뇌는 나의 지혜를 밖에서 덮어씌워서 생긴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착각이 자기를 구속하고 덮는 것이다. 심무가애(心無罣礙)의 의미는 걸림이 없고 거리낌이 없다. 얻을 것이 없음을 통달했으므로, 일체 경계에 대해 좋아하고 싫어함도 없고(無愛憎), 경계를 취하고 버릴 것도 없다는 뜻이다. 무유공포(無有恐怖)의 의미는 두려움이 없고 근심이 없다. 좋아하면 경계에 묶여서 그것을 잃을까, 사라질까 근심하고 두려워한다. 싫어하면 경계에 묶여서 그것이 다가올까, 나타날까 근심하고 두려워한다. 그러나 좋고 싫음이 없으므로 근심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는 뜻이다.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은 거꾸로 뒤집힌 꿈과 같은 생각을 멀리 떠난다는 의미이며 전도몽상이란 오온을 ‘나’라고 보는 망상(아집. 아견: 我執. 我見)과, 대상(법:法)이 실재한다는 망상(법집. 법견: 法執.  法見)을 가리킨다. 꿈을 꾸는 동안에는 나가 실재한다고 여기고, 대상이 실재한다고 여긴다. 꿈을 깨고 나면 모두 거짓이요,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전도몽상을 멀리 떠난다는 것은 생사(生死)의 큰 꿈(大夢)을 깨는 것을 말한다. 원리(遠離)란 멀리 여읜다는 뜻이다.  멀리 여읜다는 것은 아주 깨끗이 떠난다는 의미다. 무엇에서 깨끗이 떠난다고 하는가? 전도몽상(顚倒夢想)에서 떠난다는 말이다. 전도몽상(顚倒夢想)이란 뒤바뀐 꿈같은 헛된 생각을 말한다. 이는 바로 어리석은 중생들의 중생견(衆生見)을 말한다. 중생견(衆生見)이란 중생들은 늘 실상(實相)을 알지 못하여 제법(諸法)이 공함을 알지 못하고, 착각 속에서 망념을 일으켜 제법(諸法)에 대하여 아(我)가 있다고 생각하고 고집하여 집착하는 어리석은 견해를 말한다. 이와 같이 잘못된 견해를 전도몽상(顚倒夢想)이라고 하며 이는 진실한 실상을 바로 알지 못하고 거꾸로 잘못 파악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의미이다. 부정(不淨)ㆍ무상(無常)ㆍ고(苦)ㆍ무아(無我) 등을 거꾸로 정(淨)ㆍ상(常)ㆍ낙(樂)ㆍ아(我)로 생각하고 있으니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 이것이 중생견(衆生見)인데 이를 유위사전도(有爲四顚倒)라고 부른다. 유위(有爲)란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분별하는 마음으로 번뇌 망상이 연기(緣起)하는 것을 말하며, 이 유위사전도(有爲四顚倒)는 범부 중생들이 잘못 보고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구경열반(究竟涅槃)의 의미는 마침내 열반(涅槃)을 얻는다는 것으로 구경(究竟)이란 절대의 구극(究極)을 나타내며 최상(最上)을 형용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구경열반(究竟涅槃)이란 불교의 최대 목적이자 최종의 목적인 완전한 열반을 뜻하는 것이다. 열반(涅槃)이란 범어로 니르바나(Nirvāna)라고 하며 이는 '불어 끄다'의 의미를 지닌 니르바(Nir-vā)에서 왔다. 이는 탐(貪:탐욕), 진(瞋:노여움), 치(癡:어리석음) 삼독(三毒)의 불을 불어 끈 상태를 의미하며 그래서 뜻을 번역하여 멸(滅)ㆍ적멸(寂滅)ㆍ멸도(滅度)ㆍ원적(圓寂)이라 하며 해탈(解脫)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는 타오르는 번뇌의 불길이 꺼져 없어져서 깨달음의 지혜인 반야(般若)로 보리(菩提:각[覺]. 지[智]. 지[知]. 도[道]) 를 완성한 경지를 말한다. 번뇌의 불이 꺼져 없어진 상태는 참으로 고요하기에 적멸(寂滅)이라 하고 열반적정(涅槃寂靜)이라 표현하기도 하며 그리고 열반의 세계는 고요하면서 밝으므로 적조(寂照: 명상의 상태)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것은 불자(佛子)가 이루려는 궁극의 목표다. 삼세(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는 ‘반야바라밀다’로 ‘아뇩다라 삼먁 삼보리(완전한 깨달음)’를 얻었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깨달음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공(空)에 대한 지혜’ 혹은 공(空)에 대한 이해와 실천을 통해 도달한 열반의 상태 즉 지혜의 완성을 의미)’를 알아야 한다. 과거에는 반야바라밀다로 부처가 되었고(윤회를 끊었고), 현재에도 반야바라밀다로 부처가 되고 있으며, 미래에도 반야바라밀다로 부처가 되어 아뇩다라 삼먁 삼보리((阿耨多羅 三藐 三菩提:완전한 깨달음)를 얻었고 얻으며 얻게 될 것이다. 부처가 되려면 반야바라밀다 수행을 해야 하며, 그래야 아뇩다라 삼먁 삼보리((阿耨多羅 三藐 三菩提:완전한 깨달음) 를 얻게 된다. 삼세제불(三世諸佛)은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들을 말한다. 삼세(三世)란 과거, 현재, 미래 이 세 가지를 삼세라고 한다. 아뇩다라 삼먁 삼보리(阿耨多羅 三藐 三菩提)는 부처의 올바르고 완전한 깨달음의 지혜(최상의 지혜)를 뜻한다. 산스크리트(Sanskrit)어 아누타라<anuttar; 무상(더할 나위 없이 높은)>, 삼약<samyak;정등(가장 올바른, 완전무결한)>, 삼보디<(sambodhi; 정각(궁극적인 깨달음)>를 소리 나는 대로 음역(音譯)한 것이다. 그것을 그 뜻에 맞게 의역(意譯)하여 번역하면 무상. 정등. 정각(無上. 正等. 正覺)으로 번역된다. 지혜의 완성은 심오하고 가장 훌륭한 가르침이다. 텅 비어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는 도리, 그 ‘반야바라밀다(깨달음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공(空)에 대한 지혜’ 혹은 공(空)에 대한 이해와 실천을 통해 도달한 열반의 상태 즉 지혜의 완성을 의미)’를 통하여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은 무상 정각(無上. 正覺) 을 성취한 것이다. 모든 보살도, 부처도, 반야(지혜)로서 인생의 진실을 삼는다. 앞에서는 보살이 지혜의 완성으로서 열반에 드는 것을 말하였다. 여기서는"삼세제불"이 지혜의 완성으로서 정각(正覺)을 이루는 것을 말하고 있다."삼세제불"은 과거. 현재. 미래를 통 틀어서 깨달음을 이루신 분이다. 그래서 "삼세제불"은 인간으로서 이룰 수 있는 궁극의 경지를 온전히 성취하신 진리의 화현(化現)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세제불(三世諸佛: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은 지혜의 완성으로서 "아뇩다라 삼먁 삼보리<무상, 정등, 정각(無上, 正等, 正覺: 바르고 넓은 지혜이므로>"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줄여서 '무상정각', 그냥 '정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뇩다라 삼먁 삼보리(阿耨多羅 三藐 三菩提: 가장 완벽한 깨달음의 경지)"는 깨달음의 절정을 나타낸 말로서 더없이 높고 충만한 깨달음을 뜻한다. 한 순간의 깨달음이 아니라 영속적인 위없는 깨달음을 무상정각이라고 말한다. 지혜의 완성으로 말미암아 보살도 생기고, 부처도 생겨나는 것이다. 또한 보살의 법과 삼세제불의 가르침도 지혜의 완성에서 나온 것이다. 왜냐 하면 그것은 존재의 법칙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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