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바라본 우리나라 개신교(예수교)의 정체성 )

남 덕 현
고성읍 동외로

 성서의 마태복음 16장 26절에 보면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신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인간의 생명이 천하보다도 귀중하다는 중요성을 강조하신 말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야 할 개신교가 예수님의 말씀에 역행하는 짓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정부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국민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각종 집회와 모임을 일정기간 중지한다고 발표하자, 개신교단에서는 거부의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일반 국민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각종 종교행사가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하다는 것인가?” 라고 묻고 싶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사태에 ‘사회적 거리 두기’를 이유로 종교시설 등에 대한 제제를 일정기간 가하자 개신교계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정부의 이런 발표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의 원인이 대부분 많은 사람이 모이는 종교집회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개신교 단체는 “한국 교회에 대한 위협을 중단하라.”는 엉뚱한 소리를 하며 정부 방침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심지어 서울 시내의 일부 교회는 정부의 방침에 따르지 않고 종교집회(예배)를 계속해서 진행할 것이라고 한다. 마치 정부 위에 개신교가 존재하며 군림하는 것처럼 오만방자하다 할 것이다. 그것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제재한 것이 아니라 사전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집단감염 방지를 위해 종교 집회 등 밀집 행사 중단을 강력히 권고했으나 잘 지켜지지 않아서이다. 교회가 정부의 방침을 잘 따르지 않아서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가 잇따르자 내놓은 경고였다. 이번에는 정부에서 좀 더 강력한 메시지를 내놓았는데,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21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집단 감염 위험이 큰 종교시설과 실내 체육시설 등은 보름간 운영을 중단해 줄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며 “행정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시설 폐쇄는 물론 구상권 청구 등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개신교단에서는 정부가 지나치게 교회를 억압하며 위협하고 있다고 반발한 것이다. 심지어 한국 교회 총연합(한교총)은 지난 25일 한발 더 나아가 “총리는 교회에 대한 공권력 행사와 불공정한 행정지도를 사과해야 한다.”고 억지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이어 한국 교회연합(한교연)도 같은 날 “총리는 교회 폐쇄, 예배 금지, 구상권 청구 등 입에 담을 수 없는 살벌한 용어로 한국 교회를 겁박했다.”며 “한국 교회를 범죄 집단으로 둔갑시켜 전체를 매도한 행위”라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이들은 “국가가 국민의 신앙행위를 강제하고 억압할 권한은 없다.”며 정부 방침에 반대할 것이라고 억지 주장을 되풀이 했다. 개신교단이 정부와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보아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는 “한국교회를 방역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관리하며 명령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교회를 지역사회 방역의 주체로 세우기 위해 더 가까이 대화하고, 과학적 예방 정보를 나누며 공조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정부가 개신교단 목사 앞에 엎드려서 간신배처럼 두 손 싹싹 빌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리고는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에서는 지난 26일 성명을 통해 “정부가 교회를 상대로 예배드리는 것을 막는 심각하고도 중차대한 행위”라며 “정부가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게 하는 조치는 부당하며, 심각한 종교탄압”이라고 억지 주장을 펼쳤다. 개신교 교인들의 목숨을 지켜주기 위한 정부의 방침에 반발하고 따르지 않겠다니 억지 치고는 막가파 억지이다.
 우리나라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종교의 자유는 종교가 국가의 법을 어기고 정부 위에 군림하라는 의미가 아니고 국민 한 사람 한사람에게 종교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의미다. 이런 사태의 원인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지대한 공적을 세운 신천지 예수교와 함께 개신교에도 책임이 있다. 정부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방역전략은 순조롭게 잘 진행시켰으나 예상치 못했던 신천지 예수교 교인들의 집단적인 기습공격에 힘없이 무너져 내린 것이 그 원인이다. 우리국민이 만든 영화인 기생충의 아카데미상에 열광할 때 우리 사회 내부에 이렇게 심각한 문제가 잠복해 나라를 뒤흔들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신천지 예수교는 우리나라 개신교의 한 분파로 개신교에서 분리 독립되었으나 그 줄기는 같다.

 종교는 영혼 없는 세계에서 영혼을 갈구하는 인간의 한숨이며 어려운 현실과 삶의 고통을 환각으로 회피하려는 마약과 같은 현상이다. 현실적 희망이 좌절당한 최하층 서민들의 절망을 내세워 천국과 영생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종교지도자를 무차별 맹신적으로 따르게 되는 인간심리의 작용인 것이다. 예배라는 이름하에 벌어지는 교인들의 광신적 통성기도는 불신사회에 대한 절규요 신음이다. 개인의 욕구불만을 해결하기 위한 집단최면에 빠져버린 이성적 판단의 상실이다. 인간의 본질적 욕구를 신으로 대상화하여 만족시키려는 정신적 반발이다. 원시 기독교는 나름대로 개혁성과 소박성이 있었다. 그것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 카이사의 것은 카이사 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라고.” 부르짖은 예수의 강력한 메시지가 무슨 의미인지 개신교도들과  교회지도자는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의 그런 부르짖음은 지상의 부와 권세를 철저히 부정하고 내세의 영적인 부와 권세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신교는 한마디로 무당의 푸닥거리인 기복종교로 변질 되었다. 현재의 개신교는 예수의 가르침과 반대로 지상의 영광과 함께 내세의 부와 권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개신교는 바울사도를 변화시켰던 성령의 임함이 아니라 세속의 부와 권세를 간구하는 무당의 신들림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 결과로 세속의 부와 권력을 추구하고 축복하며 나아가 이와 결탁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개신교의 존재적, 교리적 주체인 루터의 종교개혁을 더럽히는 일이며 종교개혁의 후퇴이고 유대교로의 퇴행이다. 개신교단과 신천지 예수교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다만 신천지 예수교는 좀 더 노골적일 뿐이다. 신천지 예수교는 구약성서를 빙자하여 유대교의 12지파를 본떠 조직을 만들고, 여호와 하나님의 세속 통치를 빙자하여 세속의 정치권과 결탁하고 있는 것이다.
 개신교 자체도 비 개혁적이고 비 성서적이면서도 지향점이 같은 신천지 예수교를 왜 이단이라고 비난하는지 모르겠다. 대구경북 지역사회는 거의 신천지 예수교와 유착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빙자하여 샤머니즘적 무당 푸닥거리를 함으로써 집단최면 속에서 신들림 현상을 경험하는 것을 성령의 작용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독버섯처럼 번진 신천지 예수교 문제는 우리사회 개신교의 치부를 드러냄과 동시에 대다수의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 알 수 있는 기고만장한 모습이다. 개신교는 터무니없는 억지주장으로 횡설수설 하지 말고 개신교인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보존할 수 있도록 정부의 방침에 따라야 할 것이다. 종교의 자유도 국가와 국민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개신교의 여호와 하나님은 개신교 교회 안에만 칩거하는 붙박이 신이 아니고 우주만물 어디에도 작용하며 깃들어있는 전지전능한 신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니 예배하는 곳이 반드시 교회여야 한다는 주장은 무지한 원시시대에나 납득이 가능한 억지주장일 뿐이다. 성서에서 말했듯이 두 사람 이상 모이면 이 세상 어디에서 예배해도 개신교 신인 여호와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으신다는 점이다.

 개신교 목사는 교인들을 교회라는 장소에 모이게 해서 마치 로봇처럼 조종하려는 습성을 버려야 한다. 개신교는 예수님의 말씀에 무지했고 오해했고 왜곡시켰다. 이를 회개해야 한다. 개신교 지도자는 이제 가던 길을 멈추고 잘못된 길을 돌이켜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회개이며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목사는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도 귀한 줄 알아야 하며 예배라는 명목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 교인들을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개신교 자신이 이 교회의 제사장이며, 왕이며, 선지자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주의 종 운운하면서 여자 교인들에게, 내 성도임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빤스를 내리라는 추악한 명령까지 내리는 목사를 내버려두는 개신교단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개신교를 대표하는 이런 목사가 자기들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지극히 무례하게도 “까불지 마! 나한테 죽어!” 라는 말을 해도 ‘할레루야 아멘’을 외치는 개신교인들의 신앙심이란 도대체 뭔가? 개신교 목사가 개신교인의 숭배신인 여호와 하나님께 막말을 해도 될 정도로 대단한 존재인가? 사이비 교주도 이런 용어는 쓰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개신교는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엉뚱한 길로 가고 있음은 틀림없다.
 개신교 목사는 인간의 목숨은 천하보다도 귀중하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명심하고 교인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정부의 방침을 따르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고성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