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종 암
칼럼니스트
 글을 쓴다는 것도 지겹다. 혼을 불살라 쓴 글에 넙죽넙죽 받아먹고는 새경도 내지 않아도 된다는 무식한 소인배들의 유체이탈화법에 질렸는지도 모른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활인으로서 내겐 직업에 속한다. 흔히들 내게 "글을 잘 쓴다" 혹은 빗대서 "나는 글을 쓰는 재주가 없다" 는 말을 들을 때 마음 한 편에서는 상대방의 불예의나 무식 또는 무지에 의한 씁쓸함이 묻어난다. 누구나 타고난 재주는 없다고 본다. 도박이나 계집질 등의 잡기에 능하지 않아야 하고, 세속적 부를 멀리하고 영혼이 맑은 선비 기질이 다분해야만 가능하다. 뭇 군상들이 잡기에 시간을 허비하고 부정한 세속적 부를 쫒을 때 다양한 부문에 있어 수 억 원을 바친 학문 탐구와 폭넓은 독서란 바탕 위에 사고하는 힘, 그리고 낙서로부터 출발한 필력이 촌철살인까지 온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자정께 내 홈페이지에 이렇게 썼다. 소위 김영란법 대상에서 국회의원들은 슬그머니 뺐다는 소식에 "국개원 당신들은 인간으로서의 원초적인 양심까지 판 '비리공화국의 주범'이면서 설레발 까지 마라. 그대들이 하는 짓은 로망이냐? 낯짝을 복면한 지구상 제일 지저분한 모리배들은 정치신진세력이 진입하려면 가로 막으면서 권력을 세습하려 든다. 그대들이 죽어야 대한민국이 산다. 독설에 반박코자 하는 국개원은 맞장 한 번 뜨자. 내, 당신들이 볼 땐 무지랭이 같지만 당당히 나서겠다. 가능하면 국민간의 분열을 획책하면서 배지를 지탱하는 이면 좋겠다." 고 자신 있게 일갈했다.
진정 맞장 설전을 기다린다. 그리고 줄곧 검사로만 재직했던 호형호제 사이인 지인도 만났다. 인간관계가 먼저인 탓에 만났으나 내가 응징해야 할 부도덕한 군상에 대한 정의의 칼날을 들이대기 위함도 있었다. 전공인 법학에서 리걸 마인드(legal mind. 법적 사고력)는 있으나 오래된 탓에 법률용어조차 기억에서 멀어질 때도 있다.

 여기에다 고향에서는 '원님 재선거'가 있을 게 다분하다. 형사상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기에 2심까지 거쳤어도, 상고된 상태에서는 최종심까지는 현 원님이 현역임은 사실로 인정하는 게 예의다. 이유가 어떻든 간에 당사자도 힘들 것이다. 이러한 때 지역정가의 소문은 무성하다. 돈 놓고 또 헛발질할 공천일 게 다분한데도 벌써 12~16명이 출마한다는 설에다 "내 차례다." 고 깐죽이는 이도 있고, 그 자리가 어떤 이유로든 탐이 나나 표리부동한 자세로 숱한 시간을 실없이 간보기에 급급해 유권자들을 식상하게 하는 이도 있어 보인다. 만에 하나 재선거 시 진정 지역민을 위하고 일신의 영달을 위한다면 과감해야 임도 따고, 뽕도 따지 않을까? 능력보다는 돈 잔치에 저널의 기본도 모르는 일부 지역 기레기와 토호세력도 한몫 잡겠다. 그러나 인생은 두 번 다시 태어나지 못하는 한 판이다. 자중하는 게 올바른 삶이 아닐까. 쓰기 싫은 글 여기쯤에서 멈추고, 10년 전 쓴 비망록에서 발췌한 에세이를 옮기면서 끝낸다(2015.3.5).

 아프리카 학생과의 대화

 봄이 오는 길목에 선 2월의 마지막 초저녁. 아프리카의 콩고에서 왔다는 젊은이가 불쑥 내 사무실을 방문했다. 직원들은 다 퇴근하고 혼자 있었다. 외국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나로서는 어렵다. 남매(32. 23세)인 이들은 내가 손수 탄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짧은 영어로 30여 분간 대화를 가진 적이 있다. 서로가 상대국어에 능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에 의하면 콩고가 있고, 콩고공화국이 있단다. 자신들은 콩고에서 왔다고 한다. 두 국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대화를 나누니 이들은 엘리트 청년들이었다. 나는 먼저 그 말을 되받아 "이제는 콩고나 대한민국 등으로 나누는 게 의미가 없다. 세계는 하나다" 라는 평소시의 주장을 펼쳤다. 이 친구는 영어로 나에게 "그런데 한국은 아프리카를 너무 모른다" 고 응수하는 것이었다. 가슴이 뜨끔했다.

 이게 우리나라가 여태까지 펼친 대미, 서구일변도의 외교정책의 실책이었음이 부끄러웠다. 사실 평소 시 에디오피아를 돕자는 주의다. 이유인즉, 이들은 한국전쟁 때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참전하여 혈맹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은혜를 잊고 있다. 이 나라는 내전 등으로 힘들게 살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들 국가에 대한 은혜를 갚고 있는지 깊이 반성할 문제임에 분명하다. 그들은 자원부국들이다. 이들 국가들을 안아야 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 우리 국민들은 배가 따스하니 보릿고개 시절을 잊고 그 은혜를 망각하고 있다. 한국전쟁 때 우리를 도왔던 타이나 필리핀 등 후진국에 가서는 그들을 짓밟기까지 하는 몹쓸 국민도 있다. 세계화 속 일원으로서는 결격이 아닐 수 없다. 이들 남매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난민을 돕자고 파견되었다는 것이다. 대견스럽다.

 그 여동생은 "예쁘다" 는 말에 너무나 좋아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같다. 흔히들 어느 책 제목처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고 했거늘. 그리고 여느 한국의 아가씨처럼 손수 내민 커피이지만 꾸밈없이 맛있게 마셨다. 이 모습에 지구상의 삶의 모습은 어느 곳이든 대동소이함을 느꼈다.
두 남매가 이역만리 한국에 같이 왔으니 "당신들은 부르주아죠?" 조크를 던졌다. 굳이 따진다면 그 빈국에서 이역만리 한국에 파견될 정도이면 부르주아에 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 조크에 크게 웃음으로 답했다. 알량한 성금을 기탁하면서 그 이방인 남매와 악수를 나누며 다시 또 만나자고 는 헤어졌다. 세계는 하나다. 지구도 하나다. 그들과 우리는 이 지구촌의 일원이다. 그들도 우리의 조카이고 동생일 수 있다. 그들의 안녕을 빈다. -2005.03.0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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