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절 음식문화와 제사문화는 시대에 알맞게 과감하게 바뀌어야 한다. )

남 덕 현
고성읍 동외로
 요즘 우리지역사회는 명절문화가 없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명절축제라도 열었으면 가족들과 함께 명절을 보람 있게 보내련만 그것조차 없으니 대다수 남자들은 명절에 한가한 편이다. 오랜만에 고향 친구와 만나 늦게까지 술 마시는 경우가 많고, 그렇지 않으면 고스톱을 치기도 하고 주로 TV를 보거나 잠을 잔다. 자기 조상 제사를 지내는 건데도 자신은 일을 하지 않고 아내가 일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 큰 문제다. 특히나 명절이 가까워오면 고향으로 가는 귀성차량으로 도로는 몸살을 앓는다. 자식들이 성장하여 고향의 노부모와 친지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자식 먹이려고 명절 음식준비에 허리가 휘어져버린 아내나 어머님의 노고를 알아주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디지털 미디어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부모 자식 간에 또는 친지들 사이에 정보 공유가 어려워 명절을 통해서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지만 디지털 미디어와 스마트 폰 문화가 발달한 요즘 시대에는 명절날 의 만남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오히려 아내와 어머님을 힘들게 하는 일이 될 뿐이다. TV에서는 연예인들이 한복을 입고 명절다운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일반국민들은 한복을 거의 입지 않고 일상복으로 명절을 지낸다.
 이제 그런 명절 옷차림 문화는 민속박물관으로 갈 때가 되었다. 현 시대에 맞는 새로운 명절문화를 찾아서 그것을 일반화 시켜야 한다. 조선시대의 명절문화를 현 시대까지 답습하는 것은 문화의 퇴보를 뜻한다. 해마다 돌아오는 명절. 명절하면 고향, 제사, 교통대란, 명절 증후군, 가족 간의 불화와 같은 명절문화가 생각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문화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제사의 기원은 토테미즘이나 샤머니즘과 같은 원시신앙에서 비롯되었다. 자연재해, 질병, 맹수들의 공격 같은 인간집단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재앙을 막기 위해 하늘이나 땅, 강이나 바다, 오래된 나무, 높은 산, 조상 등에 절차를 갖추어 빌었던 것에서 유래된다. 우리나라에서 제사문화는 유교의식에 기반을 둔 '조상 제사'가 중심이다. 신의 존재유무, 종교를 떠나 돌아가신 부모님을 추모하는 문화가 가족들이 만나 제사라는 형식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명절문화다. 조상을 숭배하고 조상에게 감사한다는 제사형식은 매우 좋은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제사는 양반중심 문화에서 발전하였다. 명절 음식과 제사문화를 누린다는 것은 평민이나 노비, 천민, 상민들에게는 불가능한 실정이었다. 제사는 자식이 있는 집안이라면 모든 가정에서 당연히 지내는 것이 자식 된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상차리기를 보면 이해가 안 되는 현상이 있다. ‘첫째 줄에 반서갱동(飯西羹東)이요, 둘째 줄에 어동육서(魚東肉西)요, 셋째 줄에는 탕 종류를, 넷째 줄에는 좌포우혜(左脯右醯), 다섯째 줄의 과일은 홍동백서(紅東白西)의 원칙이 있다. 이런 원칙은 누가 만든 것인가? 집도 없애버리고 양반 문간채에 기거하는 노비나 집이라고 있어도 기어들어가고 기어 나오는 그런 움막에서 사는 평민들은 이런 제사형식을 지켜서 제사를 지낼 수 있었을까? 조선 초기 양반과 중인이 각각 10%, 평민과 노비가 90%였다. 양반만이 누리는 특권. 특히 양반의 생활양식을 꿈도 꾸지 못하던 제사문화가 서민들에게 까지 확산된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 초기만 해도 성을 가진 사람은 15%에 불과했다. 천민의 한을 풀기 위해 그리고 자식들에게 천민들의 비참한 삶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평민이나 천민들의 소망이 제사를 통해 동일시하고 싶은 심리현상이 이러한 문화양식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루가 다르게 유행을 만드는 자본이 제사문화를 보존시키는 데는 그만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8백여 년 전 중국에서 지내던 제사 양식을 왜 첨단과학시대에 우리국민의 가정에서 그대로 답습하는 것일까? 보다 더 양반의 흉내를 내야했던 간절한 소망이 이런 문화를 만들게 된 것이 아닐까?
 제사를 지내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오랜만에 만나 조상들의 은덕을 기리고 형제간의 우애를 나눌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면 안 될까? 여성들에게 명절증후군을 만들어 주는 제사문화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명절 문화가 유교 화 되면서 조선 후기에 와서는 마치 명절을 쇠는 것이 유교식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다. 본래 우리의 명절(설)문화는 친지와 이웃들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고 덕담을 들으며 한 해를 여는 것이 풍습이다. 제사 때문에 문제가 많은 명절, 명절의 본질도 모르고 제사 때문에 피하기만 한다면 명절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우리 문화에서는 설에 동제의 형식으로 마을신에 마을 전체가 발원하고 마을을 돌며 첫 인사를 나누는 것이 설 풍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설 연휴가 끝나면서 새삼 명절 문화의 변화를 절감한다. ‘혼설족’(혼자 설을 보내는 사람)이 이제 낯설지 않고 휴식을 위해 ‘설캉스’(설과 바캉스의 합성어)를 즐기는 문화도 이젠 보편화 되었다. 이런 변화에 따라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역시 상혼이다. 설 연휴 홀로 항공권을 예약해 여행을 떠나는 비중도 절반을 넘어섰다. 집 앞 편의점만 가도 혼설 족 들을 위한 간편식 떡국들이 즐비하다. 각양각색의 나물 반찬과 고기 전을 구비한 명절 도시락도 많다. 가족과 조상의 의미를 되새기며 한 해의 복을 기원하는 날이 명절이지만 그 의미는 이미 퇴색한 지 오래다. 조상 덕 본 사람은 해외여행 가고, 조상 덕 못 본 사람만 남아 차례를 지낸다는 우스갯소리도 이제 옛말이 되었다. 우리의 명절 문화 자체가 과거 농경문화를 반영하는 풍속이라 하지만 그래도 가족이 행복의 첫발이라는 진리엔 변함이 없다. 각박한 경쟁 사회, 가족의 의미는 해체되고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가족·친지 두런두런 모여 덕담과 세뱃돈 나누던 모습도 점차 추억으로 사라질까 걱정이다. 시부모 댁에 모인 가족들을 뒤로 한 채 부엌에서 명절 음식을 만드는 여성들. '명절' 하면 떠오르는 장면들이다. 명절마다 고정된 여성의 역할을 거부하고 나선 이들이 있다. 하루 종일 앞치마를 두른 채 차례 상에 올릴 전을 부치고, 명절만 지내고 나면 손목과 어깨, 허리가 쑤셔 병원을 찾는 어머니와 며느리, 그리고 딸. 명절 하면 떠올리는 여성의 모습이다. 원치 않는 고된 노동과 스트레스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명절을 거부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개개인이 아닌 어머니나 며느리 혹은 딸로만 규정되는 명절을 거부한 이들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가부장제를 거부하면서 살아갈 것인지, 혹은 지금까지의 명절과 오늘의 명절이 어떻게 다른 느낌인지를 밖으로 표출하는 현상처럼 보인다. 모두가 행복해야 할 명절. 그동안 누군가의 희생이 가려져 왔던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흐르면서 신조어가 생겨나고 안 쓰는 언어는 사라지게 되면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휘들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문화가 바뀌어 간다. 문화라는 것이 많은 사람이 함께 누리면 그것이 문화로 자리 잡는 것이다. 구석기 시대에 돌도끼를 썼다고 해서 오늘날도 돌도끼를 쓰는 사람은 없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고 문화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명절문화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는 시댁문화였다면 이제는 바뀌어야한다. 양가 부모를 똑같이 방문해야 하고, 기존에는 명절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바뀌고 있다. 외식문화로 바뀌거나 여행문화로 바뀌었다. 수년 전부터 역 귀성문화들이 많이 생겨나다 못해 이제는 명절에 모이는 것이 불편하니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은 편한 날 따로 찾아뵙는 것으로 하고, 명절 연휴에는 더욱 알차게 보내려는 새로운 문화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또한 홀로 명절을 보내는 혼 족 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현대는 사람을 만나서 서로 신경을 쓰고 비위를 맞추고, 불편한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부모를 공경하고 존경하는 모습은 사라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에 들어 우리의 전통 명절 문화가 많이 바뀌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전통 명절 문화는 한 해 한 해가 다르게 변화를 겪고 있다. 그렇지만 “꼭 시댁을 먼저가야 하나?”, “처가에 먼저 가면 안 돼?” 등 명절을 앞두고 빚어지는 갈등, 또 명절증후군이라는 말로 명절 후유증 문제가 불거져 이래저래 명절은 편치가 않은 전통이 돼버린 시대이다. 그러다보니 차례를 안 지내는 집도 많아지고 있다. 저 출산 문제가 일반화 되고 핵가족 시대가 발전되면 우리의 명절 제사문화와 명절 음식문화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기 전에 누구나 명절이 즐겁고 재미있는 새로운 명절문화 개발이 시급하다. 지금이라도 명절 음식과 명절 제사는 매우 과감하고 간소하게 바뀌어져야 한다. 제사는 밥과 국 그리고 과일 몇 개와  생선 한 마리면 충분하지 않을까. 가족과 함께 시가와 처가를 방문하여 인사를 드리고 연휴에는 관광지에 여행을 간다든지 축제 행사나 박물관, 기념관, 영화관 등을 관람 하는 것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저작권자 © 고성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