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시사신문
> 오피니언 > 칼럼
고승[高僧]의 인생[人生]에 대한 이야기
고성시사신문  |  webmaster@gsci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10.04  10:17:09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남 덕 현
고성읍 동외로
 가을로 접어드는 시월의 첫날이다. 올 가을은 유난히 태풍과 비바람이 많다. 요즘 사람들은 젊은이 늙은이 구분 없이 건강에 매우 집착한다. 그것은 질병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에서 멀어지고 싶기 때문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첫인사를 “건강이 좋으십니다! 건강하십시오,” 하면 좋아한다. 심지어는 부모 자식 간에도 그렇다. 건강에 유익하다면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한다. 건강식품을 먹는다든지, 등산을 한다든지, 다이어트를 한다든지---, 물론 하루살이 인생으로 기약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질병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살아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나이가 노후에 접어드니, 인간은 생사(生死)의 번뇌(煩惱)속에서 5욕[五欲: 색욕(色欲), 성욕(聲欲), 향욕(香欲), 미욕(味欲), 촉욕(觸欲)]에 미혹되어 탐욕과 색신(色身:인간의 육신)에 집착하므로 온갖 죄업(罪業)만 짓다가 죽어가는 존재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지난번에서 인간의 생사문제와 해탈(解脫, moksha)에 대해서 이 시대의 고매(高邁)한 스승인 종범 스님의 견해를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인생(人生)에 대한 재미있고도 의미심장한 두 가지의 비유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으니 독자들의 흥미로운 관심으로 삶에 보탬이 되기를 기대한다.
 인간이란 정말 오묘한 존재다. 불가사의한 면이 참으로 많다. 아는듯하면서도 전혀 모를 것 같은 것이 인간이고, 모르는 것 같으면서 또한 아는 것 같은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생활면에 있어서나 활동 면에 있어서나 그 방식과 양태가 너무나 다양해서 어떤 때는 낙천적인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때는 비관적인 생각이 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로는 어떠한 인생을 보고 성공하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하다가 또 금방 실패한 인생처럼 보여 질 때도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다. 때문에 다른 면에 있어서는 자신을 가진다 하더라도 정말로 인간 생활 그 자체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실패한 인생인지 성공한 인생인지 여기에 대해서는 확신할 만한 사람이 흔치 않다. 인생의 비유를 설한 고전이 많이 있다. 그 가운데서도 잊혀 지지 않고 감명이 아주 깊은 인생에 대한 오묘한 말씀을 펼쳐보고자 한다. 그것은 한평생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이 마치 불 속에서 놀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동자와 같다는 비유의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하나의 큰 집이 있었다. 그런데 이 집은 예부터 내려오는 아주 커다란 집이라 어린아이들이 보기에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런 집이었다. 아이들은 본래부터 이 집에 살고 그 집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항상 집안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집에서 나온 한 어른이 그 집을 바라보자 불행스럽게도 불에 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불타는 집을 보고 이 어른은 생각에 잠겼다. 저 불이 타도록 내버려 두면 필경 집은 불에 타 재가 될 것이고 그 집안에서 노는 어린아이들은 무참히 희생을 당할 것이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어른은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 어린아이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이 집이 지금 불에 타고 있으니까 빨리 밖으로 나가자!” 그러나 아이들은 그 불이 방안에까지 들어오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어른은 밖으로 나가면 좋은 장난감이 있으니까 밖으로 나가자고 말했다. 아이들은 집안에 있는 것보다 더 좋은 장난감을 얻기 위해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해서 그 아이들은 불타는 집에서 무사히 구제가 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진리가 인간을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비유적인 이야기이다. 여기서 불타는 집은 이 세상이며 우리의 육체다. 그리고 아이들은 바로 우리의 정신, 즉 우리의 영혼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 몸은 지금 점점 늙어 가고 있고 쇠약해져 가고 있다. 우리의 머리가 희어지고 척추가 굽어 가고 하는 것은 바로 그 불타고 있는 집이 불 때문에 서까래가 내려앉고 기둥이 기울고 대들보가 휘어지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그런데 우리는 이 속에서 마냥 오래 살기만을 바랄 뿐 영혼의 자유와 마음의 해탈(解脫, moksha)을 위해서 어떠한 사상과 소신을 가지고 인생을 멋있게 장식하고자 하는 각오나 노력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불 속에 있는 어린아이들과 같이 안타까운 현실인 것이다.
 그럼 이번에는 보다 구체적이고 재미있는 비유 한 가지를 더 들어 보도록 하겠다. 한 사나이가 있었는데, 이 사나이는 훤히 펼쳐진 벌판을 어슬렁어슬렁 태연하게 걷고 있었다. 이때 그 사나이의 뒤에서는 험악하게 생긴 코끼리가 달려왔다. 이 사나이는 코끼리를 피하기 위해서 마구 달아나기 시작했다. 한참 달아나다 보니까 우물이 하나 있어서 그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마침 우물 속에는 칡넝쿨이 드리워져 있어서 그것을 타고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조금 내려가다 보니 그 밑바닥에는 무서운 독사들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올라가려고 했지만 아직도 코끼리가 돌아가지 않고 성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사나이는 밑바닥으로 내려갈 수도 없고 위로 올라갈 수도 없어서 중간에 매달려 있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그 우물의 벽 사방에서는 조그마한 뱀들이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서 이 사람을 깨물려고 하는 것이었다. 조금 있자니 자기가 매달려 있는 칡넝쿨을 하얀 쥐 한 마리와 검은 쥐 한 마리가 와서 갉아 대기 시작했다. 정말로 큰일이 났다. 위로 올라가자니 사나운 코끼리가 버티고 있고 밑으로 내려가자니 무서운 독사가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방법은 그대로 매달려 있는 것뿐인데, 하얀 쥐와 검은 쥐가 칡넝쿨을 갉아 대기 시작하니 그 심정이 어떠할까? 그런데 하나 재미있는 것은 어디선가 꿀벌 다섯 마리가 날아와 왔다 갔다 하면서 꿀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 주는 것이다. 이 사나이는 이렇게 위급한 지경에 있으면서도 그 꿀 한 방울 한 방울에 재미를 붙여서 왜 더 많은 꿀을 떨어뜨려 주지 않나 생각하면서 그 꿀을 먹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을 정말 아주 재미있게 비유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사나이는 바로 우리 인간을 말하는 것이요, 그 벌판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을 말하는 것이며, 뒤에서 따라오는 코끼리는 무상하게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우물은 우리의 몸을 말하는 것이요, 밑바닥에 있는 독사는 마지막의 죽음을 뜻한다. 또한 칡넝쿨은 생명의 한계를 말하며, 그것은 며칠이 될 수도 있고 몇 십 년이 될 수도 있지만, 결국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얀 쥐는 낮을 말하는 것이요, 검은 쥐는 밤을 가리킨다. 밤낮이 자꾸자꾸 흘러가기 때문에 생명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우물의 벽 사방에서 작은 뱀들이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것은 가끔씩 우리 몸이 아픈 것을 뜻한다. 끝으로 다섯 마리의 꿀벌은 인간의 다섯 가지 욕망을 가리키며, 다섯 가지 욕망이란 재물, 이성(異性), 식사, 명예, 편안함을 말한다. 그 벌들이 떨어뜨려 주는 꿀을 먹는다는 것은 인간이 다섯 가지 욕망에 정신이 팔려 죽음이 닥쳐오고 있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이 비유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인간에게 결과적으로 찾아오는 것은 죽음이다. 자기가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간에 빨리빨리 지나가는 세월에 밀려서 마침내 죽음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우리의 암울한 현실인 것이다. 그런데 이 비유를 긍정적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 코끼리도 물리치고 독사의 아가리도 피해서 완전한 자유인이 되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끝맺는다. 그때 밖에서 큰 불이 일어나 사람을 위협하던 코끼리를 비롯한 독사, 용, 쥐, 사람, 벌, 등나무, 들을 모두 다 태워버렸다. 한바탕 꿈이었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몇 방울의 꿀맛에 도취되고 집착해서 삶의 실상(實相)을 잊고 사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실존(實存)하는 인간의 한계상황(限界狀況)을 적나라(赤裸裸)하게 나타내고 있다. 모든 생각은 사견(邪見)에 위해서 나타나는 것이고 집착(執着)도, 코끼리도, 그 넓은 들판도, 나무뿌리도, 죽음도, 사견(邪見)일 뿐이다. 인생이란 한바탕 꿈일 뿐이며 꿈에서 깨어나서, 꿈이 실존이 아님을 자각할 때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열반(涅槃, nirvāṇa)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젊은이들도 필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아야 할 것이다. 인생은 욕심과 오만(傲慢)과 자만(自慢) 으로 보내기에는 분명히 너무나 짧고 덧없다.

고성시사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대전통영간고속도로 견인 중이던 36인승 버스 화재
2
고성거제통영농협 쌀 가공공장 준공식 및 전국농민 노래자랑 개최
3
제42회 소가야문화제 및 제47회 군민체육대회 개최
4
고성군, 내년부터 농업인 월급제 확대 추진
5
고성군, 수소 경제로 지역경제 활성화 첫발
6
새고성라이온스클럽 불우이웃돕기 성금전달 및 이웃사랑나눔 김장배추식재
7
고성군, 도시재생 전략계획 및 활성화 용역 중간보고회 개최
8
산림조합 국산목재로 만든 사물함 지역아동센터에 기증
9
고성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 멘토 엄마에게 배우는 한식 조리반 운영
10
함께 만드는 복지 고성! 함께 누리는 복지 고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남 고성군 고성읍 송학로 9(교사리 387-2)  |  대표전화 : 055-673-3115  |  등록번호 : 경남 다 01460  |  발행·편집인 : 김윤호
Copyright © 2014 고성시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gsc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