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평등의 오해와 진실 )

남 덕 현
고성읍 동외로
 요즘 여성들은 사회 곳곳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성의 평등을 주장하며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점령군이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며 당당하게 진군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간혹 우둔한 남성들이 성 평등 강의랍시고 공허한 말로 여성들을 현혹하고는 그들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꼬리를 흔들기도 한다.
 양성평등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여성의 인격존중이다. 그리고 가정에서의 역할분담이다. 서로 겹치는 일을 하면 논쟁이 일어나기 쉽다. 그러므로 여성들끼리만 양성평등 한다고 백날 외쳐봐야 공염불에 불과하다. 남성과 여성이 다함께 모여서 양성평등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하는 것이 정상이다. 물론 이런 표현을 하면 필자를 꼰대라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성의 평등은 성의 해방이 아니다. 성의 기준이 없어지고 성이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가 변해도 정말 많이 변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주부들은 양성평등을 잘 못 이해하고 그것이 왜곡으로 가는 것이 문제다. 변화는 무조건 옳은 것이 아니라, 옳은 변화가 옳은 것이고, 잘못된 변화는 그릇된 것이다. 지금 변하고 있는 것들은 옳은 변화인건지, 그릇된 변화인건지 생각해봐야 한다. 성의 금기가 깨지고, 성 평등이 왔다고 치자. 물론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결과는? 가정 안에서는? 학교와 사회 안에서는? 직장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성 정체성이 사라지고 성 역할의 혼란이 넘쳐서 뒤죽박죽이 되고 있다. 남성이 여성 목소리를 내고 여성이 남성 목소리로 아우성을 치고 있다. 성의 평등이 왔으니 해방이다.
 그럴까? 오늘날 성의 혼란이 급증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기준의 붕괴 때문이다. 기준이 무너지니까 기준을 '나의 생각'으로 돌리고 있는 거다. 그래서 '내 기준' 에서 괜찮다 싶은 것들은 '옳다.' 라고 여기고 행동하게 되는 거다. 기준이 무너진 사회. 내가 기준이 되는 사회.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시대이다. 성 평등의 실현은 사회문화적으로 한 성이 다른 성을 차별 또는 억압하고 있는 상황에서, 양성평등은 여성과 남성 간 성 차이를 인정하고 성 불평등으로부터 야기된 차별과 억압을 극복해야 실현된다. 그러나 이런 이론적 바탕은 매우 타당하나 현실생활로 들어가면 이론과 실제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왜냐하면 성 문제는 역사적 관습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양성평등을 너무 급격하게 주장하면 사회적 괴리가 발생하며 그 후유증은 심각한 상처를 남긴다. 특히 여성들은 양성평등을 주장하기 전에 윤리적 교양부터 쌓아야 한다. 양성평등을 마치 노동자들이 처우개선을 목적으로 파업하듯이 주장하고 현실적인 가정생활에 적용하려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며 매우 곤란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세상만물의 구성은 양이 있고 음이 있다. 하늘이 있고 땅이 있다. 수컷이 있으면 암컷이 있다. 모두가 소중하며 제각각의 역할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제각각의 역할을 독점하려한다면 그건 자연의 순리를 어기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습성은 독점하려는 본능이 있다.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지 않는다면 자연생태계를 역류하는 일이다. 남자와 여자는 생리적, 심리적 ,태생적으로 그 습성과 특성이 매우 다르다. 즉 염색체 자체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성평등이란 이름하에 남자와 여자를 동일선상에 놓으려는 시도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요즘 시대에 남편을 기죽이며 남편 위에 군림하려는 대다수 주부들의 모습이 그 예이다. 가정에서 마치 여왕처럼 군림하거나 남편을 하인이나 머슴정도로 취급하는 주부들이 점차적으로 늘어간다는 현실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히 받아들이며 그것이야말로 아내를 극진히 사랑하는 행위라고 자위하는 못난 남자들의 모습은 쳐다보기조차 민망하다. 물론 이런 현상은 여성들이 양성평등이란 구호를 현실생활에 잘못 적용시킨 영향이기도 하다. 도대체 주부들이 밤낮으로 양성평등을 부르짖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으로 얻어지는 이익은 무엇인가? 남편과 맞장 뜨고 같이 놀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남편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여성 우위의 승리의 깃발을 휘날린다는 것인가? 양성평등이란 어휘가 사회에 등장하고부터 남편의 말은 제대로 듣지도 않은 채 비난, 모욕, 무시하며 독한 말을 퍼부어야 자신이 높아 보이는 것으로 착각하는 여성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것은 여성들이 자신을 한없이 경박스럽고 비천한 존재로 만드는 일이다. 대놓고 화내는 것이 대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화의 목적은 상대방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데 있는 것이다. 남편의 말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것이 결국 주부 자신을 높이는 처신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잘못된 속설이 판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상대방보다 더 큰 소리로, 더 독한 말을 뿜어내야만 다툼에서 이기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남편과 갈등이 있을 때마다 소리 높여 독설을 발사하는 주부도 적지 않다. 다툼에서 이기는 것이 인생 최고의 목표인 양 경쟁적으로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말을 퍼붓는다. 얼마 지나면 그때 왜 다투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나는 일이 대부분인데도 목숨 걸고 치열하게 다툰다. 마치 두 번 다시 안 볼 사람인 것처럼 군다. 사실 대부분은 다투고 난 뒤에도 계속 부부관계로 지내야 하는데도 말이다. 부정적인 첫마디로 시작해서 비난, 모욕, 자기변호, 도피 등의 위험 요인을 반복하는 것이 갈등 위험을 높이는 부부의 대화 방식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반면 행복한 주부는 평상 시 남편의 단점보다 장점을 중시하려고 노력하며, 갈등이 생겨도 회복시도를 잘 한다. 부부 사이에 긍정적인 말이 부정적인 말보다 훨씬 많아야 한다. 주부가 남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은 어떤 것이든 상처가 된다. 마음의 상처는 치유가 힘 든다. 세치 밖에 안 되는 혀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으므로 혀의 힘은 막강하다. 가정불화의 원인은 혀를 잘 못 놀려서 그렇다. 주부는 항상 남편의 기를 살려 주는 말을 습관화해야 한다. 날마다 연습하고 훈련하고 공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부는 남편을 타인과 비교 하지 말아야 한다. 남편의 단점을 들추지 말아야 한다. 지난 일을 들추려 하지 말아야 한다. 칭찬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남편을 나의 고정 관념과 감정에 가두려 하지 말아야 한다.

 부부의 갈등원인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아내 탓' 또는 '남편 탓'을 하는 거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남 탓만 하다 보니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만만 커지는 것이다 사람 사는데 정답은 없다. 내 말만 맞고, 상대방의 말은 다 틀렸다는 식의 행동은 싸움을 더 악화시키고 관계를 좋지 않게 만들뿐이다. 부부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생활패턴이나 가치관 등도 분명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사소한 말들도 때론 상처가 될 수 있다. 부부사이의 갈등은 연령대 별로 다양하다. 20대는 생활습관과 친인척문제로 많이 다투고 30대~50대는 돈 문제, 40대~60대는 자녀문제로 주로 다툰다고 한다. 이런 부부갈등에 불과 기름 역할을 하는 것이 양성평등의 주장이다. 부부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성격차이, 그 다음은 돈, 자녀문제, 생활습관, 의사소통 문제로 대부분 사소한 것에서  발생한다. 요즘같이 대부분 맞벌이 부부의 경우에는 가사분담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아 잔소리를 하게 되며 다투게 된다. 주부는 대화를 통해서 사소한 말들로 남편과 다투지 않도록 평소에도 노력해야 하고 불필요한 잔소리를 그쳐야 한다.
 주부의 말 한마디에 의해 “가정이 평화로우냐? 혹은 전쟁이냐?”를 판가름하게 된다. 주부의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잔소리는 남편을 피곤하게 만든다. 특히나 주부들은 나이가 많아질수록 잔소리의 강도는 더욱 높아만 가는데 그것은 노화의 특징이라 그기에 대처할 뾰족한 대책이 없다.

저작권자 © 고성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