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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해(Aegean Sea) 동쪽 바닷가, 그 언덕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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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05  10: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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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암
(시사·문학)평론가, 연구인
포세이돈(Poseidon)은 바다의 신으로, 신(神) 중의 신 제우스와 질투의 여신 헤라와 함께 형제지간이다. 헤라는 제우스와 형제간이면서도 부부의 연을 맺었겠다. 트로이 전쟁(Trojan war)에서, 이들은 그리스를 후원한다. 반면, 아프로디테와 제우스의 아들인 아폴론, 그리고 아레스가 트로이에 가담하면서 전쟁은 벌어진다. 현대전에 있어, 세계 최강의 해상초계기가 미 해군의 포세이돈이다. 승무원 10명을 태우고 8000km를 갈 수 있으며, 최대 800km나 떨어진 공중과 해상의 적을 탐지할 수 있다. 세계 속, 가끔은 정의의 사도(?)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깡패국가로 군림하는 미국이 고대 그리스의 신이나 그 선조들의 이름을 차용해 세계를 누빈다.
 
《일리아스 llias》는 기원전 8세기 중엽에 쓴, 호메로스의 고대 그리스 영웅서사시다. 〈일리오스의 노래〉라는 뜻으로, 트로이의 또다른 명칭이기도 하다. 트로이 전쟁 10년 중 막바지 51일간의 전투를 그렸다. 위대하고도 장대한 이 서사시는 삶과 죽음을 노래했으며, 아킬레우스의 분노에 찬 노래이다. “노여움을 노래하라. 시(詩)의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그 저주스러운 노여움이야말로 수없이 많은 괴로움을 아카이아 군에게 주고, 또 많은 용맹스런 전사를 저승으로 보냈다.”고 분노한다. 그리스 최대의 항구가 피레우스(Pireus) 항이다. 아킬레우스 아버지의 이름과 엇비슷해, 차용한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아니다. 아테네 외곽에 있는 항구로, 페르시아전쟁 후 상업항으로 발전했다.
 
조국 트로이를 사수하다 산화한 숭고한 영웅 헥토르를 선두로 위대한 영웅들도, 무명의 전사들도 사랑하는 이들의 슬픔을 뒤로한 채 쓰러져 간 이 전쟁은, 노여움에 찬 그 외침으로 서막을 열었다.
펠레우스와 바다의 요정 테티스의 혼례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앙심을 품고 잔칫상에다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게' 라는 글귀와 함께 황금사과를 던졌겠다. 이 사과의 소유권을 두고 싸우게 된다. 이 때 목동인 트로이의 작은 왕자 파리스는, 셋 중 아프로디테를 황금사과의 주인으로 택한다.
선택된 아프로디테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를 파리스의 짝으로 선택하나, 그녀는 이미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였다. 그래도 천하의 난봉꾼을 자처하듯이 파리스는 그녀를 납치해 온다. 이로써 이 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파리스로 인해, ‘여자 때문에 발생한 전쟁’이라고들 일컫기도 한다.
부인을 빼앗긴 치욕감에 불탄 스파르타 왕은, 형이자 총사령관인 아가멤논에게 트로이를 침공해 헬레네를 되찾아올 것을 제의했다. 이에 트로이를 공격하기 위해 영웅 아킬레우스,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 등 위대한 장군들이 속속 합류한다. 그리스연합군의 함대는 46명의 장수와 28개 군 병력에 함선 1186척으로, 1척당 200명 승선의 14만 여명이 출정한다. 이 때가 기원전 1240~60년경이었다. 출발지는 아테네 서북쪽 보이오티아 주 아울리스 항이었다.
그들은 에게 해(Aegean Sea) 파도를 헤집고 동북쪽 트로이로 진격한다. 현재 터키 차낙칼레 항을 통해 트로이 성, 아니 트로이 언덕에서 평원과 함께 에게 해를 바라보자. 트로이 성 근처에 해변이 있어 함대들이 정박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해변을 지나 들판이 이어지고, 또 그 성에 접근하기 전 그 들판에는 제법 큰 강이 흐르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현재의 지형과 작품 속 환경이, 이를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는 포로로 잡힌 여사제 브리세이스를 서로 차지하려고 갈등을 겪는다. 파리스와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는 당연히 헬레네를 두고 혈전을 벌인다. 아킬레우스의 절친 파트로클로스를 헥토르가 죽이자, 아킬레우스는 복수의 칼날을 들이대 헥토르를 죽인다. 그 시신을 전차에 매달고는 끝없는 복수극을 펼친다.
"사랑하는 아들을 품에 안고 실컷 울 수만 있다면, 아킬레우스가 나를 당장 죽여도 좋다."
절규하는 늙은 왕 프리아모스는, 짐수레에 몸값인 보물을 가득 싣고 헥토르의 시신을 가져와 장례를 치루기 위해 아킬레우스 진영에 들어갔다. 마지막 장인 제24권은 압권이다. 친구를 잃은 젊은 영웅과 자식을 잃은 늙은 왕은, 끝내 손을 맞잡고 뜨거운 눈물을 토한다. 늙은 왕이 존엄을 포기함과 수모를 감수하며 자식의 시체를 넘겨받는 가족애는 대단하다. 영웅주의와 휴머니즘이 동시에 묻어난다. 산악지대인 그리스를 다니다보면, 교통사고가 난 지역에 자그마한 제단을 차리고 촛불을 켜고는, 남은 가족들이 수시로 참배하는 가족애를 흔하게 볼 수가 있다. 파리스는 세찬 활로써 아킬레우스의 발목을 맞춰 끝내 죽인다. 어쩌랴, 불세출의 영웅에게도 아킬레스건이 있었다. 그 부분을 맞아 최후를 맞이할 줄이야. 인간, 누구나 거의가 하나쯤은 아킬레스 건을 가지고 있다. 이 어원은 여기에서 탄생했음이다.
10여 년간 오랜 전투로 지친 그리스 군사들이 귀향을 바라며 지치자, 책략가인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는 목마를 만들어 트로이군을 속이는 묘안을 짜냈다.
해안에 주둔해있던 그리스 군이 보이지 않자, 거대한 목마를 아테나 여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알고는 의심의 여지도 없이 성 안으로 끌어들인다. 밤이 되자 목마 안에 숨어있던 그리스 군들이, 밖으로 뛰어나와 불을 지르고 닥치는 대로 파괴함으로써 전쟁은 끝난다. 이로써 기원전 2~3000여 년 전부터 형성된 트로이는 몰락하고, 그리스의 승리로 헬레네는 스파르타 왕의 넉넉한 품에 안겼다. 오디세우스는 온갖 우여곡절 끝에, 이로부터 10년 후에야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들의 전쟁터인 트로이의 유물로는 삼족기와 청동검이 많다. 1870년, 오스만 투르크의 허락을 받은 독일의 아마추어 고고학자인 하인리히 슐리만(Schliemann, Heinrich)이, 마구잡이로 발굴한 유물은 베를린박물관에 전시되었다. 그러나 2차세계대전 때, 베를린에 진주한 소련군이 탈취해가고는 모스크바의 푸시킨박물관에 보관하면서, 반환을 거부하고 있음이 안타까움을 더한다. 터키 이스탄불 오리엔트박물관과 차낙칼레 고고학박물관, 그리고 독일 베를린신박물관 등지에 전시돼 있다.
그러나 트로이에 가면 진정한 그 트로이의 목마는 없다. 다만, 인근 갈리폴리 반도 차낙칼레 항구에 가면 ‘브래드 피터’ 주연의 <트로이 Troy)>에 등장한 목마가, 트로이 유적지의 엉성한 목마보다는 그나마 장엄하게 서있을 뿐이다. 영화 촬영이 끝난 후 기증한 덕분이겠다. 이 항구를 비롯해 주변에서는 8월이면 국제트로이축제가 열리나, 다르다넬스 해협에 속한 이 항구에서 1차세계대전 당시, 오스만 투르크였던 터키와 독일군이 영국과 영연방·프랑스 연합군 도합 약100만 명이 싸워 양측 각 25~30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당시 터키측 지휘관은 대령이었던 무스타파 케말(후에 ‘아타튀르크’로 개명)이었고, 연합군측은 윈스턴 처칠이었다. 승리로 이끈 그 지휘관 명을 따라 터키 국제공항은, 금년 4월(현재 명은 ‘이스탄불 국제공항’), 이전하기 전의 명칭이 그 이름을 딴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으로 칭해졌을 정도로, 터키 건국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다.
《일리아스》는 수백 년 동안 입을 통해 내려오다 약 2800~900년 전, 전설적인 음유시인 호메로스(Homeros)가 정리한 불멸의 명작이자 서양문학의 산파역으로, 현세에도 뒤떨어짐이 없을뿐더러, 대단한 상상력이 가미되었다. 아마도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혀지지 않을까. 가히 서양문학의 원조이자, 호메로스가 스승임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다.
천하를 뒤흔든 영웅들은 갔다.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는 한 시대를 풍미하며 짧은 생이었지만, 굵게 살다가 갔다. 아가멤논도 현세에 그의 황금가면만을 남긴 채 떠나갔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세계의 중심지라고 여긴 델포이에 가면 델포이박물관에서 그 가면을 볼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 서울의 예술의전당에서도 전시 중이다. 인생사, 비극과 슬픔도 있는 법이다. 희로애락 속,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예외가 없다. 영웅인 주인공들은 귀족적임을 떠나, 삶과 죽음을 넘은 가족애는 물론, 공동체적 관점에서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선구자였음이다. 작금에 있어, 대한민국의 리더들도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jja-news@nate.com)


*본고는 서울일보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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