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군대를 파견한 세계 16개 국가의 은혜를 모르는 인간들)

남 덕 현
고성읍 동외로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6.25 노래의 첫 구절이다. 6.25 전쟁 때 미국만이 우리나라를 도와준 것처럼 미국의 성조기를 흔들면서 이상한 집회를 열고, 그것이 최고의 애국인양 설쳐 되는 정치꾼 하수인들은 주제파악을 잘해야 할 것이다. 6.25 때 군대를 파견하여 우리나라를 도와준 나라 세계 16개국의 참전용사들이 두 눈 부릅뜨고 당신들의 편견에 사로잡힌 행위들을 쳐다보고 있다.
 지금은 너무도 가난한 나라인 아프리카 동북부에 위치한 ‘에디오피아’ 란 나라를 아십니까? 6.25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를 지켜주기 위해, 이국 만리 먼 땅에서 군대를 보내줘 목숨을 바친 ‘에디오피아’의 참전용사들과 그 유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그리고 6.25 한국전쟁에 참전한 용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자 지금은 노병이 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에 대해 미안함과 감사의 글을 올린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에디오피아’ 는 아프리카 국가 중 유일하게 6.25전쟁에 유엔군으로 참전했다. 황실 근위병 6,037명이 참전해 121명이 숨졌고 536명이 부상했다. 그들은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지도 모르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가운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배를 타고 20여 일간의 기나긴 항해 끝에 부산항에 도착한 동시에, 전투에 참전 하였다. 한국전쟁에는 16개국의 UN군과 한국, 북한, 소련, 중국을 합치면 20개국이 전쟁을 하였고 이 중 포로가 단 한명도 없던 나라가 바로 ‘에티오피아’였다. 이것은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식민지 경험 없이 1000년 역사의 왕국이었고 또한 ‘셀라시에’ 황제가 용맹함을 자랑하던 친위부대를 파병하였기에 가능했다. 또한 그들은 휴전 후에도 2년간 남아서 고아원 등을 돌보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될 때까지 봉사를 하다가 귀국했으며 1968년 ‘셀라시에’ 황제가 한국을 방문하여 춘천에 있는 에디오피아 참전용사 기념비 앞에서 흐느끼며 애도하기도 했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대한민국의 평화를 위하여 젊은 나이에 쓸쓸히 전사하신 ‘에디오피아’ 참전용사들의 명복을 빈다. 자기목숨을 다해 한국을 지켜준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에게 6.25를 맞이하여 고마움을 전한다.

 6.25 전쟁당시에는 세계 16개국이 전투 병력을 지원해주었고 6개국이 의료파견 지원, 35개국이 물자지원을 해 주었다. 미국 178만 9000명 (36940명 전사), 영국 56000명 (1078명 전사), 캐나다 25687명 (312명 전사), 터키 14936명 (741명 전사), 호주 8407명 (339명 전사) , 필리핀 7420명 (112명 전사), 태국 6323명 ( 129명 전사), 네덜란드 5322명 (120명 전사), 콜롬비아 5100명 (163명 전사), 그리스 4992명 (192명 전사), 뉴질랜드 3794명 (23명 전사), 에티오피아 3518명 (121명 전사), 벨기에 3498명 (99명 전사), 프랑스 3421명 (262명 전사), 남아프리카 연방 826명 (34명 전사), 룩셈부르크 83명 (2명 전사) 의료 파견 지원국은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이탈리아, 인도, 독일(서독) 6개국이었고 물자지원국은 오스트리아, 자유중국, 아르헨티나, 파키스탄, 멕시코, 스위스, 도미니카 공화국, 쿠바, 우루과이, 칠레, 베네수엘라, 인도네시아, 에콰도르, 이스라엘, 헝가리, 페루, 레바논, 일본, 버마, 서독, 아이슬란드, 이집트, 캄보디아, 자메이카, 사우디아라비아, 라이베리아, 베트남, 바티칸, 파라과이, 과테말라, 이란, 시리아, 아이티, 파나마, 온두라스, 코스타리카, 모나코, 엘살바도르, 리히텐슈타인 35개국이었다.(출처: 유엔군묘지)
 우리국민은 한국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워 준 국가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 한다. 지금의 세계10위권 경제대국이 된 대한민국도 서양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1950년대에는 아무것도 없는, 어디인지 알지도 못하는 우리나라의 자유를 위해 젊은 청년들이 목숨을 걸고 참전했다.

 “우리 손자, 손녀가 공부하는 게 마지막 소망이에요.” ‘에디오피아’ 병사 유가족들의 현재의 삶은 어떠한가? 월드투게더가 만난 6.25전쟁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테레다(Tereda Mersha) 할아버지 가족은 총 6명. 6.25전쟁 후 병을 얻어 생계를 꾸리지 못했고 자식 내외와 손자들과 살고 계시지만 우리 돈 한 달 3만원이 생활비의 전부. 6명 가족이 하루 한 끼 먹기에도 모자란 생활비로 인해 할아버지의 손자, 손녀들은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가난이 대물림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알기에 할아버지께서는 손자, 손녀만이라도 공부를 할 수 있기를 희망하셨다. “학교에 가서 공부도 하고, 친구들과 놀고 싶어요. 학교에 가고 싶은데, 갈 수 없어요. 책가방도 없고, 책과 학용품을 살 돈도 없어요. 찢어지고 헤진 옷을 입고가면 친구들이 놀릴 까봐 무서워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마을 코리안빌리지에 살고 있는 참전용사 후손 8살 나단(Nathan Gethane)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 벌어 끼니만 겨우 때우는 나단의 가족에겐 학교에 가는 것은 사치일 수 있다. 나단과 같은 6.25 참전용사 후손들에게 꿈을 꿀 수 있고 세상을 넓게 볼 수 있게 해주기 위한 교육지원이 절실하다. 민족의 비극 6.25전쟁과 고마운 에티오피아군은 6,000여명을 파견하여 보화고아원을 창설하여 아이들을 돌보는 등 평화유지군의 역할을 수행해준 고마운 파병 군이었다. 하지만, 6.25전쟁 후 참전 용사와 그 가족은 생계 전선에서 밀려나면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또한 전쟁으로 인한 부상으로 인해 경제생활을 지속하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지금 에티오피아에는, 6.25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코리안 빌리지가 있다. 이 마을에는 6.25 참전용사를 포함해 1,400세대 1만 여명이 거주하고 있고, 생존해 있는 6.25 참전용사는 300여명이 있다. 이들 중 대다수가 생활고와 지병으로 인해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참전용사의 후손들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우리국민은 힘이 되어 주어야 한다. 이제는 우리가 받은 사랑을 돌려 줄 때이다. 보통 ‘에티오피아’라고 하면, 그냥 “가난한 나라”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만 알고 있다면, 우리는 너무나 배은망득한 민족인 것이다. 지금 우리가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있는 그 배경에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희생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에티오피아’의 ‘셀라시에’ 황제는 “격파”라는 뜻의 “강뉴 부대”를 파병할 때, 이렇게 연설했다. “우리 ‘에디오피아’가 항상 추구해왔던, ‘세계평화를 실천하기위해, 그대들은 오늘 장도에 오르는 것이다. 가서 침략군을 격파하고, 한반도에 평화와 질서를 확립하고 돌아오라. 그리고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 (Fight until you win, or die)”강뉴 부대는 16개국의 참전용사 중에서도 가장 용감히 싸웠다. 5차에 걸쳐 약6000명이 참전하였고, 122명의 전사자와 536명의 부상자를 냈으나, 포로는 한명도 없었다.(출처; 이상욱. 에디오피아) 그것은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숭고한 희생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지금 너무 가난하다. 그 고마움을 우리국민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에디오피아‘ 참전용사들과 그 후손들을 돕는 길을 찾아야 한다. 6.25전쟁 때 미국만이 우리나라를 도와주었다는 헛된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6.25때 우리나라에 군대를 보내서 우리를 지켜준 나라는 세계16개국이다. 이들 국가의 국민에게 감사해야 한다. 당신들이 진정한 애국자라면 유엔군 묘지에 가서 꽃송이라도 한 개 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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