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향락
 우리는 각 직능별로 분권된 사회 속에 살고 있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농사는 농업인에게처럼 사회 체계가 이처럼 분화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그러나 분화는 불통의 씨앗을 남기기 마련이며, 전문화는 폐쇄성의 암초를 만나기 십상이다. 사회 체계의 기능적 분화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화 과정을 잘 제어하고 관리하는 체제가 중요하다.

 지금 우리 농업·농촌은 소멸위기와 지속가능이라는 상반된 변화의 물결을 맞고 있다. 전자는농업성장의 정체와 농촌인구의 과소화·고령화다.
 앞으로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농업·농촌은 소멸 이라는 큰 위기를 맞을 것이다. 후자는 안심먹거리에 대한 수요, 나아가 가성비보다 가성비를 따지는 농산물 소비 수요의 확대를 들 수 있다. 이는 농촌이 식량 생산공간 외에 새로운 삶터이자 교육·여가·문화·휴양의 대안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생산성과 경쟁력 중심의 농업정책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앞으로의 농정은 안심·안전 먹거리 생산, 깨끗한 환경 보전, 여가·문화·휴양 공간으로서의 농촌 유지 등 농업·농촌이 가진 다원적 기능을 활성화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시대상황과 시대정신이 분명히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농업에 있어서도 그런 변화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행정당국의 적극적인 추진이 가장 중요하고, 그런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농업인단체들과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구축해서 농민들이 참여하는 생산체계를 갖춰가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 농업·농촌이 지속가능하려면 법·제도의 정비와 함께 농업예산의 구조적 재편이 반드시 필요하다. 농민과 지방자치단체의 경제활동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 중 하나가 농업예산이기 때문이다.
 농업예산이 여전히 농업의 생산성과 경쟁력 향상, 농촌의 도시화·현대화만을 위해 쓰이고 있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농업예산이 이러한 사업에만 집중될 경우 지자체나 농업활동 주체들이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사업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없기때문이다.
 여기에다 중앙집권적 자원배분방식이 여전히 중심을 이루고 있는지도 봐야 한다. 이러한 방식의 예산집행은 지자체가 농업·농촌의 다기능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펼치고자 하는 다양한 사업들을 막을 수 있기때문이다.

 우리 농업·농촌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농업예산은 반드시 재편돼야 하는 이유다.
 특히 농업·농촌의 다기능성을 활성화하려는 정책사업이나 프로그램 기획에 예산을 많이 배정하고 그 비중을 지속적으로 늘려나가야 한다. 직불제의 경우도 기본적 농업활동 외에 다기능성을 발휘하는 활동도 보상하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농촌개발은 물리적 시설 확충보다 농촌가치를 발굴·유지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과 사회의 수요를 고려하지 않은 공모사업은 최대한 축소해야 한다. 공정하고 엄격한 잣대로 사업성과를 평가해 농업·농촌의 다기능성을 개발하고 확충하는 사업에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자체의 창의와 책임이 강화돼야 한다. 중앙정부가 사업의 내용과 형식을 일일이 규정해서는 지자체의 창의와 책임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자체는 계획 수립과정에서 해당 지역의 중장기 농정목표 수립, 정책 수단의 창의적 기획, 예산 배분에 관한 내용 등을 관련 기관·단체들과 함께 논의하고 이들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농업정책과 농업예산이 이 같은 방향으로 재편된다면 우리 농업·농촌의 미래, 즉 지속가능성은 더 말할 나위없음이다.


약력: 고성고등학교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경영학과졸업, 경희대학교 행정대학원 최고정책과정 수료. 전 고성농협 대가지점장, 전 고성군농협미곡종합처리장(RPC)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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