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죽음이 싫지만 죽음은 항상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
고성읍 동외로
모든 존재는 유한하고,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살고 싶어서 발버둥을 치고, 또한 어떤 사람은 빨리 죽고 싶어 하기도 한다. 오래 산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니며 또한 빨리 죽는다고 반드시 불행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거론조차 하기 싫어한다. 자신이 천년만년 살듯이 생각하는 경향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자기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죽음의 문제가 곧 삶의 문제이며 한순간의 차이이고 한 생각의 차이라는 것을 얼마나 느끼며 살아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은 남의 일이며 마치 자신은 죽음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말한다. 자기 이웃이나 주변의 친지들이 계속해서 장례식장에서 죽어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죽음에 대한 대화를 기피하는 이유는 죽음에 이를 때까지 겪게 되는 극심한 고통과 그 이후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해 분명하게 모르는 무지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들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죽음이란 생명 활동이 정지돼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 못하는 생물학적 종말을 말한다. 죽음은 한번 가면 되돌아오지 못하는 상태이므로 미지의 세상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려면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 죽음은 늘 두렵고 불편한 주제이지만, 죽음이 없는 삶은 없다. 죽음을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로 받아들인다면 거기서 더 없이 소중한 삶의 의미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예고가 없는 것이 특징이어서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과 고통은 엄청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죽음이라면 죽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고, 그것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리지역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죽음’, 또는 ‘임종’이라는 말을 언급하는 것을 꺼린다. 우리 사회에서는 죽음의 문화는 열려 있지 않고 닫혀 있기 때문이다. 우리지역 사람들에게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과 아름다운 임종을 생각하는 것은 몹시도 어려운 현실이다. 선진국에서는 학교 교육과정에 죽음 준비교육이 있는데,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인생의 가치관을 재정립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어린아이 때 키우던 동물이 죽었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떻게 이겨나가는지에 대해 배움으로써 죽음이 무섭고 두려운 존재가 아니며 인생의 자연스러운 한 과정임을 가르친다. ‘죽음은 삶의 한 부분이다’ 와 ‘신체적 기능을 멈추는 것이다.’ 와 같은 기본적인 내용을 기초로 할 때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죽음 준비교육은 죽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주고 자신에게 맞는 장례형태를 선택하게 할 수 있으며 나아가 사별가족이 슬픔을 이겨내고 성숙하게 대처하도록 함께 도와주기도 한다. 죽음을 논의하는 것은 바로 삶을 논의하는 것이다. 죽음의 준비를 잘한다는 것은 남아 있는 삶을 얼마나 귀하게 잘 살아야 하는가를 새삼 느끼게 해주는 삶의 준비와 다름이 없다. 죽음을 인생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될 때 우리 사회는 성숙한 사회가 될 것이며 우리의 마지막은 괴로워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이 될 것이다. 위대하던 권력과 명예들도, 아름답던 미모들도, 평생 동안 노력하여 긁어모은 재산들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장례식이 끝나면 가족 친지들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생각조차 없이 제각각 제 갈 길로 떠나버린다. 그런 상황이 한 인간의 죽음의 종말인 것이다. 인간 중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솔로몬 왕은 성경에서 이와 같이 인간의 죽음의 결말에 대해서 탄식하고 있다. “나, 솔로몬은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리하고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만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 도다.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 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음으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곳으로 가거니와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데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거니와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 사람은 자기의 (죽는)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같이 인생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거기 걸리느니라.”
이와 같은 인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도의 작은 왕국의 태자였던 ‘싣달타’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진리의 이야기는 인도 북부지역의 작은 나라인 가비라국의 태자 ‘싣달타’가 왕궁의 부귀영화와 아버지 정반왕의 간절한 기대를 저버리고, 아름다운 부인 ‘야수다라’와 귀여운 아들 ‘라후라’를 왕궁에 남겨둔 채 과감히 출가 한 것에서부터 인간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싣달타’ 태자로 하여금 출가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사문유관(四門遊觀) 사건이었다. 어느 날 태자는 동문 밖으로 산책을 나가게 되었는데 허리는 활처럼 굽고, 얼굴에는 잔주름이 가득하고, 숨을 몰아쉬며 걸어가는 노인을 보게 되었다. 처음 보는 노파라 순간 크게 탄식을 하며, 늙음이란 누구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다음 날은 남문 밖으로 나가서 거닐다가 병든 사람을 보게 된다. 아파서 괴로워하고 울부짖으며 질병에 시달리는 참상을 보게 된 것이다. 다른 날은 서문 밖으로 나가서 가족과 친지들의 슬픈 울음소리를 들으며 죽은 사람이 상여에 실려 나아가는 행렬을 보게 된다. 여기서 ‘싣달타’는 “사람은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괴로워 하다가 결국은 죽고 만다.”는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엄연한 사실을 뼈아프게 느끼게 된다. 이 때 태자의 심정을 『불본행집경』이라는 불경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인생은 태어났다가 결국은 늙고 병들어 죽고 마는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자는 어쩔 수 없이 필연적으로 늙고 병들어 죽는 괴로움을 어찌하랴. 아아! 인생은 허무하고 괴로운 것이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의 수렁이 우리 앞에 있구나.” 그러나 마지막으로 ‘싣달타’ 태자가 찾아 나섰던 북문 밖에서 한 사람의 고고한 수행자를 만나게 된다. 이 수행자는 비록 삐쩍 마르고 남루한 옷을 걸치고 외형은 볼품이 없었지만, 걸음걸이는 의젓하고 당당했으며 눈빛은 빛났다. 태자는 수행자로부터 ‘해탈의 길을 찾아 출가하였다’는 말을 듣고 한 가닥의 희망을 갖게 된다. “그렇다. 희망이 있구나. 늙고 병들고 죽는 속박의 삶에서 벗어날 해탈의 희망이 있구나.”
이 이야기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인간과 깊이 관계있는 죽음에 대한 진리의 이야기다.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 다만 죽음은 혼자 겪어야 하는 일이며 그 길은 혼자 외롭게 떠나는 길이며 자식이나 아내 혹은 남편과 친지들이 함께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단지 오래 살고 싶다는 본능적 욕망 하나 때문에 그럴까? 사람이 원하는 것은 무병장수’가 아니라, 사실은 영생불사(永生不死)’이기 때문이다. “건강하게 오래 살면 족할까? 가 아니라 영원히 살고 싶다.”가 인간의 궁극적 희망인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평균수명이 78세에 이르고,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도 급속히 높아지는 고령화 사회가 되고 있다. 노인의 삶의 질뿐만 아니라 죽음의 질에 대한 공론이 시작되어야 할 시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말하기를 회피해온 죽음의 체계(죽음에 대한 생각, 감정, 행동)와 죽음교육의 필요성, 내용, 방법 그리고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자살, 안락사, 존엄 등에 관한 진솔한 논의가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논의되어야 할 시대가 되었다. 이것은 남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당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만에서는 초등학생 때부터 죽음 교육을 받으며 중학교부터는 교과목으로 배운다고 한다. 죽음 교육을 통해 궁극적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고민하고 깨닫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우리의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가족 중 누군가 아플 때, 혹은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죽음에 눈을 뜬다. 죽음이라는 두려움 앞에서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보다 병원에서 한 번이라도 더 치료를 받기를 원한다.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 법륜스님의 죽음에 대한 법문을 들어보자. “태어나고 죽는 것은 하나의 현상일 뿐이에요. 파도를 보세요. 일었다 사라지고, 일었다 사라져요.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 하나하나에 집착하면 그것이 마치 생겨나고 없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다 전체로 볼 때는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출렁이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고 죽는 것은 생명을 이루는 요소들이 인연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태어난다고 기뻐할 일도 아니고 죽는다고 슬퍼할 일도 아니에요. 인연 따라 일어나고 인연 따라 사라지는 파도를 바라보듯, 삶과 죽음도 하나의 현상으로 있는 그대로 응시할 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죽음이 찾아오면 그대와 함께 할 수 있는 동반자는 아무도 없다. 떼를 지어 잠을 자는 새들도 아침이 되면 각자 흩어지듯이 그대 또한 사랑하는 자식과 아내, 남편, 친지들과 헤어져 혼자 저 세상으로 가리라! 오직 끝까지 그대를 따르는 것은 그대가 지은 선(善)과 악(惡) 뿐이다. 행동은 마음으로부터 일어나고 마음은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움직인다. 본래 인간의 마음에는 선악이 따로 없다. 오로지 외부의 조건과 상황에 의해서 선과 악이 일어날 뿐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환경을 만날지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일 매일 죽는 연습을 하는 사람은 더 이상 버릴 것이 없을 때 마지막 한 가지를 버리는 것이 죽음이다. 떠날 때 웃음으로 떠날 것인가 아니면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며 하나도 갖고 가지도 못하면서 헛된 몸짓을 할 것인가는 오로지 당신 결정에 달렸다. 적게 가지며 많이 베풀고 나눈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세상을 떠난다. 잘사는 것은 돈과 성공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베풀며 사는 것이고, 이것이 곧 잘 죽는 것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난 이들은 우리들에게 간곡하게 말한다. 시간을 아껴 쓰고 마음을 맑게 가꾸라고. 늘 자기만 앞세우는 교만하고 이기적인 독선, 탐욕, 자기도취의 어리석음에서 깨어나라고 말한다. 아직 건강하게 살아 있을 때 좀 더 많이 웃고 즐겁게 살라고, 자연과 인간과 사물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늘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에도 깊이 감사하는 연습을 하라고 말한다. 평소에 화해하고 용서하는 너그러움, 남을 배려하는 사랑을 더 많이 연습해 두라고 당부한다. 끊임없이 인내하고 양보하는 ‘작은 죽음’을 평소의 삶에서 미리 연습해 두지 않으면 죽음의 순간이 올 때 마무리하기가 어렵다. 필자는 새해 첫 해맞이를 하면서 “올 한해는 더 많이 고마워하고, 더 많이 남을 챙겨주는 사랑을 해야지. 말도 행동도 오늘밖엔 없는 것처럼 정성을 다해서 살아야지”라고 다짐하였다.
티베트 스님들은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전해준다고 한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나는 울었고, 내 둘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기뻐하였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갈 때 나는 웃었고 내 둘레의 사람들은 모두 슬피 울고 또한 기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