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군은 우리지역 청년 실업실태를 파악하여 취업대책 수립하고 있는가?]

남 덕 현
고성읍 동외로
 우리나라 청년들의 취업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못해 살벌하다. 힘들고 임금이 열악한 영세기업체의 일자리는 외국인 노동자가 싹쓸이 하고, 임금과 기업 환경이 좋은 일자리는 경쟁이 극심하여 천부적인 두뇌로 명석한 인재들만 극소수 들어가고 나머지 대부분의 젊은이는 공무원 해보겠다고 공부하다 나이 먹고는 아르바이트 전전하고, 이게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취업 현실이다.
 청년 취업문제는 우리나라가 자본주의 사회임을 명백히 자각하지 않고는 이해되기 어렵다. 우리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다.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 계급으로부터 노동력을 사서 생산 활동을 함으로써 이익을 추구해 나가는 경제 구조이다. 그러므로 크게 자본가와 노동자로 구분되어지며 자본(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회다. 자본주의 활동은 이윤만을 추구하려는 영리지상주의를 특징으로 하며 자본주의에서 자유란? 자본(돈, 기업)이 전횡(권력이나 권세를 홀로 쥐고서 자기 마음대로 함.) 하는 자유를 말한다. 힘 갖은 자들이 만들어 놓은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무슨 일을 해도 된다는 것이 자본주의 의‘자유’인 것이며,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는 윤리, 도덕, 염치, 이웃에 대한 사랑 등이 변두리로 쫓겨나서 소외되는 것이 상식이다. 돈이 있으면 황제 같고 돈 없으면 쓰레기통을 뒤져서 다른 사람이 먹다 버린 빵조각을 먹는 ‘자유’도 있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나타나는 각종 부작용과 현상에 대해 청년취업 문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과 ‘제로섬 게임’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이런 용어들이 젊은이들에게는 일반화된 상식적인 용어이지만 우리지역 성인들에게는 생소한 용어이므로 먼저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 뭔지 부터 살펴보자. 이것은 본래 게임의 일종으로 상용되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서로 뺏고 뺏기는 피도 눈물도 없는 경쟁사회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용어이다. 내가 흥하고 당신이 망하든 아니면 내가 망하고 당신이 흥하던 두 가지 선택만 할 수 있는 막다른 골목의, 살기 아니면 죽기의 경쟁사회를 일컫는다.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 뭔지 구체적으로 정리해보면 게임에 참가하는 양측 중 승자가 되는 쪽이 얻는 이득과 패자가 되는 쪽이 잃는 손실의 총합이 0(zero)이 되는 게임을 가리킨다. 즉, 내가 10을 얻으면 상대가 10을 잃고, 상대가 10을 얻으면 내가 10을 잃게 되는 게임이다. 이처럼 내가 얻는 만큼 상대가 잃고, 상대가 얻는 만큼 내가 잃는 승자독식의 게임인 만큼 치열한 대립과 경쟁을 불러일으킨다. 제로섬 게임이라는 용어는 게임이론으로부터 등장했지만 정치·경제·사회분야 등의 무한경쟁 상황에서 패자는 모든 것을 잃고 절대강자만 이득을 독식하는 현상을 설명할 때에 사용된다. 대표적인 제로섬 게임으로는 포커나 경마 등 도박을 들 수 있다. 두 번째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에 대해 살펴보자. ‘홉스’의 자연 상태와 평화에서 자연법에 대한 주장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연은 인간을 신체적이나 정신적인 기능에서 평등하게 만들었다. 이런 능력의 평등으로부터 목적한 바를 얻고자 하는 똑같은 희망이 생기게 된다. 두 사람이 동일한 대상에 대하여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나 양이 충분하지 못해 서로 만족할 수 없을 때 두 사람은 적이 된다. 따라서 모든 사람을 떨게 만드는 공통의 권력이 없는 동안 사람들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같은 전쟁 상태에 놓이게 된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서는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 같은 개념들이 전쟁 상태에서는 설 자리가 없다. 전쟁 상태에서는 소유권도 지배권도 없으며, 내 것과 네 것의 구분도 없다. 평화를 추구하려는 본능은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은 평화의 조항들을 제안하는데,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쁜 일은, “언제 당할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두려움과 공포이다. 인간의 삶은 외롭고 가난하며, 더럽고 야만적일 뿐 아니라 그나마 짧다.” 우리사회와 비유하여 알기 쉽게 표현하면 나의 생존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취업을 원하는 모든 대상이 나의 투쟁의 대상이 되고 취업을 위한 투쟁에서 정의와 불의는 불필요하며 오로지 나의 취업을 위한 목표달성만이 살아남는다는 의미다. 젊은 청년들이 취업을 위한 치열한 경쟁이 극에 달해 공포증까지 느끼는 상태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이들의 취업과 결혼과 출산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은 너무도 위험하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으며 그 해결책을 마련해주어야 할 시대적 책임감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젊은이들이 취업을 못해 아우성이다. 취업을 못하니 결혼도 못하며 독립적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 못하니 그것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겨우 겨우 열악한 상황에서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한다 해도 생활고에 시달리면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이루기가 힘들며 자녀출산문제는 꿈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극소수의 학생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꿈과 희망이 사라졌고 오로지 생존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서 한 치 앞길을 가름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들은 취업의 낭떠러지 위에 서서 바람 앞의 촛불처럼 깜박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꿈을 가져라. 열심히 해라. 진로상담이 어쩌니” 라며 무책임한 말을 쏟아내는 사회와 성인들의 태도에 대해 정말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쓴 소리를 하고 싶다. 그리고 대학졸업생이 차고 넘쳐서 남아도는데도 불구하고 대학입시와 명문대학 타령만 하고 있는 학부모들의 위기의식도 문제이며 명문대학인 서울대학 졸업생도 거의 30%가 실업자라고 하는데도 말이다. 앞으로 몇 년 더 있으면 대학 입학이 문제가 아니라 대학에서 고교졸업생을 모시러 올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야단인데도 말이다. 대학입학이 취업이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은지 오래되었고, 그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며 실업입학이라고 부르짖는 이 시기에 대학입학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는 학부모가 아직도 존재한다는 게 불가사의하다. 대학 문만 나서면 살얼음 같은 경쟁이 젊은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지역 학생들이 대학만 입학하고 나면 나 몰라라 해서는 곤란한 시대가 되었다. 학부모들은 자식들 죽어라 대학교 보내려고 하는 모양인데, 지금 서울 대학 졸업생들도 백수로 넘쳐나고 있다. 대학교로 모든 것을 해결했던 건 경제성장 시기지,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자식들 공부 못한다고 잔소리 하실 텐데 현실을 냉정히 봐야한다. 기본적인 공부머리는 80%가 유전이라는 것이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이 됐고 심지어 노력하는 것조차도 유전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부모님들부터 현실도피하지 마시고, 자기 자신부터 똑바로 알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이들이 취업문제로 결혼까지 포기 하고 독신세대가 급격히 늘어가며 또한 자녀출산까지 중지하는 냉혹한 시대가 되었다. 지방자치단체는 우리지역의 기업체 명부를 전부 공개하고 채용과 퇴직의 실태를 파악해야하며 우리지역 청년들과 취업협약도 맺어야 할 때이다.

 이제는 이런 문제를 지방자치단체에서 발 벗고 나서야 할 때가 되었으며 우리지역의 청년 취업실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지방자치란 무엇인가?’ 지방 자치는 일정한 지역의 주민이 스스로 선출한 지방 의회 의원과 지방 자치 단체장들이 그 지방의 일을 처리하게 하는 제도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각 지방 자치 단체에는 의사 결정을 하는 의결 기관인 지방 의회와 의결 기관에서 결정된 사항을 실행하는 집행 기관인 지방 자치 단체장이 있다. 지방 자치는 고장 주민들이 지역의 살림 등을 스스로 결정하고 처리하는 제도로, 민주주의의 바탕이다. 그러므로 고성군은 사회적 문제로 나타난 젊은이들의 취업과 결혼문제 그리고 독신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것이다. 우리지역 출신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실태파악 쯤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지역 중소기업에 다니는 청년노동자들의 근무형태와 급여수준도 파악하여 살기 좋은 고성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우리사회는 빠른 속도로 진행된 신자유주의화로 개인 간 경쟁이 심해진 데다 국가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소속된 공동체의 연대의식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이는 사회 구성원들이 체제뿐 아니라 서로를 불신한 채 각자의 이해관계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으며 공공의 이익이나 가치, 혹은 다른 개인이나 집단을 향한 공감과 배려 없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만 남은 곳이 되었다. 사회 구성원들이 국가를 향한 신뢰를 잃은 것과 동시에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무자비한 경쟁이 본격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정치뿐 아니라 행정과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이 증폭되고 있으며, 국가가 내세웠던 정책이나 구호가 사실은 사적 이해관계를 위해 저질렀던 일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국민 모두가 목격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기득권 세력은 거짓말을 해서 이득을 챙기고 피해는 힘없는 개인들이 본다.’ 체제는 기득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식의 냉소와 불신이 재생산되었고, 사회 구성원들에게 확신으로 자리 잡고 있다. 체제에 대한 신뢰 상실은 곧 정부나 언론이 내세우는 공익에 대해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공공의 이익이나 소수자 배려 등 보다 공적인 가치는 평가절하 된 채 어떤 정책이 누구에게만 이익인지 따지는 논란, 또 서로가 그러한 이득을 누리지 못하는 ‘피해자’라는 주장이 난무하는 현실이다. 체제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개인들은 신자유주의화로 서로를 향한 연대의식까지 잃어버렸으며 우리 사회에서 공동체는 사라지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없어졌고, 지금은 구성원들의 인식 사이에서 확산되었다. 이제 우리사회에서는 비정규직이나 여성, 장애인, 외국인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지키거나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보다 ‘능력 없는 이들이 부당하게 이득을 챙긴다.’는 식의 무임승차, 혹은 특혜론 이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으며 지나친 경쟁으로 서로를 이전투구의 상대로만 바라보는 현실이 되었다. 그럼 청년들의 취업에 대한 관점을 생각해보자. 우리사회에서의 취업난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대기업, 중견기업, 공기업의 사무직과 생산직에 가기 위해 많은 구직자들이 처절하게 경쟁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정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는 중소기업(그렇지 않은 일부를 제외한), 파견직, 일용직, 비정규직에 취업한 것을 일반적으로 ‘취업했다.’ 라고 하지는 않는다. 이런 상태를 많은 청년들이 피하려고 하기에 취업난이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나쁜 노동 근로조건을 요구하는 중소기업이 예상 외로 많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이를 기피한다. 노동법을 준수하며 적정 이상의 임금을 받는 기업은 대기업, 중견기업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구직자 중 극소수만 대기업 계열사, 공기업, 좋은 중견기업에 갈 수 있기 때문에 학벌, 전공 학점 등에 의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구직자는 이런 곳에 갈 수 없고, 이런 곳을 못 가는 구직자가 늘어나서 취업난이 더욱 심각해진다. 우리나라의 80%의 이상 기업은 파견직, 일용직, 비정규직과 같은 신분 불분명한 직장이거나 소규모 회사의 정규직이다. TV에 나오는 취업박람회 같은 경우, 명문대 이상이나 서울 중상위권 대학교 출신들은 ‘취업박람회에 참가한 기업들의 질이 낮기 때문에 안 간다.’ 고 말한다. 사회에 진출하고 경제적 기반을 다지기 시작해야 할 청년시기에 일자리조차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국가적 낭비이며 개인적 비극이다. 이런 결과로 청년실업의 만성화가 청년층의 커뮤니케이션 능력까지 점차 감소시키며 고립되거나 인간관계를 축소시키고 기피하는 세태가 계속되면서 동료의식이 약화되거나 소멸되고 있다. 이미 개인주의의 확산 및 자기중심적인 유형의 인간들이 증가한 상태이다. 그 결과 젊은이들의 변칙적인 삶의 형태가 출현하게 되었는데 그들을 풍자한 명칭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잉여세대, 삼포세대, 달관세대, 이태백, 청년실신, 등이 그 명칭이다.
 우리사회 청년들의 실업상황이 얼마나 심각하지 보여주는 예라고 할 것이다. 해가 갈수록 청년취업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과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으로 살벌해지고 있으며 그 결과로 고교 1학년 때부터 취업공부를 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고 취업경쟁에 휩쓸리게 되었다. 오늘날 자본주의가 낳은 최대의 비극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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