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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과 상(商 또는 殷)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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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19  09:5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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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유구한 세월 속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 유구한 세월이 아닌 분. 초의 찰나에도 모든 변화는 멈추지 않는다. 단군조선의 후예인 우리나라는 지금은 대한민국이지만 지금 이 대한민국 바로 직전에는 잠시나마 국권을 잃은 아픔도 있었고 그 바로 직전은 우리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명(明).청(靑)에 대한 사대(事大)의 나라 조선이 있다. 이 보다 앞선 고려는 최소한 자주국이자 독립된 연호를 쓴 황제의 나라였고, 그 이전인 삼국시대에는 지금 중국 땅의 상당한 부분인 만주와 요동반도, 산동 반도 등을 삼국의 영토로 가졌고, 그 이전인 단군시대, 환웅시대, 환인시대에는 거의 아시아 전역이 우리의 영토가 되어 수천수만 년을 다스려 온 우리 조상의 나라 영역이다. 이제 그 구체적 단군시대 기록의 편린을 보기로 한다. 
 중국인들이 말하는 삼 황 오 제 중 한 사람인 제곡 고신(高辛)의 부인 중 간적(簡狄)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간적이 어느 날 목욕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현조(玄鳥 검은 새)가 날아와서 알 하나를 떨어뜨려 주었다. 간적이 이를 받아먹고 아이를 낳으니 그가 곧 설(契 또는 계)이다. 훗날 설은 순임금과 하나라의 우임금 때 벼슬을 하고 상(商)이라는 곳의 제후로 봉해졌다. 그리고 그의 후손인 성탕(成湯)이 하(夏) 나라 말기에 걸(傑王)을 몰아내고 상(商=殷)나라를 세웠다. 간적에게 알을 주었다는 검정 새는 태양을 상징하는 삼족 오(三足烏)를 말하는 것이며 은나라가 동이계임을 드러내고 있다. 사실 이 은나라 뿐 만이 아닌 삼황오제 모두가 동이족(東夷族)의 지류이다. 은나라의 유물인 갑골문에 새겨진 그들의 역사는 그들의 상국인 단군조선의 실체를 숨기려고 곡필로 일관하고 있지만 우리의 한단고기(桓檀古記)의 기록 자료와 일치한다는 것은 숨길 수가 없었다.

 은나라에서 사용한 갑골문자가 지금 쓰이는 한자(漢字)의 모태이고 나라를 세운 종족이 우리와 같은 동이족이니 이 한자라는 글자는 절대로 화하 족(華夏族 =中國人)의 것일 수가 없고, 어떤 학자들의 말처럼 중국에서 수입한 것도 아니며, 고대에 미개했던 화하 족을 다스리기 위해 우리의 글인 지금의 한자를 그들에게 전수하여 가르친 것이라는 점에서 그 흔적의 일부를 보기로 한다. 한자가 처음 만들어 졌을 때 글자의 의미는 그림으로 풀어야 하는데 동녘 동(東) 자를 보고 모든 후대 사람들은 나무(木)와 태양(日)이 합성된 글자로 아침에 동쪽 산에 떠오를 때 나무의 한 가운데 걸려 있는 모습을 상형 화 한 글자라고 풀이한다. 그림으로 풀이하는 것이니 그 해설자의 주관성을 피할 수 없지만, 이 글자의 발음인 ‘동(東)’에 대하여는 아무런 설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우리 한글에서 그 근원을 찾아야 할 것을 다른데서 찾는 헛수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갑골문에 나타난 처음의 모습은 물건을 단단히 묶어 놓은 모양이 동(東)자 이며 발음 또한 ‘동이다(bind)'의 ’동‘에서 왔음을 그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집 가(家)자에는 왜 돼지 시(豕)자가 들어 있는지 그들은 모르고 있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지만 얼마 전 까지도 제주도에는 변소 밑에 돼지를 키웠고 사람이 거처하는 위층에 올라가려면 사다리를 올라야 했다. 제주도의 돼지 사육은 고대 동이족이 살던 전통의 잔재에 불과하고, 원래 우리 모든 동이족은 뱀의 피해를 막기 위해 집을 높이 짓고 뱀의 천적인 돼지를 아래층에 기름으로써 이 뱀들을 방지하려고 했던 데서 인 것이고 화하 족 에게는 이런 전통이 없었다.
단군조선을 개국한 초대 단군왕검으로부터 47세에 이르도록 2096년간 다스린 단군 중 13세 단군인 흘달(屹達)단군 때 하나라의 걸 왕에게서 구원 요청을 받고 장군 말량(末良)으로 보내 구원하니 군사를 일으켰던 성탕(成湯)이 흘달 단군에게 사죄하고 공물을 바쳤다. 성탕이 군사행동을 한 것은 단군의 의중을 떠 보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고, 흘달 단군은 하나라 걸 왕이 폭군이지만 신하가 군주에게 반기를 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긴 것이다. 당시 죄의 유무와 선악 판단이 단군조선에 있음을 보여준다.

 단군조선의 장수 말량이 임무를 마치고 군사를 돌리려는데 걸 왕이 약속을 어기고 군사를 보내 말량의 군사를 막으면서 조약까지 파기하고 나섰다. 그러자 흘달 단군은 대장군 우량(于亮)을 파견하여 하나라로 진격해 들어가서 그 곳에 식민지를 개척해 나갔다. 그 후 하나라의 제후국인 상나라의 성탕이 조공을 소홀히 하자 이를 치고자 하나라에서 다시 단군조선에게 구원병을 요청했으나 보내지 않았다. 그 후 성탕의 은나라가 무도한 하나라의 걸 왕을 칠 때 단군조선은 원병을 보냈다. 조선과 은의 연합군을 맞은 걸은 힘을 쓸 수가 없어 남쪽으로 도망가고 은나라가 선 것이다. 이로써 탕왕을 단군조선에서 인정하여 중원의 백성들을 도(道)로써 다스리게 하였다. 흘달 단군은 은나라를 거수(諸侯)국의 하나로 인정하고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돈독히 했다. 이로써 단군조선에도 태평성대가 오고 길조가 나타나기도 했다. 흘달 단군이 제위 61년에 천수를 다하고 죽자, 고불(古弗)이 14대 단군의 위에 올랐다. 고불단군 재위 5년에 큰 가뭄이 들자 단군이 기우제를 올렸다. ‘하늘이 크다 하나 백성이 없으면 무엇으로 베풀 것이오며 비가 기름지다 하나 곡식이 없으면 어찌 귀하오리까. 백성들이 하늘처럼 여기는 것은 곡식이요 하늘이 마음처럼 귀하게 여기는 것이 사람이 아니 오 신지요. 사람과 하늘이 일체일진대 어찌하여 하늘은 백성을 버리시옵니까 ? 이제 비는 곡식을 기름지게 할지며 때 맞춰 구제하게 하소서 !’ 축원이 끝나자 큰 비가 삼대처럼 내렸다. 단군의 기우제는 삼신(三神)의 하나인 인신(人神)의 자격으로 천신에게 가뭄의 부당함과 비가 내리게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따지고 있다. 인신인 단군의 옳은 축원에 천신이 즉시 답하여 비를 내린 것이다. 고불단군 56년(기원 전 1666년) 모든 거수국(諸侯國)에 관리를 파견하여 개국 이래 처음으로 호구조사를 실시하니 인구기 1억 8천만이었다. 고불 단군에 이어 대음(代音 15대)단군 때 은나라 왕 소갑(小甲)이 사신을 보내어 경하했다. 대음단군은 은나라와의 화친을 다지면서 은나라에게 제후국 소임을 다할 것을 다짐하였다. .  

 하 나라 멸망과 은나라 건국에 대한 신화가 있다. 하나라의 걸 왕에게는 비창(費昌)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황하를 건너다가 갑자기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떠오른 것을 보았다. ‘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고, 사람에게는 두 사람의 군주가 있을 수 없다’라고 생각한 그는 황하의 수신 하백에게 ‘ 두 태양 중 어느 것이 하나라이고 어는 것이 은나라입니까 ?’라고 물었다. ‘서 쪽에 있는 것이 하나라이고 동 쪽에 있는 것이 은나라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비창은 대세가 은나라에 있음을 알고 하나라의 걸 왕이 아닌 은의 탕왕에게로 돌아왔다.
 여기서 말하는 수신 하백이란 황하 주변에 살던 동이족이자 단군조선을 가리킨다. 단군조선은 맹약을 어긴 하나라가 아닌 은나라를 인정했다는 말이다.


 ※ 본 칼럼은 故서재순 본지 논설위원이 미리 보내주신 유작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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