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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12  10: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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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둘 이상이 모인 좌중에는 늘 얘기판을 독점하고 다른 사람이 입을 열거나 끼어 들 틈을 안 주는 사람이 있다. 남들은 다 허수아비거나 바보 천치들이거나 또는 고용된 청중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민주주의 아닌 독재에서는 이런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러울 수 있으나 단체생활에서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말 할 기회를 주고 상대의 말을 경청해 주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어버린 행동이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은 청산유수 같이 말재주 있는 달변이 아니라 설혹 말을 더듬거나 말솜씨가 없어 어눌하고 답답해 보일지라도 말하는 사람의 뜻이 분명하고 진리를 담고 있을 때, 그리고 무엇보다도 말을 듣는 상대방이 편한 마음으로 그 대화에 동참할 수 있는 분위기로 이끌어 가는 사람일 때를 말한다.
 조선 후반기의 실학자 박 지원은 명문가 출신이었으나 신분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교유한 열린 사람이었다. 그의 지기들은 재야 지식인, 서얼 등 당시 양반들이 우습게 보는 부류가 주를 이루었다. 박지원이 보기에 당시의 양반들이란 허위와 위선이 가득한데다 권력에 아첨하는 대가로 머리에 속된 잔꾀만 가득 찬 무리들이었다. 박지원은 아무나 사귀는 것이 아니라 뜻이 맞고 말이 통하여 그의 지기가 되었다. 그는 내면적으로 기질이 너무 강해 자신과 뜻이 맞지 않으면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서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남들이 여러 번 다그쳐 캐물을 때 비로소 ‘예, 아니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특별히 과묵한 성격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관심사가 아닐 때에 그렇다는 얘기고, 정작 그에게 말할 기회가 주어질 때면 우렁찬 목소리로 좌중을 압도했으며, 말을 시작할 때면 아무도 중간에 끼어들 수 없는 분위기로 이끌어갔다. 이러한 사위의 좀 강한 면을 잘 아는 장인 이 보천은 ‘지원이는 재주와 기상을 보건대 절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니 훗날 뛰어난 사람이 될 것이다. 다만 옳지 못한 자를 질책하고 미워하는 것이 너무 심하고 영특한 기상이 너무 두드러져 걱정이다’라고 염려했다. 박지원은 젊을 때 이 윤영에게서 주역을 배운 일이 있었는데 이 윤영은 자기 아들 이 희천을 친구로 맺어 주었다. 이리하여 박지원과 절친한 사이가 된 이 희천이 1771년 사형을 당하고 말았다. 이유인즉 조선 태조 이 성계의 부친이 이 인임이라고 적힌 중국 책을 가지고 있다가 이 책의 수거령이 내려졌을 때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박지원은 과거에 장원급제 해 놓고 있었으나 이로부터 과거와 벼슬은 내다 버렸다. 거기다 이런 책을 가진 자들을 중벌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 자신의 할아버지 벌이고 보니 죄책감이 가중된 것이다. 이 충격으로 그는 며칠이고 세수도 안 하고 밥도 안 먹는 일이 흔했고 종일 잠을 자거나 책만 보거나 술로 벗 삼는 등 세상사에 염증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에게 빌붙어 뭔가 해 보겠다는 기대에 들떴던 사람들은 모두 그를 떠나갔지만, 홍대용, 정 철조, 유득공, 박제가, 이덕무, 서 이수, 백 동수, 유언호 등과의 교제는 변함이 없었고 또 이들로부터 많은 도움도 받았다. 그의 절친한 지기였던 지동설의 주장자 홍대용이 죽자 예술적, 음악적 취향이 같았던 박지원은 평소에는 늘 홍대용과 음악을 즐겼지만 그 이후 한 번도 음악을 가까이 해 본 일이 없다,

 후한 말기 어지러운 틈을 타 장각이 이끄는 황건적이 세상을 어지럽히다가 관군과 의병의 합동 작전으로 소탕되고, 이어 동탁이 천자를 끼고 정권을 농단하다가 처단 된 후 조조가 다시 대권을 잡은 후 여포, 원술, 원소 등 큰 세력들을 모두 병합하여 더 큰 세력으로 불어난 조조가 형주로 처내려와 형주태수 유표가 죽고 난 형주 또한 접수하였다. 이 때 유비는 아직도 아무런 근거지가 없이 떠돌다가 형주의 일부인 신야성에 은신하고 있던 중 조조의 대군을 맞아 대패하고, 또 다른 형주의 일부인 강하로 쫓겨 와 있는 외로운 처지가 되었다. 조조는 회군하지 않고 전선으로 만들고 수군을 조련하여 동오(東吳)의 손권과 강하의 유비를 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이 때 유비의 신하인 제갈량은 오주 손권의 신하인 노숙의 초청을 받아 동오로 갔다. 오주 손권이 제갈량에게 물었다. ‘그대는 요즈음 유 예주(유비)를 도와 조조와 같이 싸웠다 하니 반드시 그 허실을 잘 알고 계실 것이오. 그것만 들려   주어도 내겐 큰 가르침이 될 것이요.’ ‘유 예주께서는 군사가 적고 장수가 모자란 데 다 신야는 또 땅이 작고 양식까지 모자란 형편이었습니다. 어떻게 조조와 맞설 수 있었겠습니까 ? 우리가 조조와 싸웠다는 것은 모두 부풀려진 소문일 뿐입니다.’ ‘그토록 조조의 군세가 크단 말이오 ?’ ‘마군, 보군 수군을 합쳐 백오십 만이 넘습니다’. 조조의 세력을 줄여 말해야 손권이 싸울 마음이 날 것인데 오히려 더 부풀려 말하니 주전파인 손권의 수하 노숙으로서는 기가 찰 일이다. ‘조조 밑에 있는 자들 중에 싸울 수 있는 장수들이 얼마나 되오?’ ‘지혜롭고 꾀 많은 모사와 어떤 싸움이든지 능히 치를만한 장수들도 닐 이첨은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조조는 강을 따라 진채를 세우고 전선을 마련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강동이 아니라면 달리 노릴 땅이 어디 있겠습니까 ?’ ‘만약 조조에게 우리를 삼킬 뜻이 있다면 우리는 싸워야겠소? 싸우지 않아야겠소?’ ‘바라건대 장군께서는 지난 힘을 헤아리시어 조조에게 대처하도록 하십시오. 동오 땅 백성들을 이끌고 중원에 버티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일찍 조조와 관계를 끊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나 맞서 버틸 수 없다면 여러 모사들의 의논대로 따르지 못할 까닭이 어디 있겠습니까? 군사를 세워두고 갑옷을 묶어 바친 뒤 조조를 선기면 될 것입니다’. 제갈량의 대답이 싸우라는 것인지 항복하라는 것인지 애매모호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유 예주는 조조에게 어째서 항복하지 않으시었소 ?’ ‘유 예주는 제실(帝室)의 후예요 세상의 뭇 선비들이 우러르는 영웅이신 우리 유 예주께서 어찌 조조 따위에게 항복하는 욕을 입을 수 있겠습니까? 뜻대로 되고 안 되고는 하늘에 달린 일, 설령 끝내 싸움에 져서 죽게 되더라도 스스로 몸을 굽혀 다른 사람 밑에 설 수 없는 일입니다.’ 자기 주인인 유비는 애초부터 손권과는 격이 다른 인물로 추켜세움으로써 손권을 겁 많은 졸장부로 만든 것이다. 속으로 부아가 치민 손권은 자리를 떠 버렸다.
 노숙이 물었다. ‘선생은 무슨 일로 그렇게 까지 말씀하셨소? 우리 주공께서 너그러웠기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경을 칠 번하지 않았소? 우리 주공을 너무 깔보는 말씀이었소.’ ‘어찌하여 남의 헤아림을 그리도 받아들이실 줄 모른단 말이오. 조조를 쳐부술 계책이 내게 있으나 그분은 내게 그 계책을 묻지 않으시고 항복할 것인가 아닌가만 물으셨소. 그분이 묻지 않으시는데 내가 어찌 대답하겠소. 그 바람에 얘기가 잘 못 흘러 그리 된 것이오. 나는 조조의 백만 대군을 개미 떼 만큼도 여기지 않소이다. 내가 손을 한 번 댄다면 그것들은 가루가 되어 흩어질 것이오.’ 그러자 노숙은 급히 손권과 제갈량을 다시 만나게 하고, 그 자리에서 제갈량는 조조의 위세에 대하여 손권을 안심시키면서 조조를 깰 비책들을 상의하게 되고 이로써 향 후 오 촉 동맹의 발판을 마련함과 동시 저 유명한 적벽대전에서 승리의 기초를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게 되었다.

 

※ 본 칼럼은 故서재순 본지 논설위원이 미리 보내주신 유작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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