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벌 시조시인의 시조비 건립 제막식
10월 1일 건강백세공원 연꽃광장에서 열려...

 한국시조문학계를 대표한 시조시인 서벌 시인의 시조비 제막식이 고성군민의 날인 10월 1일(월) 오후 1시 건강백세공원 연꽃광장에서 거행된다. 시인은 고성군 영현면 봉발리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봉섭, 호는 평중이며, 서벌은 필명이다.
 광복이 되던(1945) 해, 현 보건소 입구 수남리 578번지 외가인 남포로 이사하여, 1970년 군 제대 후 32세 때 서울로 떠나실 때까지 막벌이 부모님을 도우며 타고난 천부적인 시적 재능을 키웠다. 그 원천의 힘이 바로 가난이고, 고향이고, 성장기 꿈이 서려있던 대독천이 아니었나싶다.
 선생은 언변이 좋아 누구나 쉽게 다가가긴 하지만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성정을 가졌으며, 자신만의 고유한 서정적인 시세계를 구축한 입지전적인 시인이며, 한국시조문단의 거목으로 자리매김 하셨고 후배양성에도 큰 힘을 쏟으신 분이셨다.
 선생은 자신만의 어법을 창안하여 개성과 독창성 있는 시조창작으로 시조의 대중화를 이끌었고 평론, 시조론을 통해 이론정립에 기초를 마련하였으며 사설시조, 동시조 보급에 앞장서야할 시조인의 사명을 모범적으로 실천한 시조부흥의 선구자이셨다.

 
 1961년 처녀시조집 ‘하늘색 일요일’을 시작으로 ‘각목집’, 손으로 직접 쓴 사설시조집‘서벌사설’, ‘휘파람새 나무에 휘파람으로 부는 바람’과 4인 사화집‘최재복, 허유, 이정림, 서벌’을 출간하셨다. 수상으로는 공보부 주최 신인예술상 수석 상‘낚시심서’, 정운시조상, 한국시조시인협회상, 중앙일보 시조대상(본상), 남명문학상(본상), 2003년 ‘뒤늦게 캔 느낌’의 가람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하셨다.
 한국시조단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셔야 할 선생께서 갑자기 2005년 뇌졸중으로 쓰러져선 끝내 회생하지 못하고 소천하셨다. 선생을 잃은 한국시조문단과 고성문인들에겐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었고 슬픔 또한 컸다.
 늘 타향에 살면서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삶의 애환을 민족 고유의 전통시인 시조에 담아 노래하신 생전의 선생 맘과 통했을까?
 젊은 날 시심과 꿈을 키우며 걸었던, 바다가 보이는 대독천 옆 연꽃광장에서 고성 문인들이 서벌 선생을 기리는 뜻 깊은 시간을 마련한다.

 군민들과 각지의 여러 문인들을 모시고 서벌 시인의 시조비 제막식 행사를 치른다. 제막식에 이어 고성군민의 날 기념 ‘한글백일장’도 같은 장소에서 오후 2시에 개최된다. 많은 학생들과 군민들의 참여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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