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말기 영제 때 나라가 어지러운 틈을 타 들불처럼 그 세력이 커져나가던 도적의 무리 황건적이 관군과 의병의 토벌 작전에 밀려 그 주된 세력이 꺾이자 그 잔적 소탕 작전에 들어갔다. 탁군 누상 촌에서 의병을 일으킨 유비, 관우, 장비의 세 의형제는 거병 후 줄곧 승첩을 올려 큰 공을 세웠건만 그 공을 인정받지 못하자 실망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려다 관군토벌대장 중 한 사람인 주준이 황건적의 총수인 장각의 동생 장보가 웅크려 있는 양성(陽成)을 함락시키지 못해 애를 먹고 있을 때 유비의 의병이 지원에 나섰다. 유비가 주준에게 말했다. ‘이 양성을 깨는 일은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루만 말미를 주신다면 제가 방도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 안의 황건적들에게 글을 써서 화살에 달아 쏘아 넣었으니 그 내용은 ‘장각, 장량 등은 다 죽었고 그 수하들은 모두 항복했으니 너희들도 살 길을 찾아 항복하라’.는 것이다. 이 때 성 안에서는 엄정(嚴政)이라는 장보의 수하가 모든 일을 지휘하고 있었는데 그는 이미 모든 일이 틀린 줄 알고 자고 있는 장보의 목을 베어 나머지 수한들과 함께 관군에게 투항해 왔다. 이 승전을 주준이 유비에게 치하하자 유비가 말했다. ‘모두가 장군의 복덕이올시다. 이 유비는 잠시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으스대는 여우를 본떴을 뿐입니다. 유비 특유의 겸양이다.
황건적 토벌이 끝나자 논공행상이 있었는데 여기서도 뇌물이 큰 역할을 했다. 유비는 탁군에서 모집한 오백 명의 의병들을 먹이는 일도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처지인데 뇌물을 바칠 여력도 없을 뿐 아니라 설령 있다 해도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이제 의병을 데리고 낙향하여 농사짓고 돗자리 짜던 옛날로 돌아가려던 유비에게 과거에 노 식 선생 문하에서 동문수학하던 선배 장균(張鈞)을 만나 그에게 그간의 황건적 토벌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었더니, 그 장균이 힘 써 준 덕분으로 안희 현 현감 자리를 얻게 되었다. 그간의 공적을 되돌아보면 턱없이 억울한 일이지만 황제가 임명한 자리이니 그 자리를 받아들였다. 유비가 취임한지 넉 달 정도 접어들면서 민심을 잘 수습하여 자리가 안정되려 할 즈음 조정에서는 논공행상이 잘못 되었다며 독우(督郵)라는 관원이 안희 현으로 나왔다. 유비가 성 밖 까지 나가 맞아들이며 극진히 예를 올렸지만 독우는 말 위에 앉은 채 말 채찍을 들어 답례를 대신했다. 사람이 못 날수록 쥐꼬리 만 한 권력을 잡으면 턱없이 우쭐대게 되어 있다. 독우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관우와 장비는 몹시 노했다. 당장 말에서 끌어내려 허리를 꺾어주고 싶었지만 두 아우의 성질을 아는 유비의 엄한 눈길에 간신히 화를 눌렀다. 독우가 웬만한 사람이었더라면 유비를 알아볼만한 안목 까지는 없었더라도 조금이라도 조심성이 있었더라면 그 자리의 심상찮은 공기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독우는 스스로 천자라도 된 듯 남면(南面)하여 높은 자리에 앉고 유비는 계단 아래 시립하여 서게 했다. 독우가 거드름을 피워가며 물었다. ‘유 현위는 어디 출신인가 ?’ ‘이 유비는 중산정왕의 후예로 탁군 탁현에서 왔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공으로 이 곳 현위에 오르게 되었는가 ?’ ‘황건적을 무찌른 서른 번의 크고 작은 싸움에서 약간의 공이 있다하여 조정에서 내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유비는 의병을 일으킨 일에서부터 얘기를 꺼냈다. 하지만 독우는 유비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큰 소리로 꾸짖기 시작했다. ‘듣자듣자 하니 네놈이 너무 하는구나. 앞서는 황친(皇親)임을 사칭하더니 이제는 군공(軍功) 까지 꾸며 대 ?’ 방금 조정에서 조서를 내려 찾고 있는 자가 바로 너 같은 자가 아니고 누구 이겠느냐 ? 마땅히 위에 고하여 네놈이 도둑질한 벼슬을 떼게 하리라?‘ 유비는 하도 기가 막혀 역관을 물러나와 현청으로 물러나 생각해도 독우의 생트집이 무엇 때문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러자 현리(아전)들이 유비에게 ’독우가 저처럼 생트집 잡는 것은 뇌물을 바라서이니, 뇌물로 구슬러 보십시오‘ 한다.
밤을 새워도 독우의 손에 뇌물이 들어오지 않자 다음 날 독우는 유비의 손발인 현리를 잡아들였다. 어떻게든 유비가 백성들을 괴롭혀 재물을 빼앗았다는 자백을 얻어 보려고 했지만 끝내 허사였다. 현리에게 고문을 가하는 소리가 현청에 까지 들리자 유비는 역관으로 찾아가 독우에게 보기를 청했다. 어떻게든 죄 없는 매질을 당하고 있는 현리를 구해주고 싶어서 이었다. 하지만 독우는 유비가 아무리 간청해도 들여 보내주지 않았다. 한 편 꾸중을 듣고 홧김에 낮부터 술을 퍼마신 유비의 의제 장비는 취한 가운데도 일의 결말이 궁금해 말을 타고 역관 쪽으로 가 보았다. 장비는 독우의 하는 행패와 모여 든 백성들의 근심 어린 걱정에 더욱 화가 나 역관의 문을 부수고 독우를 수종하는 수하들을 땅바닥에 팽개친 다음 독우 앞으로 나아갔다. 독우가 소리쳤다. ‘어떤 놈이냐 ? 어떤 놈이 감히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는 일에 훼방을 놓으려 드느냐 ?’ ‘백성을 해치는 이 도둑놈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느냐 ?’ 한 마디 큰 소리로 꾸짖고는 다짜고짜로 독우에게 덮쳐 갔다. 주위에 남아있던 독우의 졸개들이 분분히 창칼을 뽑아들고 막아섰지만 대문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림없는 일이었다. 독우가 놀라 달아나려고 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장군, 살려 주십시오’ 이제는 사정을 했으나 그 말이 장비의 귀에 들어갈리 없다. 장비는 독우의 머리채를 잡아 마루에서 끌어내린 뒤 그대로 참죽나무 말뚝에 묶고는 버들가지를 꺾어 와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권력이라는 호랑이를 업은 독우의 행패도 그것으로 끝이 났다.
이 소동을 알게 된 유비와 관우는 겨우 장비를 뜯어말려 그 자리는 일단락 됐다. 그리고 삼 형제는 현위 자리를 버리고 은거하여 훗날을 기약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