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요즈음 충신(忠臣)이라고 한다면 비굴한 아첨꾼의 뜻이 포함된 모욕이라니 시대가 변해가고 있다 하더라도 너무 심한 느낌이 든다. 충(忠)은 가운데 중(中)자와 마음 심(心)자가 합성된 글자다. 가운데 중의 긴 세로 획(1)은 긴 장대의 상형이다. 부족사회 시절에 마을 가운데 있는 족장의 거처에 깃발을 세워 부족의 상징으로 삼을 때 그 깃발로 사용한 장대이다. 여기서 입 구(口)는 부족의 거주 범위이고 마을 추장의 범위가 미치는 전역(口)의 한 가운데 세운 통치권의 상징인 깃발이니, 깃발은 바람에 나부껴 흔들릴지라도 마음은 한결같음을 상형 화 한 글자이다. 그 충성의 대상은 물론 내가 아닌 남이어야 한다.. 충심이 제대로 발휘되기 위하여 는 그 충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나아갈 길이 확고히 자리 잡혀 있어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춘추전국시대에 악의(樂毅)라는 사람은 연(燕)나라 연나라 소왕 때 상경의 아래 자리인 아경(亞卿)으로 임명되어 그 자리에 오래 있었다. 악의가 연나라로 오기 전 연나라는 제 나라와 싸워 크게 져서 복수하려고 절치부심하고 있었다. 당시 제나라 민 왕은 강성하여 초나라 장수 당말을 중구(산동 성)에서 깨뜨리고 서 쪽 삼진(한. 위. 조)을 관진(河北)에서 깨뜨렸다. 그 후 삼진과 협력하여 진(秦)나라를 쳤다. 또 조나라를 도와 중산 국을 멸망시켰으며, 송나라를 쳐서 땅을 넓히기를 천여 리, 진나라의 소왕과 우열을 다투면서 제호(帝號)를 칭했다. 제나라 민 왕은 이 모든 일을 뽐냈지만 백성들은 계속되는 전쟁의 부담과 과중한 세금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자 연나라 소왕은 악의에게 제나라 토벌에 대하여 물었다. ‘제나라의 광대함은 환공(桓公)의 패업에 근거한 여파로서 토지가 넓고 인구가 많으므로 독단으로 친다는 것은 용이하지 않습니다. 왕께서 꼭 제나라를 치시려면, 조나라, 초나라, 위나라와 연합해서 공동으로 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대가 세 나라를 돌며 동맹을 맺고 오시오‘ 그렇게 되어 악의는 조 나라의 혜문 왕과 약속을 하고 다시 초. 위나라와 연합한 다음 조나라로 하여금 진나라도 함께 연합하게 하였다. 제후들은 제나라 민 왕의 오만함을 미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 다투어 합종하고 연나라와 함께 제나라를 치자고 했다. 악의는 연나라로 돌아와서 그런 내용을 보고했다. 연나라 소왕은 전 병력을 동원하고 악의를 상장군으로 삼았다. 조나라 혜문왕은 상국 인수를 악의에게 주었다 이렇게 해서 악의는 조. 초. 한. 위. 연의 연합군을 통솔하여 제수(濟水) 서쪽에서 제나라 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제후들의 군사는 싸움을 끝내고 돌려보내었으나 악의는 연나라 군사를 이끌고 제나라 군사를 추격하여 도읍 임치에 육박했다. 제나라 민 왕은 제수에서 패하자 산동 거현을 지키고 있었다. 악의는 제나라에 머무르면서 정령(政令)을 폈지만 제나라에서는 성문을 모두 닫고 수비태세만 갖추고 있었다. 악의는 도성인 임치를 깨뜨리고 제나라의 재보(財寶)와 제기(祭器)등을 빼앗아 모두 연나라로 보냈다. 연나라 소왕은 전리품으로 거두어 돌아가면서 악의에게는 다시금 군대를 이끌고 나아가서 항복하지 않은 제나라 성읍들을 치라고 명했다. 악의는 제나라에 주둔하면서 공격하기를 5년, 제나라 70여 성을 함락시키고 그 곳을 모두 군. 현으로 만들어서 연나라로 귀속시켰다. 그러나 거와 즉묵만은 항복하지 않았다.

 그 동안 연나라 소왕이 죽고 그의 아들 혜왕이 즉위했다. 혜왕은 태자 때부터 늘 악의를 마땅치 않게 생각했기 때문에 혜왕이 즉위하자 그 소식으로 들은 제나라의 전단(田單)은 첩자들을 연나라에 들여보내어 다음과 같은 말을 퍼뜨렸다. ‘제나라에서 아직 항복하지 않은 성은 두 개 뿐인데, 악의가 빨리 공격하지 않은 것은 연나라의 새 왕과 사이가 나쁘기 때문에 전쟁을 오래 끌면서 제나라에 있다가 제나라의 왕이 되고 싶은 야심이 있어서라더라. 제나라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악의와 교체하여 다른 장수가 제나라로 오는 것이라 하더라.’ 이에 연나라 혜왕은 원래 악의를 의심하고 있던 터라 첩자의 말을 듣자 그 말을 곧이듣고 기겁(騎劫)을 장군으로 임명하고 악의를 소환했다. 악의는 소왕이 자기를 마땅치 않게 생각하기 때문에 교체되는 것을 알아차리고 서쪽으로 도망쳐 조나라에 투항했다 조나라에서는 악의에게 중책을 맡겨 이웃 나라들을 방어하게 했다. 그러자 제나라는 악의가 파면된 틈을 노려 연나라 장수 기겁과 싸우면서 속임수를 써서 즉묵의 성 밑에서 기겁이 이끄는 연나라 군을 크게 이겼다. 이어 연나라 군사를 추격하여 하상(河上) 황하 근처에 이르러 잃었던 제나라 성을 차례로 회복하였다. 연나라 소왕은 뒤늦게 악의를 기겁과 교체했기 때문에 크게 패하고 수많은 장졸들을 잃었을 뿐 아니라 빼앗았던 제나라 땅을 모두 잃은 것을 크게 후회했다. 그리고 악의가 조나라에 간 것을 원망하고 조나라가 악의를 앞세워 연나라가 피폐한 틈에 연나라를 치는 게 아닌가 걱정해서. 그래서 사신을 파견하여 악의를 달래면서 사과했다.
‘앞서 선왕께서는 나라를 들어 장군에게 위임하고 장군은 연나라를 위하여 제나라를 깨뜨림으로써 선왕의 원수를 같은 일은 천하의 누구 한 사람 장군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소. 과인인들 어찌 그 때 일을 잊었겠소. 그 때 마침 선왕이 붕어하서 내가 새로이 즉위했고 좌우의 근신들이 나를 잘못 인도했던 것이오. 내가 장군을 기겁과 교체시킨 것은 장군이 오랫동안 나라 밖에 있으면서 풍우에 시달린 노고를 생각하여 잠시 동안 소환하여 휴양시키고, 또 일을 꾀하려 했던 것이오. 그런 것을 장군이 나와 사이가 나빠 그런 것이라고 잘못 듣고 연나라를 버리고 조나라에 투항했구려. 장군이 자신의 일을 스스로 판단하는 것은 좋다 치더라도 선왕께서 장군을 후대한 성의는 잊지 말고 보답해야 할 일이 아니겠소.

 그러자 악의가 답신을 보냈다. ‘저는 불초한 몸으로 왕명을 받들고 측근의 마음에 따를 수 없어서 선왕의 명철하심을 손상케 하고, 임금의 높은 뜻을 해칠까 염려되어 조나라로 온 것입니다. 이제 임금께서는 사신으로 보내시어 제가 한 행동을 죄악이라 해서 책망하시는데 임금의 측근은 선왕께서 저를 총애하셨던 까닭을 알지 못하고 또 제가 선왕을 섬기던 심정을 밝히 알지 못할까 염려되어 서면으로나마 대답해 드리는 바입니다. 저는 어질고 성스러운 임금은 가깝다는 이유로 벼슬과 녹을 주지 않으며 공이 많은 사람에게만 상을 주고, 능력과 재주가 있는 사람에게만 벼슬을 준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신하의 능력을 살펴서 관직을 맡기는 것은 공업을 이루는 임금이며, 임금의 언행을 논하여 임금을 섬기는 것은 명성을 올리는 선비입니다. 저는 은밀히 선왕의 하시는 일을 살폈습니다. 세상의 평범한 임금과 달리 높은 뜻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제나라를 칠 때에도 저의 모든 제안이 받아들여져 동맹군을 결성한 다음 제나라를 제수에서 무찔렀을 때 우리 연나라는 춘추 오패이후 공적에 있어 선왕을 따를 자가 없을 것이며 선왕께서도 아주 만족하셨던 일입니다. 그런 까닭에 토지를 나누어 봉해 주셔서 신으로 하여금 소국의 제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자신의 힘도 생각해 보지 않고 임금의 명령을 받들고 가르침을 받는다면 큰 죄는 짓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여 그 명령을 사양치 않고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중략> 

 치자가 할 일은 국론을 집중시키고 충성심을 불러일으키고 그 충성심이 향할 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그 충성심을 받아들일 자세를 갖추는 일임을 말해준다. 악의의 시대에서 수백 년 후 삼국시대에 이르러 관중과 악의는 제갈량(諸葛亮)에게 사표(role model)가 되었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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