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우리의 머릿속에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글자 중 하나인 한자(漢字)를 중국어라고 생각하고 변방인 우리나라에서 문화의 선진국인 중국으로 부터 수입하여 우리 문화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심지어는 이름 있는 사가(史家)들마저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한자(漢字)라는 글자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한자야 말로 우리 고유의 글자였음이 명료하게 드러나게 되어 있다. 한자의 연원을 고대 부족 왕의 한 사람이었던 창힐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가 대단한 언어학자이자 한자를 정립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인정해야 하겠지만, 어느 언어이든 어느 특정인의 발명품인 경우는 드물고 어느 한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질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사회 문화가 일정 단계로 발전하게 되면 기록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어 있고 그 기록의 수단이 문자이다. 사람들이 집단생활과 노동의 과정에서 사물을 관찰하게 되고 이를 나타내고자 하는 생각과 내용을 토대로 하여 창조해 낸 것이 문자인 것이다.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애초의 문자 모양과 의미도 달라지는 가운데 끊임없이 보완되어 나가는 것이 문자의 생리다.

 먼저 천(天)에서 살펴보면, ‘천’이란 발음은 ‘텐’의 구개음화임을 간단히 보여준다. 이 ‘텐’의 이형(異形)으로 ‘탄(단)’이 있다. 우리 종족의 일부인 흉노의 우두머리 또는 왕을 선우(單于)라 하는데 이는 광대하다는 의미이며 ‘선우’의 ‘선’과 천(天)이 같음을 의미한다. 흉노에서는 천(天)을 탱려(撐黎)라 하고 텡구리 라고도 하니 우리가 머리의 비어(卑語)라고 생각하는 ‘대가리’ 또한 이 계열이다. 우리의 국조 단군(檀君)의 ‘단’은 천의 ‘텐’에서 이형(異形)인 ‘탄(당)’ 계열로 분화한 형임을 보여준다. 또 발음에 있어서도 ‘단’에서 ‘시안’이라는 이형으로 분화하면서 후대에 ‘단군’이 ‘선우’로 분화되어 나간 것이다. 천(天)의 의미는 지고무상(至高無上)으로 일(一)과 대(大)가 합성된 글자이며 이 일(一)과 의미를 통하게 하기 위하여 ‘선’ 또는‘ 단(單)’을 사용한 것이 ‘선우(單于)인 것이다. 또 이 천(天 단)의 의미와 발음 속에는 조(鳥) 계열이 포함되는데 이는 원래 우리가 집에서 기르는 닭(鷄)이 공중에 높이 날아온다는 의미에서 ’텐 또는 탄(天)‘의 이전 형태가 ’터르그(닭 鷄)‘임을 보여주는 것이며 여기서 후대의 음가인 ’도(鳥 또는 조)‘로 되고 ’텐‘으로도 분화된 것이다. 또 좀 장황한 감이 들겠지만 ’텐, 터르그, 턱‘ 계열의 우리 고유어 ’언덕‘에서 ’언‘이 없는 ’‘덕’이 또한 높다는 의미이고 이 계열이 일본의 ‘다까(高)’ 또는 ‘다떼모노(建物)’등에서 찾을 수 있다.
 위의 조(鳥)는 다시 ‘터그’와 ‘토르(돌궐, 터키)’로 분화됨을 보여준다. 이 ‘터르’ 계열에서 새의 새끼를 의미하는 ‘추(隹)’로 된다 ‘토르’ 계열에서는 일본어인 ‘도리(鳥, 鷄)’가 있다. 이 조(鳥)는 상고인들에게 신앙의 대상이었다. 새는 천계의 사자로서 하늘의 의지를 인간 세계에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인간에게 신앙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 언덕의 ‘덕(德, 高)이 논'둑' 밭'둑' 같은 높다는 의미가 되고, 흙을 쌓아 올려 평평하게 만든 '대(臺)'의 형을 취하기도 한다. ‘조(鳥)’의 음가를 살려 ‘적(狄)’의 형으로 분화되기도 했으니 그것이 ‘북적(北狄)’이다.
 
 우리는 한밭(大田 큰 밭)을 대전이라 하여 지금도 이를 지명을 쓰고 있다. 인간 세상에는 어떤 형태로든 지배구조가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의 하나가 ‘왕(王)이다. 이 왕은 천. 지.   인(天. 地. 人)의 셋(三)의 한 가운데에 막대기 1로 수직으로 연결하여 천지인 모두를 통합하는 자를 왕으로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국조 단군을 단군’왕‘검이라고도 하고 단군’환‘검이라고도 한다. ’환‘이든 ’왕‘이든 이는 크다(환 또는 한은 大)의 의미 이 한(大)’에서 ‘ㅎ'이 없어진 ’왕‘으로 된 것이고, 또 발음의 이형으로는 ’간(干)‘이 있다. 간의 형을 취할 때 ’박 혁거세 ‘거서간(居西干) 또는 후대 왕인 마립간(麻立干)처럼 사용한 것이 그 용례이다.
 지금 한자(漢字)로 불리는 문자는 원래 중국어를 표기하기 위한 문자가 아니었다. 이 문자는 그림 문자에서 회화문자의 단계를 거쳐 점점 그림의 추상화와 언어음과의 결합을 통하여 문자로 진행되어 나간 것이다. 오늘날 이 문자의 기원을 갑골문 이전의 단계, 용산 문화권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발굴된 부호의 형태까지 소급하려는 노력이 있었으나 체계적으로는 그 최초의 형태를 갑골문에서 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갑골문 가운데는 형태가 무엇을 상형 화 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것도 상당히 있다. 그렇더라도 초기 그림의 형태를 완전히 벗어났다고 볼 수는 없는 요소들이 많이 내포되어 있다. 한자의 초음(初音)은 대부분 한국어가 그 바탕에 깔려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어의 음과 결합했던 단계를 벗어나 이 문자에 결합했던 음가가 중국어에 들어가 중국어의 문자로 자리바꿈을 하면서 이 음이 점차 중국어의 음운 체계로 개편되기에 이른 것이다. 앞의 일부 예문을 통하여 비화하적(非華夏的)이면서도 한국적 요소들을 드러내어 보이고 있다.
 
 한자는 처음부터 언어음을 표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문자는 아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기억을 방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림에서 출발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 개념만 표시했던 그림이 나중에 언어음과의 결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초기의 그림에서 출발한 그림(문자)를 초문이라 한다면 초문에 결합한 언어음을 초음이라 할 수 있고 여기서 출발한 음이 한국어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음이 발견된다. 지금 한자의 독음을 근원을 한국어 아니고는 찾을 길이 없다. 그런 관점에서라도 중국의 상고사가 바로 우리의 상고사라는 결론에 귀착할 수 밖에 없다. 중국이 자랑하는 태호복희, 한, 은, 주 시대까지 역사란 그들의 역사가 아닌 우리의 역사라는 말이다. 춘추 전국시대에 천하를 통일한 진(秦) 또한 우리 민족의 지류이다. 주(周)의 시조인 희발(姬發) 또한 우리 종족의 일부이지만 이들은 화산(華山)과 하수(夏水) 지역에 진출했던 화족과 결탁해서 그들의 세력을 빌려 우리 민족을 동으로 밀어 낸 것이다. 그들은 지금의 한자(漢字)를 이민족 문화라 하여 폐기하려고 시도해 보았으나 한자가 아니고는 문자 생활이 어려워짐에 따라 이 문자에 화족들의 언어체계를 접목시켜 이민족적 색채를 지워 없애려고 노력해 온 것이다.
 그들의 상고사에는 조선(朝鮮)이라는 국호는 사용한 일이 없고 다만 사마천의 사기에만 조선열전으로 수록하고 있으나 이는 도둑의 무리 위만 정권에 가리키는 말일 뿐 단군조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사서에는 견융, 산융, 동호, 오환, 선비, 흉노, 거란, 말갈, 돌궐과 같은 용어가 나오는데 이들이 바로 단군조선의 본체이자 단군조선 멸망 후 분리되어 나간 종족들이다. 역사를 바로 인식하고 바르게 전하는 것, 이보다 더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이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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