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조선 말기에 쇄국전치와 경복궁 중건으로 혹평을 듣기도 했지만, 어려운 가운데도 탁월한 지도력과 도량을 지녔던 흥선 대원군은 남달리 열린 정신의 소유자였다. 그는 대원군답게 남의 장점을 평가할 줄 알고 자신을 낮추고 안으로 다스려 나라를 다스려 나간 지도자였다. 흥선군 이하응이 방탕한 생활을 하고 다녔을 때의 일이다. 그 무렵 금 군 별장 이 장렴과 함께 명기 춘홍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언쟁이 벌어졌다. 이 장렴은 거친 말투로 대원군을 깎아내렸다. 당시 이 장렴 자신은 상당한 군직에 있었고, 상대방은 왕족이라고는 하나 별 볼일 없이 시정잡배들과 어울려 술이나 마시는 건달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원군이 분통을 터뜨리며 고함을 질렀다. ‘일개 군직에 있는 자가 감히 왕의 종친에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느냐’ 그러자 이 장렴이 대원군의 뺨을 후려갈기며 호통을 쳤다. ‘한 나라의 종친이 창가나 드나들면서 왕실을 더럽히고 있으니 나라 사랑하는 뜻에서 주먹으로 다스리는 것이야’ 이에 대원군은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슬그머니 그 자리를 빠져나와 버렸다. 세월이 흘러 대원군이 집권을 하게 되자 대원군은 이 장렴을 운현궁으로 불러들였다. 지난 날 대원군에게 뺨을 갈겼던 이 장렴에게는 여간 불편한 자리가 아니었다. 대원군은 이 장렴의 인사를 받자마자 대뜸 물었다. ‘이 자리에서도 군은 나의 뺨을 따릴 수 있겠는가 ?’ 이 장렴은 쾌활한 잠부였다. 그래서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대답했다. ‘지금이라도 대감께서 그 때 그 자리에서 했던 그러한 언행을 하신다면 이 손이 참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때릴 수 있으면 때리겠다는 말을 듣고도 대원군은 껄껄 웃으며 받아넘겼다. ‘일간 춘홍의 집에 한 번 갈까 했더니 자네가 아직도 뺨을 때릴 기세여서 못 가겠구먼’ 이렇게 대원군은 이 장렴과 한 동안 담소를 나누었다. 이 장렴이 물러갈 때 문 밖 까지 전송하던 대원군은 하인들을 불러 금위대장이 나가신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 날로 이 장렴이 당당한 금위대장으로 임명된 것이다.

 춘추시대에 진(晉)과 진(秦) 두 나라는 혼인으로 맺어져 매우 친밀하게 지내던 관계였으니 진 문공(晉文公), 진 목공(秦穆公) 등이 죽자 두 나라 간에는 크고 작은 전투가 끊이질 않았다. 진(秦) 나라의 용맹한 네 장수가 진(晉)으로 쳐들어 왔다가 매복에 걸려 그 중 한 사람이 포만자는 죽고 서걸술, 맹명, 백 을병 세 장수는 진(晉)의 포로가 되었다. 때는 춘추 오패 중 한 사람인 진 문공에 죽고 그의 아들인 진양공이 승전한 다음 국상을 치루고 있을 때 양공의 모후인 문영이 남편(진문공)의 상례에 같이 참석하였다. 그 자리에서 문양은 아들인 진 양공에게 물었다, ‘들은 즉 우리나라 군사가 대승을 거두어 맹명 등 적의 장수를 사로잡아 왔다 하니 이는 사직의 복이로다. 그 세 장수는 어찌 되었는가 ?’ ‘아직 죽이지 않고 가두어 놓았습니다’ 원래 진(秦) 나라와 우리 진(晉) 나라 사이에는 서로 혼인한 사이여서 극진한 사이였다. 그런데 맹명 등 몇 놈들이 공명과 벼슬을 탐하고 망령되이 칼과 창을 휘둘러 마침내 우리 두 나라의 극진한 정을 원한으로 바꾸어 놓았구나. 내 생각에는 진(秦) 나라 임금은 그 세 놈을 깊이 원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 세 놈을 진(秦) 나라로 돌려   보내어 진 나라 임금 손으로 그놈들을 죽이게 함으로써 우리 진(晉)과 진(秦) 두 나라 사이의 원망을 풀면 이 아니 아름다우리오 ?‘ ’그 세 장수는 자기 나라를 위해 싸운 사람들입니다. 겨우 잡아 온 것을 도로 도려 보낸다면 다음 날 우리 진 나라에 우환이 될까 두렵습니다‘ 문영은 다시 말을 이었다. ’장수가 싸움에 지면 죽는 법이다. 그건 어느 나라고 간에 다 실시하고 있는 국법이다. 초나라 군사가 싸움에 지자 무서운 초나라 장 수 성득신도 죽음을 받았다 어찌 진(秦) 나라만이 군법이 없으리오. 더구나 지난날에 우리나라 진 혜공을 진(秦) 나라에 잡혀 가 감금되어 있었다. 그러나 진 나라 임금은 어디까지나 진 해공을 예의로 대접했고 마침내 우리나라로 돌려 보내줬다. 진 나라는 이처럼 예의로서 우리나라를 대접햐T였던 것이다. 이제 싸움에 진 그까짓 구구한 장수 셋을 죽여서 까지 우리나라가 무정하다는 소문을 퍼뜨릴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  문영은 친정인 진(秦)을 위한 끈질긴 설득 끝에 진 양공은 진(秦)의 세 장수를 풀어주고 말았다.
 석방 후 진 양공의 신하 선진(先軫)이 달려와서 진 양공에게 물었다. ‘진(秦)의 포로들을 어디에 가두어 두셨습니까 ?’ ‘모부인이 하도 청하시기에 그 말씀을 좇아 그들은 이미 석방 했소’ 순간 선진은 진 양공의 얼굴에 침을 탁 뱉었다. ‘일을 이렇게 모르다니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로다. 장수들이 천신만고 끝에 겨우 잡아 온 죄수들을 그래 한 부인의 말맘 듣고 놓아 줄 수 있는가. 범을 놓아 산으로 돌려보내었으니 다음 날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으리오’. 신하가 아무리 격분했기로서니 주군의 얼굴에 침을 뱉은 일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진 양공은 깨달은 바 있어 소매로 그 침을 조용히 닦으면 ‘과인의 잘못이로다’ 하며 넘어갔다.

 얼마 후 이웃 책 나라 왕인 백 부호가 진(晉)으로 쳐들어왔다가 매복에 걸려 전사하고 말았다. 군의 총수였던 선진은 이제 진 양공에게 승전보만 전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바로 이 때 선진(先軫)은 아무도 몰래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적 수 십 명을 죽이고 전사해 버렸다. 나중에 그의 아들 선 차거가 아버지의 중군 영채로 가 보니 안에는 아무도 없고 표장(글월) 한 장만 남았는데 이르기를 ‘신 중군 대부 선진은 삼가 아뢰나이다. 전 날 신은 상감께 무례한 짓을 저질렀으나 상감께선 신을 죽이지 않고 다시 중임을 맡기셨습니다. 이번 싸움에 다행히 이겼으니 장차 상감께서 신에게 상을 내리실 것입니다. 신이 이번에 들어가서 상을 안 받는다면 이는 공훈이 있어도 상훈이 없는 결과가 될 것이며 만일 상을 받는다면 이는 무례한 짓을 해도 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결과가 됩니다. 공이 있는데도 상이 없다면 공을 세우라고 아랫사람에게 어떻게 권할 수 있으며, 무례한 짓을 해도 상을 받는다면 어떻게 아랫사람의 죄를 벌할 수 있겠습니까 ? 공과 죄의 구별이 분명하지 못하고도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 신은 지금 책 나라 군사에게로 갑니다. 상감께서 신을 죽이지 않는지라 신은 책 나라 군사의 손을 빌려 죽음을 당할 작정입니다. 신의 자식 차거는 장수로서의 지략이 있습니다. 족히 아비를 대신해서 상감께 충성을 다 하리이다. 이 선진은 죽음을 앞에 두고 상감께 영결을 고하나이다.’ 이를 본 선 차거는 ‘아버지는 책 군속에서 돌아가셨도다’ 하고 방성통곡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책 나라에서는 죽은 선진과 책 나라 왕 백 부호의 시신을 교환하자는 제의가 있어 두 시체를 맞교환했다.
주군의 얼굴에 침을 뱉고 뺨을 때려도 나라사랑이 그 바탕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저작권자 © 고성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