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어느 한 개인의 일생에도 부침과 흥망의 세월을 피해 갈 수 없는데 삶을 같이 해 온 겨레 또한 흥망성쇠를 피해 나갈 수는 없다. 기원 전 7197년 지구상 최초의 나라, 환인이 다스린 환국의 영역은 거의 아시아 전체였고, 이어 환웅이 다스린 배달국은 서쪽을 내어주고 동 쪽으로 이동하여 만주를 본거지로 지금 중국 본토의 중요 부를 차지하고 있었고, 단군이 다스린 단군조선 시대에 환국보다 조금 줄어들기는 하였으나 큰 변동은 없었다. 이어 삼국시대에도 중국의 동부 해안지역, 북부지역 등은 백제와 고구려의 땅이고 미개한 일본을 교화시켜 나갔다. 또 고려 때에도 우리 역사서에서 빼 내어버린 고조선의 고조선과 고구려의 후예인 금(金)과 요(療), 그리고 원(元), 청(靑)이 우리 역사에 편입될 때 사실 중국은 지금을 빼고 나면 고조선 세력의 각축장에 지나지 않는다. 광대하고 화려했던 고조선의 발자취는 멀리 이란, 이락(바빌로니아 수메르 환국의 제후국 須密爾國), 터키(돌궐),헝거리, 핀란드, 만주를 포함한  중국의 동부, 러시아의 동부, 인도의 카시미르(큰 소머리 牛頭), 네팔의 히말라야(흰 머리 雪山 白頭), 이 외에도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 고구려, 발해 시대에 걸쳐 베링 해를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했던 남북 아메리카의 원주민들, 이들 모두가 숨길 수 없는 고조선의 발자취를 말해주고 있다. 이제 섬나라 일본은 우리가 고조선 시대부터 개척에 나서 문화를 전수해 가르쳐 왔던 미개했던 종족이자 우리 조상들이 정착 해 그들의 조상이 된 것이지만 어느새 그들이 총포로 무장해 우리 강토를 강점해 한 동안 우리를 몹시도 괴롭힌 일이 있다. 장구한 세월 속에 반드시 한 번 쯤 거쳐야 할 순환(循環 cycle)의 과정이겠지만 답답하고 숨 막히는 세월이었다. 이제 그 질곡의 세월을 지나갈 때 얘기의 한 토막으로 들어가 본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기 배우였던 문예봉의 남편인 극작가인 임선규(林仙奎)가 그의 작품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내 놓았다. 주인공이 갑자기 앓아눕거나 갑자기 개인적인 일이 생겨 공연에 빠지게 되면 큰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연극의 성패가 주인공 배우의 역할에 달려있다 해도 좋을 만큼 중요했기 때문에 주인공으로 1역과 2역을 두어 교대로 출연하였다. 이 연극은 당시의 사회적 모순을 예리하게 파헤침으로써 관객들의 인기를 독점하였던 작품의 하나이다. 연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의 주제가인 ‘홍도야 울지 마라’는 김영춘(金英椿)의 노래로 콜럼비아 레코드에 취입되어 도시는 물론 농촌에도 널리 보급되었다. 이 연극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인 홍도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오직 오빠 하나를 의지하고 살았다. 오빠는 전문학교 학생인데, 학비 사정으로 더 이상 공부를 계속할 수 없게 되자 홍도는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여러 모로 애를 썼으나 돈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권번에 들어 기생 노릇을 하며 오빠의 학비를 마련해 준다. 권번이란 기생들을 고용하는 일종의 조합인데, 홍도는 오빠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유흥가에서 노래를 팔고 있지만 마음은 푸른 하늘 흰 구름 같이 순백하였다. 그러던 중 오빠의 친구 심 영철이란 학생이 홍도의 미모와 아름다운 마음에 글려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 연극은 이들의 사랑관계를 주초(主礎)로 하여 홍도의 눈물겨운 기생노릇으로 오빠가 전문학교를 졸업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졸업 후 심 영철과 홍도는 사랑이 무르익어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 후 심 영철은 부잣집 아들이었으므로 일본에 유학을 가지만 오빠는 돈 없고 권세 없고 일자리도 없어서 구직의 길을 헤매었다. 어느 날 홍도의 시어머니는 그녀가 부모 없이 자랐으며 기생 노릇을 하였다는 트집을 잡아 아들과 파혼시키고 부잣집 딸인 김 해영을 며느리로 삼기로 작심했다. 날이 갈수록 눈에 든 가시처럼 홍도를 미워하던 시어머니는 집에서 일을 시키던 집사와 짜고 홍도와 아들을 파혼시킬 궁리에 골몰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결국 홍도는 시집에서 쫓겨나 오빠에게 찾아온다. 그렇지만 홍도는 남편인 심 영철이 돌아오면 자기를 이해해 줄 것이고 시어머니와의 관계도 풀리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홍도가 그처럼 믿고 있던 심 영철은 일본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어머니의 말만 듣고 김 해영과 결혼하게 된다. 이 뜻밖의 소식을 알게 된 홍도는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하소연할 데가 없어 죽어버리는 게 나으리라는 작심도 하여 보지만, 더러운 누명을 쓰고 가기는 서러웠다. 이런 고뇌 속에 슬퍼하던 홍도는 자신이 당하고 있는 이 불행의 화근이 부잣집 딸 김 해영 때문이라는 단순한 생각에 빠져든다. 차라리 죽을 바엔 나의 사랑을 파탄시킨 김해영이를 죽이고 자신도 죽겠다는 생각에 미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모진 마음을 먹고 결혼식장으로 달려간 홍도는 과도로 예식을 치르고 있는 김해영이를 찌른다. 그러나 그 찰나 사람들이 밀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경찰에 체포된다. 하지만 결혼식장에 모인 사람들은 홍도는 죄가 없다는 것, 오빠의 학비를 대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기생 노릇을 했지만 마음은 순결하고 깨끗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연극 전편의 막이 내린다.

 당시 민간에 급속히 유행되었던 대중가요 ‘홍도야 울지 마라’는 이 연극 전편의 주제가이다. 이 노래의 전편에서 ‘너 혼자 지키려는 순정의 등불’이란 시어를 통해 보여주듯 홍도는 시어머니의 갖은 학대와 박해를 참고 오직 남편 하나를 믿고 사는 순정의 들불이었다. 그러나 봉건 사회에서 심 영철과 그의 어머니 같은 지배층의 사람들은 가진 것 없지만 깨끗하게 살고자 하는 그녀의 순정을 모질게도 밟아 버리고 만다. 그 때문에 이 노래의 2절에서는 이런 자들이 판을 치는 사회를 ‘세상은 구름이요 홍도는 달빛’으로 함축하였으며 홍도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달빛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3절에서는 오빠의 마음과 그 하소연을 대변한다. 연극의 후편에서는 홍도가 무죄로 석방되고 오빠는 마음에 없는 일자리를 버린다. 그리고 이들 남매는 몹쓸 세상을 원망하며 도시를 떠나 시골로 살 길을 찾아 떠나려 한다. 이 때 심 영철이 찾아 와 홍도 오누이에게 찾아 와 미안하게 되었다고 사죄한다. 그러자 오빠가 말했다. ‘자네의 속마음을 모르고 친구로 사귀었던 것이 잘못이고 사랑하는 누이동생 홍도와의 결혼을 승낙한 것이 애당초의 잘못이었네 기름과 물이 혼합될 수 없듯이 자네 같은 유산자와 나 같은 무산자는 친구가 될 수 없음을 너무도 늦게야 알게 되었네. 잘 있게. 이런 말을 남기도 오빠와 홍도가 시골로 떠날 때 후편의 막이 내린다.
 당시 이 연극의 주제가인 ‘홍도야 울지 마라’가 날개 돋친 듯 민간에 급속히 유행된 것은 이 연극의 전 편을 보고 난 열여덟 살의 한 소녀가 한강에 몸을 던져 자살한 사건과도 관련이 있다. 이자살 사건의 주인공 처녀 임 선아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의고 외삼촌 집에서 자랐는데, 열일곱 살 되던 해에 외삼촌이 매춘업자에게 조카를 팔아넘겼다. 이리하여 임 선아는 요정에 나가 웃음과 노래를 파는 기생이 된 것이다. 그녀가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의 전편을 보고 나서 자신의 운명이 연극의 주인공 홍도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여 한강에 몸을 던진 것이다.

 홍도야 울지 마라 (이서구 작사 김 준영 작곡 김 영춘 노래)

 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 속에 너 혼자 지키려는 순정의 등불
 홍도야 울지 마라 오빠가 있다 아내의 나갈 길을 너는 지켜라

 구름에 싸인 달을 너는 보았지 세상은 구름이요 홍도는 달 빛
 하늘이 믿으시는 네 사랑에는 구름을 걷어주는 바람이 분다

 홍도야 울지 마라 굳세게 살자 길녘에 핀 꽃에도 향기는 높다.
 마음에 젖어드는 서러운 앞길에 즐겁게 웃을 날이 다시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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