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리스 촌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깁스(Gibbs)는 당대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 ‘부자가 되는 비결을 좀 가르쳐 주세요’. 그의 부탁에 깁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세 가지 규칙을 지키고 있지요. 첫째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것. 둘째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것, 셋째는 하느님을 믿고 의심하지 않는 것이랍니다’. 깁슨의 말을 들은 그는 매우 실망하며 말했다. ‘그런 것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일 아닙니까 ? 좀 더 구체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없습니까 ?’ 깁슨이 웃으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모두가 아는 시실 이지요 .하지만 아직도 당신은 이를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자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실천한다면 반드시 부자가 될 것입니다.’ 창조적 노력에 개으름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을 때 성공에 보장된다는 대답이다.
 외롭게 혼자 사는 할머니에게 일 년에 한 번은 즐거운 날이 있으니 이 할머니의 생일 날 가족들이 모인다는 즐거움이다. 이 할머니의 가족에는 비슷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있었다. 이 아이들은 만나기만 하면 서로 할퀴고 꼬집고 싸움이 그치질 않으니 편한 날이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싸우지 않고 즐거운 생일잔치를 할까 고민을 하다가 묘안을 하나 생각해 내었다. 할머니는 가장 많이 다투는 아이 셋을 불러 모아 세 아이 앞에 세 개의 컵을 내밀었다. 그 컵 속에는 동전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먼저 시비를 걸든가 먼저 나쁜 짓을 하는 아이의 컵에서 동전을 하나씩 빼어서 참는 아이의 컵으로 옮겨놓고 일주일 뒤 그 컵에 남아있는 돈을 용돈으로 주기로 했다. 그 뒤 아이들은 이상하리만큼 싸우지 않고 일주일을 지냈다. 또 아이들의 입에서는 내년에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말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우리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모들은 어린 아이의 나쁜 버릇을 찾느라고 애쓰지만, 정작 원인을 찾아 바꿔주려는 노력에는 게으른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방법이나 아이디어를 찾기 보다는 윽박지르기를 먼저 하기 쉽다는 말이다.
 요즈음은 정규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어렵고, 오히려 학력이 낮을 때 취직자리 구하기가 좀 나은 편이다. 하지만 아무리 취직 문이 좁다고 해도 취업하는 사람은 있다. 그들이 어떻게 해서 남의 부러움을 사는 자리에 취직을 했을까 ? 답은 간단하다. 일자리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답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고 있지만 그 일자리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려는 노력에는 게으름을 보이고 있음을 접어놓고 취직이 어렵다고만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고 나서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창조적인 사람이라할 만하다. 창조적인 노력이 따라 인생의 행복이 보장된다는 사실을 잘 아는 이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결국 행복의 원천은 건강, 친구, 가족, 재산, 사랑 등이 있고, 이 모든 것의 공통점에 풍부한 창의성이 자리하고 있다. 창의성은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요구에 응하는 일 외에도 예측 못했던 일이나 불운에 대결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헬렌 켈러는 자신이 만일 사흘 동안 눈이 보일 수 있게 된다면 첫 날에는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어 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했다. 둘째 날에는 떠오르는 태양을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박물관에 가서 인류의 발전을 살펴보고 미술관에 가서 인간의 창조력을 보고 싶다고 했다. 셋째 날에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숲의 새 소리와 바다의 파도 소리를 듣겠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연극을 보고 인간의 예술성과 아름다움을 느끼겠다고 했다. 행복을 충족한다는 것이 마음먹기에 다라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시련이나 고난을 헤쳐 나가는 힘을 얻기 위해서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한 희망을 사색할 때 거기서 답을 얻을 수 있다. 삶에 대한 만족과 행복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조하려는 노력에 좌우된다 할 수 있다.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은 사람의 삶에 대해서, 자신에 대해서 냉철하게 사색하고 그 결과인 창조적 아이디어를 실현하려는 노력에서 행복을 찾아야 할 일이다.
 또한 이창조적인 노력은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에도 지대한 도움을 준다. 불안은 늘 새로운 발상을 접어둔 채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틈새를 엿보고 끼어든다. 창조적인 노력의 결여가 정신 불안정이나 신경 혼란의 원인임을 말해준다. 이 경우의 치료법으로는 환자의 마음을 창조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것 외에는 없다.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창조적인 사고로 전환시킬 수 있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없던 자존심도 생겨나고 강한 성취의욕이 샘솟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일과 즐거움이 일치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따분하기만 하던 일에 창의성의 발휘될 때 일 그 자체가 즐거움으로 변한다.
 슬픔이 없는 사람이란 없다. 이스라엘의 어느 마을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아들 하나만을 데리고 살던 젊은 과부에게는 그 아들마저 사고를 당해 잃게 되는 불행이 닥쳐왔다. 과부는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과 고통을 참을 수 없어 매일 낮밤을 울고만 지냈다. 보기가 딱해 그녀의 친구가 래비(rabbi 유대교 지도자)를 데리고 갔더니 과부가 래비의 옷자락을 잡고 울면서 사정했다. ‘제발 어르신의 기도와 마술의 힘으로 저의 아들이 다시 살아 돌아오도록 하여 주십시오. 저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영영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면 저도 죽고야 말겠습니다.’ 그러자 래비가 대답했다. ‘당신의 슬픔은 충분히 이해하겠소. 내일부터 당신은 여러 마을로 다니면서 아직까지 슬픈 일을 한 번도 당한 일이 없는 가정을 찾아 그 집에서 겨자씨 한 알을 얻어 오시오.  그러면 내가 당신의 그 고통과 슬픔을 말끔히 씻어 주겠소.’ 다음 날 이 과부는 제일 먼저 부잣집을 찾아갔다. 그런 부잣집에는 불행하거나 슬픈 일이 하나도 없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부의 사연을 들은 부잣집 여인이 말했다. ‘우리 집 또한 슬픈 일을 숱하게 겪었습니다’. 하면서 지금까지 겪은 슬프고 고통 받았던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으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높은 벼슬을 하는 집을 찾았다. 그 집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그리고도 각처를 돌아다니며 알아보니 모두가 슬픈 이야기뿐이었다. 그 동안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과부는 그 많은 사람들과 함께 불행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슬퍼하다 보니 애초의 목적은 사라져 버리고 슬픈 이야기를 해 준 많은 사람들에게 동정심이 생기고 자신의 슬픔을 잊어버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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