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공자의 뒤를 이어 동양의 영원한 스승으로 추앙되는 맹자(孟子 기원 전 372-289년))라 하면 으레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떠올리게 되어 있다. 어릴 때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깨우침이다. 맹자는 이처럼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과 가르침에 힘입어 이름 높은 유학자(儒學者)로 자라난 춘추전국시대의 인물이다. 그는 오늘날 유교라고 하면 공맹지교(孔孟之敎)라 할 만큼 공자와 더불어 성인으로 추앙받는 큰 인물이 된 것이다. 맹자의 어머니는 훌륭한 스승이었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받는 교육이란 어머니로부터 시작되며 아이는 어머니를 따라 기본적인 사회성과 탐구의 지식을 배운다. 특히 어린이의 미래를 결정짓는 성격과 취미는 어머니의 그것을 복사한다 해도 좋을 만큼 그 영향력은 크다. 자식의 운명은 언제나 그의 어머니가 만든다고 할 만큼 그 작용력이 크다는 말이다. 자식을 낳아 그 목숨을 유지시키는 데서 어머니의 직분이 그치는 게 아니라. 올바르게 가르쳐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 내기까지에 이르러야 한다는 말이다.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사람이 된다는 생각으로 아들을 키운 맹자의 어머니에게는 아들 맹자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맹모삼천지교 외에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의 한 토막이지만 교육에 대한 맹모의 정신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맹자가 열두 살이 되자 어머니는 맹자를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에게 보내어 학문을 높이고자 했다. 아들이 학문을 위해 떠난 뒤 어머니는 전보다 더 열심히 일을 했다. 마음 같아서는 아들을 당장 보고 싶었지만 한 푼이라도 더 마련하여 아들을 가르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베틀에 앉아 베를 짰다. 그렇게 몇 해의 세월이 흘렀다. 맹자는 자신을 위해 고생하는 어머니를 생각하여 우선 어머니를 모신 다음 학문을 계속하려고 마음먹었다. 맹자는 스승에게서 억지 승낙을 받고 보고 싶은 어머니를 향해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왔다. 그리운 어머니의 집에 도착하자 반가움에 못 이겨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머니 ! 제예요. 절 받으세요‘ 
 ‘필요 없다’
 어머니는 조금도 반가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맹자는 어머니의 화가 난 얼굴을 처음 보았다.
 ‘못난 녀석, 공부도 끝마치지 않고 집에 왔단 말이냐 ? 지금 제정신이냐 ? 대답을 좀 해 보아라’
 ‘실은 어머니를 모시고 공부하는 것이 ....’
 ‘듣기 싫다. 돌아가라 어서 !’
 그 때 어머니는 갑자기 짜던 베의 중간을 끊어버렸다. 맹자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머니의 근엄한 목소리가 이내 맹자의 가슴을 울렸다. ‘잘 보았느냐 ? 짜던 베도 중간에 이렇게 끊어버리면 아무런 쓸모가 없거늘 하물며 인간인 네가 해야 할 공부를 중도에 그만 둔다면 장차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 맹자는 그 때서야 어머니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께 큰 절을 올린 다음다시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공들여 짜 놓았던 베를 잘라 내면서 까지 자식의 가르침을 위한 지혜와 용기로 교훈을 준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돌아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쓰리고 아팠지만 아들을 바르게 키우기 위해 잠시의 고통을 잠시 접어 둔 것이다.

 역사상 가장 혹독한 고통과 학대를 받았던 민족이 유태인이다. 특히 제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나치스가 행한 잔혹한 학살로 인해 6백여 만이란 유태인이 죽었다. 히틀러는 유태인들을 열등국민으로 치부했지만 사실상 유태인들은 인류 문명에 중대한 공헌을 남겼다. 아인슈타인, 피카소, 베토벤, 키신저, 프로이드 등과 같은 세계적인 인물들이 모두 유태인이다. 1901-1995년 까지 노벨 물리학상, 화학상, 경제학상, 문학상, 의학상,  평화상을 623명의 유태인이 수상했다. 이 밖에도 세계적으로 이름 높은 박사급 학자들이 10만을 훨씬 웃돌고 있으니 열등하다는 말은 가당치 않은 말이다. 이는 단지 유태인의 유전적 기질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들의 우수성은 그들이 그토록 중시하는 ‘교육’에서 찾아야 한다. 나라를 잃고 가진 재산조차 안전하지 못한 속에 처해있던 유태인들에게는 오직 지식과 기술만이 유일한 자원이었다. 그들의 가정에서는 그들의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어느 날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고 네가 가진 재산이 불타게 된다면 너는 당장 무엇을 가지고 가겠니 ?’ 아이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면 부모는 이렇게 말했다. ‘얘야, 네가 가지고 갈 것은 돈도 아니고 값비싼 보석도 아니란다. 바로 지혜뿐이다. 지혜란 네가 살아 있는 동안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네가 가진 지혜야말로 영원히 너와 함께 할 것이다.’ 이처럼 유태인들에게 배움이란 국왕보다 위대하다. ‘가령 집안의 모든 물건을 저당 잡힌다 해도 지식이 풍부한 사람에게 딸을 시집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실로 가치 있는 일이다. 지혜로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일 역시 모든 재산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는 일이다.’ 유태인들은 이토록 교육을 중시했다. 자녀들에게는 어려서부터 독서 습관을 길러 주었고, 아이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라면 부모는 성경을 펼쳐 그 위에 꿀을 한 방울을 떨어뜨리며 아이가 먹도록 했다. 이는 아이들에게 책이 달콤하다는 생각을 불어넣기 위해서이다. 오랜 옛날 유태인들이 무덤에 책을 넣는 전통이 있었는데, 이는 생명이 끝난 후에도 지식에 대한 탐구는 끝이 없음을 뜻한다. 또한 유태인 가정에는 책장을 침대 머리맡에 두었으니 만약 침대 발치에 놓으면 책을 경시한다하여 올바른 사람으로 생각지 않았다. 14세 이상인 이스라엘 사람들의 독서량을 조사한 결과 이들은 평균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고 5백만 명 가운데 백만  명이 도서카드를 가지고 있었다. 유태인 사회에서 스승은 아버지 보다 더 소중하다. 만약 물에 빠진 두 사람인 아버지와 스승 중 한 사람만 구해야 한다면 유태인 자녀는 스승을 구할 것이다. 그들은 무엇보다 교육을 중시했고 지혜를 바탕으로 재산을 축적했다. 미국의 현금은 모두 유태인들의 바지 주머니 속에 있다고 할 정도로 그들은 부유하다. 하지만 그들은 그 돈이 모두 자신들의 머릿속에 있다고 여기고 있다. 이스라엘은 비가 드물어 메마른 사막이 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천연자원도 극히 부족하지만 유태인들은 자신들의 지혜로 기적을 일구어내고 있다. 유태인들은 전 세계 인구의 1%도 안 되지만 찬란한 은하수 가운데 작은 별 하나처럼 적은 수지만 그들은 항상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 우리의 주된 의식이 어떻든 간에 우리는 유태인들에게서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예를 들면 자녀들을 교육하는 방법, 고통과 수모를 받으면서도 기쁨을 추구하는 정신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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