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현대 자본 위주의 사회에서 가장 위력을 가진 것은 돈과 그 돈을 가진 사람이다. 꼭 현대라고 한정할 것 없이 근원적으로 다를 것은 없지만 현대사회에서 돈의 위력이 옛날 보다 더 크다는 말이다. 문학도가 아니더라도 웬만한 사람이면 누구나 읽었을 법한 셰익스피어 작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빌린 돈을 약속한 기일 내에 못 갚을 경우 채무자 안토니오의 가슴 살 1파운드를 떼어 내기로 되어있었다가 갚지 못하게 되자 채권자 샤일록이 안토니오의 가슴살을 도려내내야 한다고 우기다가, 계약 조항에 살을 도려내되 피를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는 조건에 걸려 샤일록이 패소하게 된다는 섬뜩하고도 재미있는 돈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돈은 어떤 형태로든 힘을 나타내게 되어있다. 돈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기본적 수단이다. 돈이 있어야 의식주를 마련하고 생활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 돈은 우리생활을 윤택하고 편리하게 해주며 안락과 쾌적한 삶을 제공해 준다. 그리고 돈은 우리에게 경제적인 독립을 보장해 주고 그 경제적 독립은 인격적 독립의 근원이자 기초가 된다. 경제적 독립이 없다면 양심과 사상과 인격마저 예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격의 독립자존을 위해 필요한 돈을 소유해야 한다. 돈은 이처럼 인간에게 매우 유용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다루는 사람이 잘못 생각하면 매우 유해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돈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서 경제적 독립을 시작해야 한다. 돈에 대한 그릇된 인식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것은 황금만능이라는 사고방식이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온갖 부조리와 사회악을 낳는다. 돈을 인생의 목적으로 생각하여 오직 돈 버는 것만을 보람으로 여기고,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권력과 결탁하고 양심을 팔고 지조를 굽히고 신의를 저버린다. 돈 때문에 사회가 병들고 국민의 기초적인 도덕성이 타락한다. 돈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잘못 되었을 때 얼마나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지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악의 근원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에 대한 집착이다. 돈 자체는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다. 다만 돈을 가진 사람의 마음에 따라 돈의 성질이 악하게도 선하게도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돈에 대한 참된 가치와 올바른 인식,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말해준다.

 조선의 명종(13대), 선조(14대대) 때에 걸쳐 활동한 김성휘(金成煇 광산김씨 1535-1629)라는 인물이 있다. 그의 조상들이 높은 벼슬을 지냈지만 곤궁했고, 집안 여성들은 잔병이 많았다. 자신이 경제활동에 뛰어들어 가정을 꾸려가지 않으면 줄어든 농사마저 더 줄어들고 더욱 더 곤궁해 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생각이 비정통적인 방법으로 달성해 보아야 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면서 자문자답했다. ‘학문으로 급제를 해도 별 볼 일 없는 팔자가 될 수 있다. 공연히 역모에 휘말려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지 않은가. 내 사주팔자에 별나게 재물 운이 많이 들어있고 수명도 무척 길다 하니 차라리 부자가 되는 길이나 개척하자. 예나 지금이나 부귀영화라는 말을 자주 쓰지 않는가. 입신양명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재산이 있어야 한다. 보란 듯이 잘 살게 되면 결국 정승 대접도 받을 수 있고 판서 대접도 받을 것이  아닌가. 자, 책을 덮고 길거리로 나서자. 공연히 찬물 먹고 이 쑤시느니 차라리 고기 실컷 씹어 먹고 트림이나 크게 해 보자’ 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가 27세 되던 때에 열심히 길거리로 나가 돈을 벌고 있을 때 극성을 떨치던 대도 임꺽정이 잡혀 죽고, 선조 임금이 등극했다. 이리하여 그(김성휘)가 50세에 이르렀을 때 세상에서는 그를 갑부로 알아주게 되었다. 소년시절의 빈궁은 이미 남의 일처럼 멀어져 간 것이다. 그가 55세가 되었을 때 일본에서 이상한 소문이 들려왔다. 풍신수길이란 자가 전국을 통일하고 그 늘어난 세력을 조선과 명나라로 뻗어보고자 한다는 불길한 소문이었다. 전국의 장사치들이 드나들며 온갖 소문, 풍문을 늘어놓는 통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세상이 훤히 다 내다보인 것이다. 결국 그가 57세 되던 해에 난리가 나고 말았다. 준비가 제대로 안 된 문약한 조선은 잘 단련된 일본의 병사들과 장수들을 도저히 당해 낼 수 없었다. 전국의 선비들이 들고 일어났고, 선조는 명나라에 가까운 북쪽 압록강 강변으로 피난을 갔지만 선비들과 백성들은 붓과 괭이 대신 칼과 창을 들고 왜적에 맞서 강토를 지켰다. 그는 자기보다 나이가 열 몇 살 적은 왕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내우도 아니고 외환인데 임금인들 뾰족한 수가 있었겠는가라고 생각하며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선 조상의 귀신들 앞에서 ‘피땀 흘려 벌었으니 값지게 쓰겠습니다’라고 보고하한 뒤 재산을 풀어 군량미를 준비했다. 그리고 굶고 있는 의병들과 관군들에게 아낌없이 나눠 주었다. 백성들의 칭송은 물론 나라에서도 칭송이 대단했다. ‘그런 갸륵한 일이 있는가. 정말 본받아야 할 사람이다.’ 하며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다. 한 계급, 한 계급 그 품계가 올라가 나중에는 정3품 형조참의에 올랐다. 그에게 벼슬이란 상징에 불과하지만 나라와 백성이 위급할 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훌륭한 일을 해 낸 사람에 대한 칭송인 것이다. 이처럼 그는 배곯기 싫어 돈 벌이에 나섰다가 나라와 세인의 칭송과 함께 높은 벼슬도 얻고 94세 까지 장수하였다.

 굶어 죽거나 못 먹어 부황(浮黃)걸려 죽느니 차라리 책을 덮고 돈을 벌자며 독한 마음으로 나섰다가 전란을 만나 영웅으로 떠오른 것이다.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등급을 매기던 고루한 신분사회 속에서 명문가의 갑옷과 투구를 모조리 다 벗어 내던지고 벌거숭이로 돈벌이에 나선 것이다. 야망과 열정이 대단했을 것은 물론이고, 남다른 판단력과 통찰력으로 돈이 오는 길목에 미리 나가 지킬 줄 아는 예지와 근면을 갖추었을 것이다. 반드시 뜻한 바를 이루고 그 어떤 비바람이나 흔들림에도 끄떡없었고, 그 소원을 이룬 다음에는 그 소원이 만백성에게 용기와 희망의 싹으로 돋아나기에 이른 것이다. 자신이 소속한 조선이라는 나라에 어떤 형태로든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드는 일에 성실했던 것이다. 
 부자가 존경받는 사회, 이것이 가난한 사람, 가진 사람 모두가 함께 나아갈 길이다. 우리 인간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돈, 벌기 전에 먼저 생각해 두어야 할 것으로 이 돈이 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인지를 생각할 일이고, 돈은 그 자체가 목적물이 아니라 수단이자 도구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일이고, 또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그 모은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자신뿐만 아니라 만민의 행복 또는 불행의 갈림길이 된다는 잊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보람 있는 역할을 수행하고 가치 있는 인간으로서 행복한 삶을 마감하기를 원한다. 이런 꿈이 있을 때 무리는 먼저 자랑스럽고 인생의 보람 있는 인생의 목표를 선택하여 그 길에 아낌없이 자신의 몸을 던질 수 있을 때 가능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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