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전쟁의 참화에서 막 벗어나서 이른 바 경제개발이라는 기치의 첫 발을 내디디던 1963년의 15세 이상 경제활동 참여 가능 인구 14,551천 명에서 지난 2014년에 이르러 42,513 천명으로 2.9배가 늘었고 경제활동 인구는 같은 기간에 3.2배가 늘었다. 경제 규모와 인구 성장을 반영하고 있다. 또 경제활동 참가율에 있어서도 1963년 남성 78.4%, 여성 37.0%에서 2014년에는 남성 73.7%, 여성 51.1%로 증가함으로써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두드러지게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1963년의 실업률은 8.1%로 매우 높았고 그 후 경제성장과 더불어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하다가 근래의 경기 침체와 더불어 실업률은 다시 오르고 있는 추세다.
 국가의 중요 정책인 지속적 경제 성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완전고용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우리의 노력에는 추호도 허점을 드러내어서는 안 될 일이다. 유엔(UN)의 산하 기구인 국제 노동기구(ILO)는 신뢰성 있고 유용하고 국제 비교가 가능하도록 표준화 된 통계 작성법을 제정하여 세계 각국에 널리 보급하여 사용토록 권장하고 있고, 우리나라 또한 이 표준에 맞추어 통계 자료를 생산하고 있다. 고용통계 조사는 그 방법과 원천에 따라 사업체를 대상으로 하는 조사와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으며, 역사적으로는 사업체를 대상으로 하는 조사가 먼저였다. 사업체 조사에서는 취업 시간, 임금, 직종, 이직 및 입직, 산업재해, 보험, 인력 수급계획, 직업훈련 등 다양한 자료를 수집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으나, 소규모 업체의 조사에 대한 어려움,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조사의 어려움, 그리고 취업자가 아닌 실업자와 비경제활동 인구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조사 결과로 이를 보완하는 것이 보통이다. 재화(財貨)와 용역(用役)의 생산에 기여하는 모든 활동을 경제활동이라 정의한다. 따라서 자가 소비를 위한 생산 및 가공활동, 자영 건설업, 자가소비를 위한 고정자산 생산, 비 시장 상품 및 용역 생산과 같은 소홀히 하기 쉬운 활동을 비롯한 모든 시장 생산 활동이 포함된다. 비 시장 활동으로 제외되는 것으로는 자가 가사 노동이나 이와 유사한 용역 등이 있다. 경제활동 자체는 합법성 또는 비합법성을 따지지 않고 모두 포함하지만, 비합법성의 경우 중요성과 신뢰성, 그리고 의미 있는 자료인지 등을 고려하여 포함 여부를 결정한다.
 고용 문제의 해결은 국민의 기본 생활을 보장하고 생활 터전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건전한 사회질서 유지와 국민 복지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고용 대책이란 일자리를 만들어 주어서 실업자 수를 줄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가진 사람에게는 취업의 질을 실질적으로 높여, 이른바 불완전 취업(underemployment)을 완전 취업으로 이끌어, 모든 가정에 진정한 의미의 행복이 넘쳐흘러야 할 것이다. 어느 국민이든 일터로 나가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지 않고서는 모두가 가난해질 수밖에 없고, 가난하고도 행복하다느니 하는 말은 허세 또는 거짓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제개발의 초창기에 소리 높이 외치던 ‘잘 살아 보세’는 ‘바르게 살아보세’가 되어야 할 것이고, 전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바탕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사회에 대한 각자의 몫(일)을 다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건강 유지를 위해 건강진단을 필요로 한다. 고용문제 또한 철저한 자가진단을 기반으로 그 해법이 제시되어야 할 일이다.

 미국의 상원의원들은 대부분 명문 귀족 출신이었다. 그들이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아브라함 링컨의 아버지가 귀족도 아니고 명문가의 자손도 아닌 신발 만드는 직공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명문가의 아들인 자기네들의 신발 제조공의 아들 밑에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 깎이는 일이라고 불쾌하게 생각한 것이다. 하루는 링컨이 상원의원들을 상대로 연설을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는 순간 의원 하나가 일어서서 링컨에게 말했다. ‘당신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만 신발 제조공의 아들이라는 것을 절대 잊지 마시오. 당신의 아버지는 우리 가족의 신발을 만들기 위해 가끔 우리 집에 왔었소. 내가 지금 신고 있는 이 신발도 당신의 아버지가 만든 것이오.’ 그러자 여기저기서 킥킥거리는 웃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링컨은 잠시 동안 조용히 서 있었다. 그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가득 고였다. 모욕을 당한 부끄러움의 눈물이 아니라 고마움의 눈물이었던 것이다. ‘고맙습니다, 의원님 ! 의원님 덕분에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내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라 지금 나는 오래간만에 내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 느끼어 감사의 눈물이 두 눈에 가득히 고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의원님 말씀대로 내 아버지는 신발을 만드는 직공이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신발을 만드는 데에는 완벽한 솜씨를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아버지의 직업에 대한 수치심을 가져 본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러워했고 존경했습니다. 다만 있는 힘을 다해 아버지의 위대하심을 따르려고 노력했을 뿐입니다. 나의 아버지는 많은 귀족들의 신발을 만드셨습니다. 여기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 가운데는 내 아버님께서 만드신 신발을 신으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만일 신발이 불편하시다면 저에게 말씀하십시오. 저도 아버지의 기술을 옆에서 보고 배웠기 때문에 조금은 손봐 드릴 수 있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물론 나의 솜씨는 돌아가신 내 아버지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만 최선을 다해 고쳐드리겠습니다. 저는 영원히 내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내 아버지에 대한 자랑을 여러분에게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 준 의원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한참동안 진지한 태도와 정성어린 어조로 이야기를 하던 링컨 대통령은 비로소 손수건을 꺼내어 두 눈에 고였던 눈물을 닦아냈다. 회의장 안은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방청석에서는 흐느껴 우는 사람도 있었다. 과연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는 하지만 명문을 따지는 귀족의식이 팽배했던 그 시대에 특히 그 부분에서는 자존심이 대단히 강하던 상류계급 인사들 앞에서 ’내 아버지, 내 아버지‘ 하고 구두 제조 공 이었던 아버지를 그토록 당당하게 자랑하는 링컨의 용기가 상원 의원들의 폐부를 찔러 크나큰 충격과 감동을 안겨 주었던 사건이다.
 나라의 부강은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국민의 수에 달렸다. 더럽다고, 창피하다고, 위험하다고, 어렵다고, 보수가 적다고 일을 피하는 곳에서는 나라의 부강이나 개인의 행복은 절대로 기대할 수 없다. 또 일에 대한 보상이 보람되고 만족스러워야 할 일이 빠져서는 안 된다. 일이 즐거울 때 인생은 낙원이지만, 일이 의무이자 부담일 때 인생은 지옥이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전력을 기울일 일이다.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 또한 일의 산물이다. 인간이 쌓아올린 문명 또한 마찬가지다. 일할 자리나 기회가 없다는 말은 어설프고 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미완성을 괴롭게 여길 일이 아니다. 다만 완성을 위한 노력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저작권자 © 고성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