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한 장사꾼이 장식만 요란한 말채찍을 팔러 다녔다. 원가 한 냥도 되지도 않는 채찍에 열 냥이라는 거금을 매겼다. ‘이런 물건도 잘만 하면 임자를 만나는 법이다’ 그의 말이다. 예상대로 어는 덜 덜어진 부잣집 자제가 그 채찍을 샀다. 그 부잣집 아들은 말과 채찍이 자랑하고  싶어 말을 타고 다녔다. 그가 탄 말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겁을 먹었던지 몸을 움직이려 들지 않아서 말채찍으로 힘껏 때렸더니 채찍이 단번에 끊어졌다. 그는 속은 것을 알고 말채찍 상인을 찾아가 물건을 속여 팔았으니 돈을 물어내라고 했다. 그러자 상인은 이미 물건이 팔려 나갔으니 책임질 수 없다며 배상을 거절했다. 그러자 부잣집 아들은 시장 한 복판에서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저 사람은 가짜 말채찍을 들고 다니며 바가지를 씌우는 질 나쁜 사람’이라며 온 종일 떠들어 대었다. 채찍을 잘 팔았다고 생각했던 그 장사꾼이 스스로 앞길을 망친 것이다.
 하늘에는 춘하추동의 네 계절이 있어 항상 질서 정연하게 운행하여 만물이 생성하고 땅에는 무한한 자원과 재산이 감춰져 있어 인간을 육성한다. 이 하늘의 땅의 재물을 이웃 인간들과 함께 가져서 조금도 사사로움이 없는 것이 인(仁)이고, 이 인(仁)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의좋게 살고 싶어 할 것이다. 사람들이 근심하는 것을 함께 근심하고,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며, 싫어하는 것을 함께 싫어하여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그 곳에 함께 살기를 즐겨 한다는 말이다. 의(義)가 있는 곳에는 천하 만 사람이 함께 살기를 즐겨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죽는 것을 싫어하고 산다는 그 자체만으로 즐거워하며, 덕을 좋아하면서도 자신의 이득은 취하려고 하게 되어 있다. 진정한 삶 속에서 진정한 이(利)를 도모할 때 욕심이 아닌 도(道)라고 할 수 있다. 생각이 없는 사람,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눈앞에 펼쳐진 현상으로도 아무것도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미세한 조짐만으로도 미리 알아차린다. 사물이 형태를 드러내지 않거나 아직 싹트지 않은 미맹(未萌) 상태에서도 지혜로운 자는 앞으로의 움직임을 미리 간파하고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여 대응에 실수가 없도록 대비한다. 어리석은 자는 사물이 형태를 드러낸 다음에도 여전히 알아차리지 못한 채 대응에 늦거나 급하게 허둥댄다.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와의 차이라면 통찰력의 유무로 가름한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우선 가까운 곳에 생각이 미쳐야 하고 나아가 먼 장래의 일도 미리 대비해 두어야 한다. 애초에 먼 장래를 생각하고 대책을 세워놓지 않으면 멀지 않아 발목을 잡히게 되어있다. 또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편적으로 임해서는 안 될 일이니, 이익을 얻으려면 그 이익보다 더 큰 손해를 감수할 계산이 깔려 있어야 하고, 성공을 바랄 때라면 실패했을 때를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이다. 꼭 정치인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평소에 늘 통찰력을 길러 자신만의 가치관을 세워둘 때 그 어떤 상황이나 시대적 흐름에도 휩쓸려 갈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이 통찰력을 키우는 데는 먼저 지난 역사를 통하여 흥망의 이치를 성찰하는 일이고, 이어 정보에 대한 감도를 높여 그 정보를 분석을 통하여 판단력을 기르고, 아주 사소한 변화도 놓치지 않고 살피는 면밀한 관찰력을 기르는 일이 될 것이다. 세심하게 깊이 읽어내는 능력 속에는 큰 맹점도 있으니, 이 세심이 극단으로 흐를 때 너무 작은 일을 지나치게 들여다보다가 오히려 혼란만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더라도 이 통찰력이 없을 때 손해 볼 일만 많아지고 세상을 살아가기가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다.

 수(隨) 나라 양제(煬帝) 때 위징(魏徵)이라는 사람은 후일 당(唐)의 2세 황제가 될 이세민(李世民)에게 활을 쏘기도 하고 죽이려고 여러 차례 계책을 내었던 상대 쪽의 책사이다. 하지만 나중 이 위징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태종 이세민에게 봉사하여 크게 중용되었으며, 태종을 도와 왕조의 기초를 구축했다. 위징은 나라를 경영할 재사였지만 성품이 강직해서 굽힐 줄을 몰랐다. 태종은 위징을 얻고서 ‘이제야 비로소 즐거움을 알겠다’하면서 기뻐했다. 위징도 자기를 알아주는 주인을 만나자 모든 힘을 바쳐 태종에게 충성을 다했다. 위징은 필요할 때 직언을 했고, 태종은 그의 직언에 귀를 기울였다.
 사람의 능력과 재능에는 개인차가 있기는 하지만 크게 문제 될 일은 없고, 연마하고 노력할 때 어떤 일도 안 되는 일이란 없다. 누구든 자기계발에 게으름이 없을 때 모든 능력과 재능은 얻을 수 있지만, 이를 마음속으로만 넣어두고 가급적이면 밖으로 드러내는 일은 삼가야 할 일이다. 이처럼 연마한 사람의 능력과 재능을 바탕으로 사물의 본성을 잘 이해하고 진실을 말하고 이를 행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일 것이다. 지혜는 풍부한 지식과 경험이 재능과 어우러진 바탕이라는 말이다. 지혜란 일종의 사유방식이고 문제를 처리하고 해결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지혜의 힘으로 규율을 찾고 절반의 힘으로도 두 배의 힘을 얻기도 한다. 세심하게 고려하고 지혜로운 이야기로 사람과의 매듭과 오해를 매끄럽게 풀어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지혜로 승리하고 지혜로 남과 어울리는 가운데 올바른 길로 인생의 본질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내리막길로 향하는 징조는 전성기에 나타나고 새로운 것의 태동은 극에 이르렀을 때에 생긴다. 순조로운 때에는 더한층 마음을 다잡아야 하고 난관에 직면하였을 때에는 차분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하늘의 뜻은 알 수가 없다. 시련을 주는 것인가 하면 영달을 보증하고, 영달을 보증하는 것인가 하면 시련을 주기도 한다. 어떠한 시련에도 순응하며, 평온무사할 때에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할 때 훌륭한 사람으로의 성장이 멈추지 않는다. 역경과 빈곤은 인간을 강인하게 단련시키는 용광로일 뿐이다.  이러한 단련을 받았을 때 비로소 심신의 건강을 얻을 수 있다. 이만한 단련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때 성숙하지 못한 쓸모없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다. 역경에 처해 있을 때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양약(良藥)이 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조(志操)도 행동도 갈고 닦아진다. 순탄할 때에는 눈앞의 모든 것이 흉기가 되고 몸이 바스러져도 이를 깨닫지 못하게 되어 있다. 자진해서 고난을 쫓아갈 필요 까지는 없지만 고난 속에 어려움을 당해도 의연함의 여유를 잃지 말라는 격려이다. 오래도록 웅크리고 힘을 비축한 새는 일단 날아오르면 반드시 높이 날갯짓한다. 다른 것이 앞서 핀 꽃은 지는 시기도 그만큼 빠르다. 이러한 이치 속에서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조금 힘들다고 해서 도중에 지쳐 쓰러질 염려도 없고, 조급하게 공을 세우려고 서두르지도 않을 것이다.

 오 왕(吳 王)이 배를 띄어 저산(狙山)에 올랐을 때 이곳에 살던 원숭이들이 놀라 깊은 숲 속으로 달아났다. 이들 원숭이 중 한 마리가 남아서 나뭇가지를 거머잡기도 하고 타고 다니기도 하면서 가지가지 재주를 오 왕에게 보여 주었다. 오 왕은 원숭이에게 활을 쏘았다. 원숭이는 재빠르게 그 빠른 화살을 손으로 받아 잡았다. 왕은 다시 좌우의 신하를 시켜 끊임없이 활을 쏘도록 했다. 결국 원숭이는 손에 화살을 받아 쥔 채 죽어 넘어졌다. 왕은 말했다. 이 원숭이는 그 재주를 자랑하고 빠른 것을 믿고서 내게 방자했다. 그래서 이렇게 죽게까지 된 것이다. 잘나척 하는 교만의 결과가 이것이다‘ 재능은 늘 단련하되 밖으로 드러낼 일이 없도록 해야 함을 모르고 날뛰던 원숭이가 사람에게 큰 교훈을 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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