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사람에게 지식이나 부가 많이 있는지 없는지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이 있는지 없는지가 더 중요하다. 세상에는 슬기로움이 있는 사람도 영리하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리하면서도 어리석은 사람도 있다. 슬기롭고 현명하다도 하는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어떤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세상을 보는 눈 또한 자신이 세상을 제대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눈이 아닌 실제로 세상을 바르게 보는 눈을 말한다.
 2천 4백 여 년 전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제나라와 위나라 두 나라에 긴장이 고조되어 전쟁이 일어날 분위기가 고조되던 때에 대 진인이라는 논객이 있었다. 그는 전쟁을 막기 위해 위나라 혜왕을 알현하고 이렇게 간언했다. ‘소위 달팽이란 것이 있는데 임금님께서는 그것을 아십니까 ? ’ ‘알고 있다’ ‘그 달팽이 그 뿔의 왼 쪽이 촉씨(觸氏)라는 나라가 있고 오른 쪽 뿔에는 만씨(蠻氏)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언젠가 땅을 두고 서로 다투다가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쓰러져 누운 시체가 수만이요 도망가는 적을 쫓다가 보름이 지나서야 돌아올 정도였습니다.’ ‘아아, 그것은 터무니없는 말이로다.’ ‘청컨대 신이 임금님께 현실을 말씀드리도록 해 주십시오. 임금님께서는 우주의 사방과 상하에 끝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끝이 없다.’ ‘마음이 그 끝없음에 노닐게 하고서 나라들을 돌아다닌다면 그 나라들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같사옵니다.’ ‘그렇다.’ ‘그런 나라들 중에 위나라가 있고 위나라 안에 양(梁)이라는 도읍이 있으며, 양 안에 임금님께서 계십니다. 임금님과 만씨 사이에 다름이 있나이까 ? ’ ‘다름이 없다.’ 대진인이 나가자 왕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있었다. 정치는 감정이다. 전쟁은 증오다. 전쟁은 화재처럼 아주 작은 불씨에서 일어남을 깨우쳐 준 것이다.
우주(宇宙)이 본질은 시공(時空)이다. 대자연의 구조는 시간뿐만 아니라 공간에 대해서도 자기 상사도형을 기본으로 한다. 현실의 우주에서는 그러기에 주기성(週期性)과 일회성(一回性)이 혼합되어 나타난다. 봄날의 꽃은 올해에도 작년에도 그리고 내년에도 피어난다. 그러나 세세 연년 부동이다. 하지만 그 꽃을 보러 오는 사람들의 얼굴은 해마다 각각이다. 시간의 주기에는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등 여러 주기가 있다. ‘역사는 반복 된다’는 말 대로 시간도 역사도 원처럼 뱅글뱅글 돌아가면서 시간이라는 수많은 크고 작은 나선형들이 자기 상사 도형적으로 조합된 거대한 나선형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우주가 아무리 광대하다 하더라도 ‘나’라는 사람은 지금 여기에 있는 오직 한 사람뿐이다. 부모가 만나 결혼할 확률, 내 부모와 윗대의 선조들이 태어날 확률, 이 우주가 생겨날 확률, 우주에 지구가 생겨날 확률, 지구에 인간이라는 종이 탄생활 확률 등을 총체적으로 계산에 넣을 때 지금의 ‘나’는 기적적인 확률로 이 세상에 태어나 있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혀지는 삼국지(三國志)에서 조조(曹操)의 부하 장수 하후돈(夏候敦)이 여포(呂布)를 공격할 때 왼 쪽 눈에 화살이 박혔다. 그러자 하후돈은 ‘아버지의 정(精)이요 어머니의 혈(血)일진대 결코 버릴 수 없다’라고 하면서 그 눈알을 꿀꺽 삼켰다.
 지금부터 2천 5백 년 전 공자(孔子)는 궁핍한 차림의 노인이 무척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무엇이 그리 즐거우냐는 공자의 질문에 영계기(榮啓期)라는 이름의 이 노인은 ‘나에겐 즐거움이 세 가지 있다오’ 라면서 말을 이었다. ‘하늘이 만물을 나게 함에 오직 사람만을 귀하게 하였는데 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니 이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그것도 여자가 아닌 남자로, 게다가 90세가 된 오늘까지 살고 있으니 이 보다 더 한 즐거움이 어디 있겠소 ’ 이 중에서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태어남을 즐거움으로 한 것은 옛 날 여성의 지위가 부당하게 억눌려 있었다는 것과, 당시의 위험한 출산 환경으로 인해 여성의 평균 수명이 남성보다 짧았다는 점 등을 반영하고 있다.
‘나’라는 존재는 한 번 세상에 왔다가 그냥 사라져버리는 존재가 아니라 나의 생각과 예격(藝格)이 살아남아 타인에게 전수되면서 영원불멸한 생명력을 지닌다.

 앞을 바라봐도 옛 사람 보이지 않고
 뒤를 돌아봐도 오는 사람 보이지 않네
 천지에 아득함을 생각하니
 나 홀로가 슬퍼져 눈물이 흐르네
 
 옛 신인의 시 한 수다. 인간사에는 수학문제를 풀듯 하는 정답이 하나로 한정되는 답이란 없다. 높은 곳에 오를 때 시공의 무한함이 달관되어 슬픔이 다가온다. 높은 곳에서 저 멀리 펼쳐진 공간을 내려다본다. 광대한 공간에서는 유구한 시간이 머리에 들어온다. 무한한 시공 속에 놓여 진 보잘것없는 나, 그리고 거세게 밀려오는 고독감,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 나는 보잘것없지만 이 세상에서 유일한, 더 없이 소중한 존재인 까닭에 온 우주에 필적할 가치가 거기에 있다. 내가 지금 이 곳에 존재한다는 이 엄청난 사실, 그것을 이유 없이 체감한 순간 이유 없이 흐르는 눈물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다보니 인생 전체를 들여다 볼 여유를 일어버린 채 훌쩍 일생이 지나가 버릴 수가 있다. 가끔은 인생의 광야에 우뚝 솟아 있는 고고(孤高)한 탑에 올라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면서 자기를 재발견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망망한 우주에서 하잘 것 없는 ‘나’, 그러면서도 그 무엇보다 소중한 ‘나’를 에워싼 가족, 사회, 세계를 노래한 당 나라 두보(杜甫)의 시가 있다.

 조정은 망했어도 산하는 그대로요
 성안은 봄이 되어 초목은 무성 하네
 시대를 슬퍼하여 꽃도 눈물 흘리고
 한 맺힌 이별에 나는 새도 놀라는구나
 봉화불은 석 달이나 계속 타 오르고
 집에서 오는 펀지는 너무나 소중하여라
 희 머리를 긁으니 자꾸 짧아져
 이제는 아무리 빗어도 비녀조차 꼽을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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