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 예를 든 몇 가지의 경제지표들은 우리 국민 모두가 애써 쌓아올린 노력의결과를 계량화하여 비교해 본 것이다. 옛날 5-60‘년대에 전기는커녕 등잔불도 마음 놓고 켤 수가 없었고, 수십 리 산 고개를 오로지 걸어서만 다녀야 했고, 보릿고개가 아니더라도 하루하루가 끼니 걱정으로 이어지던 그 시절과는 경제 사회적 여건이 너무나 달라진 세상에 살고 보니 비교 그 자체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하는 생각마저 지울 수 없게 해 준다.
우리들이 곧잘 쓰는, 특히 어릴 때 잘 쓰는 말이 있다. ‘너를 하늘땅(우주)만큼 사랑 한다’거나 하는 말인데 하늘과 땅을 합한 크기나 우주의 크기라면 무한대라는 말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적 논리적, 수학적 사고에서는 반드시 필요할 때 한해서 ‘무한대’ 라는 말을 쓰기는 하나 그 무한대란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인간생활에서는 모든 것을 논리화, 과학화하여 학문의 체계 속으로 포함시키려 하는 데, 이 논리가 ‘계량법(measurement)'이다. 물리적으로는 길이, 부피, 무게라는 세 가지 정도의 측정 기준이 있지만 ’기분 좋음, 행복함, 맛 좋음, 보기 좋음, 불행함, 슬픔, 분함, 불쾌함‘ 같은 일을 만난다면 그 정도를 어찌 계량하며 표현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선 과학(science 科學)이라는 말도 벼 화(禾)와 말 두(斗)자의 합성으로 된 ’과(科)‘자는 수확한 벼를 말로 되(재)어 본다는 계량(計量)의 개념을 출발점으로 하는 논리적 사고의 학문으로의 과학( science= know )이란 앎을 추구하는 학문으로 skill(기술), conscience(양심) 등의 계열이다. 그리고 계량한다는 의미의 재다(measure)에서 미터(meter), 겸손한(modest 자로 재어 정도껏 행동한다는 ’겸손‘), 모델(model), 수정하다(modify), 달(moon or month 한 ’달‘이라는 시간의 길이를 잰 단위), 기준(barometer) 등에서 보여주는 계량이라는 개념에 기초한 어군이다. 그리고 행복감, 불쾌함 같은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추상적인 개념에도 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계량화 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앞으로는 이런 부문에 대한 연구와 노력은 계속 될 것이다.
세계 각국의 경제적 국력을 평가해 보는 기준으로 흔히 외래어 그대로 GNP(Gross National Products)라고도 쓰는 국민총생산이 있다. 참으로 방대하고도 어려운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국민총생산이란 일 년 이라는 기간 동안 전 국민이 경재활동에 참여하여 이루어 낸 총 생산 활동의 결과(완제품 재화 및 용역)를 계량화하여 시장 가격으로 판매한 가치를 말한다.
예건대, 깊은 산중의 채석장에 있는 돌(石物)은 그 장소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는 가치가 그리 크지 않지만 여기에 인간의 노동이 가해지면서 그 돌이 일정한 규격으로 깨어지고 다듬어져 일정한 장소로 운반되어 이를 원하는 소비자의 손에 까지 넘어간다면 이 모든 일(노동)이 돌에 가해질 때마다 새로운 가치가 추가되는데 이 모든 단계의 가치를 총 합산할 때 이것이 곧 부가가치이자 국민소득이 된다. 또 자기 집에서 아이도 보고 주방에서 요리를 하거나 그 밖의 가사 일을 한다면 소득으로 계상(計上)되지 않지만, 똑 같은 가사 일이라 해도 임금을 목적으로 남의 일을 해 줄 경우 국민소득으로 계상된다. 국민 소득 추계 방식의 한 예를 들어 본 것이다. 또 국민총생산이라는 결과를 얻기 위하여 알기 쉽게 벼 40 kg를 생산하여 40,000원을 얻었다면 제 비용을 공제한 잔여분이 국민소득으로 되겠지만, 기업체의 활동에는 경우에 따라 손익계산서나 재무회계 장부 등을 통하여 그 소득이 분배되거나 지출되는 항목을 포착해야 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분배 소득에는 임금, 이자수입, 임대수입, 영업 이윤, 감가상각비 등 항목을 추려서 합산할 때 소득이 된다. 각 산업 또는 경제활동의 특성에 따라 접근 방식을 달리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생산 활동에서 파악하는 ‘생산’ 국민소득 = ‘분배’ 국민소득 =‘지출’ 국민소득 이라는 관계가 이루어진다.
이미 창출된 소득은 또한 바람직한 방향으로 분배될 때 건강한 국민경제를 이끌어가는 힘이 된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적극적으로 완화하기 위한 유산자에 대한 누진과세와 빈곤선 이하 생활자에 대한 보조, 경제활동의 활성화 등이 그것이 될 것이다. 화폐의 구매력만으로 국민소득을 평가해서는 피상적인 수박 겉핥기 일 수가 있다. 필자는 인도(India)에서 상당 기간 연수유학 한 일이 있다. 외세 침략 이전의 인도는 파키스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인도 모두가 하나로 된 나라였기에 같은 뿌리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행복지수가 세계 어느 나라 보다 높다는 것이다. 돈이 많고, 기후가 좋고, 전쟁이 없고, 자원이 풍부하거나 이런 등등의 유리한 요건을 갖춘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이들 나라에는 그 어떤 것도 행복으로 이끌어 줄만한 요건이 없는데도 늘 세계 최상위의 행복지수를 자랑한다. 그들 또한 빈부격차가 크지만 남들이 돈 벌어 부자 되는 데 대한 부러움이나 시새움을 내보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주거를 위한 주택이라는 것이 달랑 기둥 네 개,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를 막아줄 수 있는 지붕뿐인 집에서도 그들의 행복감은 끝이 없어 보였다. 인도 또한 우리나라처럼 길고 긴 해안선이 있고 수많은 어민들이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데, 이들은 대개 허리만 두를 정도의 팬티 비슷한 단벌 옷 만으로 고기를 잡을 때나, 잠을 잘 때, 집에 돌아와 다른 일을 할 때도 그 옷 한 벌로 해질 때 까지 입고 있는 모습도 보았다. 국민소득이라는 주제와는 아주 벗어난 얘기 같지만, 화폐 단위로 계량하는 국민소득과 사람의 마음으로 느끼는 행복감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위의 주요 지표가 말해 주듯 계량으로 표시된 소득이 늘 때 많은 불편함이 해소되고 짓누르는 근심 걱정 도한 사라질 것으로 보이지만 자신도 모르게 높아져 버린 기대치로 인하여 그 효과가 사라지거나 오히려 행복감이 더 떨어지기만 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무어라 해도 소득을 높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지만, 그 이상으로 소중한 것,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방해 받을 수 없는 오로지 자신만의 고유한 행복의 샘터를 창조하고 이를 소중히 가꾸어 나가는 일, 이것이 소득의 증대보다 더 값진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