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지난 1957년 제조업 부문의 월 평균 명목 임금은 2,030원, 1969년에 1만원, 1979년에 10만원, 1994년에 1,000만원을 넘어섰고, 2014년에 이르러 366만원에 이르러 약 1,800배가 올랐다. 제조업 부문을 포함한 전 산업에서의 월 평균 명목임금도 1970년도의 1만 8천원 수준에서 2014년 341만 원 정도로 올랐다. 이를 2010년 기준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 임금의 실질적 구매력을 비교하면 제조업의 경우 1970년의 27만원, 2014년 336만원에 이르렀고, 전체 산업의 경우 1970년 33만원에서 2014년에 이르러 312만원에 이르렀다. 가계와 다른 경제 주체 간에 일어나는 소득 이전을 반영하는 국민계정상의 가처분 소득은 가계가 임의로 소비나 저축으로 처분할 수 있는 소득으로 일인당 개인 가처분 소득은 개인의 삶의 질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질적 지표가 된다. 물가 상승을 고려한 실질 일인당 가처분 소득이 1975년 209만원에서 2014년 1,525만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1990년 이후 소득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소득 불평등 도를 보여주는 지니(Gini)계수가 1990년의 0.266에서 2014년의 0.308로 크게 악화된 것이다.
 위에서 예를 든 몇 가지의 경제지표들은 우리 국민 모두가 애써 쌓아올린 노력의결과를 계량화하여 비교해 본 것이다. 옛날 5-60‘년대에 전기는커녕 등잔불도 마음 놓고 켤 수가 없었고, 수십 리 산 고개를 오로지 걸어서만 다녀야 했고, 보릿고개가 아니더라도 하루하루가 끼니 걱정으로 이어지던 그 시절과는 경제 사회적 여건이 너무나 달라진 세상에 살고 보니 비교 그 자체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하는 생각마저 지울 수 없게 해 준다.
  
 우리들이 곧잘 쓰는, 특히 어릴 때 잘 쓰는 말이 있다. ‘너를 하늘땅(우주)만큼 사랑 한다’거나 하는 말인데 하늘과 땅을 합한 크기나 우주의 크기라면 무한대라는 말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적 논리적, 수학적 사고에서는 반드시 필요할 때 한해서 ‘무한대’ 라는 말을 쓰기는 하나 그 무한대란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인간생활에서는 모든 것을 논리화, 과학화하여 학문의 체계 속으로 포함시키려 하는 데, 이 논리가 ‘계량법(measurement)'이다. 물리적으로는 길이, 부피, 무게라는 세 가지 정도의 측정 기준이 있지만 ’기분 좋음, 행복함, 맛 좋음, 보기 좋음, 불행함, 슬픔, 분함, 불쾌함‘ 같은 일을 만난다면 그 정도를 어찌 계량하며 표현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선 과학(science 科學)이라는 말도 벼 화(禾)와 말 두(斗)자의 합성으로 된 ’과(科)‘자는 수확한 벼를 말로 되(재)어 본다는 계량(計量)의 개념을 출발점으로 하는 논리적 사고의 학문으로의 과학( science= know )이란 앎을 추구하는 학문으로 skill(기술), conscience(양심) 등의 계열이다. 그리고 계량한다는 의미의 재다(measure)에서 미터(meter), 겸손한(modest 자로 재어 정도껏 행동한다는 ’겸손‘), 모델(model), 수정하다(modify), 달(moon or month 한 ’달‘이라는 시간의 길이를 잰 단위), 기준(barometer) 등에서 보여주는 계량이라는 개념에 기초한 어군이다. 그리고 행복감, 불쾌함 같은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추상적인 개념에도 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계량화 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앞으로는 이런 부문에 대한 연구와 노력은 계속 될 것이다.

 세계 각국의 경제적 국력을 평가해 보는 기준으로 흔히 외래어 그대로 GNP(Gross National Products)라고도 쓰는 국민총생산이 있다. 참으로 방대하고도 어려운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국민총생산이란 일 년 이라는 기간 동안 전 국민이 경재활동에 참여하여 이루어 낸 총 생산 활동의 결과(완제품 재화 및 용역)를 계량화하여 시장 가격으로 판매한 가치를 말한다.
 예건대, 깊은 산중의 채석장에 있는 돌(石物)은 그 장소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는 가치가 그리 크지 않지만 여기에 인간의 노동이 가해지면서 그 돌이 일정한 규격으로 깨어지고 다듬어져 일정한 장소로 운반되어 이를 원하는 소비자의 손에 까지 넘어간다면 이 모든 일(노동)이 돌에 가해질 때마다 새로운 가치가 추가되는데 이 모든 단계의 가치를 총 합산할 때 이것이 곧 부가가치이자 국민소득이 된다. 또 자기 집에서 아이도 보고 주방에서 요리를 하거나 그 밖의 가사 일을 한다면 소득으로 계상(計上)되지 않지만, 똑 같은 가사 일이라 해도 임금을 목적으로 남의 일을 해 줄 경우 국민소득으로 계상된다. 국민 소득 추계 방식의 한 예를 들어 본 것이다. 또 국민총생산이라는 결과를 얻기 위하여 알기 쉽게 벼 40 kg를 생산하여 40,000원을 얻었다면 제 비용을 공제한 잔여분이 국민소득으로 되겠지만, 기업체의 활동에는 경우에 따라 손익계산서나 재무회계 장부 등을 통하여 그 소득이 분배되거나 지출되는 항목을 포착해야 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분배 소득에는 임금, 이자수입, 임대수입, 영업 이윤, 감가상각비 등 항목을 추려서 합산할 때 소득이 된다. 각 산업 또는 경제활동의 특성에 따라 접근 방식을 달리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생산 활동에서 파악하는 ‘생산’ 국민소득 = ‘분배’ 국민소득 =‘지출’ 국민소득 이라는 관계가 이루어진다.
 
 이미 창출된 소득은 또한 바람직한 방향으로 분배될 때 건강한 국민경제를 이끌어가는 힘이 된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적극적으로 완화하기 위한 유산자에 대한 누진과세와 빈곤선 이하 생활자에 대한 보조, 경제활동의 활성화 등이 그것이 될 것이다. 화폐의 구매력만으로 국민소득을 평가해서는 피상적인 수박 겉핥기 일 수가 있다. 필자는 인도(India)에서 상당 기간 연수유학 한 일이 있다. 외세 침략 이전의 인도는 파키스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인도 모두가 하나로 된 나라였기에 같은 뿌리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행복지수가 세계 어느 나라 보다 높다는 것이다. 돈이 많고, 기후가 좋고, 전쟁이 없고, 자원이 풍부하거나 이런 등등의 유리한 요건을 갖춘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이들 나라에는 그 어떤 것도 행복으로 이끌어 줄만한 요건이 없는데도 늘 세계 최상위의 행복지수를 자랑한다. 그들 또한 빈부격차가 크지만 남들이 돈 벌어 부자 되는 데 대한 부러움이나 시새움을 내보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주거를 위한 주택이라는 것이 달랑 기둥 네 개,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를 막아줄 수 있는 지붕뿐인 집에서도 그들의 행복감은 끝이 없어 보였다. 인도 또한 우리나라처럼 길고 긴 해안선이 있고 수많은 어민들이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데, 이들은 대개 허리만 두를 정도의 팬티 비슷한 단벌 옷 만으로 고기를 잡을 때나, 잠을 잘 때, 집에 돌아와 다른 일을 할 때도 그 옷 한 벌로 해질 때 까지 입고 있는 모습도 보았다. 국민소득이라는 주제와는 아주 벗어난 얘기 같지만, 화폐 단위로 계량하는 국민소득과 사람의 마음으로 느끼는 행복감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위의 주요 지표가 말해 주듯 계량으로 표시된 소득이 늘 때 많은 불편함이 해소되고 짓누르는 근심 걱정 도한 사라질 것으로 보이지만 자신도 모르게 높아져 버린 기대치로 인하여 그 효과가 사라지거나 오히려 행복감이 더 떨어지기만 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무어라 해도 소득을 높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지만, 그 이상으로 소중한 것,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방해 받을 수 없는  오로지 자신만의 고유한 행복의 샘터를 창조하고 이를 소중히 가꾸어 나가는 일, 이것이 소득의 증대보다 더 값진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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