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역사(歷史)의 역(歷)이란 인간이 대자연 속에서 무엇인가 이루고자 하는 꿈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이 자연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과정에서 이룩한 삶의 발자취이자 총체를 말해준다. 또 사(史)는 손 수(手)와 가운데 중(中)이 합성한 말로서 한 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중도(中道) 정신을 의미한다.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의미를 찾아내어 현재 삶을 향상시킬 최선책을 잦아내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역사를 읽게 하되 어릴 때부터 읽게 할 것이며 남자 뿐 아니라 여자도 배우게 할 것이며 지배 계급 뿐만 아니라 피지배 계급도 배우게 할 것이다. 정신이 없는 역사는 정신이 없는 민족을 낳고 정신이 없는 나라를 만든다’ 고 목소리를 높인 신채호님의 경고 속에는 국가와 민족을 소생시키고 인류의 참된 소명을 일깨워주는 이 소중한 인간정신 활동의 결과물이자 산물인 역사는 인류에게 가장 값진 자산이자 지혜의 보고임을 말해 준다. 다라서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오늘의 우리 삶이 과거 역사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지금 우리의 발걸음에 따라 미래의 향방이 결정된다는 점을 말해준다. 과거가 단절되거나 왜곡될 때 과거의 소산인 역사의식도 뒤틀리고, 미래를 보는 시각 또한 뒤틀릴 수밖에 없다. 과거가 죽은 과거가 아닌 현재 속에 살아있는 과거이듯 역사란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이다. 역사를 배우지 않는다면 자신의 존재 의미를 돌아보지 않겠다는 말이다.
 진시황이 천하를 움켜쥐고 군림한 다음 혼란에 빠진 천하를 놓고 야심찬 항우와 유방이 각축전을 벌이게 되었다. 유방은 타산적이고 냉철하고 음흉하다. 항우는 정열적이고 직선적이다. 필부나 소인배가 가지기 쉬운 인간적인 약점과 특징을 많이 지닌 사람이었다. 인간이 지닌 두 가지 성향인 두 사람이 진(秦)의 시황제를 멀리서 바라보며 항우가 말했다. ‘저놈이 결국 천하를 뒤집어 놓고야 말 겠 구나’ 그러자 유방이 받았다 ‘사내대장부라면 저쯤은 되어야지’ 항우의 객관적 관점, 그리고 시황제 이미지 위에 자신을 올려놓고 보는 유방의 관점이다. 항우는 나중에 제왕이 되겠다는 결심이고, 유방은 이미 제왕이 된 입장이 되어 있다. 유방은 자신이 사는 땅을 주름잡으려 했고 항우는 있지도 않는 땅을 그리며 그 속에서 가장 멋진 왕이 되고자 했다. 항우는 신화를 만들고 있었고 유방은 역사를 만들고 있었다. 현실론자인 유방은 몽상가인 항우를 이길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세상을 사는 지혜와 성공에 대한 관점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진 나라의 황궁인 함양을 먼저 점령하는 자가 왕이 된다는 약속 하에 고향인 초나라를 떠난 두 사람에게는 기본적으로 생각이 달랐다. 반진군(反秦軍)의 총 사령인 항우에게는 고향에 돌아가서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고, 유방에게는 진나라 백성도 자신의 백성이고 진나라 수도 함양이 곧 자신의 도읍지라는 생각의 차이다. 고향에 가서 자랑하려던 항우는 유방보다 한 달 늦게 함양에 도착했다. 노략질을 하고 싶었던 유방은 그 탐욕의 힘으로 생각보다 훨씬 빨리 진의 수도를 점령할 수 있었고, 진나라 3세 황제 자영의 항복을 받은 다음, 가혹한 진나라 법령 대신 법 3장으로 민심을 수습했다.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이고, 다치게 하거나 훔친 자는 반드시 죄 값을  치르게 하고, 진나라의 법 폐지’가 그것이다.

 항우는 자신의 못난 점을 모른 채 자신의 잘난 점만 잘 알고 있었다. 유방은 자신의 꿈이나 야심에 비해 역량과 지혜가 참으로 보잘 것 없다는 점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개천에서 용이 난 자신의 이력서를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항우는 기로 살고 유방은 꾀로 살았다. 항우는 호언장담으로 살고 유방은 국가가 무엇인지 알았다. 항우는 힘으로 살고 유방은 눈치로 살았다. 항우는 국가를 잘 모르고 제왕의 지위는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유방은 창업에 성공했고 항우는 실패했다.
 항우는 무엇이든지 자신이 만족해야 행복했다. 그래서 고향으로 달려갔다. 고향의 정든 얼굴들 앞에서 진심에서 우러나온 환대와 칭송을 맛보고 싶었다. 잠시 한때의 만족을 위해 대사를 그르친 것이다. 상대가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항우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낮에 입는 비단 옷’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대낮에 버젓이 화려한 비단 옷을 입고 ‘고향 앞으로 가’ 가 천하대세를 뒤집어놓은 것이다. 자신에게 맞서고자 하는 이에게 눈만 한 번 흘겨도 기철초풍 해서 도망가게 했던 무서운 항우다. 그 항우가 유방에게 일대일로 대결할 것을 요구했다. ‘우리 두 사람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킬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 그러니 우리 두 사람이 대결해 결판을 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라는 제안이다. 유방은 싸늘했다‘ 나는 지략으로는 싸울지언정 힘으로는 안 싸우겠다’ 그러자 항우가 ‘네 부모를 끓는 가마에 넣어 삶아 죽이겠다.’ 하자 유방은 ‘그 국물이나 내게 한 그릇 달라’ 로 받아넘겼다. 유방은 철저한 현실론자였다. 위급할 때면 함께 타고 있던 처자를 수레 밖으로 내밀어 수레의 속력을 더 내려 했다. 내가 살아야 권력도 있고 천하도 있고 통일도 있다는 냉혹한 현실주의자였던 것이다. ‘모든 것을 천명으로 돌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다시 일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 영웅호걸이 살아있는 한 천하는 나뉘고 천명은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궁지에 몰린 항우에게 한 촌로가 해 준 격려의 말에 ’무슨 낯으로 고향으로 간단 말이요 ?  고향 청년들을 다 죽였는데 무슨 면목으로 다시 돌아가 재기하기를 바라겠소 ?‘ 라고 답한 항우와 극명한 대조를 보여준다. 그는 비극적 상황에서도 이렇게 외쳤다. ’다들 보아라. 내가 약해서 진 것이 아님을 지켜보아라. 나를 추격해 오는 저들 수천 기병을 우리 이십 여명 기병으로 단숨에 분쇄해 놓겠다. 내가 진 것은 나 자신의 약점에서 온 것이 아니다. 천명이 다 해서 진 것이다‘. 하늘의 탓이 아닌 자신의 탓임으로 잊어버린 항우의 절규였다. 천하가 자신의 손바닥 안에 있었는데도 필부처럼 처신하여 몽땅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제왕의 자리에 오를 사람이 필부, 타고난 소인배로 되돌아가고 만 것이다.
 비단옷을 귀하신 몸에 걸쳤으니 백주 대낮에 낯익은 고향으로 돌아가 자랑해야지(錦衣還鄕), 그 화려한 비단 옷을 입고도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캄캄한 밤중에 고향에 돌아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錦衣夜行) 그 인간적인 소박함 속에 가리어 진 인간적 허점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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